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배와 진리-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까?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녹취자: 송미옥
성도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바람이 벌써 겨울바람하고는 현저히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입니다. 어제 보니 산수유가 터지려고 꽃망울이 맺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완연한 봄인 것 같습니다. 봄과 함께 여러분의 신앙도 소생하는 계절이 되기 바랍니다. 오늘은 제 3장입니다.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까? 지난시간에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공부하였는데 오늘은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본문말씀 지난주일도 읽었던 말씀이지만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아멘.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모든 것은 진리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알려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깨달을 사람이 없고, 또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리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리는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데 있어서 유일한 통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지난 시간에 배웠지만.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결국 진리의 말씀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과 진리는 항상 하나로 묶여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은 역사하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예배에 관해 생각하면서 계속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될 중요한 진리입니다.
자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라고 할 때 결국 진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다리입니다. 다리 그 자체가 생명이 아니라 그 말씀이 성령 안에서 역사할 때 그 말씀은 사람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던 사람을 변화 시켜서 하나님 사랑하게 만들고 또 불결하던 사람을 바꾸어서 받고 순결한 사람이 되게끔 만들고. 그렇게 변화시켜주는 모든 일들을 결국은 진리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알고.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예배 속에서 이루어져야 된다. 이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예배라는 문맥에 놓고 이해를 하자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여기서 은혜를 받는 겁니다. 진리를 설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설교할 때. 회중들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에 그 사람이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기에서 설교하는 내용이 진리가 아니다. 라고 할 때, 그때에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엇인가를 받았다 하라고 할 땐 그것이 참된 은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린다.’ 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가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설교를 성령이 역사 하셔야 된다. 회중들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는 성령님이 계실 때 그 때에 진정한 예배 감격이 있게 된다. 이 말씀입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영원이 변화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말씀의 은혜를 흠뻑 받으면 한 주간 동안 말씀을 들으면, 우선 자기의 죄를 회개하게 되고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분명해 지게 됩니다. 그러면 일주일 동안 성경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의 은혜를 받으면 성경을 읽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성격을 매일 매일 읽어야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주일 날 받았던 은혜가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설교는 사람이 설교 하는 것인데, 그게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겠는가? 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내리면 결국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설교가 성경을 전달하는 것 이여야 합니다. 설교가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만약 성경만 읽어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그냥 성경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해석 될 때에 그 때 충만한 성령의 역사가 함께 일어납니다. 해석 활동과 함께.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유대인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십니다. 처음에는 예수이신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그들의 마음이 어떻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막 뜨거워지게 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생겼다. 사랑이 생겼다 이런 뜻입니다. 언제 그런 일이 생겼습니까? 너 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느냐? 왜 이렇게 그 믿음이 없느냐? 그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할 것에 대해서 성경에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기록되지 않았느냐? 라고 하면서 구약성경의 뜻을 풀어서 설명해 주고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해 줄 때 그들의 마음에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경우가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 제자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설교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전도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는데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거. 그것을 설교 했습니다. 그 설교하는 방식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설교가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풀어서, 그 말씀을 해석해 줌으로써. 그 본래의 뜻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그냥 읽어 주는 것은 성경이지 설교는 아닙니다. 설교는 해석 활동입니다. 성경 말씀을 해석하고 그것을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 개인에게 적용하도록 연결해주는 것. 성경이 그렇게 다루어질 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게 될 때 설교는 사람의 입으로 말해 지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런 뜻입니다.
다시 도표로 돌아가서 마르틴 루터는 ‘설교는 사람의 말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칼빈은 ‘성경은 원천적 권위’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설교는 종속적 권위를 갖습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긴 한데.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성경, 그다음 설교가 있습니다. 이 사이에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석의 결과가 성경에 부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고. 해석한 것을 설교해야 하는데. 이 해석의 결과가 성경과 합치해야 합니다. 그때에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듯이 사람들이 순종해야 할 말씀이 다 이렇게 기억을 해야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배 있어서 설교는 너무나 중요한 것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 있는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올바르게 설교를 하게 됩니다. 설교자는 마음에 이미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말씀과 성령의 불이 역사해서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올바른 설교는 성경과 같습니다. 성경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율법과 복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하고 복음으로 용서하게.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할 때부터 이번 설교에서는 그냥 죄에 대해서 다루지 말자 사람들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위로하는 설교를 해야 되겠다. 그렇게만 결정하고 나가면 그것은 올바른 설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겠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예배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령의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은 성령이 역사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셔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결국은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 이것이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예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찬양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동시에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라는 것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는 아주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게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이미 예배당에 들어올 때 졸음으로 가득 차고 뇌 활동이 거의 정지 된 상태에서 들어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을 깔보면서 예배당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어명이 주어지는데 어는 안전이라고 그렇게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예배당을 들어오겠습니까? 들어와서 앉아서 모든 기대가 내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예배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야 되겠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마음의 자세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문제입니다. 참된 신자와 거짓된 신자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많이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을 꼽자면 정말 진정으로 회신 했는가 그것 아니겠습니까? 회심의 결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회심의 과정이 기억이 나는가? 안 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마다 회심의 양상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거룩한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기는 생각을 하는데 삶이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감정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순결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하나님만 사랑하고 싶지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것도 사랑하고 저것도 사랑하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결국 참된 신자는 진정한 회심이 있고. 그리고 회심의 은혜를 간직하면서 거룩한 생활을 하려고 힘쓰는 사람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은혜를 받음으로서. 이렇게 참된 신앙으로 끊임없이 돌아오는 변화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까? 하나님이 누구를 만나주셨다. 라고 할 때에는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강화를 주셔서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신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영적인 체험이 말씀의 경험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변화’라고 할 때에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감정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건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도덕에 약간 변화가 있었습니다. 감정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내가 잘못된 것이니까 내가 좀 더 올바른 생활을 해야 되겠다.’ 라고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도덕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외형적인 변화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에 도덕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또 사람이 생각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치관이나 그 인생에 대한 견해 같은 것들이 조금씩 바뀌지 않습니까? 그것이 새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함으로서. 그 사람은 영혼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부분적인 감정만의 변화 의지만의 변화, 외형적인 도덕의 변화, 이런 것이 아니라 인생 바뀌고 변화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예배의 습관이 몸에 배여서 예배당에 와서 조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꼭 민방위 교육 받으러 갔을 때 몇 시간 때우고 오는 것과 똑같은 그거 하고 유사한 심리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 못 만납니다. 그거 예배 드려야 소용없습니다. 예배드리고 나면 온몸이 찌뿌드드할 뿐이지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참고 견디는 예배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안 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라도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 주님 못 만납니다. 은혜 받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놀라운 집중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깨달아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올바른 설교.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배고파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심정으로 그렇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예배자들이 그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갈망이 있어야 됩니다. 일주일 내내 설교자를 위해서나 혹은 설교를 위해서나 한 번도 기도하지 않고. 예배당에 와서도 예배 끝날 시간을 기다리면서 태만하게 보내는 갈망이 없는 예배자들은 하나님을 못 만납니다. 그런데 두 가지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진리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설교자와 모든 청중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 감동을 받고 변화를 받게 하는 그것은 모두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저들 가운데 역사하셔야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설교자, 은혜를 사모하는 예배자, 그 둘을 축복하시는 성령, 이렇게 계실 때에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게 된다.
4번이 두 개입니다 이게 5번이 되는 것입니다. 잘못되었습니다. 5번입니다. 설교가 예배의 꽃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은 예배드리는 것을 등산 하는 것에 비유하자면 구름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 설교에서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나고 그 다음에 경배하면서 여기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게 예배의 개회고. 이게 예배의 폐회입니다. 여기서 주님을 만나고 그 감격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이 하이라이트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설교에 은혜를 받으면서 펑펑 눈물을 흘리고 감격을 하고, 옆에 사람은 지루하기 짝이 없이 시간을 보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은혜를 받기를 간절히 갈망하십시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목마른 것처럼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이번 주에도 큰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