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사랑의 목회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 1:9)
녹취자 : 오희열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나는 로마에 갔을 때, 바울이 갇혔다고 하는 감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감옥이 정말 그 감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회 밑바닥에, 물론 나중에 그 위에 교회를 지었을 것입니다. 교회 밑바닥 지하실에 있는 좁은 굴이었습니다. 거기서 사도바울이 이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바울이 칭찬을 많이 한 교회입니다.
9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우리가 여기서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목회는 기도로 하는 것이다.”입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훌륭한 사람도 목회를 위해서 기도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는 무릎과 팔꿈치로 하는 것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무릎은 기도를 뜻하고 팔꿈치는 공부를 뜻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목회에 있어서 기도의 전통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있던 교회입니다. 이런 것들이 현대에 와서는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회자들의 관심사들이 너무 흩어져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기도생활에 헌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할 때 기도는 목회를 위한 준비, 목회를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을 놓고 보면 기도 그 자체가 목회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기도 그 자체는 사역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사역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본을 따라서 여러분도 어쨌든 “목회”라고 이야기할 때는 기도가 가장 먼저입니다. 그래서 많이 알고 기도하지 않는 목회자보다는 조금 알지만 치열하게 기도하는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입니다.
요새 우리 교회가 몇 년 사이에 아주 은혜롭습니다.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두 달, 세 달 전에 오랜만에 교역자들을 여기에 모아놓고 책망을 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11년 동안에 열 번을 입원하고 아홉 번을 수술을 했습니다. 거의 해마다 수술을 한 것입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아주 탁월하게 건강해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건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새벽에 도착해도 아침에 샤워하고 강단에 올라가서 주일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쓴 책 가운데 40% 정도는 밤 12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 쓴 책이었습니다. 무쇠 같았습니다. 그래서 안 자고, 덜 먹고, 안 놀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월요일에 휴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월요일에 일정이 더 많습니다. 월요일에 교역자들이 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왔는데 한 11년 전부터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제까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주일을 제외하고는 새벽기도에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이렇게 나빠지고 수술을 1년에 두 번씩 하고 나니까 잠이 깼는데도 새벽기도 하러 교회에 나올 체력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부교역자들도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책망을 했고 많이 회개를 하고 새벽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월요일부터 사경회가 시작 될 때 새벽에 나와 보시면 알겠지만 모든 부교역자들이 새벽기도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월요일부터 제가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교역자들은 강대에 올라와서 기도를 하는데 그 아래에 중국의 목회자들을 위한 방석을 깔아드릴 것입니다. 거기서 기도해 보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니까 교회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혼자 있었고 매일 새벽마다 450명도 넘는 교인들이 모여서 열렬하게 사경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목회자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지 않습니까? 제가 젊고 신학 교수하던 시절에는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의 나이가 많이 들고 건강이 나빠지면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열심히 뿌려야 합니다. 이번에 목회수업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가시면 자신과 약속을 하십시오. “내가 최소한 두 시간 이상은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이다. 기도를 못해도 그 시간을 지킬 것이다.”하고 마음을 쏟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기도하노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대신 누구를 기도시키노라.”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남에게 시키지 않으시고 직접 하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러면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사랑을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목회는 사랑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도가 무엇인가? 전도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이다.” 그러면 목회는 무엇입니까? 그때 하나님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을 계속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호수에 나타나셨습니다. 거기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만 세 번 물어보셨습니다. 물어볼 때마다 희랍어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아닙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양떼를 사랑하느냐?” 묻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등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열렬히 등산하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목회자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반성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순간도 변한 적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늘 똑같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니까 “사랑을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μᾶλλον καί μᾶλλον, the more and the more) “점점 더 점점 더”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목회자의 인격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그리스도와 연애하는 사람입니다. 연애 해 보셨습니까? 지금 연애 중이신 분 손들어보십시오. 높이 들어보십시오. 연애를 하면,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어제까지는 새가 울었는데 사랑에 빠지고 나면 새가 노래합니다. 어제까지는 그냥 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는데 사랑에 빠지면 나무가 손을 흔듭니다. 사랑이 끝나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1970년대 미국의 Skeeter Davis라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듀엣의 여가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노래를 불러서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The end of the world”라는 노래입니다. 거기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노래)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왜 태양은 빛나는지
왜 파도는 밀려오는지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you said good-bye
저것들은 이 세상이 끝난 줄을 모르나봐
당신이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랑이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스물한 살 때 처음 회심을 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말할 수 없이 방황하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변했습니다. 사실 사람을 사랑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은 기쁨과 괴로움이 항상 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되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밀려왔습니다. 모든 세상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불변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외의 인간은 불변하는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제 손녀가 세 살이고 손자가 한 살입니다. 손녀가 처음에 태어나서 점점 자라는데 너무 예뻤습니다. 새로 연애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한 번 출근하면 밤늦게까지 집에 잘 안 들어갔는데 빨리 집에 가서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손녀가 점점 커지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합니다. 어디 가서 가게의 물건만 보면 사다가 손녀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조금 자라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애들은 젊은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기 고모는 너무 좋아합니다. 더 좋아하는 것은 자기처럼 어린 아이들입니다. “혜린아, 이리 와서 할아버지 사랑해요, 해야지.”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별로 안 좋아지게 됩니다. 옛날처럼 좋아하지는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딩동” 하고 벨을 누르면, “할아버지 온다!”하고 달려와서 안아줍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처럼 뽀뽀하고 매달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도 전처럼 집에 일찍 들어가서 보고 싶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손자가 너무 귀여워집니다. 손자는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온 식구가 누나에게만 관심을 가져주는데 저는 항상 가서 번쩍 안아서 흔들어줍니다. 너무 좋아합니다. 온 식구들이 인정을 합니다. 중국에 갔다가 닷새 만에 “딩동”하고 벨을 누르고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보행기를 타는데 한 3m 정도 떨어져있는데 저에게 돌진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식구 아무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 10개월 되었는데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흔드는 것입니다. 온 몸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니 나도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됩니다. 밖에 나와 있어도 손자가 더 보고 싶어집니다. 비서와 백화점에 갔는데 예쁜 여자아이들 옷을 보면서 비서가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런 것 보시면 손녀에게 사다주고 싶으시죠?”, “아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사랑은 변합니다. 또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목회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저마다 주님을 너무 사랑할 때는 목회가 너무나 재밌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이면 헤어지기가 싫고 기도하면 끝내기가 싫습니다. 말씀을 전하면 너무 잘 듣습니다. 제가 중국에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씀을 전해드릴까요?”, “길게만 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눈치가 있었기 때문에 두 시간 정도 하고 끝냈습니다. 약 20년 전에 중국이 굉장히 순수했을 때, 눈치 없는 한 한국 목회자가 추운 날에 중국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길래 무슨 말씀을 전해드릴지 물어보니 아무거나 좋으니 길게만 해달라고 하니까 밤 11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것을 다 들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중국의 어느 도시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600명이 매주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자가 없었습니다. 제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놓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목사를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목회는 너무 쉽고 재밌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했었는데 어느 한 순간부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부터 목회의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하지만 않으면 문제가 적겠지만 목회자를 괴롭힙니다. 지체들을 괴롭힙니다. 심지어는 악을 행합니다. 그럴 때 목회자가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해 보십시오. 목회의 가장 큰 보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복과 불행이 결국 사랑의 문제와 결합됩니다. 올바른 것을 사랑할 때 행복해지는데 올바르지 않은 것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불행해지지 않겠습니까? 끊임없이 그 사랑을 일어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정말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하고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웁니다. 일을 열심히 합니다. 모입니다. 매일 모여서 밥 먹고 애씁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목회는 성공적인 목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회를 너무 외형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인이 얼마나 모이는가? 얼마나 큰 교회건물을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커다란 빌딩을 건축했는가? 그런 것을 가지고 따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적으로 볼 때 그것이 목회의 본질입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방황할 때, 하나님이 싫어하신 이유가 성전이 텐트로 지어졌기 때문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는 첫째로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요, 둘째로 목회의 본질적인 목표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거짓된 사랑은 죽게 만들고 참된 사랑은 살아나게 만들고, 그래서 주님을 조금 사랑하던 사람이 주님을 점점 더 뜨겁게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이것이 저의 첫 번째 강의입니다. 두 번째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제가 말씀 드린 것을 가지고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목회는 기도이다. 목회는 예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점점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첫 번째 강의에 대해서 여러분의 반응을 보여 주십시오.
이하 중국 목회자들의 이야기 - 참고용
제가 중국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정말 중국교회가 허술합니다. 신학적으로도 허술합니다. 교회의 체계도 너무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작년쯤에 옌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거짓말 같은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목사님이 여기에 와서 간증도 했습니다. 교회를 짓는데 돈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새벽기도에 나오는데 못 보던 아주머니가 며칠째 나오더랍니다. 그냥 시골 아줌마였습니다. 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목사님.” 하고 부르더랍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OO사는 사람인데 친척집에 잠간 다녀오려고 왔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이 교회에 헌금을 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얼마나 헌금을 하시려고 합니까?”, 1억이면 60만 위안일텐데, 교회를 건축하다가 모자란 돈이 딱 60만 위안이었습니다. 우연이었겠습니까? 그것을 위해서 목사님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마련할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자기네 교인들을 살펴보면서 누가 헌금을 좀 할까 했는데 전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헌금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는 목회자들은 매일매일 기적을 봅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허술해 보이지만 이런 기도로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 자매님이 간증한 것과 유사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이 자기 어머니의 기도를 늘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많이 기도하셨답니다. 한국 교회도 그런 기도 때문에 이제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전통이 끊어져 가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중에 하루에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분이 몇 분이나 되실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나처럼 살인적으로 바쁘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 유명해지고 나면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게 됩니다. 여러분은 정말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두 분 정도만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두 번째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