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11 영적쇄신집회
십자가를 따르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눅23:27)
녹취자: 이경순
우리의 신앙생활의 과거를 돌아보면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가장 마음이 아팠던 때가 사실은 가장 행복 한 때였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던 때에는 항상 이 쓸데없는 인간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 때문에 마음 아파하던 성도의 착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찰스 하든 스펄전 목사님은 자기의 글속에서 말하기를 마른눈을 가진 성도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십자가를 통해서 알고 그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는 눈물이 성도의 눈에서 흐를 때 마음에서는 이 세상 정욕과 더러운 죄들이 씻기며 정신은 순결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광경을 그리고 있는 23장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이 십자가는 원래 종교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을 형벌하여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을 죽이는 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 앞부분에 보면 예수님이 사형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리기 까지 재판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더라고 이 재판은 엉터리였습니다. 재판은 원래 죄 있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판결을 하는 것이 재판인데 예수님은 처음부터 죄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하신일이라고는 병든 자를 고치고 그리고 굶주린 자를 먹이시고 곤고하고 마음이 상한 자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쳐주신 것 이외에 잘못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죄를 저질렀다고 서로 증거하는 사람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증거도 서로 어울리지 않아서 재판장에서 증언으로 채택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형벌을 받으시기 까지 재판을 받으신 이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재판장도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하였는데 양심에 거슬려 예수를 죄 있다고 판결한 것에서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이유는 당시 빌라도의 뜰을 에워싼 유대인들의 시위 때문이었습니다. 언덕을 뒤 덮을 정도의 수많은 유대인 들이 빌라도의 뜰 앞동산에 모여 있었다고 역사적인 자료들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때는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 수많은 백성들이 거기에 모였고 만약에 자신들의 원대로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지 않으면 폭동을 일으킬 기세였습니다. 빌라도는 자기가 관할하고 있는 영토 안에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남으로 입게 될 정치적인 치명타를 두려워했고 그래서 자신의 확신에도 예수는 죄 없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재판이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유대인의 명절에는 한사람씩 죄인을 살려주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그렇게 해서라도 예수를 살려주고 싶었지만 유대인들은 죄 없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 섬기신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고 실제로 민란을 일으켜 살인까지 자행했던 흉악범인 바라바는 놓아주도록 재판을 하였다는 점에서 이 재판은 잘못된 재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묵묵히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의 평소가르침은 불의에 항거하고 악에 굴복하지 말라는 정의로운 가르침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그 정의를 사랑으로 사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임무라는 사실을 복음서를 통해서 여러 차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불법하기 짝이 없는 거짓된 재판의 결과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평소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행동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이것에 대한 질문이 이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불법한 방법으로 당신에게 부여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보기에는 불법한 사람들이 악을 행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불의한 재판이었지만 예수님은 이 불의한 재판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놀라운 구원 계획의 지혜를 이루시는 분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마귀는 유대인들을 충동하여 예수를 죽여 버리면 자기왕국에 도전하는 예수의 도전이 끝날 것 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단의 왕국을 허무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지혜를 알고 계셨기에 그 지혜를 따르는 방법으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사람들에 의해 애매히 죽으시는 것 같았으나 당신은 아버지께서 이 모든 구원받을 인류들이 지은 죄를 당신 자신에게 짊어지게 하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실 것이라는 비밀을 예수 홀로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악한 자들의 재판에 굴복하듯이 조용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시 두 가지 규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기 전 모질게 채찍에 맞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자기가 매달릴 나무 십자가를 형장까지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말씀 속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규례에 따라 사형언도를 받으신 후에는 라이도니아라는 왕궁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거기에서 모두 벗겨지신 후에 모진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시대의 채찍을 연구한 어느 고고학자에 의하면 당시에 이런 죄수들을 다루던 채찍은 오늘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말채찍 같은 것이 아니고 아홉 가닥으로 매달린 채찍이었다고 합니다. 가닥 끝에는 각각 금속이나 뼈를 깎아서 매단 뾰족한 고리들이 달려 있었고 이것으로 죄수의 몸을 내려칠 때마다 살점을 물고 떨어지는 무서운 채찍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죄수들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채찍을 맞으면서 절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은 예수님께서도 이런 채찍에 맞으셨을 것입니다. 온 몸이 채찍에 맞아 피로 물들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고 간악한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에 그 긴 가시로 이루어진 가시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눌러 씌웠습니다. 가시가 두피를 뚫고 온 얼굴에 피를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채찍질이 끝난 후 예수님의 몸에 붉은 보자기를 둘러주었고 예수님 손에 큰 갈대를 쥐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왕관을 쓰고 홍포를 입은 임금처럼 예수님을 희극배우처럼 묘사해서 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는 조용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욕설과 침 뱉음과 돌로 침을 당하면서 채찍에 맞으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이 가야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당시 이 십자가는 120킬로그램 내지 150키로 그람쯤 되는 매우 무거운 나무십자가 이었습니다. 이 십자가를 예수께서 스스로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오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십자가 형벌은 대게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당시에는 크게 세 종류의 십자가가 있었는데 하나는 엑스자형 십자가이고 안드레의 십자가라고도 불립니다. 또 하나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두 개의 막대로 이루어진 윗부분이 튀어나온 십자가이고 또 하나의 십자가는 타우형 십자가라고 해서 윗부분이 없고 영어의 대문자 티처럼 만들어져있는 십자가 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런 십자가를 지시고 올라가신 후에 제일먼저 세로막대는 땅에 이미 심겨지고 매달릴 죄수들을 가로막대에 눕혀놓고 못 박는데 이때에 사용되는 못은 기차선로에 박는 것과 거의 똑같은 못이었습니다. 맨 처음 엔 손바닥 가운데 박았지만 시체의 무게가 내리 흐르면서 손바닥이 자꾸 찢어져 시신이 떨어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후에 사람들은 죄수의 손목에 못을 박아 뼈 사이를 꿰뚫어 나무에 고정시켜 어떤 경우에도 죄수가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박힌 가로 막대를 도르래를 이용하여 높이 끌어올리고 세로막대에 끼우고 머리위에 그 사람의 명패를 붙이고 그리고 두 다리에 동일하게 십자가의 큰 대못을 박으므로 상체를 함께 하체까지 고정시키는 것으로서 십자가형벌은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형벌의 가장 끔직한 고통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최고의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온몸의 피가 흐를 때 그 피가 흐르는 이유는 손목을 꿰뚫고 들어간 그 대못이 동맥을 끊고 그리고 뼈를 깨뜨리며 나무에 깊게 박힙니다. 울컥울컥 솟아나오는 심장의 박동과 함께 그 혈관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피가 흐를 때 의학적으로 인간에게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는 무서운 두통과 엄청난 갈증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예수그리스도는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형벌을 보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인파가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당시가 유대인의 최고의 명절인 유월절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 사형은 엄청난 뉴스 거리였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바다 위를 걷던 그 풍랑을 잠잠해 하던 놀라운 능력의 예수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구원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광경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기적을 행하던 예수그리스도는 지금은 한 마리의 힘없는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에 가련히 못 박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오늘 성경은 아주 명백하게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첫 번째 부류에 사람들인 백성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성경 34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 하시니라 저희가 그 의 옷을 제비 뽑을 새” 백성들은 서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요?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47절을 보시겠습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무엇 하러 모인 무리들이 있었죠? 그러니까 이 백성들은 무엇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골고다 언덕을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이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예수님을 따라 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무엇을 구경한다는 뜻입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 사람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조차 오는 이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뱃세다 광야에서 베풀어 주셨던 기적의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팔복 산에서 고요히 울려 퍼지던 그 은혜로운 산상수훈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따라오던 이 사람들 중에는 어쩌면 예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병을 고쳐주신 신유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기적을 보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신앙의 체험을 가진 것이 예수 믿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진수는 바로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무한하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을 알리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하나님을 알자가 없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예수를 만났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기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십자가 아래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떨어지는 그 십자가 아래서 자기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누구도 구원받은 신자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이 있는지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교회 나올 수 있고 교회에서 훈련 받을 수 있고 그리고 교회가 시키는 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그 영혼이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인 바 된 사람입니다. 부인할 수 없도록 예수께서 살아계셔서 자기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셔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자기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찬양)
마지막 피한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지금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그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온 얼굴을 피로 적시며 모진 채찍에 맞은 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쓰러질 듯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죄 없으신 그분이 왜 이 십자가를 지고 부끄러운 죽음의 형벌을 감당하셔야 했습니까? 그분이 도대체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잘못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한 몸에 받으실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오신 후에 33년 동안 종처럼 이 세상을 지내셨습니다. 공생에 들어오신 이후로 예수님은 오직 이 세상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각처를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고통 받는 자 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으며 병든 자를 위한 의사가 되어 주셨습니다. 눈 어두워 진리를 보지 못하는 자의 눈을 뜨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상하게 가르쳐 형제와 같이 그리고 가족과 같이 돌보아 주셨습니다. 일평생 그렇게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남을 위하여 온전히 사신 후에 이제 마지막 남은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찢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이 자기들을 위한 죽음인데 어떻게 그 예수의 죽음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관심사가 자신의 행복일 뿐 그리스도의 고난에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 사도바울이 말한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는 그 사랑스러운 고백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심에 사로잡힌 성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아직도 우리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승복하지 않은 채 완고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백성들이 구경하며 예수의 십자가를 따를 때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갈릴리 같이 먼 곳으로부터 오기도 한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무리들의 여인들 이었습니다.이 사람들은 백성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성경에 묘사된바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광경을 보기 전 온몸이 채찍에 맞아 피로 물들고 가시관을 쓴 채 끌려 나오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비참한 모습 그 어깨위에 짊어진 무거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그 십자가 고난이 구경거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우는 그 울음 속에서 가슴에 느껴지는 통증을 덜기 위하여 자기도 모르게 원통한 마음으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히랍어 성경은 이 부분을 ‘에콜루세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향하여 울 때에 흐느낀 것이 아니라 통곡하여 소리 내어 울었던 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피에 물든 몸으로 나타났을 때에 그들은 통곡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 쓴 가운데 그리스도는 쓰러질듯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며 언덕길을 오르고 계셨습니다. 여자들은 슬피 울며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뒤를 눈물을 흘리며 따랐습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간악한 로마의 병정들이 그것을 허락했을 리가 없습니다. 여인들이 이렇게 흐느낌으로 시작된 이 울음소리는 골고다 언덕을 가까이 올수록 피어린 통곡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백성들은 구경하며 따라갈 수 있는 이 십자가를 이 여인들은 통곡하지 않고 따라갈 수 없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구경하는 백성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이 이 여인들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통곡하지 않고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따라갈 수 없었으니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끔찍하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 후에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부활로 갚아주실 것 이라는 것 아직 몰랐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당신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난을 받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들은 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일중에는 나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 좋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당신들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대신 우리가 이 십자가를 질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이 십자가를 지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주님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외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찬양)
머리에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은 누구의 죄 값인가
어린양 보혈에 피 어이해 흘렸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은 누구의 죄악인가
여러분에게는 모두 첫사랑의 때가 있을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을 방황하면서 살다가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이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처음사랑이었을 때 그때 여러분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21살 때에 복음을 듣고 회심 했습니다.예전에는 허무한 것을 쫒아서 살고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던 방황하던 젊은이였습니다. 문학과 사상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들이 내 입에 넣어준 것은 거친 모래뿐이었습니다. 예수를 만났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천 년 전에 죽으신 그것이 4대성인중 한사람 모범적인 희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을 때 저의 마음을 쥐어뜯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제 것 나는 잘못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천 년 전에 그렇게 비참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온몸이 찢기시고 죽은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이 이천 년 후에 살고 있는 나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첫사랑일의 특징은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사무치는 때입니다. 이 벌레 같은 인간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랑 내가 매달려야할 바로 그 십자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일생동안 모질게 그분을 대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온몸이 찢어지고 그 십자가의 형벌로 산산이 조각나야할 나의 그 형벌을 대신해서 그분이 당하셨던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에 우리는 그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 쓸모없는 죄인을 위해서 죄 없으신 그분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멸시의 십자가를 지고 이 벌레 같은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내가 산 것은 나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자기의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뜨겁게 눈물을 흘리며
(찬양)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눈물을 흘렸고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계명이 조금도 무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힘을 다 드려 물질을 바쳐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희생은 우리에게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샘물과 같았고 우리가 올리는 찬송은 우리의 한숨소리를 노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고난도 이기고 슬픔도 이기며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먹을 만하고 입을만하고 근심걱정 없게 되자 우리는 마음이 부패해져서 하나님의 처음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십자가 사랑에 뜨겁게 눈물 흘리는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이제는 변했습니다.
(찬양)
그러나 죄악이 나를 삼키고 내 영혼 갈 길을 잃었네
다른 모든 인생사의 고달픔 말고 이 벌레 같은 인간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희생이 너무 감사해서 나를 위해 대신 아버지께 형벌을 받고 살 찢고 피 흘려 죽으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펑펑 울어 본 적이 언제입니까? 가정 예배를 드리며 엄마도 아빠도 아들도 딸도 우리가정을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그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해준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의 찬송을 부른 게 언제입니까?
1904년도에서 5년도 사이에 인도 카아시라고 하는 지방에서 커다란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존스턴이라고 하는 미국선교사가 그 부흥의 현장을 방문을 방문했었습니다. 어른들은 어디 갔는지 다 없어지고 그리고 아이들이 구석구석에 모여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존스턴 선교사는 아이들에게 찾아갔습니다. 일곱 여덟 살 먹은 아이들과 심지어는 여섯 살 된 아이들 이렇게 초등학교정도 되 보이는 아이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너희들 왜 이렇게 우니? 엄마아빠는 어디 가셨니?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엄마아빠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교회당에 갔어요. 그런데 너희들은 왜 우니? 돌봐주는 어른들이 없어서 울고 있는 거니? 아니에요. 아저씨 우리는 오늘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 있는 중이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셔서 십자가위에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버려 피 흘려 죽어주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조금밖에 사랑하지 않아요. 그것을 생각하니까 우리 모두 마음이 아파서 울고 있는 거예요. 도대체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 십자가라는 것이 있습니까? 핍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겁니까? 내가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예수님이 그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과감하게 포기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너무너무 하기 싫은데 예수님이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피 흘리기까지 순종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던 예수그리스도는 여인들이 통곡하며 울었지만 결국은 골고다 언덕에 끌려가셔서 나무에 높이 매달리사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모두 쏟아 우리를 위해 흘려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던 골고다 언덕에는 이름 모를 집들이 들어섰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쓰러진 여섯 개의 장소마다 예수님이 쓰러진 곳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미천한 우리를 섬기던 고단한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당신의 옥체를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깨뜨려 주시고 당신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지금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망치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찬양)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십자가도 치워지고 통곡하던 여인들도 집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을 구경하던 그 쓸모없는 구경꾼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교회 안에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골고다 언덕도 있고 십자가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경하며 따라가고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때문에 눈물로 따라갑니다. 여러분은 주님보시기에 구경하는 교인들입니까? 슬피 우는 교인들입니까? 생명이 있는 날 동안 여러분이 죄인이었던 사실 그리고 지금도 다만 예수의 피로 용서받은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께 충성하며 이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증거 하는 증인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