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돌아온 사람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녹취자 : 김세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지금 우리 시간으로 보면 금요일 아침 9시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전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었고, 그 기도 후에 체포되셔서 빌라도에게로 헤롯에게로 다시 빌라도에게로 밤새도록 끌려 다니시고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브라이드리온 이라는 왕궁수비대가 있는 곳에서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나타나신 것이 빠르면 6시, 늦으면 아침 7시 정도 되지 않으셨을까 추측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당신이 매달리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행렬을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행렬을 따라왔는가 하면, 그때가 바로 유대인 최고의 명절인 유월절이었고, 이 때 경향각지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와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형을 당하신다는 소식은 엄청난 뉴스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많은 화제를 뿌렸던 종교지도자, 혹은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선지자 혹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던 그 예수가 순순히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 우리들이 모두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예수는 정죄되고 결국 유대인들의 음모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바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 세 번째 말씀,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자기 어머니를 향하여 ‘여자여’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였지만 이것이 어떤 주석가들에 의하면 왕궁에서 쓰는 어법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읽는 것처럼 예의에 어긋난 표현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서는 마리아가 당신의 어머니였지만 그러나 자신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시고 또 우리가 그제 배운 대로라면 인성 안에서 모든 인류와 연합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이제껏 까지 살았던 모든 삶을 접고 십자가에 매달릴 때에는 마리아의 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온 인류와 인성적인 연합을 이루시고, 그 온 인류의 대표로서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형벌을 받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십자가 아래 있었던 어느 한 사람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지만 그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서 따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던 일부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가슴 아파 하며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면서 예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고 나무에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죽음은 사람을 못 박아서 나무에 매달고 이제 그 피가 쏟아져 서서히 죽는 것을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가슴을 치고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도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수들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죽기도 하지만 또 어떤 죄수들은 3일, 4일씩 매달려 있는 동안 죽지 않았다고 하니 그 매달려 있는 동안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어쨌든 모든 많은 사람들이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의 십자가 곁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가 나무에 매달려 죽어 가시는 그 가슴 아픈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여시고 그 어머니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보시옵소서 아들입니다.” 누구이겠습니까? 복음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물이 자기 자신일 때 그것을 ‘나’라고 표현하지 않고 3인칭으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바로 사랑하시는 제자가 거기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제자들을 아끼셨지만 특별히 마음에 품고 사랑하시던 제자가 셋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가 보면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34절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명백하게 사도요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창에 허리를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리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십자가 아래에서 일어난 마지막 순간의 상세한 기록이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생략되어 있고 그리고 요한복음에만 목격자의 증언같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요한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있게 된 것입니까? 성경 구절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5절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나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 광경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배신자의 유다가 데리고 온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체포하시는 광경입니다. 그때 이미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홀로 체포되시고 빌라도 앞에서, 그리고 헤롯에게 다시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시고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매 맞으시고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고 못 박히고 그리고 몇 시쯤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9시에 못 박히시고 9시에서 12시 사이, 앞에 이미 몇 가지 기록들이 나오니까 최소한 10시 반에서 11시와 12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후에 배신자에 의해서 체포되어 가시는 장면만 나오는데 그리고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고 나오는데, 오늘 요한복음에는 예외적으로 한 사람이 예수를 버리지 않고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마태복음 26장에 나와 있는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는 말도 사실이고, 오늘 이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 이 사도요한의 모습도 진실입니다. 그러면 그 사이를 매울 수 있는 유일한 추측은 모든 제자들이 도망갈 때 요한도 도망갔지만 그러나 모든 제자들 중 유일하게 사도요한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왔다고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려움 속에 견딜 수 없는 혼란을 느끼며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되도록 내버려두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도망갔습니다.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흘렀고 도망간 것은 금요일 새벽일 것입니다. 잠시 시간이 흘렀을 때 그의 가슴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하였고 자기들을 그렇게 사랑하셔서 일생을 함께 해 주신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자책감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그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였을 때 더더욱 자기가 예수를 버린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달려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요한이 골고다 언덕으로 달려올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예수 십자가에 못 박은 이후 골고다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인파를 해치며 십자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한 어린 사도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늦게나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깨달았고 그래서 예수를 버리고 예수보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해서 도망갔던 것에 깊이 회개하고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그 분이 운명하실지라도 그 분 앞에 있는 것이 자신의 마땅한 도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골고다 언덕으로 달려갔습니다. 막상 골고다 언덕으로 달려갔지만 그는 예수님께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과 함께 “우리는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주님을 위해서 죽는 데까지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하였던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심과 모든 각오는 사라지고 차갑게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그리고 자신 한 사람이 살고자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깊이 후회하게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핍박을 무릎 쓰고 자신들을 사랑하고 보호하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주신 일관된 행동과 서로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잘못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신앙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잘못을 진솔하게 뉘우치고 돌이켜 서는 것입니다. 누가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가 있겠으며 흠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이 “주께서 우리의 허물을 감찰하시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서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요한은 다른 사도와 똑같이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깊이 뉘우쳤습니다. 자기를 그렇게 사랑한 예수 그리스도, 자기들에게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착한 삶을 가르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기 위해서 모든 고난과 핍박을 당하시고 마지막에 그 이유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보면서 예수보다 자기의 목숨을 잠시 아꼈던 것을 깊이 후회하고 예수의 십자가 아래로 돌아왔습니다. 인파를 헤치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동안 그는 아마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없이 나 혼자 이런 양심의 가책을 부여안고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예수와 함께 죽을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골고다 언덕,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아래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간 상황에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던 제자 중 한 사람이 그 인파를 헤치고 죽음을 각오하고 당신의 십자가 아래에 서 있었던 것을 보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 분이 십자가를 지시매 사람을 의존하지 않으셨지만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가 당신과의 사랑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돌이켜 회개하고 당신께 와 서 있는 그 모습을 보며 예수님은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한은 예수님께 아무 말을 건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 모습은 요한이 평소에 뵈어 왔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부끄러움에 휩싸여 눈물만 흘리고 있었을 사랑하는 이 제자의 마음을 풀어 주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그는 아들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어머니, 나는 이제 이 십자가를 지고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습니다. 이제 예전처럼 목수 일을 하면서 어머니 가까이에서 어머니를 돌봐드리지 못합니다. 나대신 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그 일을 해 드릴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입니다. 그리고는 부끄러움 속에 떨며 울고 있었을 사랑하는 이 제자에게 한 말씀 건내셨습니다. “보아라, 네 어머니라.” 즉 사랑하는 나의 제자 요한아 나는 이제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인류의 구속주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이제 속죄의 제물이 된다, 나대신 네가 우리 어머니를 육신의 어머니라 생각하고 돌보아 드리거라.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요한의 마음을 풀어 주셨습니다. 마치 요한으로 하여금 요한에게 ‘너는 잠시 나를 버렸다고 자책하지 말거라. 너는 나는 버렸으나 나는 너를 버린 적이 없단다. 내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니 너는 마음에 가책을 받지 말거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 이 사람 요한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신의를 지킨 유일한 제자가 되었고 이후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어떤 일을 당하시고 마지막에 어떻게 물과 피를 쏟으시고 죽으셨는지 오직 한 사람, 요한에게서 그 증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생동안 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빚진 것을 기억하고 전승에 의하면 그 어머니를 모셨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다가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잠시 주님을 떠나고 은혜에서 미끄러지는 때가 있다고 할지라도 깊이 돌이키고 그 십자가 은혜 아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그리스도 은혜 아래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 한번 우리가 예수께 속한 자이고 우리가 주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께 돌아온 모든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배척하지 않으시고 주님이 받아주셔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십자가를 멀리 떠나 숨으셨습니까? 아니면 이제 아직까지도 멀리 도망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배신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잠시 주님을 떠났지만 그리스도 예수께로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지금 다시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까?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멀리 떠났던 사람들이 이 요한처럼 당신의 십자가 아래로 돌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증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십자가 아래서 자신의 잘못을 진솔하게 뉘우치고 용서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 망가지고 모두 끝난 것 같은 인생이 사실 우리의 끝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의 생각으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를 살리시고 다시 건지시는 우리 예수의 사랑을 힘입어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그렇게 새롭게 시작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