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Ⅲ 6(1994.6.15 수요예배)
말하는 십자가
우리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전1:14)
녹취자 : 이경순
사도 바울이 정확하게 말해서 사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평생에 궁금한 것은 나같이 그렇게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요 이 가치 없는 인생을 어떻게 하나님이 건져 주셨을까?그러더니 그 해결이 무엇인가 했더니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건지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는 전혀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없고 죄인이고 그리고 자기는 이전의 과거를 생각해 볼 때 정말 하나님 앞에 구원받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그렇게 그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고 훼방 자였고 포악한 성품을 가진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이 돌아다보니까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왜 나 같은 것을 구원하셔서 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삼으셨는고 했더니 후일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소망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불러서 구원하셨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아무 공로 없이
(찬양)
빈 손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주소서
혹시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는데 그러나 자기의 내면세계를 돌아다보면 내가 정말 죄인이다 그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의 긍휼로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울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정말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고 세리와 죄인과 같지 아니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면 그래서 사도로 삼으셨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도를 존경했을지는 모르지만 사도를 통해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는 가리워졌을겁니다. 야, 바울은 훌륭하다 그러더니 과연 구원을 받았구나, 그러면 죄인들이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죄인들은 그냥 하나님을 싫어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미명하에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그리고 포악한 성품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 교회를 박해했으니까 사실은 그는 세리와 죄인보다 더 하나님을 향하여 더 적극적인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돌이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바울에게만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구원받지 못했다면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죽어서 다 태우고 나면 태우지 않더라고 다 분해 되고나면 거기에서 나오는 비료가 있습니다. 그게 국제가격으로 975원어치랍니다. 인생이 죽으면 975원 어치 비료를 남기고 죽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푸라기기와 같이 사라져갈 인생들을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그러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이 의미 없는 것이겠습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면 우리의 일생을 그 구원받은 것 때문에 불 가운데 살게 하신다고 할지라도 구원은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 때 많은 사람들이 로마시대 때 특히 예수를 믿는 기독교를 아주 간악하게 박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하는 대신에 세례를 받는데 한쪽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며 죽어갑니다. 세례 받는 것은 너희마음대로 하는데 세례를 받으면 저렇게 죽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세례를 받지 않고 신앙을 고백하지 않고 살기보다는 차라리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구원의 위대한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복을 받는다. 물론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한테 만약에 우리가 복이 필요하다면 그 하나님 아버지한테 나아가서 우리에게 이런 것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도 하나님 앞에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고사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져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들이 사모하는 모든 축복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구원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구하는 그 축복은 사람의 탐욕을 기독교 신앙으로 포장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구원의 위대한 가치를 깨달아 알아서 이 십자가에서 제가 그 이야기 했습니다. 구원의 위대한 깊은 가치를 깨달아 알 때 그 때 우리는 입을 벌리고 아무 할 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마지막에 하나님이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나를 건지셨도다. 그리고 나서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세무궁토록 홀로 영광을 받으실 지어다. 그리고 찬송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처럼 놀라우신 분이시라는 것을 감격에 겨워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렇게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이 사도바울이 오늘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 십자가가 도대체 무엇을 내게 말하는가.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은 말하는 십자가입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까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는 죄인이다 그 음성은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음성인데 십자가 앞에 설 때마다 이 사도바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사람들이 왜 구원을 참 위대하고 놀라운 구원이라고 하는 사실을 굳게 붙들고 그 구원의 샘물에 우리의 신앙의 젓줄을 담그고 그렇게 그 속에서 만족을 느끼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는 제법 쓸 만하고 소망이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필요 하겠습니까? 무슨 하나님의 나를 건져주신 그 은혜 자신은 그렇게 건짐을 받았다라고 하는 그 놀라운 감격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위기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런 것이 무슨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처음에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얼마나 놀라웠겠습니까? 그리고 능력을 받았을 때 정말 병을 고치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그럴 때 얼마나 흥분되고 놀랐겠습니까? 방언을 하나만 받아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오래된 일입니다만 집회를 하고 왔는데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가 막 내리는데 밤새도록 잠이 안 옵니다. 흥분을 해서 야 대단한 일이 나를 통해 일어나는구나.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러한 시간들을 다 거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떠오르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설교의 위대한 능력 누구도 내 설교를 듣고 회심했지 어느 지방도 내가 세운 교회인데 그런 것 다 사라지고 마지막에 가슴속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였습니다.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겠습니까?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 그게 떠오릅니다. 제가 지난번에 있던 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사죄함에 대해서 설교를 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설교할 때 마음을 녹이시는지 내가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 용서 받고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내가 죄가 많다 그러면 나를 보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찬양)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은 후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
사도바울은 인생의 말년에 접어들어서 순교의 종소리가 들리는데 아라비아에서 기도할 때만해도 머리가 새까맣고 총기가 흐르는 젊은이였습니다. 30여성상을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살다가 이제는 흰머리가 백발이 섞인 노사도가 되고 그리고 젊고 팽팽하던 얼굴에는 주름이 깊이 패이고 이제는 노인네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속에서도 사도바울은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오르고 있는 분명한 그림이 찬란한 빛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십자가였습니다. 그것을 대할 적마다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여기에서 이 괴수라고 하는 말이 헬라어로 프로토스인데 줄을 세워놓을 때 맨 앞에 오는 사람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죄 많은 사람 순서대로 줄을 서라 그러면 자기가 맨 앞에 와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고 십자가가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사도바울한테 항의를 했습니다. 당신 틀렸다 내가 첫째다. 신앙이 깊어지면 다퉈도 이런 것을 가지고 다투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을 때는 내가 의인이다 내가 대접을 받아야한다 그러면서 앞자리에 서려고 하는데 내가 죄인 중에 괴수 이옵나이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고 사도바울이 와서 앞자리에 서니까 와서 등을 확 떠밀면서 너 같은 착한 사람이 어떻게 일등자리에 않을 수가 있느냐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은 바로 나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자리를 다투었습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이옵나이다. 주께서 나를 살리시고 나를 구하셨으나 나는 주님이 구하셔야할 아무 공로가 없는 그러한 비천한 인생이옵나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볼 적마다 생각나는 것은 내가 이 십자가를 어느 지방에도 매달았고 에베소도 갔다 매달았고 고린도도 같다가 매달았고 골로새도 매달았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볼 적마다 개인이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십자가를 볼 적마다 교회생각이 나고 무슨생각이 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생각난 것입니다. 나 한사람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였으며 그 어떤 관계였던 것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으며 그 변화된 것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는지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이 깊어지면 점점 좁아집니다. 그러면서 그 좁아진다고 하는 말은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생각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사도바울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천사의 말과 그리고 방언을 할지라도 울리는 꽹과리와 같고 소리 나는 징과 같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바울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그런데 그 사람이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그 십자가만이 찬란히 떠오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그 십자가 아래서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죽인 것을 내 몸에 짊어지고 그리고 예수를 위하여 사는 것 그런 삶을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대속의 진리에 대해서 거의 믿으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청교도들을 비롯한 믿음의 선조들은 이 대속의 교리에 대해서 많이 설교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대속의 교리를 굳게 붙들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은 한 평화주위자의 죽음이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 이북에 가서 5월이면 예수님은 언제나 부활하고 평화시장에도 부활하고 남대문에도 부활화고 서울역에도 부활하고 구로공단도 부활하고 또 구로공단에서도 죽어가고 평화시장에서도 죽어간다. 그런 생각은 다 무슨 생각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평화주의자의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분이 그렇게 죽은 정신을 본받아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도덕적인 감화를 끼치기 위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값을 감당하시고 그리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용서받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의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생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하며 살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이외에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믿고 그리고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를 받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죽기위해서 예비 된 짐승과 같은 존재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게 하신 그 사건을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오죽했으면 스데반이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너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것을 설교 하려고 하는데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가편투표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니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도 그는 계속 포행하고 그리고 박해하고 핍박하고 훼방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지금도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좋으신 주님이 자기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의 주님을 싫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관심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내가 바로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말씀하실 때 이 사울은 깊이 회심하고 그리고 예수가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하는 자가 없으니까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직접 사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그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전하지 않고는 세상은 알자가 없는 것입니다. 전파 하는 자가 없는데 누가 들으리오. 듣지 못하는 자가 어찌 구원을 받으리오. 그런즉 기록되었으되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여 말하길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은 복되도다.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이 누구이신지 말씀 해주시는 것을 통해서 사도바울은 십자가도 믿어지고 구속도 믿어지고 자기가 그렇게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대신 죽으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인생의 전체가 그 십자가에 붙들려서 교만 하려야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으면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습니다. 바울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세상의 사람들은 아버지 바울이여 아니면 대사도 바울이여 그랬을지 모르지만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내가 너를 구원하였도다. 그 사실을 십자가 앞에서 매순간순간마다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자기가 일평생 이 십자가가 관심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오죽했으면 고린도 전서에서 ‘내가 너희에게 갈 때 사람의 말과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및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필요 없다 결심하였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십자가가 자기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우선 예수 믿기 전에 내가 누구였는지를 십자가는 말해줍니다. 내가 의로운 사람이었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예수 믿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예수를 믿고 내가 누가 되었는지를 말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 십자가를 바라보니까 십자가 앞에서는 지금 이 반백의 노사도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 하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이 그것을 일평생 살아왔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십자가 앞에서 지금 대 사도고 모든 사람이 공인해주는 이방선교의 아버지인데 그런 모든 대 사도 무슨 기독교 신학을 세운 첫 번째 신학자 모든 후대의 평가 같은 것 다 헌신짝처럼 버리고 지금 한 사람의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 되어서 이 십자가 앞에서 이렇게 흐느껴 우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십자가에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 사건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사건인지를 사도바울은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왜 깨닫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죄인은 얼마나 소망이 없는 인생인가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에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과 그 피로 자기를 구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줍니다. 너희는 죄인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바울이 정말 그렇게 끔찍한 죄인중의 괴수였습니까? 누가 바울만큼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그가 이전에 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다고 했지만 그러나 그 핍박 한 것도 하나님을 위한 열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그렇게 돌아서고 나서 그 인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모르니까 그 헌신적인 종교적인 열정이 예수그리스도를 훼방하고 예수그리스도를 괴롭게 하는데 써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 그리고 지극히 열심을 내는데 그게 마지막 결론은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괴롭게 핍박을 하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을 하고 열심을 내었는데 열심히 넘치면 넘칠수록 예수그리스도에게는 고통이었고 하나님에게는 괴로움이었고 주님의 영광은 오히려 가리어졌고 하나님의 진리는 훼방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열심히 사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이 사도바울이 그렇게 헌신적인 삶을 살면서 그렇게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체험하고 그 십자가에 붙들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왜 달아놨습니까? 띠는 교회 많은데 굳이 달아놓았습니다. 보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기 전에 십자가를 묵상하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아는 것입니까 이것은 죄인을 매달아 놓은 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는 죄인이다 그 사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춘천 쪽에서 쭉 오다가 보면 그 길이 너무 멋있습니다. 지금은 한참 지났으니까 때가 많이 묻었는데 처음에 길을 새로 이 차선에서 사차선으로 뚤었을때 너무 멋있었습니다. 까만 아스팔트에 노란 선이 그어졌는데 사고도 잘 안 난답니다. 그런데 너무 멋있는데 옆에 보니까 콘크리트 덩어리가 다 깨지고 쇠가 나와 가지고 구부러지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 훼괴한 건물을 내버려두었습니다. 나중에 뭔가 하고 물어봤더니 토치카랍니다. 6.25때 그 속에 들어가서 싸우다가 적군이 포탄을 쏘니까 폭탄이 터지고 총알자국이 다 나고 그것이 40년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거기 서 있습니다. 왜 그랬냐고 그랬더니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것을 보고 6.25의 참상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답니다.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난 중앙청 좀 안 없앴으면 좋겠습니다.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무슨 그것을 폭파시키면서 일본천왕이 항복하던 그 얘기를 녹음으로 틀어줍니다. 너무나 유치합니다.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웃길 겁니까? 놔두기 싫으면 옮겨다놓고 가서 늘 이를 악물고 주먹을 다니며 우리민족의 그 부끄러웠던 역사를 생각하면서 나라가 망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데 그 생각은 우리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 단순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십자가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보면 우리는 모든 할 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죄인중의 괴수와 같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요즘은 잘 안 만드는데 제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언 제간 10여 년 전에 철도건널목이 있는데 철도가 내려지고 기차가 저기서 오는데 꼬마하나가거기를 걸어가는 겁니다. 그 건널목을 지키던 간수가 그 아이를 밀어내고 거기 자기가 대신 죽었습니다. 맨 첨엔 같이 살려고 했겠지요. 그러다 죽었습니다. 그 장례식에 그 아이 부모가 참석을 했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죽음이 대속적인 죽음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형벌 하셔야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형벌을 아니 되옵나이다 그 하나님의 형벌을 대신 온몸으로 받으시면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보면서 뭘 깨닫는 것입니까?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냥 십자가를 보면서 입이 탁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울어도 눈물로는 못 갚을 줄 알아 그 십자가를 보면서 얼마나 소망 없는 인생이 구원 받았는가 그 구원 받은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느냐 그것은 간단합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느냐 그것과 똑같은 질문입니다. 신앙의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십자가를 얼마나 깊이 체험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얼마나 깊이 아는 가 그것에 따라서 자기를 얼마나 깊이 아는 가 그게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들이 깊이 느낄 수만 있다면 그러면 예수를 위해서 살고 예수를 위해 죽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너무도 크고 위대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사로잡혀서 그 사랑 때문에 사람이 모든 환경과 고통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한번 만났던 어느 벽지 만드는 회사 회장님 부인이 십자가 체험을 했는데 온몸의 혹을 잘라내기 위해서 수술 들어가면서 몸부림치면서 우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얼마나 아프면 저렇게 울까? 했는데 사실은 자기가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한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것을 깨닫고 흘리는 감격의 눈물입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못 할 때는 완전히 침체에 걸려서 아 내가 예수를 믿는데 왜 이 모양으로 사나 그러면서 또 수술 들어가야 하나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수술을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침체되어 있다가 십자가를 보게 되니까 이제는 예수그리스도가 보이지 자기가 이 수술을 받으면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수술비가 얼마 나올 것이며 혹을 몇 개 잘라 낼 것인가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저녁에 우리 다 내려놓으십시다. 우리 여러분들의 마음은 곤고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 고민거리 다 버리십시오. 그리고 안타까운 기도의 제목들 다 내려놓고 그게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신 이 놀라운 위대한 사건에 비하면 태양 볕 아래 놓여있는 반짝이는 반딧불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오늘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겠습니까, 전도 많이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열린 교회 헌금은 제가 도맡아 놓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 물어보시지도 않습니다. 뭡니까? 나는 공로 없으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아들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 하시옵소서 그 아들의 십자가, 말할 수 없이 흉악하고 소망이 없는 인생들을 주님이 건져주시고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으셨습니다. 일평생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믿은 것을 후회할 적이 가끔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소망이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한 번도 후회가 없으셨습니다. 믿습니까? 지금도 후회안하시고 앞으로도 후회를 안 하시고 또 우리를 구원하신 것 때문에 하나님이 손해도 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목사는 갑자기 이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모든 고통 하는 이유는 고민의 요소들이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찬양하고 나를 구속하신 구세주의 그 놀라운 찬송할 수밖에 없는 감격이 가슴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런 놀라운 역사와 은혜를 경험 할 수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한테 놓인 이 십자가는 사도바울이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도바울만 그 사랑 보여주셨습니까? 사도바울만 예수님이 편애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사랑을 보여주셔서 지금도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누구든지 회개 하는 자들은 엘의 샘에 나와서 더러움을 씻겨 주십니다. 씻어내고, 씻어내고 수많은 죄인들이 와서 그 샘에 목욕하고 목이 가라앉아도 그 샘에서 먹고 그 샘에서 춤추는 것입니다. 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신 이 놀라운 사랑이 거기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고 나니까 그담에 나의 인생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도 깨닫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바로 미쁘다 이 말이여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하려 세상에 임하셨다 함이로다. 미쁘다. 확실 하도다, 믿을 만 하도다, 의심하지 마라, 죄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의인을 위해서 오시고 의인과 놀아주기 위해서 오셨다면 소망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주님은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찾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 십자가의 놀라운 구원과 사랑이 여러분들의 상태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을 진실로 구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생애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