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마음(4)
녹취자 : 오희열, 이재호
오늘은 예고해드린 바와 같이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아사밤” 독후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김동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김동주, 신학과 1학년
김동주 학생 : 소감문을 다 읽으면 됩니까? 느낀 점을 요약하면 됩니까?
목사님 : 우리 모두 다 읽었으니까 읽지 마시고, 자유롭게 편하게 자기가 소감문에서 쓴 것을 토대로 모든 학우들이 볼 수 있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김동주 학생 : 저는 다 읽으면서 솔직히 거기 나온 모든 표현들이나 비유들을 다 이해하며 읽은 것은 아닌데 제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만 가지고 이해를 하다 보니까 결론은, 보편적인 한 인간이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뇌하다가 결국은 그것을 찾게 되고, 그것을 찾았다 하더라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펼쳐지는 또 다른 고뇌의 여정 정도를 그린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이 기독교인들의 눈높이에서 맞춰져서 풀이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무신론자의 시각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굉장히 감명 깊었고 저는 나이가 아직 어리지만 앞으로 걸어가야 할 성화의 과정들을 미리 보고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왜 하나님이 굳이 우리에게 사랑을 강요하시듯이, 꼭 사랑하지 않으면 처벌하실 듯이 그렇게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실까 하는 질문이 있는데, 저도 사실 그 질문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라는 기독교 사상가의 말에 따르면 그것도 다 우리를 위해서라고, 우리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 온전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구절을 보았을 때 굉장히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인생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서만 찾아야겠다고 느꼈고 그 외에 많은 것들도 느꼈는데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목사님 : 잘했습니다. 그래도 꼼꼼하게 읽은 것 같습니다. 김재원B 발표하십시오.
김재원B :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저번 주와 저저번 주에 강론을 들었는데, 그 강론에 대한 것, 경건에 대한 것과 책과 뭔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경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라고 하셨는데 진정한 철학자, 지혜있는 자는 결국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 책에 나와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고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 왜 사랑을 요구하시고, 나 혼자서 나를 사랑하는 것만이라도 충분할 텐데 하나님까지 사랑하고 이웃까지 사랑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경건과 연결시키다보니까 그 이유를 좀 많이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반성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김재원B :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3일 걸린 것 같습니다.
목사님 : 3일? 홍은성, 아니 이승찬 형제가 발표하겠습니다.
이승찬 형제 : 네, 저는 맨 처음에 1장을 다 읽었을 때 되게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굉장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계속 쭉 읽다 보니까 모든 인생이 구원의 문제 앞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원의 문제가 인간에게 족쇄가 되어서 자유함을 억압하는데 그 자유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시간 안에 있는 사물들을 정신없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랑할수록 인간은 더욱 더 비참해질 뿐입니다. 그런 비참하고 정말 답 없는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올바른 사랑의 대상을 제시해주셔서 우리가 그분을 인식하게 된 것, 시간 속에서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우리인데 그 시간 속에서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사랑하게 하고 꿈꾸게 하신다는 게 엄청난 감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 정말 이 유한이 무한을 꿈꿀 때 비로소 자유할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정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나와 이 세상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책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 책 읽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이승찬 형제 : 저같은 경우에도 한 번에 쭉 읽지 않고 나눠서 읽었기 때문에 한 삼 일정도 걸렸습니다.
목사님 : 어쨌든 정확하게 본 것 같습니다.
이승찬 형제 : 감사합니다.
목사님 : 결국 인간의 모든 불행의 문제는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불행해지려다가 불행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행복해지려다가 불행해집니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그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어떻게? 행복해지고자 하는데 올바르지 않은 것을 잘못 사랑하게 될 때 그것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는 결과는 큰 불행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홍은성 학생 발표하십시오.
홍은성 학생 : 저도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자기 자신으로서 잘 살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저도 책을 읽으면서 같이 읽고 싶은 많은 친구들이 떠올랐고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저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금껏 교수님을 통해서 배운 내용들의 의미들도 다시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는데, 제가 교수님의 수업을 이번에 처음 듣는 게 아닌데 전부터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이, 우리가 정말 사랑할 만한 것을 사랑해야 된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들이 일치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삶을 통한 방황들과 고통의 시간들이 있다는 말씀들을 그 당시에 들었을 때는 그 말씀의 깊이와 무게가 이렇게 가까이 와 닿지는 못했는데 책을 통해서 교수님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글귀들, 삶을 통해서 느끼는 것들을 교수님의 삶을 통해서 잘 풀어주셔서 책을 읽는 동안 그것들의 깊이와 의미들을 느껴보는 시간이었고 저도 저의 삶의 시간들에서 사랑할만한 것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올바르게 사랑하지 못함으로써 방황으로 지낸 시간들과 고통의 시간들과 슬픔의 시간들이 스쳐지나갔고 책을 다 읽음으로써 앞으로 내가 지낼 시간들을 내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조금의 용기들을 얻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목사님 : 이승우 학생 발표하십시오.
이승우 학생 : 교수님의 다른 책들이 워낙 학문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이 책도 각을 잡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에 들어가서 펼쳤는데 1장을 보고나서, 이 책은 이렇게 방에 박혀서 읽을 책이 아니구나 하고 시간을 잡고 날이 좋아서 카페에 가서 한 장씩 읽고 기차에서도 읽고 고향에 다녀오는 버스에서도 읽곤 했는데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시간과 간격을 두고 많이 사색하면 읽은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굉장히 좋았던 것이 교수님께서는 문학적으로 뛰어나시다는 것을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단순히 기독교 아류의 작품이 아니라 한 권의 좋은 문학작품을 만난 것 같아서 굉장히 기뻤고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느꼈던 것은, 과거가 많이 떠 올랐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온전히 만나기 전에 방황했던 시절들, 그때는 사실 이것이 외로움인지 고독인지도 모르고 그저 그런 감정이 너무 싫어서 세상 것들을 찾아다니고 사람을 찾아다녔는데 그럴수록 더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정말로 진리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다 비슷하구나, 이 책을 읽고 어제 저녁에 북콘서트를 돌려봤는데 다들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무치는 고독이, 사무치는 허무가 오히려 하나님께로 이끈다, 오히려 고독과 허무를 긍정하는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많이 공감이 갔습니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여전히 세상 밖에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제2의 어거스틴이, 제3의 어거스틴이 있을테고, 성냥이 꺼져가는 것을 보면서 힘들어하는 많은 성냥팔이 소녀가 있을 텐데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도가 아닐까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목사님 : 그런데, 이승우 형제, 책의 형식은 어땠습니까? 좀 생소하지 않았습니까?
이승우 형제 : 저도 문학작품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에 구식, 8-90년대 이상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 이상의 작품은 8,90년대가 아니라 훨씬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였는데 아직까지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신주혜 학생이 발표해보십시오.
신주혜 학생 : 저는 이번 겨울 방학에 교수님의 책을 열 권 이상을 읽어서 사실 그때는 학문적인 이유를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는데, 책을 몇 장 읽다가 덮고 이것은 카페 가서 커피마시면서 읽어도 되는 책이라는 감이 왔습니다. 그만큼 이 책은 제가 마음 편하게 읽고 싶어서 읽었는데 실제로 저는 스트레이트로 다 읽었는데 한 시간 안에 이 책을 다 읽었고 그동안 읽은 교수님의 책 중에 저자와 정신적 거리감이 가장 가깝게 느껴졌던 책이었습니다. 그게 내용의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경험이 녹여져서, 또 요즘 시중에 나온 에세이식 산문처럼 제게는 읽혀졌습니다. 저한테는 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고 이 책이 되게 많은 주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나의 삶의 의미에 대해서, 자아에 대해서, 마음에 대해서, 또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올바른 사랑의 질서에 대해서, 남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진리에 있어서, 엄청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결국 책을 덮고 나서 느낀 것은 사랑이 남았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을 사랑하고 가장 높으신 분이 내 이름을 불러주시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내 안에 올바른 사랑의 질서가 있을 때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이 깨달아져서 교수님께서 그동안 쓰셨던 책과 내용적인 부분에서 완전히 틀리거나 완전히 벗어난 것이 전혀 없어서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고, 크리스천을 위한 책은 아니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감정적 동요도 많이 되고 이해보다 오히려 공감이 많이 가는 책이라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좋은 글귀들이 많았습니다.
목사님 : 책의 형식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다.
신주혜 학생 : 사실 처음에는 조금 생소했습니다. 그동안 김남준 교수님의 책을 읽어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교수님이 아니라 다른 분이 쓰셨나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저도 어색했는데 읽다보니까 왜 이렇게 쓰셨는지 알 수 있는 게, 이렇게 써야만 비크리스천들도, 심지어 저는 크리스천이지만 훨씬 잘 읽히고 더 부담없이 잘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딱딱하게 철학사상이나 신학사상으로 풀었다면 저도 부담을 느끼는데 다른 일반인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데 저는 이 책의 의도를 잘 잡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형식도 괜찮았지만 생소한 부분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목사님 : 김태웅 학생이 발표하겠습니다.
김태웅 학생 : 저는 교수님의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책의 제목에 집중을 많이 했습니다. 인생을 바꾼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이라고 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또 아무리 진보와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대답해줄 수 없는 문제를 교수님께서 아우구스티누스라는 거인의 여덟 문장을 통해서 접근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이 책을 다 쓰시는데 하나의 일관된 신학적 명제 한 가지를 나름대로 보았습니다. 나를 알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신학적인 명제를 자아에서부터 영원까지,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함까지 아주 쉽게 서술적으로 교수님께서 단계 단계마다 풀어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인문학적 인용, 과학적 인용, 거기에다가 BTS를 인용하신 부분을 보고, 교수님께서 이 다방면에 걸쳐 인용하심으로써 최대한 접촉점을 많이 늘리려고 시도하셨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저는 개인적으로 책을 오래 묵상했는데 사실 제가 책을 읽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묵상하면서, 제가 교수님을 묵상하는 것인지 아우구스티누스를 묵상하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분간이 잘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오늘날 상대성이 지배하는 이 때 참된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한다는 절대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진리를 교수님께서 생각하라, 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 이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아우구스티누스를 직접 읽고 싶다는 희망들을 많이 피력했습니다. 내가 김태웅 학생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책을 읽는 데에 형식은 어떤 영향을 준 것 같습니까? 또 하나는 내가 앞으로 이런 형식으로 책을 써도 사람들에게 읽힐 것 같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태웅 학생 : 만약에 평소에 교수님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게 재밌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재밌게 다가왔습니다. 교수님께서 이런 형식으로도 말씀하시려고 시도하시는구나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교수님을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읽었다면 “이게 뭐야?”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뭐지 이 책은? 뭘 말하고 싶은 것일까?”, 꿰뚫어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게 뭐지? 각종 짬뽕되어 있는 느낌인데?” 하고 볼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었습니다.
목사님 : 요즘에 빽빽하게 서술해서 논술식으로 나가는 것을 잘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김태웅 학생 : 그런 것 같습니다.
목사님 : 그래서 사실 이렇게 시도한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태웅 학생 : 교수님께서 다음에 책을 쓰시면 이것보다 훨씬 발전해 있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목사님 : 그건 모르겠습니다.
김태웅 학생 : 대세는 확실히 감성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 네, 맞습니다. 임승연 학생이 발표해주십시오.
임승연 학생 : 저는 목사님의 책을 처음 읽어서 다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잔잔한 찬양을 들으면서 밖에서 버스타고 다니면서 밖에 보면서 읽었는데 그때 혼자 묵상하게 되고 계속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그런 울림이 좀 많이 있었습니다. 제 영혼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했었고, 읽는 내내 깊은 내면을 뭔가 건드리는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유레카!”하는 문장들, “내가 나를 피해서 어디로 숨는단 말입니까?” 이런 문장이나 “죽은 자의 생명은 살아있는 자의 죽음이 된다” 이런 머리를 탁 치는 내용들이 많아서 저는 그게 좋았고, 또 하나는 요즘에 계속 제가 많이 넘치게 사랑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뭔가 어느 한 구석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 후반부에 사랑을 다루는 부분을 읽으면서 이 공허함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넘치게 사랑받고 있었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사랑을 받아도 외로울 수 있지만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는 표현에 “그렇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계속 넘치게 사랑을 받고 있긴 했지만 나는 과연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흘려보냈는지 다시 고민하게 되는, 제가 나누고 사랑하려고 하는 삶을 살았는지 고민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목사님 : 은주빈 학생 발표하십시오.
은주빈 학생 :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난 책이 있었는데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는 책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좀 더 인간과 철학에 대해서 많이 건드린 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책의 스타일을 말씀드리자면 쉽게 읽히기는 했는데 그 안의 모든 의미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읽기는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을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빠르게 읽으면서 전체적인 흐름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두 번째는 그 안에 조각조각 들어가 있는 장치들을 이해하며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두 번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또 읽으면서 그런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문체를 처음 읽었는데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읽으면서 처음 보는 문체이고 끊기는 것처럼 생각이 들어서 “이게 뭐지?” 이랬는데, 이런 문체가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읽다보니까 끝까지 한 번에 쉽게 읽히고, 또 그 안에 의미가 있어서 두 번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체가 매력적이어서 소감문을 쓰다보니까 저도 이 문체처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용적으로 소감을 이야기하면 성경에서 담고 있는 진리들을 여러 가지 도구와 방법을 통해서, 그렇지만 인간과 사랑이라는 한 가지 흐름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인간이라는 존재는 진리를 알 수 없고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강하게 다가왔는데 그러나 이런 사실에 반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진리를 알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사랑해야 하는 존재인 인간이 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이 사순절 기간인데 이 기간에 이 책을 읽으면서 고장난 나를 먼저 고쳐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 묵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창조되었고 설계되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고쳐주셔서 우리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시로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고 우리가 이웃을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목사님 : 임하은 학생 발표하십시오.
임하은 학생 : 저는 우선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저희가 살아가면서 많은 책들을 접하고 많은 문장들을 접하는데 그중에서 사람들의 인생을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문장은 몇 문장이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한 문장에 시선을 빼앗긴다”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이 책이 정말 그 예시를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참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 중에서 하나만 꼽자면 “주님, 제가 무엇이길래 제가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하십니까?”라는 문장이 크게 와 닿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제가 무엇이길래”라는 질문은 이전에도 참 많이 했었는데 제가 무엇이길래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랑을 요구하실까 하는 게 참 크게 궁금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사랑을 하기가 어려워졌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희생을 동반한 사랑인데, 그에 비해서 저는 아무런 희생도 대가도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사랑에 대해서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사랑을 하기가 참 어려워졌는데 오늘도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이 질문에 대해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결국은 또 우리를 위해서구나.”하는 것이 큰 감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필요와 만족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기에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하라고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돼서 참 감동이었고, 결국 사랑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정말 참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영원한 것, 올바른 것을 사랑해야만 우리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 허윤 학생 발표해주십시오.
허윤 학생 : 저는 책을 읽고 먼저 내용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기보다는 김남준 교수님에 대해서 가장 먼저 자꾸 생각이 됬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저한테는 너무 높아 보이는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강단의 김남준 목사님, 그리고 이런 강의실에서의 교수 김남준으로만 보아도 저한테는 되게 높아 보였는데 작가로서 이렇게 글의 스타일을 바꾸셔서도 이렇게 쓰시는 것을 보고 누구나 한 번쯤은 나도 작가가 되어 보고 싶다고 생각을 할텐데, 저는 저의 현실적인 수준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가다는 작가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고, 읽으면서도 대단한 글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 총신대에서 칼빈 다음으로 많이 들은 것 같고 고백록이라는 작품도 필독서로 기독교 강요 다음으로 많은 추천을 받았는데 늘 저는 누군가에게는 이 사람의 글이나 작품이 굉장히 큰 의미가 되고 감동이 되겠지, 나도 나중에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으로만 넘겼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 한 사람의 글과 작품을 통해서 이토록 아파하고 이토록 애정 넘치게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난 교수님의 영혼은 어떤 영혼을 소유하셨길래 이렇게 큰 울림을 받으셨을까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책에서 가장 와 닿았던 챕터가 첫 번째 장이었는데 내가 나를 떠나 어디로 갈까 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경험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질문은 드는데 도무지 답은 안 되는 존재이고 나이가 어리지만 앞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책임감을 생각하면 내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무게를 느끼면서도 정작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 무게를 견뎌낼 방법이나 능력이 내게 있다는 확신조차도 들지 않고 책에서 말할 것처럼 나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는데 나와 내 자신과 합의를 이룬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떠밀리듯이 내 자신과 합의를 이루지 않으면 망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인생을 마주하면서 살아가야한다는 느낌보다는 인생이 그냥 내게 다가와서 부딪쳐서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수동적으로, 내가 능동적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그냥 부딪쳐서 지나가고 저 앞에 있는 죽음이 그냥 앞당겨져 왔으면 하는 그런 느낌으로 살다가 저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인사이트는, 하나님을 믿게 돼서 너무 좋았는데 제가 놓치고 있던 부분에 대해서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 의존되는 그 상태가 너무 좋았습니다.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내려놓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 맡겨드렸던,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주체가 되는 것까지 완전히 내가 망각하고 스킵 해버리면 안 되겠구나, 하나님께 의존되더라도 내가 내 스스로 주체되는 삶을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사는 것까지 이제는 고민해야겠다는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좀 길게 나눴습니다. 그리고 좋았던 것은 교수님의 글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상을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저희가 아무래도 신학책들을 많이 접하다보니까 명제적인 지식들로 “이러이러 하다.” 하는 지식들로 한 층 한 층 쌓여가는 느낌이었다면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그 인간을 몸소 인격적으로 깊이 맞는 느낌, 그래서 또 다른 인간상을 발견하는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그러면서 위기감이 들었던 것은 제가 사용하는 언어나 인간을 이해하는 틀이 너무 신학적인 텍스트 안에서 이루어지다 보니까 너무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앞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교수님처럼 다른 문학작품도 접하고 다른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많이 넓혀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님 : 어쨌든 열심히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그대도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한 것들을 깨달으려고 노력하면 언젠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기 바랍니다.
좀 더 나눴으면 좋겠는데 수업을 들어가야 하니까, 오늘 10페이지를 들어가겠습니다. 강의안 제 10쪽입니다. 앞에서 챕터 2에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바깥으로는 외부의 세계를 향하고 안으로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접하게 되는데 어떤 세계든지 다 무한한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끝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그 사이에 서 있는 존재인데, 세계도 거의 끝이 없고 자신의 마음도 끝이 없기 때문에 사실 인간이 세계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은 아주 지극히 일부분인 것처럼 자기의 마음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도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무엇인가 지식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알고 나면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세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탐구하려고 하지 않으면 내가 참 단순한 인간처럼 느껴지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탐구하려고 자기 자신에게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면 내 마음이 참 무한하고 끝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내가 나를 어떻게 알겠느냐?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고독이 사실은 “다 알 수 없다”라는 데에서 인간의 고독과 불안이 자리하게 됩니다. 결국 내가 있고 나의 바깥에 있는 세계도 무한하고 끝이 없고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 일부분을 아는 것에 지나지 않고 알면 알수록 자신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마음을 향하여 여행을 떠나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다 알 수 없는 이 세계와 마음, 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어느 한 분에게로 수렴해서 그분이 보시는 세계는 무엇이고 그분이 보시는 나의 마음은 무엇이고, 그것을 찾아가면서 마지막에 내가 누구인가 하는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서점에 가서 팔리는 책을 보시면, 인생의 궁극적인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교보문고에서 1위부터 10위까지의 책 중에서 절반 이상이 다 주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먹고 어떻게 여행가고 어떻게 놀 것인가 하는 것들이 대부분의 관심사를 차지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의 문제에서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인간에게는 항상 그런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합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파스칼은 그것은 “디베디스망”이라고 했습니다. 직역하면 “기분전환”인데, 그것은 “회피”입니다. 내 앞에 있는 죽음이라는 현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절망감,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생을 살 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우울한 생각을 버리고 그냥 오늘 먹고 입고 놀고 즐기고 돈버는 것에 몰두하면서 살아서 그런 우중충한 분위기의 답도 나오지 않는 고민들을 날려버리자는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떨쳐버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코라 라는 사이트에서 리차드 도킨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무신론자인데 그 사람의 동료가 나와서 대담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감리교의 목사였습니다. 이 딸은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신은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 유물론자입니다. 너무 웃기는 것은, 자기는 매일매일 고요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놀라운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명상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여기서 깨닫는 바는, 인간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뭔가 그 눈에 보이는 개별적인 것들을 하나로 묶고 그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근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변형된 방법이 명상 같은 것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서 앞으로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 대한 고민은 엄청나게 깊어져 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40년 전만 해도 정신과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수입이 거의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산부인과를 해야 돈을 벌었습니다. 지금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적자를 메우기에 바쁠 정도로 살기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출산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정신과를 굉장히 많이 찾습니다. 마음과 인간의 정신에 대한 고민이 그만큼 깊어져가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궁극적인 해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싫어합니다. 그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 답은 찾고 싶어 합니다. 책을 읽어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은 하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진지한 고민을 가지고 책을 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TV만 켜면 옷 입는 이야기, 먹는 이야기, 놀러가는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보기도 싫을 정도로 채웁니다. 그렇게 먹고 먹는 순간 그 자체를 즐거워하고 그렇게 함으로 인간의 진지한 인생에 대한 고민, 주체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내 인생의 주체로 살 수 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다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철이 들지 않습니다. 사람들 눈에 볼 때는 전부 다 행복하게 보이고 깔깔 웃고 자기는 이렇게 좋은 것을 먹고 좋은 데 다니고 호사스런 생활을 한다고 자랑하지만 그런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자살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인데, 그렇게 호탕하고 좋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웃는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는 그 친구를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난기도 많은 경상도 출신의 학생이었습니다. 술도 아주 잘 먹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미 막걸리 한 말을 먹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죽지는 않았습니다.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불을 켜서 자신을 불태웠습니다. 발칵 뒤집혔습니다. 결국 며칠 있다가 죽었습니다. 나는 그때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자살한 친구를 하나 봤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봤는데 나도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보는 친구들 앞에서는 늘 웃고 떠들고 친구들에게 코미디와 개그를 해주며 웃겼는데 자신은 전혀 웃기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날 그 어린 학생이 얼마나 삶의 고뇌를 견딜 수 없었으면 자살을 했겠습니까? 오늘날에는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집에 돌아가서 혼자 조용히 있는 자신의 모습이 현저히 다른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세상의 가전제품 하나를 사도 사용설명서를 다 읽어보고 사용합니다. 여러분이 노트북 200만 원짜리를 사게 되었다고 하면 설명서를 정신 차려서 읽지 않겠습니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인생 아닙니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 얼마밖에 되지 않는 이 젊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탐구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민을 온몸으로 짊어지면서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며 살아갑니다. 그런 것들이 극단적인 오락이나 쾌락이나 유흥 같은 것들로 분출되어 나타납니다. 결국 인간도 깨어지고 신앙도 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나 나나 어마어마한 갑부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깜짝 놀랄만한 호사를 누릴 능력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면서 결국 사람들은 고뇌합니다. 오늘날 마약 복용이 늘어나는 이유는 이런 정신적인 이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웬만하면 다 마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세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비판만 하지 말고 그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면서 그 마음 속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그 마음 때문에 흐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답을 찾은 사람만이 그렇게 흐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그런 인생을 같이 살아본 사람으로서 무엇인가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세계와 마음과의 관계를 봤다면 이번에는 영혼과 마음의 관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다음 챕터에서는 시간과 마음을 관련해서 이야기하는데 시간으로 들어가기 전에 영원, 시간의 반대 개념이 영원이니까 영원과 영혼, 그것들이 인간의 마음과 갖는 관련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보겠습니다. 10쪽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할 때, 이것은 신자의 영혼과 관계를 맺고 계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 신이신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시다. 특별히 그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 영혼의 기능인 인간의 마음 안에서 우리와 맺고 있는 관계를 지시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시고 교제하시는 것은 의식 세계인데 거기가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하나님이 작용하시는 자리이기도 하고 또한 죄가 작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은혜도 마음 안에 자리하고 욕망도 그렇다. 창조 목적을 향해 살게 하는 본거지로서 마음은 죄의 경향성과 은혜의 경향성 간의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는 곳이다. 마음은 영혼과 육체가 만나는 곳이니, 영혼은 영원을 잇대어 있고 육체는 세계에 잇대어 있다. 마음은 두 세계를 넘나는 문이 된다. 사물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사물이 있으니 이 역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보이는 사물들은 육체의 감각을 통해 인식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물들은 인간의 영혼을 통해 직접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이 인간의 영혼의 기능인 지성의 작용이다.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지며 육체는 가시적, 영혼은 가지적, - 가시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가지적이라는 것은 생각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가지적 존재는 영혼 세계에 속한 존재이며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 덕으로 말미암아 멸절하지 않고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혼의 존재는 직접 볼 수 없지만 그 작용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기에 그 작용을 인식함으로써 영혼의 존재, 상태, 작용을 알게 된다. 인간 자신의 영혼에 대한 지식은 제한적이며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제한성을 갖는 것만큼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알수록 자기를 탐구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며 자기를 탐구할수록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러한 탐구를 위해 영원과 영혼에 대해 갖는 마음의 지식이 필요하다.
영원과 영혼의 관계이다. 영혼은 영원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영원은 아니다. 진정한 영원은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시작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기에 시간적으로는 끝이 없으나 그것도 하나님이 지정하신 덕 때문이고 또한 시작을 갖는다. 그러므로 영혼은 영원에서 취해졌으나 영원 자체는 아니다. 영원 자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영혼을 창조하실 때 그 영혼 안에는 자신이 취한 바 된 영원에 대한 선험적 기억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인간 자신과 사물에 대한 기억이며 또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원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다.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를 진술하지는 못한다. 진리를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이는 곧 인간이 행복과 진리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온전한 지식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강한 욕망을 가지고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어떤 상태에 도달했을 때 행복한 것이라고 알아보기도 한다. 깨닫기 전까지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진술할 수 없었지만 진리임을 깨닫고 붙든다. 이런 일은 영혼 안에 있는 기억이라는 기능 때문이다. 행복은 지극히 선한 상태를 가리키고 진리는 참된 것의 근원을 가리킨다. 모든 참된 것을 참되게 만드신 근원으로서의 참이다. 그것들은 영원 세계에 속한 것이며 아름다움과 함께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영원에 대한 기억은 곧 하나님께 대한 기억이니 지상에서 이런 판단을 통해 인간의 영혼이 영원 자체이며 선, 진리, 아름다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여기 보십시오. 우리들이 행복을 찾지 않습니까? 그런데 심지어 태어나서 한 번도 행복해지지 않은 사람도 행복을 찾습니다. 마치 그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행복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행복에 대해서 배웠겠습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 진리를 만나면 몰랐던 진리인데 진리를 만났을 때 ‘이것이 진리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마치 이미 알고 그것을 찾고 있던 사람처럼 말입니다. 카드 한 장을 가지고 눈으로 보고 있고 카드가 계속 주어집니다. 그 때 그 카드를 보고 똑같은 카드를 찾는 게임이 있습니다. 그 게임에서 찾는 것처럼 행복이라는 것을 이미 자기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하면서 행복한 상태를 찾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고하경 학생 : 잘 모르겠는데, 사람이 가진 속성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김재원A 학생 : 저는 그냥 믿는 사람에게 답을 해준다면, 쉽게는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그럴 것 같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르게 오늘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통해 배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아니면 가정에서 삶을 통해 은연 중에 무엇이 잘사는 것일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출처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질문들은 계속 튀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김혜원 학생 : 이전 기억과 현실을 비교했을 때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목사님 : 파스칼 같은 사람한테 이런 질문을 하면 파스칼은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아는 것은 이성으로 아는 방법이 있고 심정으로 아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기계를 만들고 과학의 법칙을 발견해 내는 것은 이성으로써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을 찾는다든지 신을 찾는다든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든지 하는 것은 그 답을 찾을 때 사실 그렇게 과학법칙을 찾아가는 것 같은 방식으로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심정으로 그것들을 붙들면서 그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결국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면 결국 그 답을 찾을 수 없는 존재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논리적인 것일 수 있는지 신이 있는 것이 입증이 되는지 아니면 어떤 논리적으로 말할 때 과연 내가 볼 수도 없는 그 신을 사랑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파스칼의 경우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죠? 그것은 거의 본능적이죠?
자동차가 정면 충돌을 하면 운전석에 있는 사람보다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죽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둘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인데 죽음 앞에 가면 핸들이 자기를 피하기 위해서 꺾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발견하고 뼈저리게 후회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이고 어쨌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사랑합니다. 자기를 사랑하죠? 그런데 파스칼이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네가 신은 논리에 의해서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가 하나 묻겠다.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무슨 논리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대답해 보세요.
김민아 학생 :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목사님 : 자기 자신은 매일매일 논리적이지 않게 사랑하면서 하나님에게는 자기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논리를 요구하면서 내가 그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지 묻는 것입니다. 어쨌든 더 깊은 철학적 사실들은 여러분들이 이해할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무엇인가 모순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의 답이 파스칼에 의하면 인간이 자기 이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이성으로 아는 방법이 있고 심정으로 아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는 없지만 그런 논리가 아니라 마음은 마음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해서 눈을 끝까지 안 뜨려고 하게 되면 우리들이 결국은 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 뿐만아니라 인간의 이런 영원한 진리라든지 무한하고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혼은 충동적인 욕망과는 상관없이 영원을 향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영원은 육체 안에 갇혀 있으나 또 영혼과 교제함으로써 한시적인 육체가 만물의 의미를 영원의 빛 아래서 해석하고 적용한다. 그 영혼에 힘입어 인간 존재는 하늘을 향해 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고양된 영혼은 플라톤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탈혼의 상태에서 물질세계를 감옥처럼 생각하며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혼이 영원을 향하여 고양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세상의 참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양된 영혼은 인간의 마음 안에 불변하는 진리의 빛과 참다운 선, 그리고 완전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들 안에서 사물들을 보게 하는 것이니 이 사물들 안에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이 어떻게 스며들어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는지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영혼 자체이신 하나님이 시간 세계 안에 자기를 확장하신 위엄과 아름다움, 능력을 보게 되고 그러한 정동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 이외에 자신의 사랑을 받을 만한 궁극적인 존재가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영혼의 고향이 영원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영원에 잇대어 영향을 받을 때 가장 영혼다울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혼으로서 가장 완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마음에 이끌리는 삶이며 마음을 통하여 영혼은 인간의 육체를 이끈다. 진리로 정화되고 성령 안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순일성을 간직함으로써 물상의 작용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에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그 마음을 이끌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인간의 마음은 단일성을 갖는다. 이러한 단일성 안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의 모든 삶은 영혼이 바라보고 있는 진리를 향해 지배받는 삶이 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과 아름다움으로 통합된다.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상태가 자신의 모든 삶 속에 스며들기는 마치 창조하신 자연 세계의 모든 사물이 하나님의 힘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스며드는 것이다. 그 때에 인간의 모든 삶과 마음의 생각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생활의 옷감을 짜고 그 하나하나에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배게하여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이런 아름다운 개개인의 삶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안에서 연합을 이루므로 온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찬연히 보여주게 된다. 그 도덕적 질서의 아름다움은 자연 세계를 통한 아름다움과 함께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두 책이 된다. 전자는 보다 더 주된 책이며, 후자는 전자의 증언에 의해 의미가 실제화 된다. 그러므로 신자 안에 있는 영혼은 날마다 신자에게 소리친다. “나를 내가 온 고향을 향하여 살도록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창문을 열어 달라.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로서는 나의 양식을 삼을 수 없으니 고향인 하나님을 보여 달라” 신자 안에 있는 영혼은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영혼이 성령과 진리로써 정화되어 온전한 교통을 누리게 될 때까지 고통스러운 영혼의 상태는 계속된다. 부분적으로는 마음 안에서 의식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정결케 된 영혼은 가장 행복한 상태가 되고 그러한 상태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으로 나타난다. 영혼의 상태는 마음으로 나타나고 또한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은 궁극적으로 영혼을 향하여 영향을 미친다. 짧은 기간으로 보면 영혼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는 다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두 개가 일치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영혼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지상에서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까지 인간은 자신의 영혼과 결별할 수 없으니 영혼 안에 자신이 있지 육체 안에 자신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일은 진리와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영혼과 마음의 관계이다.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되었다. 마음은 영혼의 기능이며, 여기에서 육체의 작용과 만난다. 인간은 마음 안에서 기억하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의지한다. 마음은 스스로 사랑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과 교통한다. 마음은 끊임없이 기억을 통해 확장되는 것이며 그 크기는 인간의 추측을 넘어선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기에도 결코 좁지 않다고 했다. 영혼은 스스로 하나님과 영원한 것들을 보는 지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육체에 매여 있는 우리들에게는 상당 부분 비밀스러운 것이다. 영혼은 인간 마음 없이도 그 자체 안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사랑의 정동을 지닐 수 있으니 이는 이 땅에 육체를 벗어버린 영혼만이 거하는 중간상태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땅에 있는 동안 영혼 자체가 가지는 정동의 작용은 대부분 우리에게 감춰져 있으니 신자의 경험은 마음 안에서 영원을 찾고 존재와 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영혼의 작용을 경험할 뿐이다. 이러한 영혼의 정동 또한 인간의 마음 안에서 지각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영혼이 자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갈망을 가지는 것도 마음을 통해 경험되며, 신자의 마음에 대해 하나님 자신은 진리의 빛이며 사랑의 음성이며 생명의 양식이시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졌다. 둘은 마음 안에서 만난다. 영혼을 당신 닮게 창조하셨으나 획일적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개별적인 독특성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다. 인간이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소유하는 본성은 전자와 관련되고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본성은 후자와 관련된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과 본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질은 물체를 그 존재에게 만드는 필수적 요소를 가리킨다. 그래서 본질은 존재와 관계된다. 반면에 본성은 어떤 사물이 그렇게 기능하고 작용할 수밖에 없는 내적 성질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성은 존재라기 보다는 기능과 작용에 관계된다. 본성은 사물이 작용과 기능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필연적인 원천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이 지성적 영혼에 있다면 본성은 마음 안에 존재한다. 그 본성이란 마음의 선호와 혐오 혹은 애호와 혐오를 결정짓는 방향이다. 인간 존재는 마음 안에 공통적이고 개별적인 본성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형상과 같은 생각들을 자기 밖의 세계에 구현하도록 작용한다. 그래서 백 사람의 존재 안에는 백의 마음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이처럼 서로 다르게 창조하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창조 목적을 따름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각자 다른 본성을 가지고 저마다 자기의 생각과 의지를 구현하게 하셨으니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창조된 세계 안에 드러날 그 다양한 본성의 나타남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을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의 반짝임과 태양 아래 빛나는 수많은 피조물들의 어울림을 능가하는 다양성과 아름다움이 충만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은 마음의 작용과 나뉘지 않으며 영혼 안에 있는 힘과 경향성들은 본성으로 작용한다. 마음 또한 거기에 어울리는 힘과 경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니 이로써 인간은 그 마음과 합치하는 수많은 삶들을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마음이 온전해지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은 또한 영혼이 진리의 영향 아래 있기를 갈망해야 한다. 또한 성령의 은혜로운 작용아래 있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인간의 마음은 영혼의 기능이고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직접 볼 수 없지만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가 자신에게 감지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감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음이 우리의 인격과 삶 전체를 움직이는 사령부이니까 우리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강의나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밤에 대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발표하면 됩니다.
김민수 학생 :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수많은 학우분들이 나누어 주신 독서 소감문을 들으면서 정말 사랑이신 하나님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다시 책의 내용을 한번 더 상기시켜보는 그런 첫번째 시간이 되었고 두번째로 육체와 영혼의 마음에 대해서 강의를 들었는데 제가 생각한 것은 사람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육체의 건강만을 위해서 달려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고 수많은 비타민과 영양제도 챙겨 먹고 좋은 의사들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는 힘과 열을 다해서 살아가는데 우리의 본질적인 영혼과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이 육체에게 하는 것만큼 영혼과 마음에는 힘을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육체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을 좋아하는 선한 경향성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기 힘쓰고 하나님을 만나고 찾고 구하는 것들에 힘을 쓰며 나아가야 비로써 인간이 참된 행복과 진리를 찾을 수 있고 영원 전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있던 기억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동수 학생 : 책을 읽으면서 김남준 목사님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하나님을 만나기까지의 기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에 대한 본질,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많이 사색과 고심, 울분을 통해서 진짜 진리, 사랑을 알아가는 것, 인생의 전반에 걸쳐 깨달아 뒤늦게 사랑하게 되었다는 그런 고백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찾아가고 만나고 발견하는 그런 일대기를 읽고 묵상하고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저 또한 굉장히 많이 도전을 받았고 오늘 강의를 통해서도 나에 대한 설명서, 나를 정말 잘 알아갈 수 있는 큰 방법인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생각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사랑하는, 그저 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기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원형섭 학생 : 오늘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질문하신 것에 저도 생각해 본 것을 나누자면 인간은 진리를 깨닫기 전에 어떻게 진리인지를 아는 걸까 저는 그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마치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새겨진 강렬한 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진실하고 각별하게 사귀었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헤어지면 그 뒤에 만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과 비슷한 점을 갖고 있는 대상을 찾는 것처럼 그 사람의 외모나 말투나 성격이나 조금이라도 닮은 점이 있는 상대방을 찾고 그 상대방에게 끌리고 전 사람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사밤을 읽고는 읽는 내내 마음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읽을수록 제 안에 있는 완악함이 발각되는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의 어떤 과정을 보면서 출발점은 비슷할 수 있었지만 저런 선택을 할 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 편으로는 샘도 났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사랑을 찾았고 과거를 책을 통해 관추해 보았을 때 그렇게나 사랑을 찾고 그 사랑에 헌신을 하고 에너지를 쏟고 했었지만 결국에는 왜곡된 자기 사랑이었을 뿐이고 아무리 대단하고 변화가 일어나고 영화같은 사랑을 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자기 사랑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었던 것을 발견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사랑을 계속하게 되니까 하나님을 점점 더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그런 슬픔과 애통과 그런 어우러짐 속에서 하나님과 어거스틴을 잘 만나 가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진짜 사랑을 누릴 수 있고 만날 수 있는지 조금 감을 잡은 것 같고 또 제 안에 있는 방향성을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참 사랑을 끌어안아야 그 사랑 안에서 사랑할 수 있다 생각하였습니다.
김민아 학생 : 서두에 교수님께서 현대사회 속에서는 먹고, 놀고, 벌고 하는 것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고 해서 인간의 실제 내면의 고통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인해 참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아이들의 삶만 보아도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싫어하면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우리들이 해야 하는 사역은 결국 인간 내면에 있는 고통을 하나님을 통해 밝혀 주는 작업을 해야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사밤을 보면서는 저의 마음 가운데 많이 남았던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어떻게 참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는데 아사밤을 읽으면서 요한복음 15장이 많이 생각이 났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거한다, 너희들이 이 기쁨 안에 있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나도 이웃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을 알게 되는구나 그 안에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나의 삶이 이제는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볼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서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배워가고 그 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님 : 지금 보면 사실은 일류 역사에서 마르지 않는 문학의 소재가 사랑입니다. 특히 에로스의 사랑인데 지금 같은 경우는 굉장히 뜨겁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어떤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은 매스미디어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퍼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문화가 사랑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습니까? 요즘 트로트 열풍이 일고 있습니다. 참 걱정되는 것이 초등학교 6학년 이런 아이들이 마이크를 들고 옛날의 자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술집에서 젓가락이나 두드리면서 불렀을 노래를 아주 구성지게 불러내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또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의 문화이니까 그 문화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는데 사실 그 문화는 다 문화지만 그 문화의 고위 문화와 하위 문화가 있는데 고위 문화 일수록 문화 자체를 소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깨달음을 주고 활력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사밤에서 제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도 이야기했지만 가락이나 내용이나 이런 것들이 어떤 문화를 즐기고 나면 그 다음에 무엇인가 인간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고 보다 더 아름답고 선한 그리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우리게 주어야 하는데 하위 문화로 내려갈수록 소비지향적이 됩니다. 아무런 재창조의 효과 없이 그 순간 그것을 소비하는 것으로 즐거워하고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 사이에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소비중심적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사랑이 어떤 지성적인 기반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서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을 통해서 서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고 무엇인가 더 높은 가치를 향해 진보하는 수단으로써의 사랑이 아니라 대단히 감각적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지속성도 없고 모든 것을 바칠 것처럼 열렬하긴 하지만 다분히 자기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써 사랑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아사밤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사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사실 인간은 사람들은 사랑을 받음으로써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아시시의 프란시스가 자기의 시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은 다 사랑받고 싶어하지 사랑하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사랑받는 것은 내가 받으면 되지만 사랑하는 것은 많은 희생과 수고와 슬픔과 고통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은 사랑을 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도달하는 아주 중요한 진리 하나가 있는데 사람 때문에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대신 자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나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도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신 앞에서 자신이 혼자 해결해야 할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그런데 결국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거기서 삶의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사람이 됩니다. 결국 인간이라는 것은 시간 안에서 태어나고 시간 안에서 죽습니다. 결국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넘어서는 가치와 자신의 인생을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연결시키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서울 끝자락에 살았는데, 지금은 서울의 끝자락이 아니지만, 그 동네에 산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밤나무가 많았는지 노루들이 막 뛰어다녔습니다. 아저씨들이 노루들을 사냥해서 잡아 고기를 잘라서 팔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도살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1년에 인간이 먹기 위해서 죽이는 가축의 수가 몇 마리쯤 될 것 같습니까? 600억 마리가 죽는다고 합니다. 하루에 평균 2억 마리씩 죽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가 닭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 소비하는 닭이 70만 마리쯤 된다고 합니다. 치킨집에서 팔리는 마리 수입니다. 그러니까 실로 우리나라에서 사육하고 있는 것이 2억 5천만 마리쯤 된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닭들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소를 죽이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소가 도살장에 도착하기 전에 산 속으로 끌고 가서 소를 나무에 메고 강제로 입을 벌려서 거기에 몇 통의 물을 집어넣습니다. 물이 들어가면 무게가 늘어나고 무게로 돈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가 죽으면 오줌도 누지 못하기 때문에 물을 먹이면 모두 무게로 가는 것입니다. 소를 도살장으로 데리고 오는데 소가 멀리서부터 자기가 죽으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눈망울이 불거지면서 눈물이 흐릅니다. 뒤에서 채찍질을 하면서 앞에서 잡아끕니다. 마지막에 가서 안 가려고 버팁니다. 두드려 팹니다. 할 수 없이 소는 갑니다. 도살장에 가면 나무로 좁게 만들었습니다. 한 마리씩 오게 됩니다. 백정이 아주 작은 크기의 곡괭이를 가지고 정확하게 소의 이마를 때립니다. 한 방에 죽여야 합니다. 한 방에 죽이지 못하면 소가 길길이 날 뛰면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약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쳐서 죽입니다. 죽어서 쓰러지면 그 다음에 끌어내어서 벨트를 타고 가서 해체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백마리씩 도축이 되는 것입니다. 피가 흥건합니다.
인간이 그 소의 신세와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는냐 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사람들은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든지 늙은 사람이든지 언젠가 죽습니다. 그 죽음은 생각보다 빨리 옵니다. 그것은 예고없이거나 한순간에 정수리를 맞는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그 두려움, 그 죽음의 의미에 대한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자기의 팡세에서 인간이 그런 운명을 생각하면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쳐야 될 텐데 인간이 안 미치는 것은 이미 미쳤기 때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불행한 운명을 생각하면 인간은 머리가 돌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르쳐도 인간이 안 미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벌써 미쳐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앞에 펼쳐진 수많은 먹고, 마시고, 놀고, 노래하고, 춤추고, 연애하고 사는 모든 것이 지금 당장 그 소처럼 죽어야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할 때 여전히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소가 조금 있으면 곡괭이에 맞고 쓰러지는데 5분 전에 먹는 프랑스산 사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인생에 대한 정직한 질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물질주의적으로 흐르고 향락주의적으로 흐르는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삶을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이러한 불행한 자신의 무서운 운명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성훈 학생 : 제가 처음 이 현실관을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무의식이 이따금씩 참사랑을 하지 말라는 죽음의 길로 인도할 때가 있지만 그 인도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다시 한번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다시 간절히 찾을 때 지식과 의지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근본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다시 저를 사랑의 길로 참사람의 길로 근본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희망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주원 학생 : 책을 읽으면서 없어질 것들에 사랑했던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신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내가 올바른 대상을 사랑하고 바르게 사랑할 수 있는데 그때서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조차도 내 힘으로 사랑할 때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내 이 사랑도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라고 해서 그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일 좋았던 표현은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발견될 수 있게 숨으신다고 하셔서 이 표현이 따뜻하게 다가왔었고 하나님이 진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 이 책을 선물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습니까?
최주원 학생 : 사람은 혼자 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누구든지 함께 계시는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동주 학생 : 이미 성화의 가정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듯이 이미 고되면서도 행복한 성화의 가정을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다시 한번 처음 있었던 그때를 상기하면서 첫사랑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태웅 학생 : 저는 마음지킴을 먼저 선물하고 이 책을 선물할 것 같습니다.
김혜원 학생 : 저의 교회의 청년부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 오늘까지 조교인 임하은 학생에게 본인이 선물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서 보내주면 여기서 직접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그 친구에게 읽혀보고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한 번 들어서 다음주에 한 번 여러분들이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혹은 전도를 하거나 혹은 신앙을 격려하거나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발표한 이 책의 소감들을 블로그에 써서 올려 주시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음주에는 다시 강론을 듣고 오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