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만나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20:11-18)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첫날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요한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에 비해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끝나는 주일 아침, 아직 새벽 미명인 때에 동산을 오르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품을 미리 정성껏 준비하였고, 이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어 거기에 향품을 넣어드리기 위해 동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이미 종교법을 어긴 죄로 처벌된 죄수이기 때문에 그의 시신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들은 그 전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안치되는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 없는 분이셨지만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아리마대 요셉이라고 하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용기를 내어 예수의 시체를 청구하였고, 그는 자신이 준비해 놓은 동굴로 된 무덤에 예수님을 안치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돌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돌문은 원형으로 된 돌문으로서 이렇게 평지로 되어 있는 굴에 시신을 모시고 그 돌문을 잠그면 누구도 한두 사람의 힘으로 그 돌문을 굴려서 열 수 없는 아주 보기 드문 훌륭한 무덤이었다고 합니다. 여인들은 이미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으신 예수의 시신에 향품을 넣어드리기 위해 올라가면서도 서로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서로 말하되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막 16:3-4)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앞서가서 예수님의 무덤에서 그 큰 돌문을 열었을까요? 아무튼 이 여자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서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II. 무덤에서 만난 예수
A. 울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예수를 만나게 되는 사건은 크게 세 단계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울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앞에서 한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본문 11절은 보도합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요 20:11)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는 누군가 먼저 와서 이미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을 것이라고 단정을 짓고 예수님이 없어진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울고 있더니”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희랍어로 ‘클라우싸(klaiousa)’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것은 흐느끼거나 울먹이는 동작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서 엉엉 울고 있는 동작을 뜻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예수님의 시신을 잃어버리고 빈 무덤 앞에 서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슬픔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오늘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등장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갈릴리 근처에서 살던 여인이었고 예수를 만난 후 죄의 용서를 받고 예수와 이웃을 전심으로 섬겼던 사람이라고 누가복음 8장 3절에 나옵니다. 더욱이 이 사람은 귀신을 흉악하게 들려 인간 구실을 하며 살 수 없는 폐인이었는데 예수를 만나고 고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 2절에서 3절은 보도하기를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라고 나옵니다. 이 사람은 한 귀신이 아니라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여자였습니다. 한 귀신이 들어가도 인간 구실을 할 수가 없는데 일곱 귀신이 들어가 이 여자의 정신과 마음의 상태를 찢어놓았으니 그 비참한 삶의 상황을 무엇으로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일곱 귀신을 내어 쫓아주시고 이 여자에게 온전한 영혼과 정신으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사모하여 그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였고 그 말씀을 들은 후에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분만을 따르기로 결심한 훌륭한 여제자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 여자는 마태복음 28장 1절에 보면 부활 후 첫 번째로 예수의 무덤을 찾은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울음소리는 사랑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통곡 소리는 마리아의 마음속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의 깊이는 사랑할 대상을 상실할 때 슬픔의 크기로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녀의 망가진 인생을 고쳐주시고 온전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자를 특별히 사랑하여 즐겨 하나님의 진리를 들려 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과의 교제를 생명처럼 기뻐하였고, 그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산 훌륭한 제자였습니다. 죽으신 예수를 처음 찾은 것은 하나님이 능력과 권세를 주셨던 열두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처음 찾은 사람은 예수를 가장 많이 사랑하던 이름 없는 여인, 일곱 귀신이 들려 삶의 소망이 없던 이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러 갔으나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알고 주님을 찾으며 통곡하며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눈물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한 갈망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그 분을 뵈옵기를 원하는 진실한 열망이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지만 눈물이 있는 예배, 눈물이 있는 기도, 눈물이 있는 찬양, 눈물이 있는 묵상을 우리 주님께 드리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눈물이 있는 전도, 눈물이 있는 섬김으로 우리 자신을 바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눈물이 있는 신앙생활을 합시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 속에서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만남
두 번째는 만남입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믿었고 그래서 한없이 소리 내어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흘렀습니다. 울음이 그친 후 그는 머리를 구부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그 이전에 이미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요한과 베드로가 달려왔고, 제자들은 단 걸음에 무덤 속으로 들어가 현장을 살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잘 개켜진 옷과 수건만 있었고 예수님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다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예전에는 없던 두 명의 천사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 머리맡에, 한 사람은 예수의 발치쯤 되는 곳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천사들이 질문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우느냐?” 예수님이 자기 뒤에 나타나셨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희랍어 성경에는 ‘여자여’하는 이 호격이 단수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대화가 예수님과 마리아의 단독적인 대화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순간적으로 이 예수님이 동산지기인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예수님이 “마리아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친근히 불러주셨습니다. 그때 이 여자의 마음의 비늘이 떨어지며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랍오니여”하고 예수님을 불렀으니 이는 평소에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그 친근한 습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실 때 그때 비로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신앙은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것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우리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공동체는 처음부터 성립하지를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신앙을 경험함으로써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은 이름으로도 아는 것이고, 이것은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친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 중 자기의 친구와 같은 사람이라고 불러 주셨던 구약의 탁월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커다란 진노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 한 사람이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 백성을 다시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백성의 죄를 사해주시도록 빌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가 말하는 그 모든 것도 하나님이 행해주시고 은총의 표징도 보여주실 거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으로도 모세를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피붙이처럼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하나님 앞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사랑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과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 지내러 갔던 막달라 마리아는 살아계신 주님을 선물로 만났습니다. 이름으로도 그녀를 알아주신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모든 권능과 능력을 한 몸에 받은 열두 제자도 못 만난 첫 부활의 예수님의 모습을 이 미천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름만으로도 그녀를 알아주신 주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느껴지게 만들어 주십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알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막달라 마리아와 그 일행은 두려움과 슬픔의 새벽길에 올랐지만 환희와 기쁨 속에서 그 동산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실망과 슬픔 가운데 삶의 소망을 잃어버린 자들은 예수를 새롭게 만나는 것 이외에 더 좋은 일이 없습니다. 오늘 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와 이 여인들은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단지 시신을 만나서 향품을 부어주기나 바라는 소박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절망이 바뀌어 소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코코를 기릅니다. 아주 예쁩니다. 너무 사랑을 많이 해줬더니 이 녀석이 이제는 자기가 내 위에 있는 줄 압니다. 그리고는 내 방에 들어가서 똥오줌을 싸면서 영역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안고만 가면 내 침대에 올라오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아, 이건 사랑의 도리를 지났구나.’ 그리고 먹이를 줄 때 네 개쯤은 입에다 넣어주지만 한 개쯤은 땅에다 던져줍니다. 왜냐하면 ‘네가 핥아먹으며 개인 줄 파악하라. 이것이 너의 주제인 줄을 알아라.’ 주님은 좋은 일 속에서 우리를 만나주시지만 때로는 슬픔과 좌절 속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평탄하고 좋을 때에는 하나님을 향해 기울어지지 않던 마음들도 시련과 고난 속에서는 종종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기울어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기울어지게 만듭니다.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하시려고 주님은 종종 우리에게 시련도 주십니다. 두려움과 슬픔이 없었더라면 이 여인들이 이렇게 간절히 예수님을 찾았겠습니까?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이와 벗하는 사랑이 함께 역사하였기 때문에 이 새벽 미명 위험한 언덕을 오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렀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실망과 슬픔 가운데 있지 말고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예수를 새롭게 만나고 소망을 갖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C. 증언
마지막 세 번째는 증언입니다. 이제 이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로 곧바로 달려가서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18절은 보도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거기에 있는 유명한 사도들은 얼마나 썰렁했을까요?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고 예수님을 섬겼고, 예수님이 모든 귀신을 내어 쫓고 질병들을 고치고 약한 자를 고치는 권능을 한 몸에 주셨는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 주시지 아니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먼저 만나주셔서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알게 하셨습니다. 마치 무덤 속에 계시다가 제자들이 오니까 예수님이 살짝 숨으시고 제자들이 가버리고 나니까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보여주시기 위해서 다시 오신 것처럼 그런 형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의 목격담을 들으면서 제자들은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권능이나 권세보다 더 놀라운 진리를 보여줍니다. 능력 있는 사람, 권세 받은 사람에게 예수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예수를 그리워하고 예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주시는 예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는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첫 번째 증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그 지식의 수준으로 볼 때에 예수 부활의 사실은 알았지만 그 구속의 비밀에 대해서 모두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생사를 초월해서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예수가 삶 너머 죽음 속으로 들어갔어도 그 사랑은 죽지 아니하였으니 이런 사랑의 그리움이 이른 새벽에 동산 언덕을 향해 오르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삶과 죽음을 넘어선 신앙의 진실하고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예수를 잃어버린 절망 중에도 예수를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쁨을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곱 귀신이나 들려 사람 구실도 못하던 이 여자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위대한 소식을 전하는 첫 번째 목격자가 된 것을 기억하십시오. 자신만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를 통해 이 소식을 듣는 모든 부활의 목격자들이 되게 하셨고, 그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 기쁨을 누리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증인이 증언을 합니다. 증인은 바로 그 사건의 현장에서 목격을 한 사람입니다. 그 목격이, 그 증언이 이 여자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수많은 슬픔에 빠져있는 제자들의 마음에 기쁨과 소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눈을 들어 우리 자신의 삶을 보십시오. 주님이 살려내셨으나 지금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쁨과 소망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부활의 기쁜 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망을 친구로 삼아 사는 어둠속을 걷는 빛의 자녀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사신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이 필요합니다. 증인이 증언을 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의 차례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죽음을 이기고 살아계신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 안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살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적용과 결론
하나님은 우리를 외모로 취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주십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든지 이미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여러분들을 구속하셨기 때문에 이름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주님께 아신바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아실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을 언제나 사랑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그 부활의 구속의 비밀을 몰랐으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몰랐던 여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갔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간절히 찾아야 할 사람들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만나기를 갈망하기를 바랍니다. 눈물이 있는 신앙으로 예수를 찾으십시오.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부활의 위대한 증인들이 되어 자기가 살 뿐 아니라 이웃도 살려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