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생자를 보내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성도의 마땅한 삶이 사랑의 생활이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서는 바로 그렇게 성도들이 사랑하고 또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 그 모든 삶의 원천이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기에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그대로 이웃과 형제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며 그 사랑 안에서 자신도 하나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명백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축제의 분위기에 들뜬 사람들은 세상에 있지만 여러분들은 성도들로서 왜 이 날이 우리에게 기쁜 날이 되는지,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이 어째서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II.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A. 전에도 있었던 사랑
오늘 성경은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합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전에도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맨 처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을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지식과 사랑으로 이 세계를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빚으시고, 그에게 영혼을 주셔서 당신을 알고 또 사랑하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난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은 더 찬란하게 나타났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렇게 할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탁월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를 바탕 삼아서 인간이 죄를 짓지 아니하였더라면 인간에게 주실 수 없었던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들에게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다른 백성들에게보다 더 탁월한 계시의 빛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독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들었고, 그들의 종 선지자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제사의 제도를 주셔서 더러운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속죄의 사랑을 힘입어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수많은 시련과 환란을 당하였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심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붙들고 계시다는 증거를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을 위함이 아니요, 이스라엘을 통해 온 인류가 이렇게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는 선지자의 찬송의 제목이 되었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함은 수많은 시인들의 노래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언 없이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단 1년도 계속된 적이 없었으니 이미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구약 속에도 매우 명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예전에 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밝기에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요? 사도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살리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명백히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희미했다거나 혹은 부정확했다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도 어두운 세상에서는 밝은 불빛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심으로서 예전에 나타난 그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을 우리에게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풍부한 에너지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만해도 전력이 모자라서 수시로 동네마다 전기가 나갔습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도 능히 더듬어 찾을 수 있는 곳에 양초와 성냥을 두었고 식구들은 능숙하게 그 초와 성냥을 찾아 불을 켰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에 촛불 하나만 켜도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형광등이 깜빡이다가 불이 들어올라치면 촛불은 아무 의미 없는 불빛이 되고, 우리는 속히 그것을 끄고 제자리에 간수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도 워낙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찬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이 방식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기적을 베풀기도 하였고,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기도 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다가오기도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커다란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바람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지 희미하게만 알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믿음의 눈으로 뿐만이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도 보게 만들어 주었고 그래서 그들의 믿음을 촉진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그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아파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걱정하시는 표정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보이는 나타남이었습니다. 주린 자를 먹이시고 그들을 위해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떡과 물고기를 드신 모습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염려하시고 이 온 인류가 굶주리지 않고 배부르며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시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먼저 사람들에게 이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약이 가르쳐 준 방식과는 비교되지 않는 방식으로 생생하게 가르쳐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구약을 수없이 읽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잘 느낄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마주치고 그 분의 인격을 경험하고 그 분의 섬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 분의 인격 안에 녹아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인간의 몸뚱아리와 같아서 한 공간에 제한되어 있었지만, 제한된 주님의 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본보기는 인간으로 하여금 무한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인간의 마음속에 이해할 수 있게끔 그렇게 선명하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많이 읽고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종교지도자들과 율법사들이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을 단순하게 만났던 창기와 세리들이 먼저 깨달아 그 나라의 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성탄이라면 이 성탄은 바로 이렇게 우리에게 믿어지지 않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우리 위에 계셨다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계셨을 때에는 우리 인류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임마누엘이었습니다. 이제 그 분은 가고 없으십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그 분을 만지거나 눈으로 보거나 냄새를 맡음으로 그 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렇게 예수님을 만지고 본 사람보다 생생하게 우리로 하여금 그 분을 알게 하셨으니 하나는 그 분의 기록을 성경으로 남겨놓은 것이요, 또 하나는 그 분이 약속하신 바와 같이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진 것보다도 더 분명하게 도마처럼 의심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게끔 생생히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예수님 자신 때문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당신을 떠난 이 세상의 인간들의 비참을 차마 보실 수 없는 마음 아파하는 그 가슴 저민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친히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을 때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진실한 인격과 생활로 살아가야 할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 성탄절에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 아기 예수의 우리에게 기쁜 것은 바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보여주셨던 절대적인 희생의 삶, 병든 자를 어루만지시고, 눈먼 자를 고치시고, 저는 자를 온전케 하시며, 주린 자의 입에 떡과 물고기를 떼어주시던 주님의 그 모든 섬김은, 이 모든 섬김이 끝난 후에 최종적으로 보여줄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그것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본편은 바로 그렇게 우리를 향해 보여주신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영혼의 죽음, 곧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 정사를 통하여 예수님은 친히 누구의 강요도 없이 당신 스스로 자원하여 우리 인류에게 임할 하나님의 큰 형벌을 온 몸으로 감당하셨고, 그리하여 구원하고자 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 친히 대신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는 화목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고 죽으심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일평생 하나님이시지만 그의 하나님 되심을 사람의 성품 밑에 감추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마치 당신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는 것처럼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였고 우리와 똑같은 형제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힘을 주셔서 우리를 위한 구원자로 살고 또 죽으실 수 있기를 하나님 앞에 통절히 간구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참 사람이 우리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참 사람이 어떻게 우리 하나님을 어린 아이처럼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생애는 하나님이시면서도 비천한 종의 생애였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이시면서도 하나님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인간과 똑같은 종처럼 아버지의 손을 굳게 붙들고 아버지에게만 자신의 모든 삶을 의탁하는 인간 어린 아이처럼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모든 섬김으로써 우리를 위해 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을 위해 인간으로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서 겸손히 죽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이신 그 분이 죄가 하나도 없으신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멸시와 박해를 받으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처참하게 자기를 찢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왜 생명이신 그 분이 이미 죽어 있고 사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서 죽음에 내어주신바 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오늘 사도는 우리를 살리려고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도의 언급을 보면서 사도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죽어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차마 죽어있는 우리를 보실 수 없어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죽음과 인간의 비참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숨이 끊어지고 생명의 모든 기능이 멈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육체는 움직일 수 없고, 활동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북한의 최고 권력자이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큰 권력을 행사하던 통치자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가장 힘없는 인간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주에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육체의 죽음입니다. 그는 다시 살아나지 않고 다시 예전과 같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과 다릅니다. 영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에 의해 불멸하도록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니 육체와 영혼이 다른 것만큼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의 의미도 사뭇 다른 것입니다. 이 영혼의 죽음을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이 결핍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육체는 죽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영혼이 살아 있을 때에는 생명의 행실을, 영혼이 죽어있을 때에는 죽음의 행실을 영혼이 합니다. 그래서 영혼은 오히려 죽어 있을 때 활발하게 움직이며 온갖 더러운 죄들을 행하고 악을 양산해 냅니다. 미움, 시기, 다툼, 질투, 불의, 음란, 시기, 분쟁, 이 모든 더러운 것들이 바로 죽어있는 영혼들이 행하는 일들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비참에서 절대로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B.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생명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물질의 결핍인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부유한 사람들은 행복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의 불행이 육신의 질병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불행의 이유라면 건강한 사람은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의 불행이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식이 많은 사람은 언제나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두 죄라는 질병이 밖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불행은 이러한 죄의 현상 때문이 아니라 죄라고 하는 근본적인 질병 때문이고, 이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도 하고 목도 아프고 콧물도 나옵니다마는 궁극적으로는 감기라는 질병에 걸렸기 때문이죠. 이 세상의 선행으로도, 종교로도, 심지어는 제사로도, 율법으로도 다른 어떤 것으로도 결코 이 근원적인 인간의 불행의 문제인 죄를 영혼의 죽음의 원인인 이 죄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셨고 그렇게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이 그의 영혼의 새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인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는 사람들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지은 많은 죄들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죽었던 그 영혼을 살아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성령을 그 사람의 마음속에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신기하게 죽어가던 우리의 육체에도 링거를 통하여 영양제가 들어가면 온 몸에 기운이 솟고 생기가 돌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이 생명에 힘입어서 죽은 자와 방불한 삶을 살던 모든 사람들의 인격과 삶을 고치십니다. 그들의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죄인의 신분이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전에는 마음과 영혼이 죄와 사망의 사슬에 매여 있어서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그 모든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힘입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당신의 생명으로 새 삶을 살아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생명의 능력과 기쁨을 우리 인간들에게 주셔서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하나님 없이 짐승처럼 살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그리스도 때문에 사람처럼 살게 하시려고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는 당신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보다 이 세상에 있는 인류를 더 사랑하셨기에 당신의 아들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진노를 한 몸에 당하여 고난을 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희미하게 밖에 모르거나 혹은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뜻도 모르고 먹고 마시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절단해 놓는 모든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다시 그 하나님의 생명을 힘입어 살도록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적이 없는 사람,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혜를 누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맛보았던 사람들은 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잘 때가 없어서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작은 절망과 낙심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고 삶의 모든 용기조차 잃어버렸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 물과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찬양)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주 하나님 우리 위해 아들을 보내신 사랑의 주님을
바로 그렇게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난이 겹치고 시련이 비바람처럼 몰아칠 때에 우리는 무엇으로 그 고난을 이겼나요? 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정죄함 속에서 삶의 모든 환경들이 낯설어 보이고 내가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이 남인 것처럼 느껴졌을 때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외롭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깨닫게 해 주셨나요? 눈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나은 길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곧 이 생명을 충만하게 우리에게 부어 주셨을 때에 우리는 환경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난과 시련의 파도보다 더 큰 주님의 음성이 우리의 인생의 바다에 울려 퍼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때문에 진정으로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IV.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같은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하여 생명 주시기 위해 자기 아들 보내신 하나님 사랑 때문에 우리는 기쁨으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그렇게 그 분 때문에 생명과 구원을 얻어도 그 분이 말구유 위에 오신 이 탄생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 때문에 한편으로 우리의 마음이 눈물을 흘립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요, 또 한편으로는 주님의 구원 때문에 흘리는 기쁨의 눈물입니다. 이 성탄의 두 면을 함께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이제 이 구원받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만약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복음과 원수된 체 살고 있었다면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축제처럼 먹고 마시다 지낼 이 성탄절에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과 복음을 알게 하셔서 간절히 주님을 경배하게 하셨고 거미줄 같은 믿음이나마 주님을 붙들고 의지하며 살게 될 마음을 갖게 해 주셨다는 사실에 대해 주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가끔 떠나고 세상은 가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관계를 흔들어 놓을 것처럼 요동쳐도 그 분이 우리를 붙잡고 계신 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손에서 놓여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지불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죄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자기의 소중한 아들을 화목제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모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절은 우리의 마음속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도록 외치는 커다란 나팔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오신 이 성탄절에 겸손하게 우리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흠 없으신 아기 예수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셔야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구원받은 우리의 인생이 내 것이 아니요, 우리 예수님의 것임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평생 사는 날 동안 우리 중 아무도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대로 살아서 티끌 같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잠시 살아 있는 것이 그래도 주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차게 되는 일에 티끌만큼이라도 이바지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온 마음을 높여 아기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주님을 기뻐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드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아끼지 않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주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 모르는 사람들, 그 낮은 자리에까지 내려가고 더 내려가서 그래서 우리 주님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