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해 오심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0-11)
녹취자 : 조복령
I. 본문해설
성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요한1서를 기록한 저작 목적이 그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죄에 대한 회개 그리고 복음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런데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영혼 안에 있는 신비적인 빛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편지는 요한이 그리스도 교회의 지체들이 이러한 이단의 영향을 받고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한 신자들에게 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과 오직 인류가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II. 사랑을 위해 오심
그래서 오늘 성경은 사랑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대신 아들을 형벌 받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A. 아들을 보내심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말 구유에 오신 예수는 그리스도이셨으며 하나님의 본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빌립보서 2장 6절과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참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하나님을 보여 주고자 함이었고 ,또 참 하나님으로 오셔서 참 인간이 누구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인간에게 무한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유한하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여러가지로 보여주셨습니다. 기적과 능력을 베푸심으로써 이스라엘을 고난 가운데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셨고,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인류의 모든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죄 가운데서 영원히 구원해 주시지 않는 한 어떠한 구원도, 어떠한 기적도, 궁극적으로 그들을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고통의 근원적인 문제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속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자마자 하나님과의 언약을 따라 영혼의 죽음이 즉시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은 유보되었습니다. 결국은 죽지만, 죽을 때까지 죽음이 유보되어 그때에 자손들을 퍼뜨리며 인류는 번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죽은 영혼으로는 하나님을 향해 살 수 없기에 일시적으로라도 은혜를 주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 나오는 제사 제도의 계시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계시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제사 제도는 짐승을 죽여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받침으로 잠시 자신의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교제를 잠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는 막히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을 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의 제사 제도를 주시면서, 동시에 인류를 죄에서 영원히 구원해 주실 메시아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 죄의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고 참 생명이신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충만히 받아 살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지만 자신의 죄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대신 속죄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아들을 화목 제물로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로 오신 그분을 평화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되고, 하나님과 원수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며 살 수밖에 없고,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학대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을 자신의 죽음으로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회복하여 그 충만한 생명과 은혜를 누리게 하셨고, 동시에 그 사랑 때문에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며 서로 하나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받은 모든 인간들이 자연의 모든 만물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과 질병, 무지와 인간관계의 파괴 등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허무한 삶에 굴복하는데, 이 모든 비참의 궁극적인 원인은 죄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받을 때 천상의 자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세상의 자원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경감시키고자 끊임없는 경쟁과 끊임없는 탐욕 속에서 세상의 자원을 끌어모으고, 그것으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것이 어느 정도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놓은 한 번의 몰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해결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 때문에 깨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화목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과 사랑을 충만이 부어 주어 우리로 하여금 다시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회개하고 믿게 하심으로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연 만물을 선의로 대하며,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살게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성탄 축하는 구원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비로소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를 알고, 또 나처럼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귀한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선의로 대하고, 그들도 고통받지 않도록 대해 줌으로써 화목을 이루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입니다. 그런 세상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너무나 원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희생을 통해서라도 그 뜻을 이루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성탄 축하는 구원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온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고,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고통을 헤아리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제물이 되신 것처럼, 우리 자신 또한 하나님과 그들을 화목하게 하는 도구로서 살아가는 것이 성탄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에 우리를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기억하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의미를 새기며 사는 기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서로 사랑하라
마지막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한 지체로서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화목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자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천상의 자원들이 주어지게 되었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되자 행복이 넘치게 되었고, 자연을 약탈하고 파괴할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주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간곡하게 명령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고도, 사랑한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한 것이 아니오 나에게 사랑의 감화를 주셨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한 때에는 나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 때문에 사랑한 것이고, 미워한 때에는 하나님 때문에 미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없는 나 때문에 미워하게 된 것이, 내가 원망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의 감화, 곧 은혜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화목 제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은 신자의 삶은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진실성은 보이는 사람을 향한 사랑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며, 모든 영성의 최고의 열매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 같이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삼위일체 제8권 8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만약 한 사람이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한 사람 안에 있는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반드시 그 사랑은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 것이니,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신자가 그 사랑으로 행복한 삶의 모본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면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 아니고 우리의 이기심으로부터 온 사랑리고,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런 사랑을 깨뜨리기 위해서입니다. 탐욕과 미움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진리를 사랑함으로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께 간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런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씀으로 성령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며 살 수 있게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만을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니니,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자신도 행복하게 할 수 없고 이웃도 행복하게 할 수 없으니, 행복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되는데 그 사랑이 하나님 안에 있지 않기에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사람들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큰 감화를 받을 것이니, 이런 삶을 통해 그 자신도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고,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입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마땅하도다'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신자로 살아가야 할 의무를 말해 줍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이것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동기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기쁨이 자신의 행복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랑으로 사랑한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행한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행한 사람은 그것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은 자신의 선행을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사랑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친히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런 사랑이 있고, 저기에 저런 사랑이 있나니 너희에게 감동이 되지않느냐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에게 있으니 곧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감각을 가진 모든 인간이 볼 수 있는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바 되었으니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사랑의 시작이었고, 구원의 사건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기 예수 오신 성탄절에 당신을 떠나 고통과 불행의 길을 걷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사건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허락하시는 사건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이 성탄절에 축원합니다.
III. 적용과 결론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성탄절은 결코 우리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명절이 아닙니다. 가난과 고통, 무지와 죄악, 편견과 오해 속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 멀리 떠나 소외된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복음은 이 일을 위해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합니다. 아기 예수 오신 소식이 땅끝까지 전파 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핵심은 화목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아기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에 감격하며, 그 사랑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고, 자연의 모든 만물을 선의로 대하며 화목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 오신 기쁜 성탄절에 복음의 소식이 여러분의 이웃에게 널리 널리 전파 되도록 여러분 자신이 먼저 예수 탄생에 감격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