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1:8-9)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바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신의 모습을 닮는 데까지 성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나고, 또 마지막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우리가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라야지만 그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기쁨이 있고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쌓여 갈 때 새롭게 인생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리고 또 하나님의 살아 계신 능력을 더 깊이 경험할 때 우리가 비로소 신앙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의 좋은 체험과 우리 인생의 질을 높이는 그런 유익한 신앙의 모든 체험들은 성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고 또 성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것들에게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빌립보서를 쓸 때에 바울은 옥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에 사는 이 사랑하는 교회에 편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많은 교회에게 편지를 쓸 때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그러나 이 빌립보 교회는 그야말로 바울에게 있어서 많은 교회를 설립했지만 그러나 특별히 마음속에 감사함으로 생각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그러나 이 빌립보 교회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참 큰 것이었습니다. 또 이 교회 교인들이 바울에게 또 하나님에게 바울로 하여금 이렇게 고난 속에서도 유독 이 교회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게끔 그렇게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바울을 참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어서 거기를 구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 고린도 교회 같은 교회는 인색했지만 빌립보 교회 같은 경우에는 참 풍성한 연보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그런 교회였습니다. 성장이 없는 곳에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아는 것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성장이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헌신, 이웃을 향한 진실한 수고, 교회를 향한 충성된 열심, 이런 것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이제 이 교회를 위해서 이 서신 첫머리에서 하나님 앞에 올리는 기도를 통해서 목회자와 또 혹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에 성도들을 향해 갖고 계신 진실한 소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먼저 사도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 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었고. 목회자였고, 전도자였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 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너희들 목자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너희를 향한 사랑과 그리고 너희를 향한 염려를 세상에 있는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서슴없이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다시 말해서 너희를 향해 가지고 있는 이 모든 내 사랑의 마음과 그리고 너희의 신앙이 자라기를 원하는 이 사모하는 모든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내 이 세상에 있는 언어로 어떻게 표할 수 있겠는가? 단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바로 내가 너희를 향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증인이시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얼마나 당신이 세운 교회,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그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모했는지 세상이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만이 내 증인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만이 내가 어떤 순수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고 나 개인의 일을 위해서 너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지를 하나님만이 알아주시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목자의 심정입니다 . 또 지체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무엇으로 바울은 족했습니까? 자기가 이 빌립보 교회 지금은 가고 싶어도 옥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갈 수가 없고 사랑해도 이 교회를 향해 자기의 사랑하는 마음을 자유롭게 전할 수 없게 된 그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깊은 사랑을 사람들이 몰라주고 또 이 교회를 향하여 고백할 수 없게 된 이 사정을 인하여서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는 자기의 진실한 목자로서의 사랑을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이 고백을 오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내가 교회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 내가 성도들을 진심으로 마음바다에 사랑하고 그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기를 원하는 이런 모든 마음들이 늘 좌절을 경험하고 그리고 낙심하게 되는 마음은 하나님만이 내 증인이라는 그런 고백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아시고 그리고 내가 내 마음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아끼며 지체들을 섬기기를 원하는지 그 것으로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자족하는 목자와 같은 마음이 영혼을 돌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이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참된 사랑 세상을 위해서 생명을 주기 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참된 사랑이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인정받았습니까? 예수그리스도는 쉼 없이 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영혼들을 목자 잃은 양떼와 같은 유리하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 내시기 위하여서 그들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긍휼히 여겼으나 과연 세상은 그의 생애 가운데 단 몇 번이나 그 예수의 놀라운 사랑을 알고 감격하고 예수의 사랑을 인정하여 주었습니까? 세상은 거의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에 응답할 줄 몰랐습니다. 언제나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오해되었고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은 사람들로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낙망치 않으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 하나님이 이 하나님의 양떼들을 향한 나의 진정한 사랑과 그리고 이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을 때에 아멘하고 순종했던 나의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 모두 아시리라고 하는 이 믿음이 날마다 예수그리스도를 붙들어 주었고 사랑하면서도 낙망하거나 실망치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랑을 이 바울이 오늘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셔서 우리가 그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랑을 따라서 살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그가 그 무리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사랑한다고 바울이 고백하는 이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 속에 있었던 이 교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기원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포악하던 한 젊은이가 죽어 가는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는 그런 사랑의 사도로 바뀔 수 있었습니까? 사람들을 투옥시키고 심지어는 스데반이 순교하는 그 비참한 절명의 순간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을 수 있던 말하자면 단단한 심장을 가진 이 돌멩이 같은 마음을 가진 이 젊은이가 어떻게 이제는 피도 살도 섞이지 않고 쉽게 만나 볼 수도 없는 이 빌립보의 이방인의 교회를 향해서 이처럼 가슴깊이 심장이 저려오는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놀라운 사랑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 이방인의 교회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방의 많은 짐승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불꽃과 같이 활활 타오르기 전에 먼저 사도 바울의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바뀌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전의 바울의 마음이 바뀌어져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바뀌어지고 이전에 흐르고 있던 이 사울의 더러운 모든 피가 빠져 나가고 그리스도 예수의 피가 그의 영혼 깊이 흐르게 되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의 그 놀라운 사랑의 의미를 바울은 병정들이 옆구리를 찔러 터짐으로 물과 피를 쏟아내었던 그리스도 예수의 최후의 심장에서 그 사랑의 의미를 찾아내었던 것입니다. 죄 없으시면서도 이렇게 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마지막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옆구리로 창을 넣었고 그 창은 깊이 뚫고 들어가서 심장을 터트렸습니다. 쏟아진 물과 피가 바로 거기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런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청년 사울의 가슴 속에 흐르고 있던 이 강퍅하고 그리고 모진 이 잔인한 피가 그리스도 예수의 그 놀라운 사랑의 피로 바뀌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심장으로 영혼을 사랑하고, 할 수 없는 죄인들을 용납하며 그리고 그들을 위해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인정 하나면 족하다는 신앙을 가지고 그는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없이 많은 곳에서 인간의 개조를 외치고 있습니다. 사람을 바꿔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바꾸어보고 인간을 개조해서 그 인간들로 하여금 보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살아가게 만들 것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심장이 바뀌지 않는 한 인간의 개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한사람이 예수의 놀라운 사랑을 알고 그의 죽음의 의미를 알고 그의 희생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변화의 역사가 잃어나지 않고는 결코 인간이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바울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일생을 그리스도의 예수의 심장으로 잃어버린 영혼들과 교회와 고통 하는 이웃을 위해서 살기 이전에 먼저 그의 심장이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바뀌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한없는 사랑이 자기와 같이 쓸모없는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비로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용납할 수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보십시오. 우리들에게 있는 모든 고통의 대부분은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경험되는 쓰라린 아픔들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단지 확신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달려가던 이 청년의 입에서
(찬양)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네
그 주옥같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한 때 그 포악하던 젊은이의 입에서 흘러나오게 만들었던 그 변화의 근원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예수의 넓은 사랑을 알기 전까지 가슴속에 있는 것은 확신과 포악과 핍박자요 훼방자 속에 깃들어 있는 악한 성품 이외에는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알았습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깨닫게 되자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뀌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고난의 시대를 헤치고 갈등의 파도를 넘어서 참된 사랑과 진실한 하나님의 샬롬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바뀌어지는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도 용서하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도 양아들로 삼을 수 있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심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도 이런 그리스도의 심장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험악한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도 우리들은 예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두운 시대를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우리에게는 예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늘 깨어지기 쉬운 우리의 결심과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지켜내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기고 승리하는 일들을 위해서도 불굴의 사랑으로 한 시대를 살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시는 삶의 자취를 남겼던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말했습니다. 아마 이것은 바울이 이 편지를 쓰면서도 쓰는 이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은 빌립보 교인들이었지만 그러나 이 구절을 적어 내려갈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이 편지를 적어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편지를 쓸 때 떠올랐던 기도가 아니라 옥 속에서 눈을 감고 그 외롭고 긴 날들을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떠올렸던 그 기도제목이었고 옥 속에서 외롭지 않고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며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그런 기도의 제목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의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케 해 주시기를 원한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사랑의 결핍을 심각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오히려 사랑이 풍성한 곳에서 부자유함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것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자 그는 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첫머리에서 하나님이 이들에게 사랑을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너희의 사랑을 위해서 나는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듣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그 사랑을 본받게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느끼고 또 체험하고 그리고 자신에게는 없는 그 사랑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장 강퍅하고 강철과 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귀신이 들어가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녹이고 역사하시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그 간증을 지난 주간에 들었습니다. 바울이 마음속에 이런 그리스도의 심장을 소유하게 되자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이러한 사랑을 갖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사랑이 단지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랑이 지식이 쌓이고 총명이 열려서 점점 더 그 사랑이 풍성하게 되기를 이 바울은 원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지식과 사랑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과 사랑은 그 사랑을 서로 풍성하게 한다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너희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놀라운 의미를 깨달아서 형제들을 사랑하게 된 이 놀라운 사랑이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져서 너희의 사랑도 놀라운 열매를 맺는 그런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고 바울은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숙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는 더욱 성장해야 합니다. 더욱 성숙해져야 되고 더욱 깊어져야 되고 더욱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가장 장성하신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읽고 듣고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를 원하는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그 지식의 깊이를 더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확신할 수 없고 인생을 살면서도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었던 그 모든 어두운 마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과 그 은혜를 체험하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역사하시고 또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어두운 눈이 열려져야 됩니다. 우리들의 어두운 마음들이 빛이 들어와야 됩니다. 인생을 바라보기에 혼탁하던 우리의 모든 지성들이 밝히어지는 성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느끼던 것들이 어린아이와 같던 데서 이제는 그 어린아이의 일들을 부끄러운 줄로 여기고 장성한 어른의 분량에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각하는 바가 이제는 어른과 같고 판단하는 바가 더 성숙하고 그리고 혼돈과 어두움과 무지 가운데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별해 내는 이 판단들이 가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판단과 신앙적인 평가를 의존하면서 그리고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살아갈 수 있게끔 될 정도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리고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분간해 내는 총명으로 점점 더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안에 있는 이 놀라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더 풍성해지고 더 놀랍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깊이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장이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바뀌어져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만이 우리의 증인이시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정신과 마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아는 충만한 지식과 총명으로 자라가서 우리에게 주시는 (잘림) 더욱더 역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기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 한 사람이 예수의 이 놀라운 사랑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은 바울이 이 복음 전파의 현장을 지나고 주의 진리를 묵상하는 가운데 그는 점점 더 뛰어난 총명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불로 사람들을 녹이고 사랑으로 뜨거워진 사람들에게 지식과 총명을 심어주어서 어두움 가운데 빛을 바라보고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는 지혜를 안겨 주었습니다. 진리가 있었기에 해방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도구들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성숙으로, 성숙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사랑의 깊이에 있어서 성숙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