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지식, 총명
“내가 예수 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8-9)
녹취자 : 오희열
오늘 이 편지를 쓸 때 사도 바울은 로마의 옥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옥 속에 있는 사람이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열여덟 번이나 썼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신비한 측면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기쁨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옥 속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빌립보 교인들을 예수의 심장으로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뜨거웠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간절한 사랑을 가지고 그는 빌립보 교회를 위한 자신의 가장 큰 기도의 제목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이것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에게서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의 착한 행실이 그들을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여러 가지 착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7세기의 신학자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선하다고 부르려면 그의 의도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그 일을 진정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의도를 가지고 그 일을 했을 때는 선이지만, 다른 것을 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그 일이 이루어져서 누군가에게 이익을 주었다고 하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 드릴 선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그가 하는 일이 선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바칠만한 선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런 선과 악을 동일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왜 사랑이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거스틴은, "전도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복음화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자의 성화란 하나님을 더 뜨겁게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정의는 바로 그런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안에 끊임없는 사랑이 충만하게 풍성해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복음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충만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임을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역의 열매는 큰 교회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의 열매는 그 사람이 얼마가 모이든지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없었던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서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 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오늘 사도바울이 했던 것처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기도하노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할 가장 큰 기도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교회가 사랑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순수한 사랑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 그 사랑에 감격하는 것, 우리가 만일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 자신은 주님을 향한 이 사랑으로 충만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섬기는 많은 사역들은 가식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환경이나 형편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기억해 보십시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모두 멸망했습니다. 그때 그는 그 멸망당한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꺼져가는 사랑에 불을 붙이는 작업이고, 식어가는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의 불을 붙이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의 마음속에는 열렬한 기도가 살아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 어떻게 그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게 될까요? 사도는 그것을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지식이 사랑으로 하여금 점점 더 풍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랑과 지식은 서로 반대된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커지면 가슴이 식어진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지기 위해서는 지식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지식은 사랑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알게 될 때, 그 지식과 함께 역사하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사랑은 점점 더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지식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풍성해지지 않는다면 지식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지식을 전달받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지식을 역사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가 몰랐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해 주실 때, 우리의 마음은 불붙고 당연히 그 사랑은 풍성해져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불길이라면 지식은 공급되는 연료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거운 사람들은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탐구하고 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때 이 지식은 사랑을 점점 더 불일 듯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총명입니다. 이 총명이 무엇일까요? 이 총명은 이성(理性)의 기능이 아니라 오성(悟性)의 기능입니다. 이 총명은 믿음을 통해서 믿음이 없었더라면 볼 수 없었던 지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맨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해 주셔서, 이 세상을 하나님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총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성의 탐구라면 총명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학문에 대한 이성의 노력과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에 의해서 계속 불일듯 일어나 점점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의 도우심이 주어지는 것일까요? 첫째로 기도해야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을 잘 탐구해야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속에 이 사랑이 풍성해 질 것입니다. 이런 풍성한 사랑 속에서 주님을 알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