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깨닫게 하는 기도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시 119:169)
녹취자: 박연주B
제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문학작품이 성냥팔이소녀였습니다. 지금 기억에는 아마 학교들어가기 전 7살 때인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깨쳤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학교가면 거의 50%이상이 한글을 다 안다고 하는데 그때는 텔레비전도 없기도 했던 때였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았고 오히려 4,5학년이 되어도 한글을 못 깨우친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정확하게 생각은 안 나는데 1학년 때 일수도 있고 1학년이 채 되기 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잡하게 생긴 껍데기로 된 성냥팔이 소녀라는 그 요즘으로 북한에서 나온 책 같은 그림으로 된 그 그림이 나에게는 너무 화려하게 보였습니다. 그 성냥팔이 소녀를 읽고 몇 달 동안을 환타지 속에서 보냈습니다. 눈만 감으면 골목, 성냥불, 지나가는 사람, 성냥팔이 소녀의 죽어가는 마지막의 가엾은 모습, 꿈, 이런 것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것이 후일에 문학작품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전 굉장한 태어나서 7살짜리가 받은 문학적인 감명인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표현력이나 그것을 주기만 했지 대화를 해 준 것은 아니었으니까 부모님은 시골에 계시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늘 왜 이 말씀을 드리냐 하면 우리가 태어나서 수많은 책들을 읽잖아요. 정말 우리의 마음을 깊이 적시고 지나간 작품, 손으로 꼽을 정도의 더구나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지나간 하나님의 말씀 정말 드물잖아요. 그런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늘 아침 영적 지도력이라는 것을 많이 이야기 했는데 영적 지도력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네가 어젯밤에 무엇을 했는지를 알아. 너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지?”라는 것은 지도력이라기보다는 신통력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목사가 아니라 궁예지 영적인 지도력이라는 것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데피니션이 다르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하나님의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게 하는 힘 이것이 영적인 지도력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잘 담겨져 있는 소스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책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굽이치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력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전수받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원하시는 바가 자기 마음 안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것이 그것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갖고 사람들을 설득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것이 영적인 지도력이다.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영혼을 섬기는 자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말하지 아니하고는 배길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큰 복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복입니다. 그것이 그칠 때 목자가 황폐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한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부르짖음이 주 앞에 이르게 하시고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해 주옵소서 시편 속에서 간절한 기도 제목은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깨달음은 무엇이냐 그것은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깨닫는다는 말을 자주 쓰게 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깨닫는다는 말은 우리들이 사물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일반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됨으로써 우리들이 표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표상이라는 것은 인식론적 착오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어떤 물건이 있다 생각될 때 그때 물건이 물건으로 보이면 되는데 물건에 욕망이 덧붙여서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표상입니다. 돈이면 돈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즐겁고 좋은 영화와 기쁜 일 이런 것들에 대한 상념이 쌓이면서 사실 돈이 갖고 있는 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것처럼 보여서 이것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를 끊을 수도 있고 하나님을 배신할 수도 있고 등등의 생각이 들 때가 이것이 표상입니다. 모든 인간의 욕망은 표상과 함께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자기의 고백록 속에서 인간이 범죄 하게 되는 것은 그 마음이 정념이 고루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음의 정념이 모두 있어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불의에 대해서 화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용서하는 마음도 있고 모든 마음이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느 한쪽으로 찌그러지면 정념의 곧음이 상실될 때에 인간의 마음이 균형을 잃고 출렁거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선택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 문제를 가지고 오게 됩니다. 또 하나는 그것 때문에 가치의 질서를 뒤집어엎게 됩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들어오면 그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까짓 것들이 무엇인데 표상을 걷어갑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보다 나를 더 높였던 내 꿈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하찮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의 질서를 다시 새로 잡게끔 하나님이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경험의 깊이는 모두 다릅니다. 예를 들어 여름에 두 달 석 달 동안 비가 안와 전국에 건조주의보가 내려 땅이 지금은 다 포장되었지만 옛날에 마른땅을 그때는 걸어가면 먼지가 퍽퍽 납니다. 근데 갑자기 하늘이 새카매지면서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면 그래서 도랑을 이루면서 물이 흘러갑니다. 온 세상이 물난리구나 얼마 있다가 비가 딱 그치고 햇살이 환하게 납니다. 집을 짓던 사람들이 땅을 파면 커다란 곡괭이로 쾅 하고 내리찍으면 먼지가 퍽 납니다. 5센티만 물에 젖었고 스며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은혜 받았다 눈물을 흘리고 이런 말씀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상쾌하게 돌아가지만 그건 표피입니다. 껍질입니다. 봄에 비가 보슬비가 계속 오면서 얼은 땅을 녹이는 것입니다. 여러 날 계속 내립니다.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물이 들어가면서 해동을 촉진합니다. 땅 자체가 얼음으로 뭉쳐있던 것들이 느슨해지면서 녹기 시작합니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 어느 시점이 되면 곡괭이를 꽉 찍으면 푸욱 들어갑니다. 발아래 삽을 넣고 기분 좋게 삽이 쑤욱 들어갑니다. 땅 파기가 굉장히 쉬워집니다. 문제는 얼마나 하나님 말씀 듣고 외면적으로 열광하고 눈물을 흘리고 데굴데굴 구르는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를 받은 깊이를 증거 하는 것은 아닙니다. 깊이를 증거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깊이 스며들어가면 그래서 결국은 그것이 주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은 그것을 단독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부르짖음이 주 앞에 이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기도의 영으로 꽉차있는 마음의 상태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지 간에 거기에는 깊은 감동과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하나님을 갈망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자기가 갈망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반영하는 한 그것은 그의 마음을 언제나 움직이는 신랑의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학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부지런히 성경을 탐구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면 일부러 그렇게 하라 해도 절대로 설교시간에 객소리나 엉뚱한 이야기를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교회에 미국과 유럽에서 교수들이 와서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의 정도나 은혜의 정도는 달랐지만 객소리 하고 있구나. 신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저게 설교야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기본적으로 철저히 공부를 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안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방식으로 해야 됩니다. 박사학위 받고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진 않습니다. 마음을 움직여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심겨지도록 말씀의 곡괭이가 마음깊이 파고 들어가도록 만들어져야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사역이 피상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그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강퍅한 영혼을 위해 많이 기도하는 사람들의 눈물은 언 땅에 내리는 이슬비와 같습니다. 그래서 한 번의 기도로 그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변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마음의 그리움이 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도를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그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서서히 녹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마음으로 되기까지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회사역이 보이지 않는 데서 하는 사역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역이 얼마나 피상적인 사역인가 무슨 일이 떨어지면 그것이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툭 치고 그 안에 생명이 없잖아요 눈물도 없고 탄식도 없고 사람들의 마음들의 마음을 묶어 자기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일을 위해 헌신하도록 만들어 주는 그런 내적인 은밀함과 묶음도 없습니다. 일은 언제나 일대로 돌면서 급기야는 하나님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한 일을 하나님 사랑을 방해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매우 잘못된 방식입니다. 섬김이고 사역입니다. 나는 그런 말할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이 눈물을 흘리고 기도해주어도 변화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쉽게 영혼들이 강퍅하다 마음이 굽었다 그렇게 판단하면 안 되고 기도의 단비가 모자랐구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마음을 쏟아서 하는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을 증가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의 마음은 기도의 은혜의 젖어있는 마음의 밭 그기에 말씀의 씨앗이 떨어질 때에 많은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기경하고 자신의 마음을 기경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열매를 많이 맺는 신앙생활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