4. 믿음으로 구하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녹취자: 이새봄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십시오" 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가 생각나는 가을입니다. 어제 들판에 나아가 보니까 정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가을이 문턱을 넘어 깊숙이 가을의 품속으로 쑥 들어간 느낌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얼마나 공기가 차근차근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지 너무 좋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교회 나가서 성경을 묵상하면서 이 계절의 축복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이 풍성한 가을, 이 좋은 계절에 여러분 주님 깊이 만나고 말씀을 사랑하시면서 행복해지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어느덧 벌써 4장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은 이제 <믿음으로 구하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야고보서 1장 6절부터 7절 사이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전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자, 이제 시험에 들게 되면, 이제 마음에 많은 변화가 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음의 질서들이 위협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지런하던 마음의 질서가 흐트러지게 됩니다. 악기를 다뤄보신 분들은 너무 잘 알 것입니다. 바이올린을 켜든지 첼로를 켜든지 혹은 기타를 칠 때에도 제일 먼저 다락에 있던 악기를 꺼내다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뭡니까? 튜닝입니다. 그래서 음을 맞춥니다. 그렇죠? 예. 혹은 이게 뛰어난 분들은 그냥 귀로하고 또 요즘은 좋은 기계도 있어서 기계를 대놓고 음을 맞춥니다. 그래서 처음에 갖고 올 때는 두두둑 하는 소리가 나도 한참 조율을 하고 그 다음에 코드를 잡고 이렇게 기타를 쳐보면 아주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시험에 들지 않고 은혜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잘 조율된 상태와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 사이에 연관이 있고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시험에 들게 되면 이제 이런 것들이 조율이 깨지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이 조율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사고의 기능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도표를 보시면,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 '하나님은 선하신가?' 근본적인 의문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제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뭐 한두 가지를 가지고 설득하면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을 깊이 믿고 인격적으로 교통하며 느껴야 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을 이야기할 때 좁은 의미의 믿음은 어떤 것을 구하면 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근데 이 좁은 의미의 믿음이 넓은 의미의 믿음에 기초하고 있지 않으면 사실은 의미가 적습니다. 그러면 그 넓은 의미의 믿음이 무엇이냐?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깊이 신뢰하는 겁니다. 그 신뢰를 기초로 내가 구하면 아버지께서 주시리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관계를 보면은 이렇게 기초가, 이렇게 되어 있고 이 기초 위에 무언가를 이렇게 세우는 겁니다. 이것이 만약에 좁은 의미의 믿음이라면, 이것은 넓은 의미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시험의 종류도 너무 다양하고 때로는 평범하게 상상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상황 속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두 가지만을 확신하고 있으면 절대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표를 보시면 두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시다. 그래서 이것을 부정하게 하는 어떠한 광경이 우리에게 떠올라도 이 사실을 굳게 붙들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하지 않으신 것처럼 생각나게 하는 많은 현실들을 그 너머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뜻이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선을, 선하시다는 사실을 굳게 붙들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가 우리의 결정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의 결심으로 인도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건 꼭 외우고 계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이 두 가지 사실만 놓치지 않는다면 어떤 시험에서도 우린 이길 수 있습니다.
의심이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이게 뭐냐 하면 인간에게 이성이 있습니다. 그렇죠? 이성이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 이성과 대조되는 믿음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근데 이거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 근데 이 두 개가 때로는 합치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어긋날 때도 많은 겁니다. 근데 이 믿음은 진짜 하나님을, 하나님을 믿는 은혜 안에 있을 때 이 믿음이 있지만 그러나 사실 이 이성은 언제나 있거든요. 언제나. 그래서 환경을 봅니다. 이게 감각입니다. 감각. 눈을 통해서 환경을 봅니다. 그럼 보면 이 믿음이 약해져 있을 때에는 이것이 전부인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고 그다음에 여기서 의심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의심이 생기면 이것이 이렇게 해서 마음에 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이렇게 부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해하실 수 있겠죠?
그러면 결국은 대책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마음 속에 이성은 언제나 있지만, 그러니까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 믿음이 있어서, 이 믿음이 곧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져서, 그래서 감각을 통해서 환경을 보고 무엇을 말하면 그 믿음으로 이것을 해석을 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끔 어떤 의미를 찾게 될 때 의심은 해소가 되는 것입니다. 근데 이렇게 의미를 찾게 해주는 믿음의 작용이 사라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성을 통해서 환경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고 곧바로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경고하고 계시는데 환경을 보면서 마음이 더욱 안정되고 더욱더 자기가 하는 잘못된 길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심이 생겨나는 이 심리적인 기제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시작.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게 '의심한다'할 때 '디아크리노'(διακρίνω)라는 동사인데 의심하다, 판단하다, 분별하다, 불리하다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디아크리메노스(διακρινομενος), 분사입니다. 이렇게 의심하는 자, 여기 여기에 쓰여진 이 단어입니다. 결국은 의심하다라는 말은 그 그리스어로 보면 이렇게 마음이 나뉜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뉜 것. 그래서 하나 되었던 마음이 온전한 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해져서 하나가 된 것이 믿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마음이 하나 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의심하는 것은 그 마음이 나뉘어지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마음이 나뉘면.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지만. 이제 마음이 나뉘어졌다는 것은 생각을 하는데 생각이 이렇게 찢어진다는 거를 뜻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있는데 이 감정이 이쪽도 따라가고 이쪽도 따라가서 찢어지는 것입니다. 의지가 있는데 이쪽도 가고 이쪽도 가는 것입니다. 한쪽은 선이고 한쪽은 악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생각이 생각과 싸우고 감정이 감정과 싸우고 의지와 의지가 싸웁니다.
그럼 평안을 얻으려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죄에 굴복해서 악에 빠져버리든지 아니면 그걸 극복하고 선에 매달리든지 둘 중에 하나거든요. 그런데 악의, 악을 선택하고 죄에 빠지면 잠시는 평화가 옵니다. 그렇지만 그 평화는 영원히 계속될 수 없습니다. 왜? 죄인에게 어찌 평강이 있으리오. 어떤 식으로든지 결국 인간의 마음은 또다시 갈등하게 되고 또다시 예전에 겪었던 것보다도 더 커다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불신 상태의 마음이고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괴로워서 예수를 믿은 거 아닙니까?
결국 이제 흔들리는 믿음은 그 마음이 나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오직 은혜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 임할 때, 은혜가 풍성해질 때, 그때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여기에서 이것이 영적인 생명의 정체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은혜를 받아야 되겠는데. 그럼 어떻게 은혜를 받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아무렇게나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편 혹은 수단들을 사용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사용하시는 수단입니다. 성령이 이 수단을 사용하심으로 거기에 믿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렇죠? 대표적으로. 성찬에 참여하면서도 우리는 은혜를 받습니다. 사실 이 두 개는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성찬에 담겨진 의미를 깨닫는 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뿐이겠습니까? 기도하고, 은혜 받은 형제들과 교제를 하고 등등 이러한 모든 신앙적인 행위들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성령님이 사용하셔서 그래서 우리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안, 못 받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어떤 사람은 예배에 참석하며 건성으로 참석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 예배에 진심으로 참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예배에 참석한 것을 수단으로 삼아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다시,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이 찢어졌던 마음이 다시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거기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믿음은 결국 하나님 사랑에서 찢어지는 마음입니다. 거기서 이제 견고한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견고한 삶의 핵심은 결국 사랑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견고한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를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은혜를 받고 한편으로는 주신 은혜를 지키면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시험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곤고합니다. 그럴 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괴로움 속에서 지내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합니다. 간절히. 그러면서 결국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시련과 유혹이 어디로부터 왔고 자신의 영혼의 상태는 어떠한가,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믿음인데, 이 믿음인데, 이 믿음은 결국 기도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이제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상황만 바라보고 허둥대던 사람이 이제는 그 상황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나 하면서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신앙적인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놀랍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시험을 벗어나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순종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험 가운데 있을 때는 순종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근데 이렇게 은혜를 주셔서 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있으면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수 없습니다. 쉬울 뿐만 아니라 기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영원히 안전하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또 다시 얼마든지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세상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시험의 연속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렇게 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또 한 가지는 받은 바 은혜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보존하는 것입니다.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병이 나면 고치잖습니까. 약도 먹고 아니면 약도 바르고 아주 심하면 수술이라도 해서 고치잖습니까. 근데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면역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의 최고의 위기는 면역력이 사라졌을 때입니다. 거의 당신의 몸의 면역력이 심각하게 줄어들어 있습니다, 면역력이 거의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라는 경고등이 바로 이 잇몸 같은 데에 상처가 나잖습니까. 며칠씩 돼도 아물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거를 갖다가 이제 구강에 바르는 연고 같은 거를 발라서 이제 치료를 하는데 이런 분들은 자신의 면역력이 현저하게 낮아져 있다, 라는 사인이라고 그걸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래서 그 면역력을 보충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음식부터 시작해서 햇빛을 쐬는 것, 운동하는 것, 그리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는 것, 아니면 건강보조 식품들을 먹는 것, 이런 것들을 해서, 무리하지 않는 것. 그렇게 해서 면역력을 강화해야 됩니다. 이것이 아주 급하게 너무 위험한 상태가 됐다 그러고 경고등이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게 대상포진 같은 것들이 올 때에 바로 그 마지막 경고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패혈증이라는 건 아십니까? 그건 뭐냐 하면 혈액 속에 균이 들어가서 그 균이 혈액 속에서 번식을 하는 걸 가리킵니다. 패혈증이라 그럽니다. 그게 어떤 사람에게 오는지 아십니까? 면역력이 거의 제로가 된 사람한테 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혹시 핏속에 세균이 들어가도 거기에 우리의 몸에 있는 백혈구가 싸워서 다 이렇게 정리해줍니다. 우리, 우리 피 안에 있는 성분들이 스스로 싸워서 그것들을 다 정리해 준다고요. 그렇게 싸워서 그 뭐 우리 몸에 상처 같은 거 나면은 막 그 세균이 이 기회다 그러고 막 파고 들어갈 거 아닙니까.
그런데 막 그냥 싸우잖습니까. 그래서 그 세균하고 백혈구하고 싸워가지고 장렬하게 죽은 시체들이 바로 고름입니다. 근데 그렇게 우리 몸이 하는데 이 저항력이 거의 제로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균이 침입하면 48시간 안에 죽습니다. 금방 죽습니다. 그러니까 증세도 별로 없습니다. 몸에 열이 나고 그래서 감기나 몸살 정도인 것처럼 생각하다가 그냥 죽습니다. 무서운 병입니다. 그리고 혹시 중간에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장기들이 다 망가집니다. 눈 각막. 이렇게 그 세균의 입장에서 볼 때 맛있는 부위들을 제일 먼저 파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고쳐도 눈이 멀거나 이제 이 기관에 이상이 생긴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에 있어서 이 면역력이 얼마나 중요한 건가 잘 알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젯밤에도 교회 와 보니까 지체들이 몇 사람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다 자신의 신앙의 면역력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게 매일매일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현실에 대해서 너무 불평하지 마시고 그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실이 어려운 게 아니다. 제가 요새 매일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현실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믿음이 모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신앙의 면역력을 키워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좁은 의미의 믿음과 넓은 의미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좁은 의미, 구하면 주시리라는 확신. 넓은 의미,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뢰.
2. 어떤 시험을 만나든지 붙들어야 할 두 가지 사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시다. 여기서 절대적으로라는 말은 어떤 식으로든지 조건을 걸어서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 아니라 그냥 비교될 수 없이 선하신 분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 조건을 걸면 안 된다 이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3. '의심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음이 나뉜 것. 그래서 결국은 이 마음이 나뉘었다는 얘기는 사랑이 나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믿고자 하는 마음은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믿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믿음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면 반드시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따라오는 것입니다.
4. 견고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생명, 사랑의 힘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은혜라고 부릅니다. 성령님이 이 생명의 본질이십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생명 충만 사랑 충만한 삶입니다.
5. 은혜를 지키며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삶입니다. 순종하면서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죄로 상실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은혜를 받으려고 사모하는 가운데 예전에 받았던 은혜도 지켜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재미있으셨습니까? 아니 은혜로우셨습니까? 이 가을에 한 번 시간을 내서 요 그 과천 공원이라도 한번 가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좀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기지개를 켜시고 호연지기를 가지십시오. 이 모든 만물을 돌보시고 결실케 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지 않을까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렬히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