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죽으실 때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0-53)
녹취자: 허혜숙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두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시고 마지막 자기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며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실 그 때도 아니고 십자가에서 여섯 번째 말씀을 남기시던 때도 아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즉시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를 향하여 찢어져서 둘이 된 것입니다.
성막은 열여덟 평 크기의 직사각형 방으로 되어있고 둘레에 하얀 울타리가 쳐져있습니다. 열여덟 평 되는 방은 앞에 들어갈 때 열두 평짜리의 방과 여섯 평짜리의 방으로 나뉘는데 이 사이에는 직조물로 짜여 진 휘장이 있고 이 휘장은 양쪽에 황소를 매달아서 반대방향으로 달리게 해도 찢어지지 않은 탄탄한 휘장이었습니다. 그것은 작은 방 지성소와 큰 방 성소를 갈라놓았습니다. 당연히 성소에는 일반 백성들이 들어갈 수 없었고 제사장들이 들어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지성소 방은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없고 오직 1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만이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뵈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거기에서 죽임을 당해도 누가 들어가서 시체를 끌고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대제사장 몸 뒤에 줄을 묶어서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씩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성소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지존하신 영광을 뵈옵는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의 중앙 성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십자가에 죽으신 그 순간에 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먼저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하는 것은 이 놀라운 사건이 땅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에서 직접 행하신 사건임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둘로 나뉘어졌다는 의미는 두 방 사이를 가로지른 막이 소용이 없어졌다는 뜻이고 성소는 곧 지성소, 지성소는 곧 성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모세가 바위를 쳐서 생수가 나오게 할 때에도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예수님이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실 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든 자를 고칠 때에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일은 예수가 죽을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 이것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제 대제사장과 제사장 사이의 구분이 철폐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인 사람은 이제 그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던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철폐된 지성소에 직접 들어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양성경 베드로서에서 우리에게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러주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구원 얻는 사람이 이제는 제사장의 중보나 대제사장의 두 다리 걸치는 중보가 필요 없이 모든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왕 같은 제사장이 되고 그리고 제사장이 된 그는 대제사장의 도움이 필요 없이 직접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 그 분을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대제사장은 필요가 없으니 예수께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사 자신의 몸을 스스로 헌제자가 되어 자신의 몸을 스스로 헌물로 삼아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한 산 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자신이 아무리 죄가 많고 악한 인간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예수께서 뿌리신 그 핏 길을 걸어갑니다. 자기 의의 신발을 모두 벗어버리고 맨발로 그 핏 길을 걸어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그 길을 걷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보좌에 이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가 누구든지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뿌리신 그 핏 길을 걸어 아버지 하나님을 뵈올 믿음을 가지고 그 분께 나아가 무릎을 꿇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바 아버지라고 불려 지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 있는 자들의 죄는 용서해 주시고 곤고한 자들에게는 새로운 은혜를 주시고 갈 바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는 자들에게는 갈 길을 명백히 보여 주십니다. 갈 길은 알지만 그렇게 살아갈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살아가게 하실 힘을 주시기로 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실 때 휘장이 찢어진 사건입니다. 보십시오. 바로 이 일을 인간의 공로로 이루었습니까? 사람의 행위로 이루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못할 때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신이 구원하기로 한 모든 백성들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이제는 영원하고 단번에 드리신 재물이 되어서 스스로 당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 헌제의 제사를 올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원한 새롭고 산 길을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시로 난관도 만나고 낙심도 합니다. 두려움도 생기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맞닥뜨릴 수 있는 용기를 잃어버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보고 있는 한 이러한 염려와 근심, 그리고 기가 죽고 소심해 지는 일들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위로부터 아래로 그 휘장을 찢어 이제는 성소로 우리를 이미 불러 들이셨고 우리가 잘 살든지 못 살든지 열심히 살든지 게으르게 살든지 침체에 빠졌든지 성령 충만하든지 그런 것은 상관이 없이 우리는 이미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제사장들이 모두 충성스러웠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제사장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으니 그 제사장은 이제는 더 이상 대제사장의 도움이 필요 없이, 인간 대제사장의 도움이 필요 없이 하나님의 임재와 직접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어차피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되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을 되게 하실 때 여러분들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다다랐던 거기에 도달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처럼, 하나님같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뚝뚝 떨어지면서 우리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인생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비로소 ‘아, 내가 인간이구나.’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요즘 제가 우리 코코를 아주 예뻐했는데 이 강아지가 주객전도 의식을 자꾸 갖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먹을 것을 다섯 개쯤 손으로 먹여주고 한 개는 바닥에 던집니다.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네가 개임을 알라’ 는 것입니다. ‘네가 개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너는 개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와서 영역표시는 하는 것이었습니다. 똥을 싸고 오줌을 쌌습니다. 그래서 일체 내 방에 못 들어오게 문을 닫았습니다. ‘너는 영원히 개다. 이 사실을 명심해라. 나는 너를 개격적으로 대하는 것이지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선의로 대하는 것이지 사랑하지는 않는다.’fk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내가 너를 선의로 대하지만 언젠가 너를 잃어버리거나 네가 죽는다고 해도 내 인생이 뿌리째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종종 우리에게 먹이를 주시고 때로는 던지시지만 ‘아, 우리가 진짜 인간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인생이 곤고하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님이 주신다는 것을 믿고 죄가 있으면 그래서 곤고해 졌으면 바로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주님께 못 나아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서 이 인간은 문제를 만들지만 해결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믿었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찬송)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나가네
곤고하고 침체에 빠지고 세상 근심에 얽매였을 때 놀랍습니다. 그것은 정신을 이완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수면치료를 받으면서 의사에게 배운 좋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원래 미국 공군부대에서 생겼다고 합니다. 공군 조종사들이 전쟁 때는 엄청난 격무에 시달립니다. 그 때 오는 폭격에 대한 기억, 전투기가 피격되는 기억,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동료들이 미사일을 맞고 떨어지는 기억들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잠을 못 자면 못 잘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서 공중전에서 패배하거나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급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데이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박사들이 이것을 집요하게 연구를 했는데 그 중에서 걸출한 전설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연구했는데 수면치료를 연구해서 실험해 보니까 사방에서 폭탄이 떨어지는데도 전투기 조종사들이 10분 안에 잠을 자더랍니다. 그것은 모두 소개할 수 없으니까 한두 가지 만 소개를 하겠습니다. 눈을 감고 생각할 때 도시를 생각하지 말고 잔잔한 호수위에 자기가 카누 위에 누워있는 상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의 기운을 모두 빼고 침대 위에 자기의 몸을 싣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있는 근육의 모든 힘을 빼고 심지어는 더 연습을 해서 내장에 있는 힘까지 모두 빼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순식간에 잠 속으로 쑥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 뜻대로 안되고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tension(긴장)이 오기 때문에 우리 정신을 집중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 문제에 대해서 너무 예민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예민해지니까 우리의 마음의 용량은 정해져있는데 관심을 염려와 근심 고민 애착 집착 사랑 이런 것에 확 쏟아버리니까 하나님을 향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엄습하고 사람이 안정감이 없이 출렁출렁 거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 때 모두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목말라 하던 것 이것이 안 될 수도 있다. 생각을 더 바꿔서 안 된들 내 인생이 뿌리까지 흔들리랴 이렇게 생각하면서 집착하던 것을 내려놓고 정말 잔잔한 카누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자신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의 근육을 모두 이완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총명하게 마음의 시선을 오직 하나를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그 분을 렌즈처럼 통과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바라보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갑자기 내 중심에서 불꽃처럼 튀던 문제들이 확 흐트러지면서 마음의 평강이 밀려옵니다. 거기에서 올바른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하자, 예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오셨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결코 모른다고 하실 리가 없는 분이시다, 하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내 양심이 ‘너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지?’ 하면서 그것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런 것을 잘못 했지?’ ‘네, 그렇습니다.’ ‘네가 게을렀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살고 싶습니다. 참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보고 그 분이 쏟으신 그 피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인지 생각하면서 거기에서 새 힘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 그렇게 정신의 이완을 오늘 저녁에 가서 실천해 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여태까지 움켜쥐고 안타까워하고 애달파 하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그렇게 우리를 회복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 죽으실 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영원히 살지 않고 땅에서 죽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살아났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의 능력이 마지막 종말에 어떤 일을 가져올 것인지를 우리에게 맛보기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아니지만 무덤이 열리면서 자던 성도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활한 것입니다. 예수가 참된 인성을 가지고 부활하셨다면 사람들이 그의 능력으로 부활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교회에 나무들이 다 죽은 것 같았지만 다시 새싹이 납니다. 7층에 있는 어거스틴 파크에서도 잔디들이 누렇게 죽었었는데 다시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납니다. 이것이 뭡니까? 죽은 것이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런 놀라운 생명을 가져온 것입니다. 살아난 사람들이 살아나기만 할 뿐 아니라 많은 거룩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죽음 가운데서 살아난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문이 그 시대에 묻혀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예수의 죽음은 우리에게 생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가 죽으신 것이 나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 그 순간 하늘 생명이 그의 심령에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존재를 지탱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막다른 인생의 길에서 자살도 하고, 쾌락에 빠지기도 하고, 낙심하고 실망해서 허무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방탕하기도 하고 이런 다양한 삶의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저히 자신의 삶의 존재를 지탱할 수 없게 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은 그 분의 죽음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보혈의 능력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이처럼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두 가지를 가슴에 새기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그를 믿는 한 우리 인생에는 절망이란 없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의 뿌리신 핏 길을 걸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교제의 길을 열어주셨으니 우리는 이 세상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시간에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그 분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지탱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생명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능력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