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과 기쁨주신 부활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눅 20:19-20)
녹취자: 임종찬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세 가지를 전해주셨습니다. 나타나신 후 제일 먼저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평강은 단지 편안함 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제자들은 3년 동안이나 예수그리스도를 열심히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능력과 그분의 권능, 그리고 그 분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었던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힘없이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물론, 주님은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누차에 걸쳐서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아무도 심각하게 그 말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예수그리스도는 사라져 버리시고,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모두 숨어버렸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미 살아계실 때부터 죽으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그러한 가르침을 공공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틀림없이 예수그리스도가 죽고 나면 제자들이 그 시체를 감추고 예수께서 평소에 가르치신 대로 부활했다고 헛소문을 낼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더더욱 제자들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안식 후 첫날 이제 사랑하는 제자들이 집에 들어가서 문을 모두 닫는 것입니다. 성경은 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말합니다. 여러 가지 문들을 모두 잠그고 그러고 거기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극도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평강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걱정과 극심한 고통과 고뇌는 자기의 뼈와 살을 말리는 것 같은 그러한 아픔을 지불해 본 사람들은 평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두려움과 염려, 불안과 고통 속에서 뼈를 말리는 것 같은 그런 깊은 어려움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강이 가져다주는 안식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제일 먼저 제자들에게 빨리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기시 전에는 먼저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내가 죽고 그리고 사람들이 너희를 박대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면 내가 부활하여 너희에게 왔으니 이제 너희는 안심하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못 박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였으나 이제는 그 두려움이 너희를 불안하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강은 하나님과의 화해로부터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과 삶속에 밀려오는 평안함, 이것은 단지 물질적으로 넉넉한 형편이나 혹은 환경적으로 평탄한데서 비롯되는 평안이 아닙니다. 이 평안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화해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를 기초로 하고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그 평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제일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평안입니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러면서 자기의 못자국 난 손과 창자국 난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향하여 비는 평안과 그리스도의 고난이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는데도 무엇 때문에 창자국과 못자국을 가지고 계셨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실 때 여전히 구멍 뚫린 옆구리와 못 박힌 손, 가시면류관으로 찢어진 흉터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주님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있을 때 절름발이였던 사람들은 거기 가서도 절름발이일 것이고, 얼굴이 찢어진 사람은 얼굴이 찢어진 채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부활에 관한 주님이 마땅히 우리는 모두 새로운 사람들이 되어 그래서 정말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는 거기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옆구리에 창자국과 손에 난 못자국은 부활하셔서 이 세상에 오신 동안에 가지고 계셨던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아나셨는데 그 하나님이 그까짓 뚫어진 옆구리 손에 난 못자국 하나 온전하게 하실 수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우대를 가지고 이 못자국 난 손과 구멍 뚫린 옆구리를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평안을 끼치면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못자국난 손과 그리고 창으로 구멍 뚫린 자신의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평강을 말씀하시면서 자기의 그 고난의 흔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화해로 말미암아 부활을 통해서 맛보게 될 성도들의 진정한 평강이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 이외에는 어디에도 평강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그리고 주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던 복음의 사도들이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성도들을 향해서 평강을 기원했던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맛보는 이 평강, 여기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넘치기를 기원하신 부활의 소식과 함께 전해온 평강의 축복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예수그리스도가 다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평강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이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심으로 평강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평강은 우리의 덕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그 허리에 창 찔리우시고 그 손에 못 박히시고 그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혼과 삶속에 넘치는 하나님의 평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토록 수많은 제물을 피흘려 죽이며 아버지 앞에 얻기를 원했던 것이 바로 이 평강이었습니다. 이 평강, 하나님과의 화해로 말미암은 진정한 평안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그토록 수많은 제사와 수많은 허물 속에서 주님을 사모하고 그 하나님 앞에 나오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늘 평강을 기원하시면서 당신의 못자국난 손과 그 옆구리, 그리고 가시면류관 쓰신 당신의 이마를 우리에게 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맛보는 모든 하나님과의 화목, 그리스도 안에서 맛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강을 우리들이 누릴 때마다 이것이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온 것임을 깊이 깊이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에게 보내주신 평강, 고난과 시련 속에 흔들리던 마음이 아버지 앞에 나와 기도하거나 예배할 때에 다시금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거룩한 평강으로 바뀌게 되는 모든 축복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역시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몸을 버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사신 어린양 예수가 영원한 찬송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평강이 없는 악인들, 평안을 누릴 수 없는 죄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서 자유와 평안을 주셨으니 이제는 이 평강을 깨뜨리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평강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이제는 고난 받으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것임을 깊이 인정하고 부활로 우리에게 주신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이 하나님과의 평강을 깊이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환경이 우리의 평강을 빼앗아 갈 수 없도록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붙들고 부활의 소망을 굳건히 하며 주님이 주신 평강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오셔서 두 번째 우리에게 주신 것은 바로 제자들이 평강을 기원하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이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찬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들은 거룩한 기쁨과 거룩한 환희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많은 공포가 이제 숨어있는 이들을 가득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리고 밖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색출하려는 그런 두려운 작업들이 계속 되고 있었지만 그래서 환경과 여건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지만 그 공포로 가득 찬 자리에 예수께서 오시자 그 자리는 거룩한 기쁨의 자리로 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삶에 우리의 고통하는 삶에 유일한 대안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어두움가운데 오실 때에 빛이 되시고 두려움가운데 오실 때에 찬란한 기쁨을 주시는 우리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오셔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한번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그 거룩한 평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사모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에 그 자리가 기쁨과 환희의 자리가 되었던 것처럼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어떤 두려움들로 인해서 여러분 속에 근심이 가득 찼을지라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삶속에 오심으로 그 자리가 거룩한 기쁨과 환희로 충만한 자리가 되도록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