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에 아름다운 이름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8:1)
녹취자: 김인철
I. 본문해설
이 시는 아마 시편 가운데 가장 애송되는 몇편 안되는 시 가운데 한편일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그 유명한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간데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는 인간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인간의 존귀한 사랑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II. 온 땅에 아름다운 이름
이 시편 서두에서 이 시인은 온땅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당신의 이름을 이 땅 위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온땅의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A. 하나님의 두 아름다움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두개에 새기셨습니다.
1. 자연적 아름다움
첫 번째가 자연안에 새겨둔 하나님의 아름다움입니다. 오늘도 교육관 6층에서 오후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내려오다가 아래층을 이렇게 창문으로 쳐다 보니 에드워드 파크에 아직도 단풍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빨갛게 물든 단풍이 매달려 있습니다. 원래 우리 교회 앞마당에 단풍이 이쁘게 물 드는데 저 빌딩이 높이 서고 나서 햇빛을 제대로 못 받으니까 예전에 볼 수 있었던 그 현란한 빛깔의 아름다운 단풍을 못 보게 되어서 참 유감스럽습니다. 에드워드 파크에는 주위에 건물이 없어서 오전내내 오후에까지 햇살이 깃듭니다. 그러니 빨갛게 단풍이 물들고 주위에 있는 파란 소나무와 어우러져서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흔적을 모든 자연의 세계속에 아로새겨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과학을 공부해 보면 굳이 거창하게 공부라고 할 수 없어도 별로 내용도 없는 드라마에 빠지는것 보다는 자연의 세계를 취재한 다큐맨터리 한편을 보면 더 큰 정신의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저는 시간날때마다 쉬는 시간에 그런 영화를 보는 것을 즐겨합니다. 아프리카의 대탐험도 보았고 러시아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흐르는 아무로강의 생명 대탐사나 혹은 남극의 눈물, 북극의 눈물하는 시리즈들도 보았습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생명은 정말 강인하고 하나님은 정말 신료막직하신 방법으로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당신의 놀라운 창조의 질서를 이 세계안에 새기셨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질서의 아름다움이 이 세계에 모두 묻어 있고 특히 자연의 세계속에 영롱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아주 작은 미생물 혹은 분자의 구조로부터 시작을 해서 생명체에 생명을 담지하고 있는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지구를 벗어나면 우주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그 끝없는 신비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고 그 놀라운 아름다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가막힌 질서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이성으로 우리들이 이 자연에 대하여 지식을 갖게 되면 갖게 될수록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다는것과 지금도 매일매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다스리고 계시다는 말 할 수 없는 감격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생명은 얼마나 신비한지 우리가 그 분의 손길로 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린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자연은 저절로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만 이어지는 닫힌 세계가 아니라 수시로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의 성실하심으로 이 세계를 다스리고 돌보고 통치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이 하나님의 간섭하심속에서 이 창조의 세계는 아주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물들여 가는 것입니다. 당나라 시대에 문인들이 가지고 있던 꿈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보는것 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에도 아름다운곳이 많이 있지만 어디에든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는 우리의 편견과 어리석음에 벗어나 보기만 하면 말할 수 없이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연의 세계에 하나님이 아름다움을 그렇게 새겨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과학을 연구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의 세계를 연구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계가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가 예전에 들었던 이 성경의 지식들이 사실이라는 사실을 뒷받침 해 주는 성령의 믿음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뿜어져 나오는 이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만이 그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즐길 수 있는 이 지상의 유일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도 행복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 이름을 즐거워 하는 것도 우리 인간의 아주 중요한 권리요 의무중에 하나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젠가 사경회때 은혜를 많이 받은 어느 지체가 신문에 그런 글을 썼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와서 기도할때만 겨우 하나님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이 모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세계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봅니다. 물론 그렇게 보는 것과 예배를 드리며 진리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보는 하나님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두개의 세계가 이렇게 막힌 담이 없이 수평으로 흐르는 세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도덕적 아름다움
두 번째 아름다움은 도덕속에 새긴 하나님의 아름다움입니다. 여기에 무슨뜻이 있는가 하면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 밖에 있는 아름다움이지만 이 도덕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마음안에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왜 악을 행하고 주님께 불순종하며 살아 가는 하루, 저녁때 마음은 불편하고 몸도 피곤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잠든 저녁에는 피곤함 조차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이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 안에 도덕율들이 있어서 이러한 도덕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고 잘못하면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이라는 도덕율을 통해서 우리의 양심이 죽어야할 죄에 해당한다고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주 질서로운 도덕의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쫒아 사랑하고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 가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며 악을 행하며 살아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고난과 괴로음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그로 말미암아 내적인 평안과 행복을 얻습니다. 이것이 사람들 눈에는 부조화스럽게 보이고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순간도 하나님이 이 새상을 통치하시지 않으시는 적이 없이 때문에 주님이 바라 보시기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질서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악인들이 스스로 악을 행하고 스스로 넘어져서 고통을 받을때에 하나님의 정의는 드러나지만 그 정의에도 불구하고 넘어져 고통당하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공의와 입 맞추는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시기도 하고 그들을 다시 불러 회개함으로 당신의 사랑의 품에 안으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것들은 엄정한 도덕적 공의를 따를때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이 그 도덕적 공의를 만족하고 능가하는 사랑으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고 미끄러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그 자신들에게 없는 그 의를 그리스도를 통해 덧입힐때에 조차도 그것은 하나님에게 더 큰 아름다움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진 이 도덕적인 질서를 통해서 당신의 이름의 아름다움을 아로새겨 놓으시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서 그 모든 사랑들이 일체를 이루어 한몸을 형성하고 각자 가지고 있는 본성의 특질과 재능의 종류는 다르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마음으로 그들의 각각 서로 다른 점들을 아주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울려 퍼지게 함으로서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큰 도덕적인 질서의 아름다움이 인간의 마음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바깥의 삶속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연주회에 가 보면 이쪽부터 저쪽까지 수 많은 악기들이 있습니다. 제일 이쪽에는 소프라노에 해당하는 악기가 그 다음에는 알토에 해당하는 악기가 그 다음에 테너에 해당하는 악기가 마지막에는 베이스에 해당되는 낮은 음의 악기들이 좌우로도 다르고 앞뒤로도 다른 악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그 악기들이 모두 똑같은 색깔 똑같은 음을 낸다면 아마 아름답기는 커녕 무서울 것입니다. 그런데 각각 똑같은 악보를 연주하면서도 각각 다른 색깔의 음을 내면서 그 음들이 서로 섞이며 아주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바로 우주 안에 있는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본뜬 아름다움을 가락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또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말씀하시네... 저는 정말 재미 하나도 없고 지겹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처음에는 느낍니다. 성경의 진리이든 음악이든 아는것 만큼 그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음악의 의미를 잘 알고 듣기 시작하면 이 세상에서 잠깐 유행하고 사라지는 유행가 가락 하고는 비교 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복합적인 아름다움이 그 안에 묻어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속에 누구든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역들이 있습니다. 이 대역들을 폭을 넓히면 넓힐수록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아직은 우리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자연의 세계에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확장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죄와 결합을 하게 되면 더 많은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올바른 용도에 사용이 되면 아주 올바르게 우리의 영혼의 고양을 위하여 이바지 하는 것이기에 아우구스티누스도 절대로 음악을 무시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충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움들이 단순히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자신이 무슨 본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사람들에게 잠시는 숨길 수 있어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언젠가 그 탐욕을 드러내게 되어 있고 그리고 정말 마음속에서 사랑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랑과 친절한 성향을 사람속에 나타나 보여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덕적 아름다움이 하나의 사회속에 질서롭게 엮어져서 각자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토해 내었는데 그것들이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인간의 삶의 한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그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통치의 질서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온땅의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B.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인간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인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후진국에만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살고 그리고 번영한 나라에도 선직국에도 이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는 것입니다. 눈에 아주 명백한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것을 무시하고 양심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금소와 버러지와 같은 우상과 바꾸는 사람들이 어디에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아름다운것을 보고 아름다워할줄 모르고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탐닉하면 파멸하게 될 것들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리하여 아름다운것으로부터 떠나고 추한것에는 얼굴을 묻는 그 사람들의 모든 인간의 삶은 정말 비참한 삶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을 바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들이 낳은 자식이 정말 소중한 자식이 어렸을때 잃어 버려지고 누군가 그 아이를 데려다가 말도 안 가르치고 사람이 사는 법도 안 가르쳐 개처럼 기어 다니며 목에 줄을 매고 집안 기둥에 묶어 놓고 오고가는 사람이나 보면서 지내는 개 노릇을 하고 있다면 부모인 여러분들의 마음은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이렇게 창조하신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이 짐승처럼 살아 가며 그렇게 멸망의 길로 가는 모습을 바라 보시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마음을 느끼실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선교입니다. 그래서 이 선교의 본질은 바로 그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선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격은 돈이나 물질이나 프로그램이나 아이디어나 이런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교할 수 있는 선교사 선교인의 가장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자격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맛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조나단에드워즈의 연구가인 조지 마스턴이라는 연세가 많이 드신 교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권의 책들이 번역되었는데 지난해에 미국에 가서 그분을 뵀고 2시간동안 조나단에드워즈에 대해서 서료 의견을 나누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골할아버지처럼 아주 소탈한 분이셨는데 에드워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에드워즈을 읽으면서 받은 가장 커다란 유익이 목회의 본질을 깨닫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흥미있게 저의 이야기를 경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에드워즈를 읽으면서 제일 깨달은 보석과 같은 교훈은 목회와 선교라는 것이 사업이나 아니면 비지니스나 혹은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이에게 그것을 보여주어서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때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에드워즈의 사상을 정확히 옮겨 놓았다고 말입니다. 그것입니다.
(찬송)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III. 선교, 그 아름다움의 전파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교된 사람이 선교를 나가는 것이지 선교 안된 사람이 선교를 나가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선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는가 하나님의 아름다움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어떻게 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잘 표현할 수 있는가? 삶으로 언어로 인격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일정이 하도 없어서 화요일 밤 비행기를 타고 갔더니 그곳에 도착하니 우리나라 시간으로 1시30분이었습니다. 그래서 3시쯤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하루, 그 다음날 저녁집회하고 바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너무 고단해서 잠을 못 잤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힘이 들었는데 매년 갔지만 이틀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하나님꼐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지금 캄보디아는 동남아에 있는 국가들중에서 선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주어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보십시요. 베트남은 엄청 핍박이 심합니다. 중국 그렇죠? 그리고 태국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위의 미얀마는 요즘 조금씩 민주화가 되고 있지만 북한과 함께 세상에 남은 두개의 독재국가중 하나 였습니다. 그런 나라들에 에워 싸여 있는데 이 나라만, 인도네시아도 선교 절대 자유롭지 않습니다. 필리핀은 엄청난 카톨릭 국가이고... 캄보디아는 90%가 불교 신자인데도 완벽하게 기독교에 자유가 주어 졌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훈센이라는 사람이 몇십년째 정권을 쥐고 있는데 한국에 대하여 아주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는 50년전만 해도 우리나라가 부러워 하는 부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로는 상당한 양의 원조를, 특히 쌀이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속담이 우리는 누가 물건을 막 쓰는 뭐라고 합니까? 그곳에서는 쌀쓰듯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물보다 흔한 것이 쌀입니다. 그 사람들은 30년동안 내전을 거쳤는데 안 굻어 죽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심으면 쌀이 쏟아져 나오고 농경지가 폭격을 당하면 메콩강하고 이어져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강이 있는데 거기에서 무진장 물고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30년동안 먹고 산 것입니다. 그래서 안 굶어 죽은 것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요. 민물에 6m짜리 600kg짜리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소가 450kg쯤 되니까 생각해 보십시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았는데 어마어마 합니다. 과장하면 고래 같은 놈이 그 강에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흙탕물이 내려 오고 메콩강쪽에서 맑은 물이 내려 오는데 전 세계에서 민물고기가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엄청난 물고기가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으면서 이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발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국민소득이 500달러 입니다. 우리나라를 굉장히 부러워 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입니다. 너무 잘 살아서 비교가 안됩니다. 우리나라가 아시아에 있는 국가들중에는 드림입니다. 그 나라가 6.25때 참전한 것 아시죠? 참전국가 입니다. 그렇게 가난하고 이 지상에서 가장 불행하던 나라가 저렇게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도전을 받는 것입니다. 몇년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그곳에 방문했는데 웃지못할 사진이 일간 신문에 크게 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있고 조금 젊으니까.. 훈센은 머리가 하얀 양반인데 두 정상이 포옹을 하는데 사실은 둘이 포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은 가만히 있고 그 사람이 살포시 품에 안기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와서 이명박 대통령이 2,000억짜리 외곽 순환도로등 많은 원조를 했습니다. 이번에 갔더니 완공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한국을 그렇게 좋아 합니다. 이것이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보면 얼마나 놀라운가 하면 2류 대학을 졸업해서 2류 기업에 취직하면 월급이 150달러 입니다. 1년이 지나면 250달러입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기업에 취직을 하면 300달러 입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물가가 그렇게 싼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우리들이 만약에, 그 나라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성장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묻지마 투자를 한 것입니다. 그러다 이번에 이제 미국사태 그 다음에 유럽사태가 나면서 주저 앉으면서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곳에서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여건이 바뀌어서 손해가 나는 투자에 쓰지말고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후회하지 않을 투자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나라가 엄청 발전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대학을 나와서 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이 옛날처럼 너무 소수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젊은이들을 그곳에서 신앙으로 잘 다져지게 만들어서 신앙이 없이 나라가 잘 살게 되고 돈을 벌면 우리가 다 경험 해 보았는데, 졸부들의 경험을 해보지 않았습니까? 말할 수 없이 나라가 타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좋은 젊은이들을 싹수가 보이면 무조건 선교사하고 목사만 만드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들이 각기 재능을 따라서 자기 전공 분야에서 잘 하게 만들어 줍시다. 그래서 그들중에 사업가도 나오고 정치가도 나오고 또 은행원도 나오고 각 분야에서 기독교적인 정신을 가지고 자기네 나라를 개혁하고 올바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게 우리들이 도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놀라운가 하면 몇년전에 제가 가서 그곳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설교를 할때만 해도 새까맣게 청소년들이 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집회를 한다고 하면 연예인이나 데리고 오면 얼굴을 내밀까 아마 말도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청소년들이 모입니다. 아직 때가 덜 묻고 비교적 순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받아 들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안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전파해 준다면 그들 모두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전파해 스스로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자기의 백성들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책이 없습니다. 어느정도로 책이 없는가 하면 폴포드 정권때 책을 모두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적인 기반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어서 공과대학의 현직교수가 미적분을 잘 못 푼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교수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캄보디아 공과대학에 있는 교수의 수준이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1학년 수준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와서 가르쳐 주면 배울 학생들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든지 영어든지 수학이든지 물리학이든지 화학이든지 공학적으로 들어 가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인 교수들은 거기에서 최고의 학자로 인정을 받으면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나가면 안 그럴텐데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워낙 취악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쪽 총장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런데 뭐라가 이야기 하는지 아십니까? 대학원생이면 너무 좋고 대학만 나왔어도 교수로 받아줄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말이 됩니까? 대학만 나왔는데 어떻게 대학교수가 됩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지식의 기반이 취악한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가서 정말 그 나라를 20년, 30년후에 그 나라가 잘 살게 되었는데 신앙이 없다면 더 타 할때 정말 얼마나 행복한 나라가 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한 대학생이 생활의 염려에 매이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하게 한다면 저의 생각에는 책값하고 등록금, 등록금이 공과대학은 600만원이 넘는데 800만원 1,000만원 가까이 하는데도 있습니다만 평균 잡아서 700만원만 치면 1,400만원이고 책값 500만원하고 그리고 1,900만원에다 먹고 사는것 등등하고 하면 집세 월세하고 하면 아마 대학원 학생이 아무 염려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고 기본적인 생활만 한다면 250만원 주면 아주 행복하게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돈 가지면 그 나라에서는 20명 가까운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오직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비용입니다. 그러니까 상상이 안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나라에서 원조도 하고 돕고 있지만 다리 놓고 농촌의 지붕을 바꿔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닌것 같고 미래의 캄보디아를하는 일에 힘 쓴다면 20년후의 그 나라는 얼마나 변할까 음으로 양으로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고 그리고 심지어는 일본인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 사람들이 후에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서 조국의 귀한 동냥들이 되었던 것을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작은 동네에서는 당연히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져야 되겠지만 여기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가보지 못한 많은 곳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그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주님의 이름이 드높여지는 세상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자원을 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로님 한분하고 집사님 한분하고 동행해서 쭉 돌아 보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외국에 와서 은혜를 받고 가면 교회가 바빠진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은 여기에 앉아서 알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보게 하시고 그래서 제가 할수만 있으면 집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을 데려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와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백번 듣는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중요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이 이 평촌에서만 일어 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서든지 당신을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당신이 행하시는 그 위대한 일들에 가슴 벅차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화) 어느 교회 장로님 한분이 아주 금술이 좋았던 사모님을 상처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우을증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것을 아는 교수님이 “장로님 그렇게 실의에 빠져 있지 말고 저하고 여행이나 갑시다” 하고 중국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변에 가서 그곳에서 얼마나 처절하게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하는지 보여 주고 나서 이분이 그 우을증이 너무 사치라는 사실을 꺠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이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자기의 남은 생애를 선교에 쓰겠다고 한 것입니다.
IV. 결 론
저는 여러분들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선교사로 가는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제가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생애를 같이 하며 이 복잡한 한국에서 이 고생하는것 보다 훨씬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소중한 일꾼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찌 그 사람들이 몫이겠습니까? 재능이 있는 분들은 재능으로 보태십시요. 건강이 있는 분들은 건강으로 보태시고 그것도 없는 분들은 물질을 보태십시요. 손에 넣고 움켜지고 있으면 녹아서 사라질 구름과 같은 것이 재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살리는데 사용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그러면서 장로님 집사님과 모여 앉아서 황선교사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회가 커지는 것은 여러모로 감사한면도 고통스러운면도 있습니다. 엊그제도 심방을 갔더니 어느 교인이 그랬습니다. “목사님! 제가 두달반을 입원했는데 목사님 한분도 안 와 주셔서 섭섭했습니다. 제가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런 괴로움은 아주 심해집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파트에서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내가 꿈꾸던 목회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시골 아저씨 같은 목회, 시골 할아버지 같은 목회 그렇게해서 그렇게 정말 교인들 모두 얼굴을 알고 돌보고 그러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저의 맘대로 된 것이겠습니까?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그런 생각을 우리들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크게 해 주시면 우리들이 불편하고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러나 이렇게 교회가 작았을때에는 엄두도 못 내는 일들을 할 수 있으니까 이것은 이것대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가 보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속에 다집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자원을 주시는데 그것을 헛되게 쓰지말자 그러지 말고 그것들을 잘 활용해서 이땅에 가뭄에 단비와 같이 이 자원들을 공급해 주어서 그래서 그곳에서도 주님의 나라가 아름답게 꽃피도록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일에 사무치는 성도들을 보내어서 그래서 그곳에서도 주님의 계절이 오도록 그렇게 일깨우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의미는 온땅에 아름다운 주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그곳에 우리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있으니 여러분들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많은 것들이 이 일을 위해 쓰여져 주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