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7.11십자가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이 말해도 마르지 않는 찬송의 제목이 있다면 우리를 향한 사랑일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행위대로 갚으셨다고 할 것 같으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만약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것 같으면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앞에서 살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자체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런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대해 감격에 넘치는 마음이 우리의 온 삶과 우리의 온 생각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이 어렵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현실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이 신앙생활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활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는 전도를 위한 전도지가 아닙니다. 이미 로마에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사도가 기독교의 진리를 정리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성도가 된 사람들에게 사도는 다시 한 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이미 열렬하게 그리스도 오시기를 기대하며 구원을 갈망하고 있던 소수의 성도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라면 십자가는 우리의 찬송 제목이 될 수 없습니다.
경건하고 의롭게 순결하게 신앙 양심을 통해서 언젠가는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고대하던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사람들에게는 열렬한 찬송의 제목이 될 것이지만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감격적인 어조로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님을 지독하게 거스르는 죄인중의 괴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히 교회를 박해하고 이 세상에 있는 헛된 것들을 그리스도보다 더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 있는 영광을 취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장황하게 증거 하는 증인들을 죽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살인의 동기를 가진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에 이미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위대함은 우리의 사랑의 반응에 맞춘 하나님의 사랑의 반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못 박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외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가족처럼 살아가야지만 진정으로 생명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죄인들의 비참한 운명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노력은 빗나갈 뿐이고 우리의 노력으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실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괴하고 범죄한 것의 주도권은 인간이 행하도록 내버려 두셨지만, 그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인간들을 자기의 사랑으로 불러들여서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가정에서 이 아름다운 가족으로 살아가게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가 아직 여전히 죄인 되었을 그 때에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할 말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신앙에 관한 지식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세상 끝 날에 우리를 붙들어 줄 지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및 그의 못 박힌 진리 이것이 우리를 영원한 세계를 향해 우리를 붙들어 주는 구원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의로운 분이셨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는 죄인이었으며 우리는 그 하나님을 버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인간의 그 잔학한 죄와 하나님의 그 다함이 없는 사랑을 십자가만큼 한꺼번에 보여주는 증표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희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볼 때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이고 성경은 우리를 이제는 정죄 받을 죄인이 아니요 의로운 사람으로 불러주고 이제는 이방인과 외인이 아니요 하나님의 집의 감람나무와 같은 존귀한 자녀라고 불러 주어도, 우리는 십자가를 보는 순간에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임을 너무나 잘 압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는 외인이 아니요 의인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감람나무와 같이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에 할 수 없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집에 의인이며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성도의 자리에, 그리고 잠깐 들풀처럼 살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아무런 보람이 없고 가치 없는 존재들을 열심히 살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고 더 많이 살수록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무지막지한 인간들을 그 십자가의 피로 건져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어떤 수준의 신앙에 올라가든지 십자가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리면 그의 자랑하던 모든 영성과 신앙의 지식도 울리는 꽹과리와 같고 소리 나는 구리와 같은 것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자신을 불태우게 내어주는 헌신이 있을지라도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극히 거룩한 삶을 살았던 성자와 같은 위인이건 오래도록 주님을 믿으며 헌신적인 주님의 사람이건 오늘 처음 그리스도 예수를 믿기 시작한 사람이건 목회의 길에 들어선 목회자이건 여러분이건 우리는 모두 이 십자가 아래서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 용서받은 한 사람의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흠 없고 죄 없으신 그분이 우리를 그 비참한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올바로 평가해 주는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 없는 그 때에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태어나게 될 수많은 자녀의 씨앗을 보시며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한 때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위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패역에 붙들려 살 수 없는 사람들이고 예전에 좋아하던 죄의 낙을 위해서 생명 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십자가 아래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올바르게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부수고 하나님 앞에 면목 없이 살았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이 우리의 행실과 우리의 행위와 의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중생의 씻음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한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부족한 모습을 십자가 아래에 묻고 예수의 공로를 의지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우리가 주를 위해서 사는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적마다 우리가 한 때 소망이 없는 죄인이었으며 흉악한 죄인을 건져내셨으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그분에게 빚졌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물질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나아가서 우리의 생명 자체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 순간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고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어주신 그 순간 우리의 모든 것들은 그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모든 갈등과 괴로움은 아직도 우리의 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유가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자 하실 때 야속하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것이 남아있고 우리가 간섭하기 때문에 아직도 하나님이 주장하실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주님의 우리에게 향한 인생의 계획이 우리에게 한없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버리신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면서 매 순간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 예수께 빚진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고 어떻게 살도록 그분에게 명령을 받든지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 가운데는 지키기에 너무 가혹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형벌 받을 죄인을 십자가에서 건져주신 그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가 예전에 주님과 원수 맺었던 우리 위에 진노가 머물러 있었던 한심한 죄인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에게 지키며 살도록 주신 계명과 당신을 섬기기 위해 명령하신 하나님의 그 명령이 얼마나 쉽고 아름다운 명령인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우리 본분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죄 없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구차한 죽음을 당하시기 까지 자기를 십자가에 복종시키신 것은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기록된, 두루마리에 기록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셨고 우리의 구원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사모하셨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진노하고 계시고 이 죄인을 멸하기 위해서 골몰해 계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오셔서 그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건 복음을 전적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공의로운 성품 때문에 우리에게 진노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이 친히 구원의 계획을 주도하셨고, 구원의 계획을 주도하신 커다란 동기는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과의 망가진 관계를 고쳐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비참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겨운 사랑이 그 구원의 계획을 주도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은 직접적으로 나타낸바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나타낸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차이를 묻는 것은 바보 같은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 예수를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못 박힌 모습으로 능욕 받으신 그 모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을 두 번째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를 구원해 줄 구체적인 방법이 생명이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사망에 이르게 하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위해서 죽는 것이 쉽지 않고 악인을 위해서 죽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세상으로 멸시를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죽음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을 위해서 희생을 했으면 의인의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요 선한 사람을 위해서 대신 죽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선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의 이름이 기념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 건강한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표현이 십자가의 죽으심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시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나타내신 것은 우리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죄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보여주는 방법이 자기의 외아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죽이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형벌을 받아서 비참하게 죽어갔다면 우리는 그의 죽음에 대해 다소 동정할지 모르지만 그의 죽음이 전혀 부당하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분은 죄가 없고 흠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죄를 향한 끓어오르는 진노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을 향하심이 죽이심이 아니었고 의로운 그리스도 예수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또 있어야 했던 그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울부짖게 만들고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아들을 십자가에서 아낌없이 못과 망치로 짓이기시니 그 진노의 피범벅이 된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라기보다는 거룩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만물과 구별되게 창조된 인간의 모습을 기억해 보십시오. 두 가지 점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 있는 피조물과 달랐습니다. 첫째는 창조의 과정이 달랐고 둘째는 창조 후 부어주신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존재들과는 구별 되었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고 추측할 수도 없는 이 넓고 광대한 우주를 ‘있어라’ 라고 하는 한 마디의 말씀으로 주님이지만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주 친히 당신의 손가락으로 흙으로 우리를 빚어서 당신의 모양을 만드시고 당신의 형상을 물려받은 형상으로 창조시키시기 위하여 우리의 모양을 만드셨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그 광대한 세상을 말씀한마디로 창조하신 그분이 인간은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도 충분하셨는데, 공중에는 새가 날고 바다에는 물고기가 다니는 것처럼 이 땅위에 인간들도 다닐지어다 이렇게 창조하시지 않고 그의 손가락으로 친히 흙으로 사람을 빚으셔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주하나님
우리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하나님의 큰 사랑을,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과는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 빚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이 없는 거예요. 저를 볼 때 그런 마음을 가지신 분은 오늘 동산을 내려가기 전에 회개해야 복 받아요. ^^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고 회개하는 그 사람이 진짜 문제 있는 사람이에요.
또 하나는 하나님이 그냥 창조하시지 않고 ‘후’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그게 뭐냐하면 인간이 만들어 놓으셨을 때 먹고 입고 마시기만 하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정이 있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피조물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 인간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지만 그건 인간이 망가뜨려서 그렇게 된 거예요. 개도 산에 풀어놓아도 너끈히 살아가요. 들개가 있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불안해요. 존재할 수는 있지요.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거냐구요. 그것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짓이기신 하나님의 처절한 형벌을 보면서 거기서 죄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거룩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열망을 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십자가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만 도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사람에게 더 큰 도전이 되는 거예요.
구원받지 못했을 때는 이 십자가를 보면서 ‘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죄를 향해 저렇게 진노하시는 구나 무섭구나 돌아가서 하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단지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라도 죄를 짊어지셨을 때에는 처참하게 피 흘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를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열망하시는지 간절한 죽음을 넘나드는 우리의 열망을 보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이제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요. 옛날에 살았던 모든 삶을 지금 살 수도 있지만 살아도 된다고 해서 모두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옛날에 우리들이 가졌던 습관이나 옛날에 우리들이 오래도록 지니고 살아왔던 패역으로 우리들이 돌아갈 수는 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해도 되는 것들은 아니라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볼 때마다 이런 결심을 해야 해요.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제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삶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속성상 하실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말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것으로 더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기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증명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가르쳐 주실 때 주님이 우리에게 도전하고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사랑이 의심할 수 없는 확증된 사랑이기 때문에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그 사랑을 의심 없이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느낌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외톨박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느낌일 뿐이고 자신의 생각일 뿐인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버린 적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리신 적이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버리실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보면서 때로는 우리의 양심의 송사를 받거나 율법의 송사를 받을 때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보면서 폐기 될 수 없는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가장 간절하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가장 열렬하게 간구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작년 4월에 미국에 갔을 때 웨스트민스터 신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학생이 서 있고 한 사람씩 서서 질문을 받는 거예요. 그 학교를 나온 어느 목사님이 저한테 그래요. 강도사 고시를 다 보고 마지막에 목사가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구두시험을 보는 거예요. 교단에 원로 목사님들이 쭉 나와 앉아 있고 한 사람씩 나와서 질문을 받는 거예요. 모든 면접이 다 끝나서 이제는 목사가 되어도 좋다는 판결이 날 상황이 되었는데 거기에 있는 목사 후보생에게 감독관 중의 한 사람이 엉뚱하게 그런 질문을 하더래요.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묻겠는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자네를 향해서 내가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 아는 데 당신 같은 인간이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겠소 라고 물으면 당신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도저히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대요. 왜? 자기 생각에는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인 것 같기 때문이에요. 한참을 울고 있으니까 그만 됐으니까 내려가라고 그러더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깨닫고 우리의 숙제는 이제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어떠한 상황 어떠한 삶의 자리로 가든지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그 사랑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 아름다운 권리 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두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며 살도록 오늘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