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1:18)
녹취자 : 허혜숙
‘시험에 관하여’를 마치면서 성도들의 나눔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같이 보시겠습니다. 나눔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자, 그러면 대망의 12장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오늘 주제 본문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1;18)고 했습니다. 자 여기에 보면 하나님 우리와의 관계가 마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우리에게 너무 현실적인 관계입니다. 부모인 사람은 당연히 자녀를 가졌고 또 자녀가 된 사람은 모두 부모를 가지고 있으니 사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우리는 자녀에 대한 기억도 간직하고 있고 부모에 대한 기억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이에 유대감과 사랑, 그리고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의 끝없는 사랑,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하실 때 자주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들어서 우리와 당신과의 관계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제임스 파커라고 하는 작년에 돌아가신 저명한 청교도 연구가인 이 분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하나님을 얼마나 참 아버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자기가 그의 자녀 됨에 대해 얼마나 행복해 하고 있는가? 이것이 결국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강조했습니다.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면 된다. 이 생각이 예배와 기도 및 총체적인 인생관을 유발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를 그렇게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 201쪽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공과를 왜 이런 이야기로 시작을 하느냐 하면 오늘 본문에서 성경이 시험에 관한 교훈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있어라’이렇게 말씀하시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죠? 우리의 육체를 창조하실 때.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후~하고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서 우리의 영혼을 창조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생명을 상실하십니다. 그 때 다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를 영적으로 낳으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다시 영적으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는데 그 진리의 말씀이 곧 복음의 진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을 입증하신 사건, 이 복음의 진리를 통해서 우리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시험에 든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성경에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 라고 나옵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첫 열매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려고 하던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아홉 번의 재앙이 일어나서 모든 나라가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는데도 여전히 완악한 마음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놔 주지 않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마지막 재앙을 베푸시는데 그 때 애굽에 있는 모든 초 태생, 즉 처음 난 것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면 예외 없이 모두 죽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음을 피할 길을 주십니다. 문지방과 인방에 어린 양을 죽여서 피를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양을 죽여서 피를 바르면 여호와의 사자가 피를 바른 집은 건너뛰게 되어서 죽음을 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의 기원입니다. ‘Passover’ 건너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은 분명히 구원의 소식이었지만 애굽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아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난 것,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든 처음 난 것들이 죽으니 저 미천한 집안의 평민부터 시작해서 위로는 바로의 처음 난 아들까지 다 죽임을 당하게 되고 짐승도 모두 그렇게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런 죽음을 보지 않은 집안이 없을 정도로 모두 초상집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죽음을 보지 않고 죽음이 건너뛰게 되고 그 때부터 처음 난 것이 여호와의 것들이라고 생긴 것입니다. 죽을 운명에 있었던 것들인데 은혜로 살아남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 바쳐저 그것을 첫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첫 열매라고 하는 그 말에는 ‘선택’이라는 말이 있고 ‘구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처음 난 것들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져 봉헌 된 것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확을 해도 처음 수확한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시지 않으셨다면 모두 죽었을 사람들인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피로 살리셨으니 우리 모두가 구원받은 처음 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사람으로 하나님께 바쳐졌고 그래서 우리가 첫 열매로서 하나님 앞에 바쳐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적으로는 우리가 둘째로 태어나고 셋째로 태어났어도 영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처음 난 것이 되어서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의미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기억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여기에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듯이 시험에 든 자는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지 영혼의 생명이 심하게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시험에 든 사람도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역사하실 때 이 사람도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험에 든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드디어 ‘시험에 관하여’를 마쳤는데 성도들이 이 ‘시험에 관하여’ 공과를 끝내면서 어떤 것들을 새롭게 깨닫고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성도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성도 :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때가 있지만 매일의 제 삶에서 그 능력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능력으로 살 수 있을까? 저는 최근에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나의 능력으로 살고 있는 것 같을 때는 여지없이 미끄러졌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던 저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으로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인정하고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기 위해 애쓰는 몸부림이 날마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찬송으로 마음을 열고 예배와 묵상 말씀으로 부어주시는 세밀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새기고 새겨진 마음으로 이 땅 가운데서 하루를 살아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아갈 때 세상의 능력의 기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입혀주시는 것 같습니다.
성도 :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늘 저를 붙들고 계심을 믿지만 저의 믿음의 상태에 따라서 그것을 깨닫기도 하고 깨닫지 못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능력의 말씀은 갈등의 원인을 해결해 주시기도 하시고 또 저의 죄성을 다스려주시기도 하시는 경험을 하게 되어지는데 은혜가 나를 인도할 때는 그 말씀의 능력에 쉽게 동화되어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지만 다시금 드러나는 저의 죄성으로 인해서 그 은혜에서 멀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은혜를 생각하게 하시고 또 그 은혜를 회복시키시고자 기도하게 하시니 적극적으로나 소극적으로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험에 깊이 빠질 때는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깊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 때에도 하나님은 선포되어지는 말씀이나 예배의 자리를 통해서 말씀의 능력을 다시금 회복시키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만이 말씀의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믿습니다.
자, 우리 두 분의 지체들의 말씀을 들어보았는데 결국 시험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떤 하나님의 말씀에든지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준비에서 멀어진 모든 상태, 이것이 시험입니다. 혹은 은혜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살아있는 기도의 은혜 속에서 그렇게 매일매일 영위해 나갈 때 그것이 시험에 들지 않는 비결입니다. 최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은혜 안에서 살아가려고 애쓸 때에 우리가 그런 모든 시험들을 이기면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 1.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204-206)
- 시험의 때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계일까요? 하나님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꽉 붙들 때 그 때 시험에 빠진 나를 보며 낙심하는 대신 시험에 빠졌을지라도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다시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엄숙하리마치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면서 여러분들은 믿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문제 2.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207-209)
- 우리를 낳으시는 방식이 ‘진리의 말씀으로써’이다 라는 뜻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다는 뜻이 무슨 뜻입니까? 결국 진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복음을 통해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그 복음이 우리에게 믿어지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어도 우리는 그와는 관계없이 살았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놀라운 사실을 듣게 하셨고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믿은 우리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그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복음의 말씀으로 이미 구원의 공로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니 믿은 우리를 자랑하기 보다는 그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 3. 첫 열매에 담긴 사상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209-212)
-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다. 왜? 원래 죽었을 것들인데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통해서 대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봉헌하라고 하셨기에 첫 열매는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고 하나님께 바쳐지기 위해서는 세상의 용도를 위해 쓰여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드려지도록 구별 된 것입니다. 그래서 봉헌과 구별 이 두 가지가 첫 열매에 담긴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 4. 본문이 말씀의 능력을 상기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줍니까? (212-213)
* 우리를 태어나게 하실 때에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러면 시험에 들었을 때도 결국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새롭게 살리실 것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시험에 처했을지라도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사실. 두 번째는 어떤 경우에서라도 하나님이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를 건지신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을 굳게 믿으며 믿음으로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열 두과로 되어있는 시험에 관하여를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특별한 질문은 없었고 여러분들이 글을 올려주셨는데 여러분들의 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 지체가 이런 글을 보내왔습니다. 결국 우리를 시험하시지 않는 하나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여야 함을 깨닫습니다. 새 주셨습니다.
또 한 분은 살면서 왜? 라는 의문이 드는 시련의 때가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믿고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시련을 피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는 용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는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또 어떤 분은 환란이 왔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인가 아니면 내 죄로 인한 고난인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결국 하나님은 결코 시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고난의 원인과 헤쳐 나가야 할 방향 그리고 내가 의지를 발휘해야 할 부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또 한 분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시험을 그렇게 이겼습니다. 라는 문장을 읽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비록 저는 그런 분들의 삶 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망스럽고 힘들 때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해 봅니다.
또 한 분 이 책을 보면서 새롭게 깨달은 부분은 시험에 관한 정의입니다. 저는 시험과 고난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올라왔습니다. 또 어떤 분은 목사님도 시험이 있으셨습니까? 당연합니다. 시험이 왜 없었겠습니까? 크고 작은 시험이 많았습니다. 시험이 없었다면 왜 아침에 세상에서 눈 뜨기 싫은 시간들이 있었겠습니까?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은 다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한 멘트를 함으로서 이 모든 순서를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목적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우리가 이러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사람은 지루해집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마음속에서 또 다른 목표가 생겨나고 그것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삶의 행복일까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보면 인간이 행복을 위해서 산다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이라기보다는 세상의 행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 살 가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행복한 순간은 거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짧거나 금방 또 다른 어려움이 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의 현실은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와 싸우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 과정이 우리의 인생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매일 부딪히는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매일매일 경험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행복의 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열두 번 동안 이 공과 공부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책을 통하여 부디 조금이라도 시험을 잘 이기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 지혜롭고 능력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빕니다. 또 방송을 시청하시고 있는 분들 중 아직 책만 보고 설교를 듣지 않으신 분들은 시험을 이기는 길 2에 관한 시리즈를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