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마음(1)
녹취자 : 오지윤
제일 먼저 수업 계획을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여러분들 모두 수업 계획서를 받으셨으리라고 믿는데, 그래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띄워줄 테니까 같이 보겠습니다.
인간과 마음 수업 계획서입니다. 수업의 개요는 성화에 대해서 배우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학에 관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것만 하면서 한 학기를 보낼 수는 없겠지만, 저는 여기에서 성경, 역사, 철학, 심리학 등등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신학적인 결론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수업 목표 자체가 단순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에게 영혼, 마음, 마음의 작용, 그 마음을 어떻게 여러분 자신의 주체성을 행사하는 사령탑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들을 함께 터득하게 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번 주부터, 매주 강론을 하나씩 의무적으로 들으셔야 하는데, 이것을 숙지하기 위해서 듣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영혼의 양식으로서 듣는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다운받으셔서 전철 타고 오갈 때나, 책상에 앉아서 메모하면서 집중적으로 듣는 것을 저는 제일 권합니다. 목표 자체가 여러분 자신이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 그리고 강론 안에 제가 수업 중에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지식이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것들을 어떻게 머리로만 알지 않고 마음까지 끌어내려서 여러분 자신이 마음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께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재가 있는데, 교재는 세 권으로 되어있습니다. 제가 책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책이 주 교재입니다. 이미 제가 2003년도에 이 책을 썼으니, 18년 정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귀담아들어야 될 내용들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발전된 과학기술 때문에 우리의 자신이 마음을 향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있습니다. 감각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감각하는 사물들을 마음속에서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 마치 소화도 못 할 불량인 음식을 잔뜩 먹은 것과 같습니다. 고래 한 마리가 죽어서 해변에 떠내려왔는데, 고래 배를 갈라보니 쓰레기가 86킬로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우산까지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위를 꽉 채우고 있어서, 별로 크지도 않은 돌고래였는데,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상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사색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그러한 것들을 여기에서 다룹니다.
두 번째 책은 자기 깨어짐입니다. 이 책을 여러분들이 읽게 되실 겁니다. 이 책은 2006도에 나왔습니다. 2006년도 3월 25일에 나와서, 현재 두 판에 걸쳐서 약 20쇄가 넘게 찍힌 책입니다. 그렇게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은 우리가 배우는, '나라는 인간이 누구고, 내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담론들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서양 신학을 사용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심성에 있는 자기 깨어짐이라고 하는,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가 많이 하지 않습니까? "걔는 조금 더 깨져야 해" "내가 좀 더 깨졌어." 등등 이야기하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사용합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풀어서, 그러한 자기 깨어짐이 본질이 무엇이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성화에 어떻게 이바지하는가 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아까 어느 학생이 읽었다고 했던 이 책인데, 가장 최근에 나온 책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가 아니라, 일반 에세이로 분류가 되어서 김영사에서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을 여러분들이 읽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왜 읽게 되어있냐면, 여기에서 처음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자체가 마음에 관한 내용들을 거의 담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자기는 마음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어떻게 자기라는 정체성이 행사되는가? 이러한 것들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습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저는, 제가 초창기에 1995년에 작가로서 데뷔를 했는데, 그때부터 10년 동안은 제가 나레이티브를 이용한, 현대인들이 아마 좋아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책을 써서, 책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태까지 200만 부 정도 보급을 했는데, 그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제 책을 사랑해 주었고, 읽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제가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면서, 스콜라주의적인 법학적 글쓰기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게 그 책의 첫 번째 시작입니다. 그리고 15년 동안을 그러한 논리적이고, 탄탄한 논리에 기초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탐구로 글을 쓰게 됩니다. 그래서 책이 조금 어려워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라는 책이 1기에 속한 것이라면, 이것은 2기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왜 사람들이 그렇게 책을 안 읽을까? 제 책만 안 읽는 것이 아니라, 책 시장 자체가 50% 정도로 쪼그라들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더군다나 기독교 서적은, 약 20년 전에는 일반 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4~5%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기독교인들이 일반인에 비해서 더 많이 책을 안 읽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1년 동안을, 현대 소설과 SNS를 조금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SNS를 안 합니다. 카톡도 안 합니다. 그런데, 일부러 한 번 들어가서 인터넷의 언어들을 쭉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바뀐 것이 뭐냐면, 특히 젊은이들이 논리적인 글보다는 감성적인 글을 원하고,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 그림 같은 감각적인 언어들을 요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나름대로 변신을 시도한 첫 번째 책입니다. 다행히도 일반 시장에서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잘 나가고 있습니다. 들어가시면 평들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 권의 책인데, 책 장사 같긴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늘 애틋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렵게 학교 다니는데, 책을 세 권씩 사라 그러나, 그래서 이 책 두 권은 제가 여러분들의 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환호성을 지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 대신 이 책은 여러분들이 사시기를 바랍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알라딘이나 예스24나 인터파크나 교보문고나, 어디든지 좋습니다. 들어가셔서 구입하시고, 리뷰를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훈장질하는 그러한 리뷰 말고, 기독교 신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따뜻한 생각이 담겨있는 리뷰를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 선전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리뷰를 남겨주시면 불신자들도 들어와서 책을 사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하시고, 인터넷 서점을 잘 찾으시면 이것 하고 똑같이 생긴 노트까지 사은품으로 주는 곳이 있습니다. 교보문고에서 한참 했었는데, 끝났습니다. 예스24나 알라딘에 들어가면 아마 사은품을 받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친절하게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사시고, 이것은 수업시간에 몇 번에 걸쳐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 두 권은 여러분들에게 보내드릴 테니까, 오늘 조교에게, 자기의 정확한 주소와 연락처를 보내주시면, 우리가 이번 주 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잘하면 이번 주 안에 받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수업 방식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다음 주부터 어떻게 되냐 하면, 제일 먼저 수업을 시작하고 출석을 부르고, 강론을 나누게 됩니다. 그 강론은 제가 무작위로 지적을 하면, 강론 레포트는 보내고, 자기가 발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드립니다. 지금 23명밖에 안 되니까, 거의 매주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다음은 여러분들이 책을 구입하시고 그러느라 정신이 없으시니 다음 주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을 먼저 나누고, 다음 주에 책을 사시면 어디까지 읽어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과제량을 많지 않게 하기 위해서 3주 정도 나눠서, 강론과 책을 겸해서 1부의 발표를 하고, 그것을 종합한 다음에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수업하면서 수시로 참고해야 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따로 나누지는 않겠습니다. 주 교재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이것은, 이 책이 다 끝나고 나면 조금 쉬었다가 제가 몇 챕터부터 몇 챕터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라고 얘기하면 읽어오시면 됩니다. 그 대신 꼭 읽어오셔야 합니다. 제가 저자기 때문에 읽고 왔는지, 읽지 않고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간단하게, 아주 짧은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의 독후감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 책을 그렇게 나간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그다음에 저는 강의를 자유롭게 하고, 언제 대면 수업을 다시 시작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수업 중에, 코로나 사태가 나기 전에 한 학기에 한 번을 우리가 열린 교회에 와서 수업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1년 동안 못했습니다. 그래서 날씨 좋은 봄날에, 여러분들을 저의 서재로 초청해서, 저의 서재도 보여드리고, 테라스에서 바비큐를 해서 같이 먹고, 수업도 하는, 대개 보강을 그렇게 활용했는데, 그렇게 하고, 학교에 차를 보내서 여러분들을 모시고 교회로 오고, 다시 학교까지 바래다 드리는 것으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의 이야기로는 4월 말까지 일단은 비대면 수업으로 하고, 4월 말이 될 때 코로나 상황으로 봐서 등교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니까, 등교가 된다면 아마 우리가 같이 모여서 테라스에서 강의도 듣고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고, 등교를 못 한다면 아마 조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여러분과 함께 즐거운 수업이 되기를 바라고, 제가 수업을 12년 정도 해오면서 제가 느낀 보람은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대학부로 석전교수로 맨 처음에 들어왔는데, 대학부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신대원에서도 오라고 했는데, 두 개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대학에 발령을 내서 대학부에 왔습니다. 처음 올 때는 마음이 조금 그랬습니다. 이 어린 학생들과 함께 내가 무슨 공부를 같이할까, 여러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목회자들을 길러내는데 최적화되어있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소속이 대학이니까 어쩔 수 없이 대학에서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좋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신대원 학생들은 어떤 강의를 해도 3할이었습니다. 100명에게 강의를 하면 30%는 빠져들듯이 들어오고, 30%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고, 30%는 잘 안 듣는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학생들은 대개 한 번 이야기하면서 풀어보면 제가 선택하겠다는 태도였는데, 대학부 학생들은 굉장히 마음이 열려있었습니다. 의외로 마음이 곤고한 학생들이 수업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정말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학문의 뜻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생을 공부하면서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단호한 결의를 가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벌써 그 학생들이 거의 다 목사가 되고, 사회에 진출했겠지만, 심지어는 음악과에 다니던 학생들도 들어와서 그렇게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수업을 계속해왔습니다. 그래서 2학기에는 기도를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미학이나 이러한 것들을 전부 다 해서 풀어가고, 1학기 때는 마음을 그렇게 풀어가는 것입니다.
저의 관심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입니다. 결국은 살기 위한 공부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에 관해 공부해서 지식을 쌓는다고 해서 바깥에 나가면, 수많은 책들 속에서 이미 여러분들이 평생 공부해도 못 할 것들을 학자들이 모두 이뤄놨습니다. 그분들이 못한 이야기를 새로 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목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그렇게 발견해냈지만, 사실은 그대로 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그렇게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했던 철학자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저는 어느 학문의 유용성을 검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그 사람이 행복했느냐? 그것을 묻습니다. 그 학문을 이용해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가? 그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개발하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지식의 체계로 지탱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관해서 공부하는 것은, 마음에 관해서 공부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 그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가지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수업이 그러한 세뇌적인 수업이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매시간 발표하게 해서,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이번 한 학기 모두 배우고 나면, 내 인생에서 정말 커다란 수학이었다, 이제야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런 마음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미 다 보내드렸는데, '은혜와 마음'이라는 실러버스를 여러분들께 보내드렸습니다. 그 책을 보시면서, 첫 시간이지만 조금 수업을 하고 오늘 하루의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미 보내드린 강의안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시면서 제 수업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목차를 먼저 보시면,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마음, 마음과 세계, 영혼과 영원과 마음과의 관계에 대해서, 마음과 시간, 마음의 치료자이신 하나님,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해야 인생을 살기에 적합한 새로운 마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이야기해봅시다.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평소에 살면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마음이 무엇이다. 혹은 살면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어떻게 궁금증을 갖게 되었고, 혹은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서 힘들었던 때 등등 마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동주 학우부터 이야기해보시겠습니까? 마음과 관련해서 이야기해보시길 바랍니다.
김동주 학우: 저는 마음이 늘 통제를 하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다가도 인간의 힘으로는 마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 왔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라는 것도 성경에서 나오듯이, 굳은 마음 자체가 많이 제거되어야 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허락해 주셔야 그 마음마저도 남을 인생을 사는 동안에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통제가 되어가는 것이 하나의 기도 제목이기도 합니다.
김미나 학우? 마음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습니까?
김미나 학우: 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고 나서는 내 영혼이 마음 안에, 무엇이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바뀐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제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마음보다, 죄나 내가 사랑하는 어떠한 것들이 지배되어 있을 때는 아무리 내 영혼이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알려고 해도 따라지지 않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성령 하나님이 마음에 대한, 성경에 대한 작용의 빛을 비춰주시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겠다는 것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또 아이들도 와서 질문하는 것이, 거룩한 삶을 살고 싶은데 마음이 따라지지 않는다는 고민을 많이 털어놓게 됩니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이 우리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군요? 김재원 학우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신학과 4학년 김재원?
김재원 학우: 저는 마음과 감정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 때문에 특히나 힘들었던 경험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라는 질문 속에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 번에 드러나서, 표면적으로는 우울함에 빠지거나, 외로움의 감정들을 많이 느끼면서 내 마음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던 것 같고, 그다음에는 그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내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을 많이 고민해보는 계기가 그러한 질문을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신학과 2학년 김재원 학우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재원 학우: 저는 제 마음도 잘 알 수 없어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을 저도 잘 몰라서 이해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저절로 알게 되는 데에는 많은 희생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많은 고통도 지불해야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적이 없으십니까? 전자제품 같은 것을 샀는데, 설명서를 안 읽고 쓰다가 망가뜨린 적은 없습니까? 저는 설명서를 잘 안 읽습니다. 그래서 한 번 오디오를 망가뜨린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바꿔줘서 교환하기는 했습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나라는 인간 사용 설명서는 잘 안 읽으려고 합니다. 그 설명서의 핵심 부분이 마음입니다. 나이기 전에 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고,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떤 독특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들을 터득해가야 하는데, 대부분 설명서를 읽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터득하게 됩니다. 결국은 사회생활도 너무 힘들어지고,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지탱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마음이 그것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될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나옵니다. 정신과 의사가 본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밤이라고 나옵니다. 거기서 의사 선생님이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환자가 자살하는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나도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사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도 결국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것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최주헌 학우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마이크가 안 된다고 합니다. 기계를 점검해보셔야겠습니다. 김혜원 학우?
김혜원 학우: 저의 인간적인 마음과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제 안에서 혼돈될 때가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번 학기에 찾아내야 합니다. 마음의 정체를 밝혀라 입니다. 김태웅 학우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태웅 학우: 저는 요즘에 신학적인 관점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명시적 계시, 분명한 계시와 우리가 자연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상황적 계시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우리의 마음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서 그것이 주어진다. 객관적인 것이 주관적으로 온다. 그런데 주관적이라는 것, 인간의 마음은 주관적이다. 이 자체가 공부하면서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여기에 관해서 어떤 책을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점점 공부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 이것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작용하느냐, 이것이 실천적으로 정말 중요하구나 라는 것을 너무 알고 싶고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방향성도 잘 몰랐습니다. 저는 그러한 쪽으로 마음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을 많이 생각합니다.
지식의 필요성을 너무 많이 느끼셨군요? 두 분만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김신영 학우?
김신영 학우: 저는 제 마음이 어디로 향해있는지에 따라서 제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는데, 궁극적으로는 제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하는데, 삶 속에서 그러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아서,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져야 항상 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있을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주혜 학우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신주혜 학우: 저도 많이 고민하며 기도 생활을 하는데, 기도할 때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으니까 마음이 정말 평안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생겨도 마음이 평안하다가, 다음날에 사람의 말, 상황 등이 급변하게 되면, 그때 기도했던 마음이 요동칠 때가 많았습니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 가장 좋은 영역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빼앗기기도 쉬운 영역이구나, 그래서 신자들에게 이 마음을 알고 마음을 하나님 안에서 성화하면서 가꿔나가는 것이 참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음을 많이 보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 이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알고, 항상 마음으로 주님께 표현하고 기도로 올려드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싶어서, 하나님께서도 귀하게 보시는 영역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가지 확인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든 사람이 마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우리의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도 합의가 된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부터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도 합의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는 것들은 바로 그러한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할 때, 그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할 수 없는 동등성이 갖춰진 사회가 정의롭고 이상적인 사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법적이고 철학적인 평등 말고, 실제로 모든 사람의 가치가 동일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자신에게로 향하여 볼 때, 나의 가치는 어떤 점에서는 항상 똑같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하나님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 내가 가난하던 부자던 그러한 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 보면, 어떤 때는 내가 매우 쓸모있는 사람이고, 어떤 때는 별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주관적으로만 느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많은 사람이 주목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어떤 사람이 굉장히 훌륭한 학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연히 다른 이유로 주목을 끕니다. 악기 연주를 잘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세계의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고, 그 자체가 돈이 됩니다. 이렇게 그러한 것들을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것들에 의해서 좌우되는 가치 말고, 보다 더 근원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돈이 많다가 돈이 없을 수도 있고, 놀라운 연주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나를 무색하게 하는 후발주자가 나와서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나는 미모가 너무 뛰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몇십 년이 지나고 나면 늙은이가 되어서 외모에 대해서는 논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 말고, 한 인간으로서 훌륭하다, 정말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만드는 것이 무엇이겠냐고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선한 의지의 크기에 있다.' 거기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의지라고 하는 것은, 마음 안에 있는 기능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나쁘면 당연히 의지의 상태가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나쁘다고 하는 것은 의지의 크기가 크고 작은 것의 문제보다도, 방향성의 문제입니다. 요약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가치는 선한 의지의 크기에 달려있다. 그 의지는 마음 안에 달려있다. 그 의지는 절대적인 양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의지냐는 문제이다. 선의 의지입니다. 선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하나의 공식이 나오게 됩니다. 필기해두셔도 좋습니다.
한 인간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며, 그의 존재의 가치는 선한 의지의 크기에 달려있다. 처음 구절을 해석해보겠습니다. 한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다. 규정하게 됩니다. 영혼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예쁘다고 하는 것은 아름답다의 일부일 뿐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당연히 물질적 사물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비율과 균형이 맞고 내 마음이 그것에 끌릴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획일적으로 다 똑같은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같은 시대에 제복처럼 입고 다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티셔츠를 좋아하고, 양복을 좋아하고, 원피스를 좋아하고, 투피스를 좋아하고, 스리피스를 좋아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 걸쳐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미학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의 불행은 아름답지 않은데,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내 마음은 흐르는 물 같아서 어디로 흘러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내 마음이 올바르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고, 객관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것은 내가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느냐?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숙제입니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일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껏 해봐야 "쟤는 왜 저렇게 톡톡 튀는 옷차림으로 다녀?" 이 정도가 될 것입니다. "쟤는 가꾸지도 않나 봐, 쟤의 미의 기준은 우리와 달라, 극혐이야"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총신대에 다녀도, 1미터짜리 펑크 머리를 하고, 기름을 바르고 다닌들 해도 누구에게 해를 주겠습니까? 눈에 거슬리긴 할 것입니다. 누구는 와서 그러고 다니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싫다. 이대로 다니고 싶다고 하면 그대로 다니면 됩니다. 현대 법에 걸릴 일도 없고,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이 도덕적 아름다움일 경우에는 문제가 됩니다. 도덕적인 아름다움은 나의 마음이 얼마나 선하냐고 하는 것과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도덕적인 아름다움은 확실하게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사이에 걸쳐있습니다. 도덕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도덕이라고 이렇게 쓰지 않습니까? 이게 중국말로는 타오 입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있는 도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타오가 있고, 여기에 한 인간이 이것을 마음과 정신으로 이것을 찾아갑니다. 그것을 더 라고 합니다. 타오 더 이렇게 됩니다. 두 개를 합쳐서 도덕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주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진리가 있고, 내 마음이 그것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합쳐져서 도덕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어떤 절대적인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그것이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내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고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럴 때 있지 않습니까? 머리로는 이것이 참 좋고 훌륭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압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고민이 생겨나게 됩니다. 내일 모래가 기말고사입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것이고, 그것이 마땅하다는 것도 알고, 그것을 해야지만 내 인생이 앞으로도 잘 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내일 모래 기말고사인데, 지금 하고 싶은 것은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하고 싶은 욕망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나의 의무를 어깁니다. 이렇게 게임에 빠져듭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무엇을 느끼냐면,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 두 개 사이에 충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슨 뜻이냐면, 내 마음이 내가 좋은 것을 하고 싶은데, 내 마음이 항상 선한 것을 원하지는 않는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문제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인간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입니다. 항상 선한 것을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될 텐데, 그 마음이 아닌 적이 많습니다. 결국, 우리들은 선한 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내 마음의 욕망에 더욱 끌리는 것을 선택해서 우리의 마음에 갈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자체가 마음이 찢어지는 분열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분열이 아주 극단적으로 발전할 때, 나 자신의 마음을 도저히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 행동들이 나오게 됩니다.
특히 18세기에, 1780년대 이후에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증기기관이 발견되면서 예전에는 에너지를 쓰려면 물에서 수력으로 에너지를 얻든지, 풍력으로 에너지를 얻든지 등등 자연에서 얻었어야 했는데,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어디든지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그 에너지를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이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서 물을 끓이고, 그것으로 에너지를 만들면 그 에너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증기기관이나 기차 같은, 공장제 산업이 대량생산의 사회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우리의 마음과 관련되어있냐면, 여러분 그런 생각하지 않습니까? 도시를 떠나서 일주일 정도 기도원 같은 데가 있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마음이 훨씬 더 평안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더욱이 금식까지 하고, 일체의 전자기기로부터 멀어져서 자연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심심하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외부적인 간섭이 적어지니까,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문명을 등지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산업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소외와 많은 정신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 19세기부터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심리학이라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심리학이 매우 중요하게 되고, 의학적으로도 정신과가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관한 끊임없는 연구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보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마치 흔들리는 배 위에서 흔들리는 물을 관찰하는 것처럼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배를 타고 빨리 멀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난간에 서서 지나가는 배의 물살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더 빨리 멀미가 나기 시작합니다. 멀미를 덜하는 방법은, 먼 하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수평선 같은 곳을 쳐다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는 것이 뱃멀미를 덜 하고 가는 방법입니다. 우리 자신이 흔들리는데, 사물들도 흔들립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보려고 해도, 마음에 잘 포착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고민부터 시작하면서, 그러면 성경이 마음을 뭐라고 말하는가? 거기서부터 출항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과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 고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물건이 있으면, 물건의 구성 요소가 무엇으로 되어있는지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제품을 분해하든지, 아니면 제품을 생산한 공장으로 가보면 아는 것입니다. 몇 개의 부품으로 조립이 되어서 하나의 상품이 나오는가 하는 것을 보면, 이 제품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에 대해서 전자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분해해서 우리의 구성 요소를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심장이나 장기들은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영혼은 그런 식으로 분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은 한 가지의 방법은, 맨 처음에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인간이 어떠한 구성 요소로 창조되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제일 먼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육체를 만드십니다.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영혼을 만드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불어넣으셨다기보다는, 창조행위가 숨을 불어넣는 것이고, 그 동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한 개별적인 영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은 창조되어서 우리의 육체와 만남으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은 영과 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고, 혼은 물질 쪽에 가까이 있고, 영은 정신세계에 가까이 있는 삼분서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입니다. 성경은 영과 혼이라는 말을 서로 교차적으로 사용해서 인간의 존재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능은 우리의 눈에 보입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에게 양심이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만약에 양심이 있다고 할 때, 그 있는 것을 해부학적으로 있다고 말한다면 인간의 어디를 찾아도 양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양심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팔이 있다고 하는 사실보다 더욱 명료하게 우리들이 믿고 받아들입니다. 그러한 양심이 있다는 가정하에 모든 사회의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사물이 있는 것과 평화가 있는 것, 그것은 같이 있다는 말이지만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은 크기와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영혼은 그러한 감각적인 사물과 같은 형태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영혼은 기능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입증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꿈을 꾸면, 그것이 영혼이 있는 매우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김소월의 꿈이라는 시에서 꿈은 영이 해적이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꿈이다. 라고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영혼의 증거를 유물론적인 방법으로는 입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혼이 있다고 하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영혼이 육체와 함께 만나서, 육체는 물질세계에 관여하고 영혼은 정신세계에 관여하는데, 이 두 개는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과 아름다운 숲속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은 기분이 다를 것입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데, 갑갑한 빌딩 사무실에서 마시는 것과 아름다운 정원에서 마시는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분명히 두 개의 본질인데, 두 개는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물질과 정신이, 정신은 물질이 아니고, 물질은 정신이 아니면서도 두 개는 매우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이 그냥 순수하게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만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현대의 의학들이 많이 발달하면서 많은 인간의 마음의 작용들이 물질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이 계속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 순수하게 예전에는 마음과 정신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도파민이라는 물질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됩니다. 도파민의 유효기간이 18개월 정도 된다고 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18개월에서 36개월 정도 됩니다. 사람들이 연애하다가 권태를 느끼는 이유, 결혼을 하고 권태기가 오는 이유도 이러한 단순한 정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러한 물질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수반 물리학이라고 해서 유물론적이긴 하지만, 물질이 인간의 정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들을 규명해내는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울할 때는 초콜릿을 먹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초콜릿에는 세로토닌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러한 지식도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데, 모든 지식을 사용해서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몸에 배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놓고 봤을 때 결국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집니다. 영혼은 실제입니다. 리얼리티입니다. 물건처럼 만져질 수 있는 리얼리티는 아닙니다. 그러한 영혼의 실제성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육체는 땅에 두고 가지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로 간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우리는 영혼의 문제로 들어가게 됩니다. 영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이 영혼의 정체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영혼의 기능에 대해서 말합니다. 성경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믿음을 굉장히 강조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것이 믿음이라고 믿음의 정체를 데피니션 하는 데는 성경이 별로 관심이 없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 믿음을 상실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비참해지게 되느냐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는 것에 성경이 관심이 많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영혼이 어떤 것이라고 하는지 설명하기보다는, 그 영혼이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 대해서 풍부한 지식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관한 한 접근할 때 똑같이 마음은 영혼이라는 실제 안에 있는 기능(펑션)입니다. 마음은 실제가 아니라, 영혼이 실제이고 마음은 그 실제의 기능(펑션)입니다. 마음이 무지개라면, 그 무지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물방울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물방울이 영혼이라고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지개가 뜰 수도 있고 안 뜰 수도 있는 것인데, 어쨌든 영혼은 항상 있는 것이고, 마음은 그 영혼이 가지고 있는 기능(펑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기능을 통해서 영혼을 찾아가고, 거꾸로 영혼에 대한 지식을 가지면 그 지식을 가지고 마음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결국 마음이 무엇인가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그 마음이 인간 안에서 보편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나라는 개인은 특수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똑같은 사물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 마음의 작용을 갖고있는가 라는 것들을 우리들이 발견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이것입니다. 영혼이라는 실제가 있고, 영혼과 육체를 연결해주는 한 기능으로써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상태가 어떠하냐 하는 것이 마음의 엄청난 영향을 주고, 그 엄청난 영향은 우리의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서 우리의 행동을 관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뭐든 숨길 수 있지만, 마음은 숨길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람은 잠시 위장해서 선하게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그 악을 드러내고야 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인생의 문제는 마음을 어떻게, 좋은 것들은 유지하고 나쁜 것들은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데에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달린 것입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행복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음만 행복하면 모든 게 행복하냐? 그렇지 않고, 마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동의를 해 주셔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살인하는 사람도 살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자유의지론에서 사람에게 절대적인 악이라는 것은 없다, 악이라는 것은 넓은 선에서 좁은 선으로 이행하는 것이 악이라고 설명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내가 돈을 얻기 위해서 살인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그것은 권장해야 할 일이고 모든 인류가 그렇게 하면 정말 좋겠어, 나도 그런 세상에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돈을 얻기 위해서 사람을 죽일 때는,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보편성을 띠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실 선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선한 것들은 유지하고 선하지 않은 것들은, 그것을 변화시켜서 선한 마음이 될 것인가의 문제가 자신의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주위에서 자기의 욕망을 따라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잠깐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라고 하는 자아가 전체적으로 만족을 얻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혼을 창조하시고, 영혼의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마음은 그의 행동을 좌우하게 됩니다. 이것이 거꾸로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감정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향을 끼치면서 우리의 마음이 방향을 따라서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한 어떠한 행동들이, 그것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마음의 성향을 형성하고, 그 성향은 우리의 영혼의 경향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인간의 영혼과 마음이라는 작용, 육체로 살아가는 삶, 이것은 항상 평형을 이루려고 하는 삼투 합의 원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농도가 진한 액체와 농도가 연한 액체를 놓으면 결국은 농도가 진한 액체와 농도가 옅은 액체가 만나서 동일한 농도의 액체로 하나로 통일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마음과 영혼, 우리의 삶 이것이 하나의 평형을 이루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평형을 이룰 때까지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고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약에 좋은 것으로 이행한다면, 익숙해진 악을 버리는 고통이 있을 것이고, 동시에 선을 찾아가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선으로부터 멀어지는 악의 기쁨과 선으로부터 멀어지는 행복의 상실이 마음속에서 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위로는 영혼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아래로는 우리의 육신의 감각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 안에서 해석의 작용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소극적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입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감각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욕망을 창조해내고, 마치 음식 같은 것들이 뜨거운 불 속에서 끓는 것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 속에서 마음은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다면, 마음은 우리의 욕망에 이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어떤 사물의 시작과 결말을 감추면서 우리를 욕망대로 살아가도록 이끌면서,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수십 미터의 어두운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우물의 입구는 보이는데, 밑으로 내려갈수록 빛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깊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우물입니다. 그래서 돌을 던져봅니다. 하나, 둘, 셋, 넷 하다가 초를 많이 세어서 풍덩 소리가 나면 매우 깊은 것이고, 던지자마자 풍덩 소리가 나면 우물이 매우 낮은 정도라는 것을 추측해 낼 수 있을 뿐입니다. 들여다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인간은 마음 자체를 들여다봄으로써는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빛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니 하나님이 인간을 내려다보시는 시각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마음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마음에 대한 관찰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마음은 세 가지의 대표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전적으로 지성, 감정, 의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감정도 이미 좋다, 싫다, 이쪽으로 기울어진다, 안 기울어진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지 쪽에 붙어 있다고 볼 때, 인간의 마음을 크게 구분하면 지성과 의지의 작용으로 나뉜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성과 의지의 작용 안에서, 우리의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어떻게 자기를 성찰하고 살펴보게 되느냐고 하는 것을 다음 시간에 계속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첫날이라서 조금만 일찍 끝내드리겠습니다. 과제 하시면서 다음 주에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