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요한계시록 22장 20절입니다. 같이 우리 한음성로 읽겠습니다. 20절 시작 “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요한계시록 22장은 신약성경과 그리고 구약성경 모두의 마지막입이다. 신약성경의 마지막일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든 계시의 마지막장입니다. 창세기 3장이후로 인간이 타락해서 불순종하던 그 모든 일들이 3장서부터 21장까지의 역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다음에 이세상의 역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세력과 하나님께 불순종하고자 하는 양대 세력이 극심한 투쟁을 하다가 21장에 와서 최후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고 회복하시는 이 이야기가 기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어드린 20절은 이 모든 내용의 마지막입니다. 뒤에 있는 그 축도를 빼고 나면 진짜 20절이 성경내용에 있어서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에 모든 말씀을 증거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고. 하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겠다라고 하는 말씀으로 이 신약 과 구약성경의 모든 계시를 끝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그러한 징조를 미루어 볼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매우 가까웠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뭐냐 하면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보아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말씀하셨지만 그리고 그 말씀을 주시고 노아를 통해서 120년간이나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 하였지만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골몰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심판 하실 것이다. 라고 하는 아무런 긴장감이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그때에 하나님의 심판은 임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오실 때에도 바로 징조가 그러하리라고 예수님께서는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많은 사람이 긴장이 풀어지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가 곧 오실 것처럼 살아가지 아니하는 그러한 때가 도래할 것을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반듯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때는 매우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가 우주적으로 재림하셔서 믿는 자들을 불러올리실 그때도 가까웠거니와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이시기 전에 수시라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만나게 하는 거죠.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면 죽으면 곧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그리스도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더디 오시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 되었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또한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또한 잘못됐다고 지적 하시는 거죠.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의 입을 의탁하거나 빌리지 않으시고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렇게 주님을 기다리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셨더니 이 서신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렇게 기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사도 요한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즉시 아멘 대답하면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말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텔레비 연속극이나 혹은 노인 분들 가운데 그런 말씀하신 분들 말을 듣죠. 몸이 아프거나 그러면은 내가 아직 죽어서는 안 되는데 사도 요한에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 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도 요한은 이런 것도 준비가 안 되고 저런 것도 준비가 안 되고 이일도 저 일도 해야 하는데 주님 이 오시는 것을 내가 아멘 합니다. 만은 오늘은 아니옵나이다. 이렇게 하지를 안았어요. 주께서 오시겠다. 말씀하시니까 즉시 아멘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얼핏 생각하기에 그 밧모 섬에서 사는 귀향사라가 얼마나 고달팠으면 주님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그렇게 대답 할 수 있었을까 사도요한이 이 반모라고 하는 섬에 가쳐서 무의미하게 죽을 날만 기다리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반모라고 하는 섬에 가쳤어도 그곳에서도 남이 할 수 없는 귀한 일들을 모두 하였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세우신 교회들을 위해서 깊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깊이 교재 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그리스도예수가 교회의 관하여 들려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겨서 사람들에게 증거해 주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귀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요한도 알 수 없고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그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보여주시면서 그 교회들이 어떻게 잘못되었고 어떻게 잘되어서 어떻게 책망 받을만하고 칭찬 받을만한지 모두 계시로 일러주셨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빛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교회에 관한 비밀을 깨닫게 될 때에 그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이었습니까. 더군다나 그 편지를 통해서 에베소의 일곱교회들은 생명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가 반모라고 하는 섬에서 행하고 있는 일 가운데 주님을 위한 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그 반모라고 하는 섬에 가면 동굴이 있어요. 거참 기이하죠. 2000년이 지났는데도 사도요한이 쓰던 밥그릇이 거기 남아있습니다. 한번 그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깊은 동굴인데 다행히 빛이 들어오는 동굴이 예요. 거기서 요한이 거하던 그대로 그것이 2000년 가까이 지금도 보존되고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생명보다 귀한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러니까 요한이 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했지만은 주님 자신이 오시겠다라고 하는 일 말씀에 비하면 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이 일들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부유해서 그런지 골목에 나와서 손이 새카맣게 터가지고 땅바닥에서 뒹구는 아니들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만 해도 무슨 비디오가 있습니까. 텔레비전이 있습니까? 무슨 아이들이 즐겁게 놀게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그저 애들의 친구는 땅바닥밖에 없어요. 뒹굴어도 땅바닥에서 뒹굴고 땅바닥에서 기어 다니고 땅바닥 기어 다니면서 구슬치기하고 딱지치기하고 전부다 땅바닥에서 하는 것입니다. 기구라는 것이 없어요. 끽해봐야 공이나 하나 있죠. 그 중에서 어렸을 때 많이 하던 노리가 그 뭡니까 따뜻한 봄날이 되면 은 그러면 이제 콘크리트도 안 되어 있지 않습니까? 땅바닥에다가 요만한 그 뭐라고 하나 보자기나 요만한 돌멩이 같은 것 놓고 손으로 톡톡 퉁기면서 땅을 따먹는 놀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벌써 요즘 부동산투기하고 땅따먹기 하는데 옛날 애들한테 배운 것 같아요. 그걸로 땅을 따먹고 그러면서 비석치기를 하고 공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이 안질려고 아득 바득 하죠. 그렇듯 줄 한번 긋는다고 자기 땅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 안질려고 아득 바득하면서 싸우고 멱살잡이를 하고 그러죠. 그러다 해가 뉘였 뉘였지면서 골목 골목에서 엄마들이 나와서 아무 게야 저녁 먹어라 그리고 부르면 비석도 집어던지고 그다음에는 망까기 하던 것도 집어던지고 구슬치기 하던 것도 다 호주머니에 넣고 그리고 툭툭 털고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 밥 먹으러 와라 하는 그 한마디 말에 여태까지 놀던 모든 놀이에 중요성이 다 사라져 버렸어요.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리시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저를 부리실수도 있어요. 그리고 내일 여러분들을 부르실 수도 있고 다음 달에 우리를 부르실 수도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그 모든 즐비하던 것들과 그렇게 진지하게 씨름하던 모든 것들을 다 비석처럼 돌멩이처럼 구슬처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또 우리가 죽는다고 하는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라고 하는 사실이에요. 어느 때까지 땅따먹기하고 어느 때까지 구슬 몇 개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좋아하고 구슬을 뺏기 위해서 멱살잡이하고 골목에서 울고불고 그렇게 어린아이같이 놀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은 바로 골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주님이 이렇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실 때 아멘 하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요한이 어떤 어때기에 요한의 신앙이 어때기에 주님이 속히 오리라 말씀하실 때 아멘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요한 계시록 일장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 일장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일장 9절에서 말합니다. 1장 9절입니다. “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그랬습니다. 우선 사도 요한은 예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면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세상에 있는 부귀와 영화를 누릴 그때에 예수께서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할 때에 아멘 그랬습니까?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서 속히 오리라 말씀하실 때에 아멘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신다 말씀하실 때 아멘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많이 받고 오늘 밧모라고 하는 섬에 가치게 된 것도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거하는 일 때문에 밧모라고 하는 섬에 체포되어 구금되어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그리스도의 오시기를 사모하면서 아멘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수께서 오시는 것이 두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바로 오시는 것이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삶의 이유고 예수만을 위해서 살고 예수를 위해서 사는 것을 희망으로 여겼던 사람들에 최대의 소망은 예수님 자신이 직접 오셔서 전에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했으나 이제는 마주 대하여 보게 되는 그러한 은혜를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에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예수의 환란과 그리고 예수의 나라와 예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여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고 하는 섬에 있게 되었을 때 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말씀하신 그때에 그는 아멘 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신앙은 어느 한순간에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필연이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신앙이 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의 환란에 동참하면서 무엇을 사모 했습니까? 예수의 환란에 동참하고 예수의 나라와 고난의 참음에 동참하면서 무엇을 기다렸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를 인하여 가친자되고 고난을 받고 감시를 받으면서 그는 무엇을 원했습니까? 요한계시록의 어느 부분을 쓸 때에 그는 가장 가슴 벅차 했겠습니까? 주의 입에서 이 한 검이 나와서 이로운 검이 나와서 천하만국을 다 처서 평정하고 그렇게 평정하게 되자 보라 새 하늘과 새 땅이로다. 어린양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도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다스려 주시고 우리가 섬기고 예배하고 사모하는 그리스도 예수가 친히 오셔서 우리를 위해 다스리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러한 놀라운 때를 기다리며 고대 했습니다. 그러던 순간에 예수그리스도의 입으로부터 직접 적인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때 사도요한은 가슴 벅찬 언어로 아멘이라고 대답할 수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로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지막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신앙의 출발도 신통치 않았고 시작을 어디서 했는지도 알 수 없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던 그렇게 죄 많은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죄인을 불쌍히 여기셔서 기도 할 때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가복음 십장을 보십시오. 영생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그리고 구원을 얻는 거에 대해서도 염려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찌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말씀하실 때에 십계명을 말씀하시자 다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네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쫒을 지니라 말할 때 그는 슬픈 기색으로 돌아갔다. 그랬습니다.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 그는 진지하게 고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손에 붙잡히기를 거절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출발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죽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어디에 달렸냐면 어떻게 사느냐 거기에 달렸다 이거요. 응? 그래서 사도요한이 이렇게 평생을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환난을 참고 나라와 참음과 고난에 동참하면서 사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할 수 있었잖아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이렇게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가 말씀하실 때에 그것에 대해서 즉시 아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음성이 주님의 음성인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다가도 이단에 빠지는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는 양을 아느니라. 사도요한이 이렇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그 음성이 주님 자신의 음성인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렇게 일평생을 살아오면서 특별히 이 밧모라고 하는 섬에서 이 사도 요한은 이전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진실로 더 깊이 진지해지고 이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도 요한은 매우 진지해지고 그리고 더 깊고 신령해지는 세게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환란과 역경과 이것으로 말미암아 고독해지는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 깊고 신령한 세계로 더 들어가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바로 이것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깊이 신령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교재의문이 열리고 늘 하나님과 함께 가며 사귀니까 주님이 속히 오리라 말씀하실 때 즉시 그것이 주님 자신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리고 주님과 더 완전한 만남을 사모하며 기다렸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아멘 하며 대답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멘 할 수 없겠 끔 가로 막는 것이 이 세상에는 사도 요한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요. 예수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십자가에서 남긴 말씀은 내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이것이 주님의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이 이 계시록 마지막장 마지막절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일평생 이렇게 어느 때에라도 주님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자신 있게 응답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재 속에서 살아서 언제라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기다라는 여러분들이 되시길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의 삶이 향기로운 그런 재물과 같이 하나님 앞에 드려질 것입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한 음성으로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연약하고 부족한 저희들을 불러주시고 이시간도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나이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하오니 주여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오니 주께서 은혜를 내려주시고 도와주시길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사랑하는 모든 권속들에게 이처럼 사도 요한처럼 하나님을 기다리고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귀한 종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길 원 하옵나이다. 언제나 주님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하여 사는 종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은혜를 내려주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이 시간에도 붙들어주시고 도와주시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붙들어주시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새롭게 붙들어주시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예수그리스도 보내실 그날을 기대하며 이렇게 하나님 앞에 준비하며 사는 종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시간에도 우리들을 붙들어주시고 각 사람의 마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평강과 은혜를 주시고 주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길 간절히 빌 고원하옵나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렸삽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