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참 신앙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눅23:26-27)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 세상에서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쁨이 있는 곳에는 슬픔이 없고 슬픔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즐거움은 괴로움을 내어 쫓고 고통은 희락을 쫓아내어 버립니다. 그러나 신앙의 영역에서는 고통이 있는 그 곳에 기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한번 돌아보면 우리가 가장 기쁨으로 충만했던 신앙생활을 하던 때가 언제인가 하고 회상해보면 그때는 눈물을 많이 흘리던 때입니다. 눈물을 많이 흘리고 그리고 슬픈 눈물을 하나님 앞에 많이 흘렸던 때에 이상하게 그때가 주님과 가장 가까웠던 때입니다. 또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인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길 원합니다. 주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져서 자꾸 주님께로 가까이 가고 싶어서 몸부림치던 때가 알고 보면 주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때입니다. 이것이 우리에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 신앙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장면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신앙의 참된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참 눈물을 잃어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눈물을 잃어버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 눈물이 잃어버리는 가운데 마음속에서 불신앙과 죄악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마치 우리의 심령 속에서 자라나는 독초를 제거하는 제초제와 같습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거짓된 욕망들, 이 세상에 대한 탐심이 고개를 들고 독초처럼 돋아나다가도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그렇게 무성하게 돋아나던 세상에 대한 사랑과 죄악의 독초들이 모두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우리 속에 진실로 내재하고 있는 본성, 하나님의 자녀의 본성,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그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주님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있는 본성이 우리에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우리를 권고합니다. “봐라. 나는 예수의 사랑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주님의 십자가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될 사람이다.”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다시 솟아나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갈 때에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갈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왔습니다. 이때는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이 사건은 당시 예루살렘에 최고의 화젯거리였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물위를 걸어 다니고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 천 명을 먹이던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순순히 십자가에 죽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의 형벌은 죄지은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수님이시지만 이 십자가를 지고 계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하는 재판이 있어야 됐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는 오늘 우리 읽은 본문 앞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이제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우리는 비록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 재판은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없는 재판이었습니다. 재판을 받으려면 죄인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 죄인이 없었습니다. 피고석에 선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때로는 죄 없는 사람을 세울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죄 없는 사람을 세웠으면 죄 있는 사람 백 명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죄 없는 사람 한 사람을 부당하게 형벌하지 않는 것이 고금의 법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심판대 앞에 서셨고 심지어는 재판장마저도 이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니 내가 이 사람을 놓아줄 수밖에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미 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역사에 의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 이 빌라도의 뜰 바깥에 모여서 거기서 일어나고 있는 재판에 관한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놓아 주기만 하면 온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기세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진짜 폭동이 일어나면 이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적인 생명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게끔 되어있었습니다. 폭동을 두려워한 이 빌라도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백성들의 함성소리가 맞아떨어져서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게 되셨던 것입니다. 당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람들은 매우 흉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죄인이 아니라 아주 흉악한 죄인 그러면서도 로마인이 아닌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치러야할 규례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매를 맞는 일이었습니다. 채찍에 맞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채찍을 연구하던 사람은 아홉 가닥으로 되어있는 그 채찍에 뼈로 깎거나 혹은 쇠붙이를 만들어서 거기에 뽀족하게 매달아서 그걸로 벗은 몸에 내려치면 살점을 물고 후두둑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채찍이었습니다. 그 채찍을 맞는 것이 십자가 지는 사람에 말하자면 신고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연히 이러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규례는 이 십자가를 자기 매달릴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사형장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렇게 백성들에게 끌려가서 구타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셔서 온몸이 찢어지시고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린 여기서 중대한 의문을 하나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살아계실 때에 우리에게 가르치셨던 삶 가운데 하나가 정직하고 의로운 삶이었습니다. 공의로운 삶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직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정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재판은 불의했고 그리고 이 재판은 공평한 재판이 아니라 부정한 재판이었습니다. 정의의 아들이신 그분이 불의한 재판에 결과를 승복하셔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부당하게 끌려간다.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이 평소에 많은 분은 아니셨지만 일단 한번 입을 열고 진리를 말하기 시작하실 때에는 청산유수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끝날 줄 모르도록 말씀에 말씀이 이어지는 능력을 가지신 말의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많이 해명하여야할 이 시기에 주님은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말을 해야 할 때가 있고 고요히 참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말을 하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밝혀야 될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조용히 침묵하면서 주님의 섭리의 손길을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정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미련하시기 때문에 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아니었고 능력이 모자라서 항거하시지 못해서 이 십자가를 억지로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분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자기를 못 박는 인간들이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그 인간들을 충동질하고 있는 마귀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들을 구원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계획과 지혜를 아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 이러한 아버지의 계획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고통과 죄로 가득 찬 이 어두운 세상에 가면 수많은 고통하고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는 영혼들이 당신의 섬김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아버지께 섬기듯이 그 영혼들을 섬기고 나면 마지막에 주님이 일평생 하나님의 양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친히 화목제물로 받으셔서 영 단번에 하나님 앞에 속죄제로 바치게 하시므로 화목제로 바쳐지게 하시므로 이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푸시고 멸망 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아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시대에 누가 그러한 지혜를 깨달았겠습니까? 그 시대의 지혜 있는 사람 누구도 그 지혜를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무지에 대해서 이미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7백여년전에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손이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우리 앞에 자라기를 연한 순과 같고 그리고 우리 앞에 자라기를 좋은 풍채도 없고 모양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오늘도 이 세상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오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의 참된 지혜, 예수 그리스도가 왜 우리의 인생의 전부이고 그분 없이는 왜 우리의 인생이 아무것이 아닌지를 이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 생명이 감춰져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죽음 안에 우리의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선택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는 죄인의 몸이었고 불명예스러운 죄명을 뒤집어쓰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조차 침 뱉음과 돌팔매를 당하며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바로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그분은 힘없는 죄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셨고 우리의 인간을 구원하기위해서 오신 독생자 예수였습니다. 지금도 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보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참 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목 매이는 음성을 그 십자가에서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은 매우 불행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어른, 그리고 박식한 종교지도자들과 무식한 상민들까지 모두 있었습니다. 이때는 유월절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절기였습니다. 그때 수많은 인파가 주님께 얼굴을 보이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모인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는 소문을 듣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궁금히 여기며 빌라도의 뜰에 모였습니다. 잠시 후 피투성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홍포를 입으시고 옷을 벗기 우신 채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구레네 지방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이 옆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자주 쓰러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못해 아마 로마의 병정들이 이 사람을 불러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겠끔 강제로 맡겼던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기서 처음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시는 모욕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시는 모든 치국을 함께 당하시면서 백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골고다 언덕을 향해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의하면 이 구레네 시몬은 이 사건을 계기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그리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인도 북부지방에서 마음껏 전하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원래 인격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스스로 믿고 싶으면 믿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매우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 영혼들에게 억지로 예수 믿게 하시는 경우도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그랬을 리가 없는데 나였기 때문에 특별하게 하나님이 말씀을 듣고 변화 받을 자리로 나를 밀어 넣으십니다.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려고 해도 주위에 비상한 열심을 가진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목에 줄을 매고 끌고 가게끔 만드십니다. 자기는 벌써 내버려뒀으면 주님을 버렸을 텐데 사람들이 그로 하여금 예수를 버리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고 어디서든지 강제로 자기들을 복음으로 이끌려고 하는 신실한 일꾼들과 사람들을 만납니다. 제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는데 어디가도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예수 믿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사직분 죽어도 싫은데 어느 날 목사님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안 맡으면 난 다시 안 볼거야. 그럼니다. 하기 싫은 교사, 하기 싫은 구역장, 어느 날 결석한 주일날 지나갔다 와보니까 덜컥 올라가있습니다. 아 지난 주일날 내가 왜 결석했을까? 내가 왜 결석해서 여전도회 회장, 남전도회 회장에 당선이 됐을까? 왜 나 없는 날 구역장 임명을 해서 내 의사 물어보지도 못하고 발표도 못하고 내가 어느 날 와 보니까 됐을까? 이것 모두 억지 은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억지로 주어졌어도 하나님 속히 만나고 그 사명을 감당하면 주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가고 나가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아 그때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못 말릴 정도로 나를 붙들어서 예수 앞에 나오게 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예화) 어느 자매가 그런 얘기를 해요. 목사 될 사람하고 결혼을 했는데 아니 올시다야. 그런데 처녀 때는 말이지요, 그 사람 아니면 쥐약 먹겠다고 난리치다시피 해서 시집을 갔거든요. 그러고 나서 지금 하는 말은 뭐라 그러냐면 엄마 아빠가 원망스럽데. 왜? 그때 좀 적극적으로 말려주지 왜 안 말려 줬을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말이죠, 정말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싫어하십니다. 이거 억지 은혜는 기회야. 기회. 기회니까 속히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억지 은혜가 정말 감사하다. 정말 얼마나 감사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억지로 오늘도 여기에 잡혀 오신 분들 계실 것입니다. 이번 주에도 내 누구라고 말을 안 하겠는데 억지로 그것도 목사님이 목사가 말이죠, 붙들어서 버스에 태운 사람이 누구에요. 우리는 말 안 해도 알지.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것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에 많은 사람이 십자가 뒤를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섞여서 예수님의 뒤를 쫓아오는데 참 신기하게 두 줄로 서서 사람들이 서서 걸어가는 것도 아닌데 딱 잘라서 두 사람들로 오늘 누가가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무리들이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부류는 백성이며 두 번째 부류는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입니다. 그럼 백성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를 먼저 봐야 되겠습니다. 34절을 먼저 읽어보십시오. 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백성은 서서 무얼 했다고 했죠? 47절입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무엇 하러 모인 무리들이 있었다고요? 아하, 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이 백성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서 쫓아온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예수님의 뒤에는 주님의 십자가를 구경하려고 쫓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서 쫓아왔던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구경하며 쫓아와서는 안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팔복산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실 때에 그 감미로운 설교를 들으며 큰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병든 자를 고치시는 생애였습니다. 눈 먼 자를 뜨게 하시고 중풍병자를 일으켜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저는 자들과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어쩌면 이 가운데에는 주님이 고쳐주신 다리로 걸어가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는 사람들, 주님이 고쳐주신 눈으로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웃고 떠들며 걸어가는 사람들, 주님이 고쳐주신 손으로 손가락질하며 걸어가는 사람들도 없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치료의 혜택을 입었던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은 몇 칠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 때에 종려나무가지를 꺾어 들고 자기의 겉옷을 펴서 길거리에 깔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며 환호성을 올렸던 열광하는 인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 입성할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편들이 누가 있었습니까? 온 성이 소동을 할 정도로 열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시여, 다윗의 자손 우리 주님이시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주님을 향해 열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구경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뒤를 쫓아가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들이 원하던 예수님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그렇게 열렬히 환영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제 죽은 자를 살리는 그 놀라운 능력으로 천기를 붙들고 그 하늘의 놀라운 징조를 일으켜서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무지무지한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독립을 주고 정치적인 해방을 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나라를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기대를 걸고 다가왔다가 슬며시 사라져 버리는 것, 교회는 몇 번 다녔지만 나중에는 불신자보다도 더 교회를 박해하고 기독교에 대해서 욕하는 많은 사람들은 무엇 때문입니까? 문제는 그들이 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모르고 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정직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참된 복음이 무엇이고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리고 참된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이고 우리의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정직하게 들을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한 복음을 듣기 전에는 우리는 아무것도 결단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는 벳새다 광야에서 물고기와 보리떡을 기적으로 나누어 주실 때에 그거를 먹고 배불렀던 사람들도 거기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이적의 체험, 그런 열광의 체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체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감동과 감격과는 상관이 없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갈 때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이 사람들처럼 여러분 열광하셨습니까? 이 사람들처럼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까? 이 사람들처럼 기적에 떡과 물고기를 먹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기적을 체험하고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길에 차가운 구경꾼들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신앙에 있어서 우리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 다 살아봐야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압니다. 다 믿어봐야지 그 사람이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며 인생을 살았는지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잘 믿어야 되겠다 라고 하는 긴장,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다는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사람들에게 특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허리에는 카세트를 차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반바지를 입고 쓰레바를 끌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오른손에는 팝콘 봉지를 들고 친구와 함께 떠들고 이야기하면서 이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구경하며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지금 무슨 구경거리가 있습니까? 이 장면이 어떻게 구경거리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이 광경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마음이 정말 정상적인 사람이면 고개를 외면해야 될 정도로 끔찍한 그 고난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그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 하나님이 많이 불쌍히 여겼던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핍절한 것이 불쌍해서 말씀의 떡으로 육신의 떡으로 배불리게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고난을 구경하며 쫓아가고 있는 광경을 보시길 바랍니다. 신앙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열광도 사라지고 감격도 사라지고 결국은 체험도 사라지고 병 고침의 놀라운 은혜도 사라지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며 쫓아가는 그러한 사람들로 변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사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과거의 사랑한 것이 오늘 우리를 붙들어 주지 못합니다. 과거에 주님을 사랑했던 것이 오늘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에 주님을 사랑했던 것이 발판이 되어서 그것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오늘 더 순결한 사랑, 더 열렬한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현재적인 고백이 있을 때 과거의 사랑이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를 딛고 일어서고 내일은 오늘을 딛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 감격이 우리 속에 새로워져야지만 이 사람들과 같은 자리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 체험이 모자랐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를 구경하며 쫓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덜 체험했기 때문에, 말씀을 덜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갈 때에 이 사람들은 구경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게 무슨 구경할 거리입니까? 이 사람들은 구경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고 있지만 그러나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계신 것입니까? 누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당신이 사랑했던 백성들에게 배신의 모욕을 받으며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것입니까? 누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임마누엘의 아들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 분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죄 없으실 뿐만 아니라 죄를 지으실 수도 없는 분이었고 또 그가 죄를 짓기도 원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오실 때부터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신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를 위해서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고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종 되어 섬기고 섬기다가 또 섬기다고 마지막으로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살 찢고 피 쏟아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자기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우편에서 주님과 함께 사귀며 살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이제 이 더럽고 추악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더러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돼지우리에 가서 드러누워서 사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 순결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시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우셨던 것입니다. 그 분은 본성적으로 이러한 세상에는 어울리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 분은 존귀하신 분이었고 죄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신령한 세계에 거하시도록 그렇게 부름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죄악의 구렁텅이가 가득 있는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언 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일평생을 낮아진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모두 버리고 도망갈 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사랑으로 양육하시고 하나님의 자비로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그 길을 몸소 본을 보이시며 알려주셨습니다. 당신이 고쳐준 다리, 당신이 고쳐준 눈으로 당신의 고난을 지켜보고 구경하며 당신을 향해 비웃음을 보낼 줄을 알면서도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을 고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고통 하는 자에게 치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셨던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홀로 지고 가는 것입니다. 누가 그 분 곁에 같이 있어드렸습니까? 누가 그 분이 빌라도의 뜰에서 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심문을 받을 때에 누가 그 분 곁에 같이 있어드렸습니까? 예수님이 죄가 있다고 참소하는 증인들은 수없이 많았으나 예수 그 분은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세주라고 밝히 말해주던 용기 있는 증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십자가를 지셔야 할 자리에 아무도 동행 없이 홀로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홀로의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뜨거운 눈빛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예수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눈물 없이 바라 볼 수 없었던 그 고통하고 아파하는 영혼들, 그래서 고치고 먹이고 가르치셨던 당신 생애의 전부였던 사랑하는 양떼들이 차가운 시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이 이천년 전의 그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안 믿는 이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여러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아직까지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분들이 바로 여기에 구경꾼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한없는 긍휼을 입었으면서도 하나님의 그 자비하신 긍휼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십자가를 구경하며 쫓아가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 당신의 그런 놀라운 사랑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구경하며 당신의 뒤를 따라오는 수많은 어리석은 백성들을 바라보시면서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외로움 때문에 주님의 마음이 슬프셨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자기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고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그 영혼의 운명의 비참함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슬퍼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된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교회 생활을 반드레하게 하는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까? 거짓된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교회에서 찍힌 사람이 거짓된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향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구경하며 쫓아갔던 이 불쌍한 사람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라는 것을 깨닫는 일들을 놓쳤습니다. 주님이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그 사랑 안에서 병 고침은 경험했고 보리떡은 먹었고 물고기는 삼켰지만 그러나 건네주시는 보리떡과 물고기, 고쳐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손길 아래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인격을 발견하는데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설교자로서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얼마든지 지옥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여러분들에게 냉정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교회 분위기에 익숙하고 여기 저기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나 혹은 아버지 부모를 쫓아다니면서 복음에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복음에 익숙해졌다는 것과 복음을 여러분들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 하는 것과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지막 날에 죽게 되면 천국에서 두 번 놀라게 될 것입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온 것과 또 하나는 정말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지옥에서 슬피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가기까지 누가 참된 신자인지에 대한 결정적인 판단은 유보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을 불러서 이렇게 주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권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지금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속으로 대답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인입니까?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 편에 서있는 사람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며 쫓아가는 이 사람들을 볼 때에 분노하는 마음이 여러분들 속에 들고 있습니까? 우리나라 교회에서 이런 정직한 질문을 한번도 받지 못한 채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고 공동묘지에 묻혀서 이튿날 아침 지옥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누구도 여러분들에게 대신 해줄 수 있는 일들이 아닌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여러분들은 참된 가르침이 없었기 때문에 혹은 누가 진실로 내게 알려주는 자가 없어서, 아무리 많은 핑계도 여러분들의 영혼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사슴이 시냇물을 목마름같이 주님 내가 서있는 자리가 반석 위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내 인생은 십자가의 기반 위에 서 있습니까? 나는 구원받았습니까? 나는 참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나의 삶속에는 참된 하나님의 신자의 표징이 있습니까? 내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까? 라고 묻고 하나님 앞에 그 생명을 갈구하는 자는 갈구하다가 참된 복음을 발견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그들을 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정직한 복음을 들은 적이 있는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믿고 그리스도 예수가 어떻게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떤 태도로 주님 앞에 나와야 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갈 때에 이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받는 광경 그 결정적인 장면 앞에 구경을 하며 쫓아가는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으로서 이들은 하나님께서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드러내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의로운 죽음을 보면서 뉘우치기도 했을 것이고 사도들에 의해서 새롭게 선포되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으며 이날에 이 구경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갔던 사실을 회개하고 구원받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수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에 구경하며 따라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믿는 지도 모르고 이렇게 믿고 나면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자기 참된 신자인지 거짓된 신자인지도 모르고 거짓된 신자로서 교회 계속 다니면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채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오면서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의 조상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이 백성들의 모습 속에 투영해 보아야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백성들의 자리에 서 있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그들에 권면하겠습니까? 그렇게 걸어 갈 때에 여러분들은 웃으면서 계속 걸어가면 언젠간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달려가서 그 길이 올바른 길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면서 쫓아갈 수 없다고 일깨워 주어야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여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화) 희랍의 거리에 가면 시라큐스라고 하는 동상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는 시라큐스라고 하는 거리에 동상이 하나있는데 그 동상은 앞에는 말갈기가 늘어진 것 같은 말의 흉상을 하고 있고 목이 끝나고 나면 바로 뒤에는 참새 꼬랑지 같은 것이 매달려 있습니다. 작품의 이름을 명하기를 기회라고 했습니다. 말갈기를 풀어 헤치면서 말이 달려 올 때는 아무데나 잡으면 잡힐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잠시의 순간을 놓치고 나면 마지막에는 참새 꼬랑지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인생을 많이 살아도 참된 복음을 발견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향해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가짜 신앙이 아닌지 하나님 앞에 새롭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에 붙들고 있는 그 구원의 티켓이 누군가 위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우리들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참 신자가 아닌 것으로 발견되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도착하셨을 때에 구경하며 쫓아갔던 이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없는 가 우리는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 그 뒤를 쫓아갔던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멀리 갈릴리로부터 온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참 사랑을 안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들이 모두 구경하고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걸어갈 수 있는 이 길을 여인들은 통곡하고 슬피 울지 않고는 걸어갈 수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아십니까? 이들이 더 똑똑했거나 혹은 못났거나 더 열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이 여인들의 마음속에도 예수의 사랑이 심겨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 주님을 향한 사랑이 그 마음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들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셨지만 이 사랑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에 대해서 사랑으로 반응해서 사랑과 사랑이 손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대해서 사랑으로 반응하는 곳에 더 풍성하게 역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지 못해도 어떤 사람들은 감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냉담하게 구경하며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도 보십시오. 그 시대에도 가슴을 치고 찢어지는 마음으로 주님의 고난을 아파하며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의 결정적인 징표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인격의 특징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잠자는 성도들과 구원받지 못한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사랑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탐욕과 죄에 대한 욕망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불붙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안 사람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진정으로 체험한 사람들은 주님의 고난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그 놀라운 사랑이 그 십자가에서 나타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그 뒤를 쫓아왔습니다. 여인들이 운다고 예수님을 놓아줄 리가 없었습니다. 포악한 로마병정들은 예수님에게 다가오지도 못하도록 창, 칼로 여인들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쫓아가며 누구도 말릴 수 없게끔 슬피 울며 예수의 뒤를 따랐습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사는 동안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의 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복음의 앞길에 황금과 그리고 많은 부귀와 재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슬프고 가슴 아픈 일도 일어나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맛보셨던 영광과 영적인 놀라운 승리와 세상을 이긴 감격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의 뒤를 따라갔던 많은 사람들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교회에는 보이지 않는 골고다 언덕과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여인들이 울부짖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못 박히는 망치소리가 골고다 언덕을 울려 펴질 때에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거기서 피 흘리고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그 사랑의 감동과 감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고 이제 모였던 많은 사람들도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교회 속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의 뒤를 따라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참 신자가 되어서 예수의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 길을 따라가고 어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그 길을 철없이 걸어갑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제 기도와 삶으로 주님의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고 좁아도 참된 길을 걷고 힘들어도 영생이 있는 걸어가는 참된 신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