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것 아니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녹취자: 박은희B
지난 시간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말씀에 대해서 강론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그 많은 죄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건 때문에 오늘 또한 우리가 살아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그 의미를 깨닫게 되자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죄를 향해서 죽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라는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의에 대해서는 살고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길 찌니라” 죄에 대해서 이미 죽은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우리가 죄를 위해서 살지 아니하고 의를 위해서 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불러주신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를 그렇게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죽어있는 자로 우리자신을 여기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죄를 향해서는 죽은 사람이다. 우리가 다시는 그 망령된 행실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죽어있는 사람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더 큰 의미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 모든 형벌을 주께서 친히 다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사건을 내가 오늘 깊이 인식하고, 믿고, 내 마음에 체험하며 받아들일 때에 그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미 나의 모든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한 형벌을 당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향한 대가를 치루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음이라”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죄의 멍에를 지고 그리고 사망의 올무를 뒤집어쓰고 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은 그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사도는 말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이후에 갑자기 그 사람이 어떤 새로운 힘에 의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바울을 알아보던 사람들이 또 이후에 바울도 알아보았습니다. 사울의 이름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이후에 바울을 또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겉모습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나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아는 그 순간에 이전에 나는 모두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자랑하고 육체를 자랑하고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고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부심과 그리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이런 모든 교만함, 이런 것들이 바로 이전에 바울이 살던 인생의 그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았던 것이 이전에 예수를 만나기 전에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기 전에 바울의 인생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전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빗나간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바울의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도리인줄 알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도리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줄 알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인생을 사는 것 인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산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이 사건을 깨닫는 그 순간에 그는 깊이 마음이 그 십자가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사건은 죄인인 나를 향한 하나님의 어떤 호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의, 있으면 인생이 좀 더 행복해지고 없으면 인생이 좀 더 고달파지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 호의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바울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 사건을 깊이 체험하자 그는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그 모든 구원과 그리고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끊임없는 죄와 육체의 욕망과 그리고 육신을 위한 더러운 욕망과 사망의 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간이 절망적인 존재인지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이 세상의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찾기를 원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힘도 없고, 그렇게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그 죄의 결과가 사망인 줄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고 모든 힘을 다 기울였지만, 그러나 사망의 법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어서 시체가 되어 실려 나가는 그 모든 죽음들을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면속에 이런 죽음이 깃들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교통함이 없이, 전혀 기뻐할 수 없고 행복해질 수 없는 그 인간이 이렇게 죄와 사망의 법에서 매여서 그 아래서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유 함이 없고 해방이 없는 그 멍에를 짊어지고 살다 살다 인간은 어느 날 비극적으로 죽어가는 것입니다. 도무지 생명이 무엇인지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건을 체험하게 되자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고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니까 죽는 것도 자기를 위한 것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가치를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다른 사람들이 동의해줄 수 없는 것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하찮게 여기며 같은 세상에 살면서 다른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힘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선 우리는 이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이 사건이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한 사건이 아님을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은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다시 우리를 살리신 이 사건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신 그 사건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에 이어서 성령이 오신 그 사건은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 그 십자가의 사건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난 죽었다 그런데 또 산 게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살았습니까? 난 죽었지만 그러나 산 게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었지만 그러나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십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바울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나 그러나 이 사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그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실을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는 단지 그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길 수 있는 성령을 그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혜사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로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로 사도의 마음속에 사도의 심령 속에 살아계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되도록 오늘 사도를 붙들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건은 단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를 통해 이 시간도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가치를 위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실제적인 능력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와 끊임없이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할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신 이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의 의미를 밝히 깨닫고 그리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그 때에 그들에게는 성령이 주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기의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힘과 능력을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구원받지 못한 세상을 향하여서만 소망일뿐만 아니라 오늘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들에게도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사도는 이제 육체의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보려고 하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가 만약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지 아니 하였더라면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고 그리고 그 십자가의 의미에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이 붙잡히는 그런 일들이 없었더라면 나도 아마 너희들처럼 그렇게 육체를 자랑하고 육체의 할례를 받고 율법에 대해 삶을 묶으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보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으로 그 구속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사건을 깊이 체험할 때마다 깨달을 때마다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처참한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런 진노아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피를 부르는 진노, 살을 찢으시는 하나님의 부들부들 떠는 그 끔찍한 분노아래 있었던 인생들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그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서 그 진노를 한 몸에 받고 죽어 가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그 죽음을 오늘 이 사도는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 십자가를 직시하지 않고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왜 여러분들이 이 교회당에 나오자마자 일주일동안 살았던 여러분의 삶들을 회개하고 뉘우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에게 그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여러분보다 더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이 이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네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 안 박혔는지 난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고백이 있다. 그것은 자기를 부르신 그리스도만 알고 그분께 부르심을 받은 자기만이 아는 사건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든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말을 이 고백을 하면서 사도는 틀림없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버린 사람, 이전에는 자기의 육체의 욕심과 이세상의 죄악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있었던 사람이지만, 그러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과 마주치고 그 십자가가 우리를 위해서 행한 그 위대한 일을 깨닫는 그 순간에 알게 된 것 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서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왜? 십자가에 대할 적마다 그 십자가가 사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무엇이 사로잡습니까? 그 십자가를 볼 적마다 사도는 자기를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놀라운 사랑에 붙잡혔던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성령이 자신의 마음속에 그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는지를 생각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셨던지 생각나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도저히 이전의 삶을 계속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대한 욕망이 그리고 욕심이, 자기를 주장하며 살려는 마음이 들 적마다 이 십자가 앞에서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려서 나를 구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을 보는 것입니다. 늘 보면서 이 사도는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사도는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내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될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복잡한 관념이나 지식의 나열이 아닙니다. 신앙은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한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그 사랑을 내가 알고, 그 사랑 때문에 오늘 그 사랑에 강권함을 입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의 모습이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도가 오늘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 이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결국 이 얘기는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므로 이제 그리스도는 내안에서 마음껏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시고 싶은 일들을 내안에 계셔서 맘껏 이루어 가시는 것,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살아계셔서 당신 자신이 원하고 기뻐하는 바를 마음껏 행하며, 마음껏 이루며, 마음껏 성취하며, 내안에서 살아가시는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그 영적인 비밀은 내가 육체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를 쓸 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갈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그러나 우리의 육체의 정과 욕심은 일회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의 넓은 사랑을 깨달아 알고 구속함을 받았지만 그러나 여전히 매일 매일 십자가에 진리 앞에서 우리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건을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지적으로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 알면서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육체의 정과 욕심은 여전히 이전에 삶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 앞에 나의 삶의 보좌를 내어드리는 대신, 여전히 내가 내 삶을 주장하고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속에서 그리스도인의 긴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들 속에 긴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그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열어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놀라운 명칭이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여”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입은 그 놀라운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위해서 모든 고통과 아픔을 참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수난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는 나는 죽었다” 말하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유혹할 때 우리는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제가 여기에 살아있나이다” 이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위해서는 도무지 살 수 없고 늘 우리의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그것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 싸우라고 당부하셨던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고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고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에 만드는 위대한 힘과 권능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능력이 되십니다. 당신을 전심으로 사모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십니다. 마찬가지로 이 십자가도 전심으로 그 십자가의 의미를 찾고 그리고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십자가는 능력을 보이고 그 위대한 힘을 보여서 우리가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십자가를 볼 때마다 육체를 위해서 살수 없는 사람들이고 이미 이루신 그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할때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죄를 위해서 살지 말고 의를 위해서 살게 하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지나면서 이전에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없었던 그 수많은 일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오고 그 십자가에 굳게 붙잡히므로 그 십자가가 나를 붙들어주는 이러한 위대한 믿음의 비밀들을 깨달아 알고 체험하게 되어서 수난주간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