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불변하는 하나님의 선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녹취자: 이새봄
엄청 춥습니다. 드디어 겨울이 왔구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춥습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해서 가을인 것 같은 느낌을 12월이 다 되도록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꽤 추운 날씨가 되었습니다. 여러 성도 여러분, 건강 관리에 특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올 겨울에도 주님의 말씀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제 거의 이 책의 끝을 보아갑니다. 12장까지인데, 11장을 오늘 공부하고 있습니다.
<불변하는 하나님의 선>입니다. 우리 오늘 본문을 우리 같이 한번 모두 읽어 보시겠습니까? 시작.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아멘.
자,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제 <불변하는 하나님의 선>에 대해서 공부를 할 것입니다. 자, 이제 그림을 보시면 결국은 이제 시험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시험에 빠져서, 이제 빠진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우선 첫째는 그 하나님을 향한 낯섦입니다. 낯섦. 그러니까 우리 그런 아이들이 낯선 사람을 만나면 막 이렇게 울거나 아니면 또 어색해합니다. 그렇게 시험에 들게 되면 그러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게 바로 낯섦입니다. 이게 낯섦의 반대는 친밀입니다. 친밀. 그래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두 번째는 거리감입니다. 그래서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어떤 때는 나는 오히려 나에게 낯설고 주님이 내게 더 가까이 계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그렇게 우리 주님과 거리감이 없습니다. 결국 시험에 들게 되면 그러한 그, 아주 그 관계가 소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시험에 빠졌을 때에 나타나는 우리의 마음의 변화입니다. 간절한 기도, 그 다음에 열렬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적인 감화,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함 그리고 하나님과의 연합의 감정 속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시험에 들게 되면 이 모든 것들이 다 멀어지게 된다, 이 얘기입니다. 매우 위험한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돼서 하나님 안에서 충만한 은혜 생활을 할 때에는 생각이 딱 질서가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선악 간에 무엇을 판단하는 것이 아주 빠르고 정확합니다. 그러나 이제 여기에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집니다. 그건 뭐겠습니까? 이제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렇죠? 시험에 빠집니다. 시험에 빠져서 하나님과 낯설어지고 그 다음에 거리감이 생기게 되면, 그 다음에 생각의 혼란이 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이렇게 하나님 사랑 안에서 질서가 가지런할 때에는 이 모든 것이 생각이 질서가 있는데, 이게 이제 그 하나님을 사랑해서 멀어지고 이렇게 변질이 되게 되면은 그러면 이제 생각에 혼란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 믿을 때에는 마음에 이제 이게 평안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생각의 질서가 있는 이곳에 이제 진정한 평안이 있고, 근데 여기에는 이제 평안이 없습니다. 늘 불안정한 것입니다. 예, 그래서 여기에서 생각에 혼란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잘 섭취하고 또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는 이 경건한 삶은 결국 어떻게 우리가 그 하나님과의 친밀함 그리고 하나님과의 그리스도와의 그런 연합을 어떻게 잘 지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그 시험에 들지 않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보면 이제 사람이 이제 시험을 만날 때, 이제 그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릴 수, 이제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근데 이제 이게 두 가지입니다. 이게 어떤 경우는 참된 회개를 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고 또 그것은 아니고 자기 연민에 빠졌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회개도 후회를 동반하고 자기 연민도 후회를 동반하지만, 참된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만들어주고 자기 연민은 점점 더 길을 잃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하게 합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잘못 살아서 시험에 빠졌는데 이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모욕을 받으셨는가, 정말 그것이 가슴 아프다, 나의 삶을 고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쳐서 내가 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열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자신의 힘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때에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나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 회개 속에서 이제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집중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자기 연민은 자신의 상처에 몰두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피해자가 하나님인데 왜 하나님의 뜻대로 못 살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피해자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상처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감정적으로 카타르시스가 이루어지면서 해방감을 느낍니다. 근데 끝나고 나면 더 큰 절망감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거는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 용서와 은혜를 빌고 주님 앞에 진정한 회개를 하는 그것이 우리가 시험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 말씀입니다. 이런 시험에 들었을 때는 이런 속임수가 있다는 것, 그걸 여러분들이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 중요한 성경 구절이 나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랬습니다. 자, 여기 보면 이제 뭐 헝겊 쪼가리 같은 게 있는데 이 가나안 땅을, 땅의 약도를 이제 그린 것입니다. 이렇게 이것을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결국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겁니다. 왜냐하면 결국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잖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은 우리가 은혜 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이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압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다, 이거를 믿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잘 믿으면, 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오 그리고 주시지 않는 것은 안 주시는 것이 내게 더 좋은 것이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믿으면서 주시면 주신 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안 주시면 안 주신 것 때문에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근데 이제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를 않고 욕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때로는 우상의 힘을 빌어서 그렇게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우상을 섬겼느냐, 라고 그 질문을 하게 되면은 우리가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진짜 우상이 있어서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니라, 우상은 바로 자신에게 얻고자 하는 것을 그 우상에게, 얻고자 하는 욕망을 우상에게 투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길은 좀 복잡하잖습니까? 우선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고쳐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럼 자기 자신 전체를 개혁하고 고쳐야 됩니다. 근데 우상은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열심히 빌면 그 우상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변화되지 않아도 삶 전체를 헌신하지 않아도 우상에게 뇌물을 주듯이 그렇게 우상을 섬기고 하면 그 우상이 자신에게 복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집요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요하게 그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결국 모든 시험에 드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주님이 모든 것을 주신다, 그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시험을,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좀 더 보시겠습니까? 자,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느니라”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회전하는 그림자’에 대해서는 이제 해석이 많습니다. 좀 어려운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근데 공통적으로 이제 생각하는 것은,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다라고 하는 이것은, 이제 그 그 햇빛이 비치면 그 태양이 이렇게 이동하면서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도 바뀌게 되잖습니까? 근데 자체가 그것을 ‘변화’라고 보는 것입니다. 근데 그런 그림자가 하나님에게 없다, 이야기는 하나님은 사물처럼 변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불변성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썼습니다. 제가 뭐 한 20년 전의 일이지만 막 공항에 가는데 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집니다. 뭐 보통 오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데 이게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그런데 어쨌든 뭐 전화 걸어보니까 뭐 별 특별한 어 지시가 없었다, 그럽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근데 얼마나 그 구름이 짙게 꼈는지 아침 시간이었는데도 다 이렇게 라이트를 켜고 다녀야 될 정도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탔는데 드디어 비행기가 이제 주기장으로 가서 거기서 이제 활주로를 타기 시작했는데 엄청 빠른 그 속도로 굉음을 내면서 하늘을 치솟습니다. 하늘에 오르자마자 캄캄한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뭐 1cm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온통 뭐 유리창이 전부 다 다 구름으로 에워 싸여 있으니까, 아 뭐 솜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를 지나고 나니까 그냥 슉 하면서 그 구름 위로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거기는 보니까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 이렇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막 이러는 거 있잖습니까? 특히 그 구름이 끼고 하는 거, 눈이 오고, 이런 것들이 전부 다 한 10km 정도, 지상으로부터 천 그러니까 10,000m, 10km 정도 아래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 위에는 보통 비행기가 10키로 정도 상공에서 이제 그 정속 비행을 하잖습니까. 그러니까 구름을 뚫고 올라가고 나니까 이제 구름도 종류에 따라서 이제 낮은 구름이 있고 아주 높이 떠있는 구름이 있습니다. 새털 구름 같은 것들은 아주 높이 떠 있습니다. 근데 그것까지 위로 올라가고 나니까 거기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이 성경 구절을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그리고 태양이 빛을 잃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아도 결국은 구름 때문에 그러는 거고 구름 그 너머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은 도표에 보시면 그런 이런 많은 시험을 만나고 태양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러나 그 위에는 반드시 태양이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태양 자체는 빛을 잃는 법이 없습니다. 불변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시험이, 시험이, 구름의 시험이, 시험에 구름이 가려도 그걸 통해서 이제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앙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는 것입니다.
이제 예레미아 애가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시작.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영원은 선하시도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분이신데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배가 난파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나뭇조각을 붙들고 생존해 있는데 저 멀리서 구조선이 오는 것입니다. 밧줄을 던져줍니다. 그러니 이제 밧줄을 손에다가 칭칭 감고 그리고 꽉 붙들고 이제 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 구조선이 와서 그를 확실하게 지금 구조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그렇게 확실한 때에는 이 파도의 바다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왜? 반드시 구조될 것이기 때문에. 수천 미터 바닷속에 빠져야지만 사람이 꼭 죽는 것이 아니라 한 키만 넘으면 얼마든지 인간은 물에 빠져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그 구조선이 와서 건져주면 아주 확실하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시험에 든 상황이 가볍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매우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이 못 하실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시험에 빠졌든지 간에 그 시험은 위험한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만이 우리를 그 시험에서 건질 수 있으니 하나님의 환경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그 구름 너머에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건지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 이제 문제입니다.
1. 시험의 때에 신자들이 잘 속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각의 질서에 혼란이 오고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2. 시험에 든 사람이 정욕을 따라 살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것을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자기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시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변함이 없으시다, 이 뜻입니다. 그래서 특히 선하심에 변함이 없으시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입니다.
4. 모든 염려는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보다 자신의 힘으로 자기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라고 믿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불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어떠셨습니까? 오늘 공과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선>에 대해서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결국 은혜 안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생사 간에 주님을 의지합니다. 은혜에서 멀어지면 그 믿음에서도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시험에 들고 주님을 멀리 떠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겨울에 은혜의 따뜻한 화로 옆에서 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으시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렇게 시험에 들지 않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시험에 들었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건져주시도록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