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도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녹취자 : 김세나
I. 본문의 배경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매달리신 채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은 여섯 번째로 남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시간으로 아홉시부터 세시까지 여섯 시간을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고, 이 여섯 번째 말씀이 정확하게 어느 시각에 쯤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루어 추측하건데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십자가에 매달아 놓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렇게 다섯 번째 말씀을 하시고 마지막에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라는 여섯 번째의 기도까지 합해진다면 이 예수님의 기도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남기신 기도였을 것이라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하늘은 어두워 캄캄하게 되었고, 해도 그 빛을 잃은 시각에 예수님께서는 절규하듯이 이 말씀을 토해 놓으시고 그리고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라는 기도와 함께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II. 십자가와 구원역사
십자가와 구원의 역사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원의 역사는 이 십자가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역사입니다. 구약의 역사는 이 십자가를 보고 달려온 역사이고, 신약의 역사는 이 십자가에서 달려 나간 역사입니다. 구약은 우리의 죄를 위에 이 세상에 오실 첫 번째 강림의 주를 기다렸고, 신약의 역사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신 그리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영광으로 다시 오실 두 번째 재림을 기다리는 역사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연약을 깨뜨리고 죄를 짓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두 가지를 하나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인간에게는 즉각적인 죽음과 파멸밖에는 당할 것이 없었지만, 주님께서는 이 비참한 인간들에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메시야를 약속하신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제사의 제도를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은 아담이 죄를 범하자마자 즉각 주어졌고, 이 온 땅을 저주하시고 벰도 저주하시고 인간도 형벌 아래 떨어졌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비참한 죄 가운데 언젠가는 인류를 구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맨 처음 아담과 하와를 비롯해서 셋과 경건한 후손들에게 불타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때마다 하나님의 그 약속을 암시하는 이름을 가지고 그 아이의 성명을 지었습니다. 가인이나 노아나, 모세나 모든 이름들이 바로 이러한 메시야를 암시하는 이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얼마나 언약 백성들 가운데 열렬하게 사모하였던 약속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은 제사를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메시야를 약속하셨지만 약속하셨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제사제도를 주셔서 메시야의 약속을 바라보며 짐승들이 자신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고 한시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셔서 그들에게도 영원의 은총을 입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갈 수 있게끔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전체가 구원의 메시야를 기다리는 하나의 예표적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결국 세례를 받을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바위를 깨뜨려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우리가 영생을 얻을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역사가 달려왔고,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약속의 시련으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생애 중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기도를 혹은 이러한 선언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베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천 명이 먹고 남았을 때에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을 일으켜 수많은 병자들이 낫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를 때에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나아가실 때 수많은 백성들이 따라 온 성이 소란하게 되어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시셈을 살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꼭 한 번, 당신의 생애 마지막 당신이 십자가에서 모든 기운이 진하여 운명하시는 그 때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이루신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만약에 그것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하시던 병든 자를 고치고 천국 복음을 전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무지한 자들에게 일깨우시던 일이었다고 한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고 승천하실 때에 우리에게 당신이 하셨던 일을 다시 부탁하셔서 우리로 당신이 남기신 일을 뒤 잇게 하셨습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 다 이루셨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말씀을 전하고 병든 차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무지한 자를 일깨우시는 그 사역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역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을 사도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회에게 계승하게 하셨고 지금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로 만나는 사람들, 그래서 구원의 감격과 은혜를 누리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그렇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 살고 행하도록 그러한 마음을 갖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셨길래 십자가에서 그것도 마지막에 숨을 거두시는 그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우리를 위한 구속을 다 이루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III. 구속을 다 이루심
원래 이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속박을 받고 포로된 상태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그를 건져내는 것을 가리켜서 구속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어떠한 비참한 상태에서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을 구속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속이 자신이 지불한 대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이 지불한 대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또한 대속이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구속을 다 이루셨다고 하는 것인데 도대체 무슨 구속을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는 율법으로부터의 구속이고, 둘째는 죄로부터의 구속입니다.
A. 율법으로부터의 구속
율법으로부터 구속하셨습니다. 율법으로부터 구속하셨다는 것은 우리 모두 죄를 짓자 그 율법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리고 율법에 매여 지배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은 우리의 의무를 구성했고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할 때에는 율법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던 것입니다. 이 모든 비참한 상태로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고자 하셨는데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율법의 모든 요구를 우리 대신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율법으로부터의 구속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1. 율법의 저주로부터
제일 먼저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속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지키며 살아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고, 그 명령을 어긴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율법을 이미 범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기록에 남긴 율법이었지만, 이 기록에 남긴 율법이 있기 전부터 율법은 이미 존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이미 그렇게 있는 율법을 어김으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정죄를 받아 저주에 떨어지게 되었고, 이 아담은 개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이 언약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대표로서 이 언약의 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가 이 아담과 함께 범죄한 자로서 율법의 저주아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매우 부당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하나님께서 만약에 이 아담이 범죄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많은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복과 영생을 얻었을 터이고 우리도 그 영생과 복락에 참여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우리가 그와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 앞에 이 율법의 정죄에 떨어지게 된 것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로부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일을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은 죄를 지을 능력은 있지만 자신의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그 분 위에 짊어지게 하시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아 율법을 범한 자들 위에 쏟아지는 그 모든 분노를 감당하시고 가장 비참한 죽음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 이르는 형벌은 예수가 아니라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셨기 때문에 예수를 죽이시고서라도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우리가 받을 이 저주를 그리스도 예수께 옮겨 흠없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정죄를 받아 죽임을 당하였으니 구약에 나오는 그 제단 앞에 죽어간 수많은 어린양의 죽음, 바로 예수의 죽음을 바라보며 달려온 예표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자기대신 저주를 받은 사실을 믿는 사람, 자신이 바로 예수를 십자가에서 그렇게 피 흘려 죽게한 장본인 죄수였다는 사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2. 의식의 의무로부터
또한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의식의 의무로부터의 구속이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수많은 교리들, 특별히 제사를 지낼 때 제사와 관련하여 지켜야 했던 그 수많은 의식의 의무들은 거기에 심오한 뜻이 있었다기 보다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순종의 여부를 보게 하시기 위함이고, 결국 누구도 그 모든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사 우리로 하여금 우리 바깥에서 오는 구원이 아니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그 무엇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의식을 주셨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더 이상 우리가 이러한 의식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없도록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3. 구원의 행위로부터
뿐만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다 행함으로써 행위로 하나님께 만족을 드려 구원을 얻어 보려고 노력하였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아담과 하와, 죄 짓기 전의 상태에서 아담과 하와 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지킴으로 행위로 구원을 얻으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율법을 지키며 살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의 힘으로서는 이 모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심이고,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이것이 하나님이 원래 원하시는 뜻인데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없었구나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으면서 끊임없이 그 율법을 지키며 살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의지하는 속에서 살게 하시기 위하여 이 율법을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수단으로서 이 행위를 가지고 율법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인간의 오해로부터 구속하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에 특별히 율법 아래 있어서 율법에 의하여 정죄를 당하고 이 율법을 지키려고 몸부림쳐도 구원의 상태로 도달할 수 없는 이 비참한 인간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분이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의 옥체를 하나님을 위하여 깨뜨리심으로 우리를 그 율법 아래의 저주와 정죄로부터 온전히 구속하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예수님은 다 이루셨고,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모든 사람들이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꿈 같은 일을 다 이루셨다고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자신의 죄 때문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구원의 은총을 베풀기로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 많은 율법의 행위도, 그 복잡한 의식의 의무도 없이 누구든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든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그 십자가 앞에서 깨닫고 회개하고 십자가를 통해 내미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게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모든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고, 바로 이 하나를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33년 동안 어린 양으로 종같은 인생을 사셨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B. 죄로부터의 구속
또 하나 구속을 이루셨다는 것은 죄로부터의 구속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1. 죄인의 신분으로부터
예전에 인간은 신분상 죄인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노예의 표를 받은 사람과 같아서 어디에가도 그 죄인이라고 하는 신분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왕후장상의 씨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이루는 사람의 존재와 비천하게 빌어먹는 거지의 존재는 비교될 수 없는 격차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 도장 찍힌 죄인의 신분에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세상의 자원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계층을 나누고 계급을 만들어 서로 지배하고 지배받는 삶을 살고 또 각각 다른 영광을 가지고 서로 자랑하고 혹은 수치스럽게 여겼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 한결같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에 미끄러진 인간들이었고 하나님의 크신 진노의 형벌 아래 있었던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운명적일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죄의 대가는 예수님이 다 지불하시고 우리에게는 은총의 혜택만을 남기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바로 이 일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죄인의 상태로부터
뿐만 아니라 죄인의 상태로부터도 구속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만 사랑하며 모든 죄와 비참으로부터 벗어나 한분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죄의 사슬에 매여 있을 수 있고 태어나기를 이런저런 약점을 가지고 태어나 하나님 앞에 잘 넘어지고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때 단지 우리의 지난 죄를 과거적으로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미래적으로 죄를 극복하며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정사와 권세를 무장해제 시키셨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회개하고 그 보혈의 능력을 믿는 그 순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얽어매었던 사단의 권세는 깨뜨려집니다. 그리고 그 사단의 영향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단과 죄의 영향력보다 훨씬 더 큰 성령의 법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성령의 능력에 붙잡혀 이 모든 것을 이기며 살 수 있도록 내적인 자유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마음이 어두워지고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며 주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빌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를 건져 주셔서 우리로 그 모든 죄를 이기며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마지막 자기의 옥체를 깨뜨리심으로 이렇게 우리를 죄인의 신분으로부터, 죄인의 상태로부터 구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고난의 죽음을 통해 다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IV. 십자가의 은총과 믿음
이제는 우리가 이 십자가의 은총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하여야 할 때입니다. 이 일들을 다 이루셨지만, 이 일들이 이루어진 효과는 실제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서 나타난 은총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믿음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회개와 믿음입니다. 그 은총을 들려주는 이가 없는데 어찌 자기가 죄인인 줄을 알겠으며 그 은총을 보여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을 마음이 생겨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우리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눈을 떠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십자가의 은총의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믿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든지 이 진리의 말씀이 들려지기만 하면 어둠속에서 그 진리를 붙드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십자가의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미 이 십자가에서 관심이 떠났고 자신을 구원받아야 할 비천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소수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현저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그리고 터진 웅덩이에 물을 기는 것처럼 그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멀리 떠나고 자신의 번영을 꿈 꿉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현저히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구원의 뜻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질 때, 이치에 맞는 것 같고 지혜로운 것 같아서 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죄의 어두움 가운데 사로 잡혀 있을 때에는 이 십자가는 어리석은 도라고 믿어졌고 그리고 예수쟁이들이 따르는 자신들만의 종교의 도일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셨을 때, 우리는 우리 인간의 비참함과 모든 고통이 우리의 죄와 허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았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이 은총에 대하여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기까지 자기의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의 그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이 십자가는 구원받을 때 필요한 일회용 십자가가 아니라 우리는 날마다 이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게 했던 패역과 많은 죄들이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이 죄를 극복하고 믿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주님을 깊이 의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에서 모든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의 보혈을 이루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보혈의 샘에서 자신의 죄를 씻고 그리고 그 임마누엘의 보혈의 샘에서 마시는 사람마다 영생을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보탤 일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미 주님이 다 이루신 그 보혈의 샘에서 그 붉은 보혈이 자기의 죄 때문에 주님이 죽으신 흔적이요, 자신의 형벌 받을 죄악 때문에 주님이 대신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죽음의 표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와 같이 더러운 죄인들을 아버지께 인도하는 것을 기쁘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며 나는 율법을 어겼고, 율법의 정죄 아래 있었고, 그리고 나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이 구원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단순한 마음으로 어린아이처럼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도록 믿음을 갖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저주 아래 있었고, 또 율법의 행위로서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정죄 받은 인간들이었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죄인들이었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형벌의 대상이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봅니다. 그리고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나는 공로 없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며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찬양)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이렇게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공로 없으나 나를 위해 자신을 죽여 그 옥체를 짜서 흘리신 그 보혈의 피 때문에 저주는 그 분이 대신 받으시고 은총은 우리에게 입히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며 주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거저 받은 공로이기 때문에 황송하기 때문에 그렇게 구원의 은덕을 경험한 후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 없어도 우리 자신을 주님께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추어도 우리의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주님의 것으로 여기고 먹고 마시고 살아서 숨 쉬는 모든 것까지도 주님이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그 목적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를 거스르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일관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시련과 환란, 고난이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죄도 없지만 섭리 가운데 고난을 당하여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하나님 앞에 이전에 짓고 또 지금 짓고 있는 죄 때문에 쓰라린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십자가로 여기고 예수께서 이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우리를 위해 자기를 대속의 제물로 드리신 것처럼 그 분의 그 고난을 본 받으며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부족을 알고 우리의 악함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우리 주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이 될 때 주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지고 당신 앞에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과 형언할 수 없는 초월적인 방법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난을 받고 박해를 당하고 때로는 모욕을 당하고 때로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우리를 기억해 주시는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은 오직 우리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사람도 하나님 아버지께는 여전히 사랑의 대상이고 그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 가까이에 계시는 것입니다.
V. 결론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자기를 다 바치시고 죽은 이 고난의 죽음을 기억하십시다.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어 오신 이후 단 하나라도 자신의 것이라고 따로 감추워둔 것 없이 모든 것을 쏟아 우리를 위해 섬기셨습니다. 병든 자 고치고, 주린 자를 먹이시고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 주시던 그 분의 굳은 손에 십자가의 못이 박혔습니다. 갈릴리로 유다로 두루 다니시며 당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셨던 발에도 못이 박혔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사람들은 예수의 옆구리에 창을 넣었고, 그 창은 장기를 뚫고 폐를 뚫고 신장을 찔렀으니 요한이 보았다는 그 물과 피가 바로 그렇게 심장을 터뜨려 쏟아진 피와 물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당신을 떠난 비참한 죄인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으니 이 십자가의 은총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눈물 흘림을 며칠 더 당하며 우리의 인생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피 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 주님은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까지 이 십자가를 지고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의 승리를 믿으며 십자가를 따라가는 주님의 사람들이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