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우느냐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요 20:11-14)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것이 금요일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금요일 해진 이후부터 안식일이 시작이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예수님의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는 중단되었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넣고 마지막 장례의 절차를 계속하기 위해 아직 어두움이 깔려있는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첫날인 주일 새벽의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마리아 한 사람의 대사만이 나오지만 우리라고 한 대명사로 추측해볼 때 마리아 말고 또 다른 여자들이 거기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명의 마리아중 이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누가복음 8장 2절은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고침을 받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던 마리아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 모든 제자들이 버리고 도망갔을 때에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다른 여자들과 함께 그 모든 고난의 과정에 현장을 지키던 여인이었습니다.
새벽미명을 마리아가 택한 이유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이었고, 또 한시라도 빨리 예수님의 시신을 닦아드리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무덤에 도달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무덤 입구에 있는 큰 돌이 옮겨지고 무덤은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의 무덤은 땅을 파고 시체를 집어넣고 흙을 덮는 무덤이 아니라 벽을 깎아서 동굴처럼 만들고 그리고 거기에다가 돌멩이로 입구를 막는 그런 종류의 무덤이었습니다. 특히 석회암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쉽게 그렇게 동굴을 팔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무덤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이런 무덤을 쓴 것은 아니고 부유한 사람들이 사용하던 무덤이었습니다.
II. 돌아간 제자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돌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고,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훔쳐간 것을 확인한 후 제일 먼저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훔쳐갔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베드로와 요한이 급히 달려왔고 그래서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시체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덮었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따로 개켜져 놓여 있었고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그 굴을 무덤을 휙 둘러본 후 예수님의 시신이 도적맞았다는 여인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말없이 속히 돌아가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제자들은 속히 돌아갔을까요? 만약에 거기 얼쩡거리다가 무덤을 지키고 있던 로마의 병사들의 눈에 띈다면 없어진 예수님의 시체가 자신들이 치워버린 것이라고 누명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 장사 지내긴 했지만 예수님이 평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소문을 낼까봐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달려왔지만 예수님의 시체 없는 것을 보고는 아무 일 없다는 것을 속히 자기들이 온 곳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나는 이 모습 속에서 오늘날의 교회를 봅니다. 아무 기대하는 것도 없이 습관적으로 주일에 교회에 모였다가 예배를 드린 후에 흩어지는 오늘날의 교인들처럼 말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나와 하나님을 경배할 때에도 무엇인가 간절한 기대가 없이 예배당에 오고 끝난 후에도 아무 충족된 기대도 없이 올 때만큼 우울한 얼굴로 교회에 돌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여기에서 발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빈 무덤은 그냥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맞은 무덤이고 아무 살아있는 것이 없는 죽음의 무덤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실망스러운 무덤에 불과했습니다. 눈물 한 방울 없이 그들은 돌아갔습니다.
III. 울고 있는 여인들
그러나 또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찾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울고 있는 여인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무덤덤하게 그냥 돌아가 버렸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예수님의 무덤 바깥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올라왔지만 이제 무덤을 돌아보고 제자들을 부르러 가고 그 제자들이 달려오고 제자들과 함께 무덤을 확인하고 제자들이 사라져 버리고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동안에 동은 트고 환하게 밝아왔을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모두 노출되었습니다. 만약에 동산지기에게라도 발각이 될라치면 고발을 당할 것이고 그러면 이 여자는 신성 모독죄로 처형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간 사람으로 지목되어서 커다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아무 두려운 것이 없이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바깥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특별히 사랑했고 3년 동안이나 데리고 다니시면서 먹이시고 재우시고 가족처럼 돌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병을 고치는 권세와 모든 약한 것을 고치고 치료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전해야 할지 말씀도 주셨습니다. 그 제자들 중 어떤 사람은 주님이 떼어 주시는 떡을 먹고 잔을 마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품 안에 기대어 심장의 박동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요한 이외에 아무도 주님의 그 고난의 현장을 지킨 사람이 없었고, 요한도 도망갔다가 나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이 죽음을 당하시고 시신 하나가 되어 무덤에 누이셨는데 달려와 보니 누가 그 불쌍한 예수님의 시체까지 가져간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너무 사랑하는 부모의 시체를, 사랑하는 남편의 시체를, 아이의 시체를 누가 훔쳐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러나 이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그것을 슬퍼하는 눈물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라진 생명은 남아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에 죽음이 되어서 그래서 그 무덤 바깥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휘이 돌아보고 그냥 가버렸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위험스럽게도 그 무덤 밖에 머물러 한없이 울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제자들에게 없는 그 무엇이 이 여자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사랑했는데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어도 그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이 여자의 마음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는 한없이 울고 흐느끼며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끊임없는 희망입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 자기가 보았고, 제자들이 보았고, 제자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무덤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빈 무덤을 구부려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 예수님이 없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게 예수님이 사라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그 무덤 속을 허리를 구부려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깜짝 놀랄 광경이 막달라 마리아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체가 있었던 곳에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는데 바로 시체가 놓였었을 그곳에 머리맡에 그리고 발끝에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있었습니다. 두 천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부드러운 음성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말입니다. 마리아는 그 사람들이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4장 5절에서는 그 천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예수님이 거기 서 계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왜 예수님은 그 긴 세월동안 당신을 따라다니고 헌신했던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첫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오히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기사를 살피면 마치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이 왔을 때에는 당신 자신을 숨기시고 제자들을 다 돌아가게 한 후에 막달라 마리아와 그 여인들이 남았을 때에 당신 자신을 은밀하게 보여주신 것처럼 그렇게 부활의 첫 번째 아름다운 모습을 제자들이 아닌 이 불쌍한 여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와 동일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나요? 로마서는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신 사건이었고,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찬양)
사람이 구주를 죽게 했네 왜 날 사랑하나
죄 용서 하실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예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죽게 하신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첫 번째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에는 죄인인 한 여자가 등장하고 그 여자가 곧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을 위해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그 분께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을 황급히 자기의 긴 머리카락으로 닦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마리아가 지금 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더 많은 학자들은 그 마리아와 이 마리아는 다른 마리아라고 주장을 합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그 여인으로부터 향유 옥합을 깨뜨려 섬김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향유 옥합에 가치가 제자들의 추측으로 300데나리온쯤 되는 가치가 있는 향유였습니다. 지금 물가수준으로 따지면 약 2400만원에서 3000만 원 정도 되는 액수의 향유였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마 26:8-9) 제자들은 분노하면서 그것을 왜 그렇게 쓸데없이 낭비를 하느냐 그걸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면 참 좋겠다. 물론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 26:11-12)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이 여자가 무슨 일을 했습니까? 향유 옥합을 가지고 깨뜨린 것을 기념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이 여자의 진실한 사랑,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이렇게 복음을 진정으로 깨달은 이 여자가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렇게 헌신한 그것이 생각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그 부활한 영광스러운 첫 모습을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 20:18)고 했습니다. 이 간증을 들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이 여자의 간증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정말 충만한 생명이고 예수님의 이 부활은 죽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물 붓듯 부어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아들에게 충만히 부어져서 이제는 누구든지 당신의 아들과 접붙여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생명을 구하는 모든 당신의 백성들에게 죽음을 이길 이 위대한 생명을 충만히 부어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평생 주님 따라 다니며 많은 진리를 배웠고 예수님과 함께 친밀한 교제의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먼저 부활의 첫 모습을 보이는 대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무덤 바깥에서 한없이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당신의 부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하는 첫 번째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IV. 적용과 결론
여러분이 무엇을 찾든지 그것은 여러분의 인생에 궁극적인 자원이 아닙니다. 정말 절실한 자원, 우리의 삶의 사태들을 이기고 죽음과 같은 이 절망의 땅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게 만드는 위대한 힘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생명을 위해서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버려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살아나심으로 누구든지 당신께 나아와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충만한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간절히 주님을 찾는 모든 죄인들에게 이 생명을 부어주시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정말 이런 간절한, 간절한 주님을 찾는 마음이 있습니까? 도대체 여러분이 정말 간절히 주님을 찾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여러분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나를 새사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언제입니까? 부서진 교회를 보면서, 불탄 교회를 보면서 눈물로 기도하십니까? 주님은 이렇게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던 막달라 마리아, 그러나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 여자에게 부활의 첫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어느 시인이 표현했던 것처럼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풀 미역 같은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주님을 위해 눈물 흘리던 이 막달라 마리아, 시신이라도 찾아와 어루만져 드리고 싶어 했던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울고 있는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절망과 두려움의 빈 무덤이 소망과 기쁨의 현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깊이 만나기까지 간절히 예수님을 찾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