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마음을 토하라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시 62:7-8)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시편 62편은 다윗의 시로서 찬송을 겸한 탄원의 시입니다. 표제에 보면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는데 ‘여두둔’이라고 하는 사람은 다윗 시대의 성막 혹은 성전의 성가 지도자였습니다. 또, 동시에 왕의 선지자이기도 하였으니 역대하 5장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자기를 도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분께 마음을 토하라고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통해서 하나님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시고 자신의 마음을 쏟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쇄신시키시는 지혜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II. 우리의 구원과 영광
A. 구원과 영광이심
제일 먼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시인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과 영광이기 때문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하나님이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과 영광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육적인 구원을 많이 지시합니다. 그래서 결핍이나 시련, 박해, 그리고 전쟁의 위험, 이 모든 곤경과 환란으로부터 하나님이 구출해 주시는 것을 가리켜서 그것을 구약에서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구약은 항상 우리의 구원을 육적이고 환경적인 것으로만 보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구원을 말함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은 아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서는 우리를 육적이고 외적인 환경으로부터 구출해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로 나아가고, 신약에서는 본질적으로 이 위기와 시련, 환란과 슬픔, 죄의 궁극적인 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영적인 구원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그래서 그 구원하신 자기의 백성들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육적인 구원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은 육적이고 외적인 구원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이고, 그리고 내면적인 구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고, 신약에서는 영적인 구원을 통해서 우리의 육적이고 환경적인 것까지 돌보는 하나님의 구원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이 시인이 자기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노래하는 것은 오래도록 살아온 신앙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양떼를 치면서 아버지 집에 목자로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커다란 환란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악한 짐승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위협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소년적인 신앙을 가졌지만 일단 하나님의 종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나서 하나님의 큰 사랑과 성령의 감화도 있었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역경을 헤치며 그렇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수시로 대적들에게 에워싸였고, 핍박을 받았고,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과정뿐만 아니라 임금이 된 후에도 그는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 중의 어떤 것들은 애매히 당하는 고난이었고, 어떤 것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마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 없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이 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도록 만들었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의 육적인 여건뿐만 아니라 영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를 구원해 주심으로써 하나님만이 자신의 구원이시라는 확신을 갖도록 그를 훈련시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곤란과 그리고 역경에 처해 있습니까? 육적이고 환경적인 형편은 어떠하며 더욱이 여러분의 영혼과 정신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이러한 모든 어려운 역건 속에서 하나님을 앙망함으로써 여러분을 구원 받게 하시려고 이 모든 상황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 모든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구원이라고 노래하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인 다윗처럼 시련 속에서 구원을 받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구원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역경 속에 있어도 거기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여러분을 구원해 내심으로써 오히려 그런 어려움이 없었더라면 새롭게 될 수 없는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 여러분의 삶을 고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이 영광은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황당하게 벗은 발로 왕국을 빠져나가 도망을 쳐야할 그때에 그는 하나님 앞에 눈물을 쏟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탄원을 올렸습니다. 그때에 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요, 내 영광이십니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이 자신의 방패요 그리고 자신의 영광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혹은 자신의 죄를 인하여 징계를 받으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찮은 자로 여기고 짓밟히지마는 그러나 그들은 시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이 형통하던 때에 시인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그냥 시인에게 짐짓 칭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시인을 사랑했고 그래서 그 모든 수치를 벗겨 다시 그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과 환란 속에 처했을 때,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을 때에, 때로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짓밟힐 때에 하나님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의 스스로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징계를 받음으로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졌다고 하더라도 그 수치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 붙어있는 모든 자녀들에게 영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영광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의 영광은 잠시 있다 사라질 인간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영광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잃어버릴 때에 수치도 매우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영광스럽고 존귀한 삶을 꿈꾸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소중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 모든 영광이 주님과의 관계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 분을 깊이 의지하고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인간의 아름다움은 육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혼의 아름다움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취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아름다움이 영혼의 아름다움에 있다면 그 영혼의 아름다움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최고도에 달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선한 의지의 크기에 달려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십자가의 사랑에 감사하며 어떻게 나의 일생을 묶어서 우리 하나님께 드릴까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착하고 어진 마음의 크기, 그것이 곧 한 사람의 존재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과 영광이시라는 사실을 시인이 노래한 것은 정확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과 영광도 하나님이십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여러분이 있습니까? 오늘 그 주님께 피하여 존귀와 영광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B. 반석과 피난처이심
시인은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반석과 피난처라고 노래합니다. 반석은 탄탄한 돌멩이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라고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 반석이 없이 우리의 인생을 설계한다면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날 때에 그 모든 것들은 무너짐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집을 짓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힘의 반석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힘의 근거로 삼는 것입니다. 근거 없는 힘은 무능하고 혹은 무능하지 않고 유능한 때에라도 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모든 힘의 반석을 둔 사람은 강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올바릅니다. 힘이 모두 좋은 것이 아니라 힘이 올바르지 않으면 그 힘은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그 힘을 공급받고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늘 구원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피난처라고 말합니다. 위기와 환란 중에 시인을 숨기셨고 때로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도록 큰 바위에 감추시고 악인들이 시인을 공격하려고 해도 그 바위에 은폐하고 엄폐함으로 그 모든 환란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반역에 성공하고 많은 백성들이 등을 돌리고 다윗은 사람들의 저주를 받으며 죄를 무릅쓰고 황망히 남의 나라 땅으로 도망을 갈 때에 다윗은 끝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련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께 마음을 토하며 은혜를 구하는 이 시인의 간구를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품에 피하는 그를 그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큰 환란의 폭풍 속에서 오히려 당신의 품에 피한 이 시인 다윗과 사랑을 나누시며 위로와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자기의 반석이시며 피난처이시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고백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련과 고난, 배반과 반역이 없었더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그 품안에서 반결하는 진리의 비밀들,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를 발견하며 이후의 인생을 하나님을 향해 살기로 결심할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자백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까? 우리가 비록 완벽하게 완전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수시로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바르지 않은 우리 자신을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올바르도록 교정하며 반석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피할 바위이신 그 분께 피난한다고 하는 것은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가능한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반석이시오, 피난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시련 속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러워지기를 기대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다면 여러분에게 다가온 시련과 환란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시련을 당한 시인의 구원과 영광이기 때문에 시인은 이 구원과 영광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수시로 쏟으며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 시련과 고난이 바뀌어 하나님 앞에 커다란 은혜의 기회가 되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이 지혜를 토대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백성들아 너희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토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험은 놀라운 증거의 능력이 있습니다. 남이 만난 하나님을 아름다운 말로 변호하는 것보다는 내가 만난 하나님을 투박한 말로 증거하는 것이 오히려 커다란 힘이 있습니다.
III. 네 마음을 토하라
여기 ‘토하라’고 되어 있는 히브리어 ‘샤파크’(שָׁפַךְ)라고 하는 단어는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물 같은 것을 양동이나 혹은 바가지 혹은 댐의 수문 같은 것을 열어서 확 쏟아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역을 한다면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는 뜻입니다.
A. 인간의 마음
인간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원래 인간의 존재는 두 개의 실체, 곧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영혼에 속한 것도 아니고 육체에 속한 것도 아닙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영혼은 실체가 아닌 영혼의 작용인데 이것이 육체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들을 다루는 학문을 수반 물리학이라고 합니다. 무슨 듯이냐 하면 우리가 분노하게 되면 이상하게 혈압이 올라가고 피의 흐름이 빨라지고 그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혈액이 끈적끈적해지게 됩니다. 이에 비해서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우면 온 몸과 근육의 긴장이 풀어지고 그리고 온 몸의 피와 모든 이 자율신경 계통들이 안정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은 영혼의 작용이면서 육체의 영향을 줍니다. 또, 평소에는 서럽지 않다가도 이상하게 춥고 배고프면 서러운 마음이 더 많이 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결국은 육체에 끼친 영향이 마음에 영향을 주고,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에 영향이 미칩니다. 영혼에서 일어나는 어떤 변화들이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마음에 일어나는 영향은 또 육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커다란 역경을 만나서 절망 상태에 빠져서 죽기 직전까지, 자살하기 직전까지 가게 되면 온 몸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랑할 때에, 기쁠 때에 솟아나는 신경 물질과 분노하고 억울하고 죽고 싶을 때에 솟아나는 이 신경 계통의 이 물질들이 각기 다른 물질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몸과 영혼, 육체 이것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 돌이키라고 말씀하실 때에 마음을 돌이키라고 말씀하시지 영혼을 돌이키라, 영혼을 고쳐라 그렇게 말씀하시지를 않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영혼은 우리의 소유권이 거의 미치지 않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우리의 자아가 만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어떠한가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크게 두 가지의 작용이 있는데 하나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고 하는 지성의 작용이고 또 하나는 무엇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욕망하고 그것을 결심에 옮기는 의지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지정의라고 세 가지를 이야기하지만 정이라고 하는 것은 의지 쪽에 붙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만나면 지성과 의지가 있어서 이것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작용을 함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가지고 아주 저급하게는 배설하고 먹고 마시는 저급한 작용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아주 고상하게는 사람의 영혼과 또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높은 정신의 작용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작용들이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마음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고 악마와 천사의 차이입니다.
이 마음은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생산해 내는 공장과 같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공장에서 수없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듯이 그 마음에서 수많은 말과 행동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는 투신술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가 쏟아놓는 말이나 작은 행동, 무의식적인 모든 움직임까지를 보면서 그게 마음과 어떤 연관인지를 읽어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못 읽은 그 사람의 마음을 혹은 본인 자신도 못 읽는 마음을 다른 사람은 읽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삶을 아무리 올바르게 하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이 굽어 있으면 게가 자식들에게 똑바로 가라고 가르칠 수가 없는 것처럼 인간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를 믿는 것도 결국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사람으로 지으신 목적이 있을 텐데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지만 행복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겉으로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이 그런 식으로 살 마음이 없다면 이것이 항상 부조화가 생겨나고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일치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겉모습으로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고,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 봉사하고 이런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그러한 것에 딱 합치되지 않는다면 또 마음이 합치되어 있어도 행동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신 목적대로 행동하지를 않고 잘못되게 행동한다면 둘 사이에 불일치가 일어나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카메라도 있고 찍힐 사람도 있는데 초점이 맞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삶에 일치와 말하자면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꾸는 것은 결국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 은혜를 주셔서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그 모든 성향과 태도들을 바꿔서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적인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이 사랑해도 좋다고 하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끊임없이 변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육체와 영혼이 만날 뿐만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과 이 땅의 세계가 만나는 곳이고, 또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가 만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많이 주시면 완악했던 우리의 마음은 유순해지고 거칠었던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집니다. 바위처럼 돌멩이처럼 굳어졌던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운 흙처럼 변화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던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그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여 인격적으로 삶에 있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이것이 결국 인간의 마음으로 끊임없이 스며들면서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해 놓으신 원대한 계획을 따라 살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행복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선하고 악한 것들이 섞여서 서로 분리하고 이러해서 결국은 마음속에서 두 개의 본성이 싸움을 하고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이 모든 속에서는 그 전쟁터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는 것입니다.
B. “마음을 쏟음”
그러면 현실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놀라운 평정과 하나님 사랑, 은혜, 자비, 진리 이런 것들만 바라보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희의 마음을 쏟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쏟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토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혹시 판단을 잘못해서 상한 음식을 먹거나 무엇인가 익지 않은 음식을 먹거나 해서 우리 몸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재빨리 우리 몸은 그 음식에 대해서 판단을 내립니다. 이게 우리 몸에 머물러도 충분히 괜찮은가 아니면 위험한가 생각이 됩니다. 우리의 몸이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리면 온 몸에 지시를 해서 수분을 모두 창자에 보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물이 나왔는지 온 몸에서 수분이 다 동원되어 가지고 이제 창자로 집결을 합니다. 그리고 창자를 꽉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꽉 채워서 강한 힘으로 확 밀어 내밀어 버립니다. 그게 바로 설사입니다. 그래서 설사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나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람 마음대로 하게 하면 몸이 망가집니다. 설사 증세가 확 나면 변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빨리 화장실을 찾아서 앉자마자 확 쏟아지는 것입니다. 어디서 그런 많은 물이 동원되었는지 어마어마하게 쏟아집니다. 쏟아지고 나서 그 다음에 다시 속이 스스로를 점검해서 아직도 남아있으면 남아있는 비상 수분까지 모두 동원해서 창자로 모두 모아 다시 쏟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심지어는 나중에는 탈수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때는 빨리 수분을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보충된 수분을 다시 또 창자로 직결시켜서 해결될 때까지 쏟아냅니다. 그게 우리의 몸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 방어의 기능들이 우리 몸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기능이 없거나 망가져서 썩은 음식, 상한 음식, 심각하게 균에 오염된 음식이 우리의 뱃속에 머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속을 다 망가뜨릴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그런 음식이 우리가 어떻게 완벽하게 좋은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일본 생선 안 먹는다고 일본에서 난리라고 하는데 웬만하면 먹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이 우리의 몸속에 들어가서 배출이 안 되고 우리의 몸속에 쌓여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특히 여러분, 암에 걸리신 분들은 보면 살아온 이력을 쭉 추적해 가면 반드시 암에 걸릴만한 환경에 노출되었던 경우가 있는 분입니다. 공장 옆에 있었다든지 아니면 화학 물질에 노출된 일정한 직업에 종사했다든지 등등 있습니다. 그래도 발견이 안 되는 분들은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전자가 그런 유전자가 있어도 그래도 환경이 워낙 깨끗하면 사실 유전자가 잘 발동을 안 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개가 함께 만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자, 만약에 우리의 육체가 그러하다면 마음속에 무엇인가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나고 악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 인간을 향한 미움, 어쨌든 이런 것들은 영혼에 치명적으로 좋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마음이 배출하지 않고 계속 품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서 그것을 충분히 녹여 버리든가 아니면 그것이 결국은 마음속에서 확장되어 결국 부패해 버리든가 그렇게 해서 마음 자체가 부패하게 되면 마치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비행기처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냐 하면 매일 매일이야 그럴 수야 없을지 모르지만 시시때때로 우리의 마음에 있는 악한 것, 혹은 하나님의 은혜의 질서에 어긋나는 것, 심지어는 명백하게 죄가 아닐지라도 헛되고 가치 없는 생각, 마음 이런 것들을 확 쏟아놓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을 오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 토하라”라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 안에 있는 은혜의 질서에 어긋나고 악하고 혹은 미워하고 하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 그리고 헛된 인간의 욕망 같은 것들은 우리 스스로 가장 잘 모르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한 사람이 영적으로 뛰어나다 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을 때 그 사람이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내가 아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됩니다. 이게 바로 반성이고, 이것이 바로 회개이고, 이것이 성찰입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언제나 자기편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버려도 끝까지 자기를 사랑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는 언제나 자기편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항상 옳다면 우리가 항상 자기편이 되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종 우리와 대척점에 서야 합니다. 이게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쏟을 때 그 마음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향한 집중인데 그 속에서 죄 된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마음을 집중할 때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는 죄 된 우리의 마음을 거기에서 쏟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마음을 시시 때때로 쏟는 일이 없이는 그가 아무리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났다고 할지라도 그는 나쁜 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시시때때로 쏟는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릇된 우리의 마음을 고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길을 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하고 마음을 쏟는 일이 결코 없이 외적으로 도덕적이어 보이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때때로 넘어지지만 이렇게 마음을 쏟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회개하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더 올바른 사람들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는 가장 탁월한 표현은 간절한 기도입니다. 입술로 올리는 기도, 마음과 동떨어진 형식적인 기도는 결코 우리의 마음을 쇄신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기도에 의해서 쇄신되기 위해서는 단지 기도하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진실해지는 것, 그리고 열렬히 기도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말은 오히려 우리를 형식적으로 만들고 우리의 기도를 경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치 우물이 거의 말라갈 때에 두레박을 깊은 우물에 던져서 그래서 간신히 물을 길어 올리듯이 기도의 은혜가 메마른 사람 깊은 곳에 기도의 두레박을 던져서 그것이 비록 여리고 어눌한 말이라고 할지라도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한 마디라도 하나님 앞에 쏟아놓고 그 쏟아놓는 그 태도가 하나님 앞에 열렬하고 간절할 때에 그것이 죄인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그의 부패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날에 손으로 기름을 짜는 기름집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제 틀에다가 깨를 볶아서 넣고 그리고는 장정들이 그 휠을 돌리면서 압착을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기름이 나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더 짜기 위해서 커다란 바퀴를 돌리며 기름을 내립니다. 이런 태도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짜서 우리 하나님께 드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질서에 어긋난 마음을 버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토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믿고, 알고, 섬기고, 사랑하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IV. 결론과 적용
우리가 이렇게 사경회를 하는 이유는 엄밀하게 말하면 늘 하나님 만나야 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야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일상적인 생활에 익숙해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에 이렇게 특별한 기회를 만들어 마음과 정신을 집중하게 하고 또 몸으로 실제로 모이게 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밥 먹지 않을 때에 그 밥 안 먹는 버릇을 고치는 방법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잔인한 방법이고 또 하나는 자비로운 방법입니다. 잔인한 방법은 뭐냐 하면 배고파 쓰러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 주는 것입니다. 의사들이 권장하는 방법입니다. 일체 먹을 것을 치워버리고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이틀쯤 지나면 배고파 못살 지경에 이릅니다. 그래서 눈에 먹을 것이 떠오를 때 그때에 조금씩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뭐냐 하면 아주 맛있게 먹는 친구들과 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맛있게 많이 먹으면 얘도 샘이 나서 자기도 한번 먹어보고 그렇습니다. 밥을 먹자고 식구들이 강권하는데 너무 먹기 싫어서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식탁에 앉았는데 가족들이 물에 말은 밥을 입에 떠 넣으며 잘 익은 총각김치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광경을 보면서 왠지 얼마나 실까 하면서 침이 돌고 자기도 한번 따라해 보니까 그래서 먹을만 해보는 경험이 우리들에게 흔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경회를 우리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일상 속에 헤이 해졌던 우리의 신앙을 잠겨서 다잡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지체들을 보면서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삶을 사는 저 사람도 저렇게 하나님 만나려고 몸부림친다면 그러면 이렇게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자신도 기도할 마음, 말씀을 먹을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심으로 마음을 쏟으며 자기를 찾는 자들을 향해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역경에 처해 있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고, 그가 죄에 빠졌다면 용서해 주실 것이고, 그가 오류에 빠졌다면 진리의 말씀을 보내어 올바른 길을 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찬양)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모든 나쁜 것은 여러분이 악해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을 의지해서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이미 들어온 나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사용하셔서 오히려 좋은 것으로 바꿔 달라고 하나님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리고 중심을 하나님께 토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은혜의 길을 보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