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깨어있으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6)
녹취자 : 오희열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마음을 가볍게 하여야 한다는 것과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생활의 염려, 우리 삶의 방탕함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일들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36절을 주시기에 앞서서 “이 날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다시 말해서 마지막 때가 되면 이 세상의 염려로 사람들의 마음이 무거워지고 자기를 주인 삼으려 살아가는 삶의 방탕함 때문에 무거워진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데, 과연 이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문명의 이기는 사용하지 않으면 너무 불편합니다. 사용에 익숙해지게 되면 문명의 이기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들이 엄청난 물질문명을 자랑하고 첨단과학으로 우리의 몸과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의 삶의 질이 풍부해졌느냐고 한다면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오히려 무겁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탐닉하는 것들이 우리의 정신을 갈라놓아서 우리 마음의 무게가 됩니다. 그 무게는 어거스틴의 말에 의하면 욕망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가 무거운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일들은 이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첫 번째가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날 텐데, 즉 마음이 무거워지고 방탕한 삶으로 그렇게 무거운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가 이를 텐데, 그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조에 독특하게 저항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톨이가 되거나 자신의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도 감내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자기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개척해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능히 피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자 앞에 서도록”, 여기서 인자는 마지막 날에 우리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인자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 앞에서 서게 될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다”는 것은 구약적인 배경도 가지고 있는데, “견딘다”는 뜻입니다. 누구 앞에 서 있는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지만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반역자는 반역의 사실을 파악한 임금 앞에 오래도록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처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부끄러움이 없도록, 절대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마음의 구김이 없이 그분 앞에 서 있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런 일들을 피하고 이런 일들을 이기는 신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위해서 두 가지를 얘기하는데, 첫째, 항상 기도하며, 둘째, 깨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각성된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어떤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깨어있으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혜와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깨어있다”고 하는 것은 끊임없는 해석활동을 뜻합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삶의 상황들을 만날 때에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하는 의미를 끊임없이 올바르게 해석하는 과정이 깨어있는 과정입니다. “깨어있다”고 해서 평탄한 길을 가는 것도 아니고 “잠들어 있다”고 해서 항상 시련을 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만사가 모두 여의하고 태평한 가운데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채집해서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삶에 적용합니다. 그래서 평안한 시대에라도 깨어있던 사람들은 흐느끼며 통고하기도 했고, 사람들은 모두들 희망이 없다고 땅을 치며 흐느낄 때, 깨어있던 사람들은 가슴 벅찬 감격으로 여호와의 승리를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임할 모든 우울한 일들에 대한 대안은 깨어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도 결국은 좋은 일로 바뀌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나도 결국은 나쁜 일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말 깨어 있는 것,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이 깨어있는 것은 총체적인 것입니다. 지성적으로 깨어있어서 삶의 사태들을 파악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끊임없이 은혜를 받아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려면 거기에 합당하게 살아야합니다. 의지의 힘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령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깨어있는 것만큼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고, 올바르게 기도하는 것 만큼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을 수 있어서 기도의 영과 말씀의 영은 하나이신 성령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으라”고 여러분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게으름과 모든 태만은 영혼이 잠들어 있는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태만하면 안 됩니다. 정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항상 기도하라는 것 입니다.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거의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의미보다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상황이 우리에게 기도로 필요로 한다고 가르쳐줄 때, 그때 즉시 준비되어 있어서 즉시 기도할 수 있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 소위 'readiness'입니다. 마치 쌀자루에 쌀이 가득 차 있을 때 후크로 푹 찌르면 쌀이 주르륵 쏟아지듯이 사람 마음속에 기도가 꽉 차 있어서 어떤 상황이 ‘네가 기도할 때다’라고 전달해주면 마음이 확 쏟아지면서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총신에 강의를 나가는데, 힘들지만 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면서 변화되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제도 탈북자 학생 한 사람이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는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 우리에게 기도를 필요로 한다고 요청할 때, 모든 사람이 즉시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항상 기도한다는 의미는 그렇게 언제든지 상황이 기도할 것을 요청할 때, 기도할 내면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제일 먼저 허물고 싶은 것이 기도에 준비된 마음입니다. 언제든지 그 상황이 요구하면 터져 나오는 기도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내면을 부패시켜야하는 것입니다. 내면에 생명이 가득차야 가능한데 그것을 부패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패시키기 위해서 어느 날 갑자기 큰 죄를 들이밀면서 “이것을 네가 받아들여라.” 하면 받아들이겠습니까?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서히 마음의 결들을 허무는 것입니다. 제가 게으르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는 가책을 느끼지만 그 죄 속에 게으름이 포함되어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가책 없이 지을 수 있는 잘못이 게으름입니다. 그렇게 한없이 게을러지고 그러는 사이에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부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상황이든지 기도가 필요할 때에 기도가 쏟아져 나오지 못하도록 내면의 세계가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싸워야 합니다. 나의 경험에는 어느 때든지 우리가 항상 기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젊어서는 잠이 많습니다. 잠 좀 푹 자보는 게 소원입니다. 할머니가 세숫대야에 물을 떠주시면 동생과 제가 손을 담그고는 잠이 안 깨어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때, 할머니가 오셔서 등짝을 때리시며 “이렇게 게을러서 앞으로 뭘 해먹고 살겠니?” 하십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잠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집니다. 전에는 제가 자기 의지로 다섯 시간이상 안 자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은 수면제를 먹어도 다섯 시간밖에 못잡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그러면 참 좋겠네요.” 하겠지만 아닙니다. 힘이 없습니다. 잠은 안 오는데 힘이 없습니다. 지난 3, 4월에 수술하고 몸이 회복되지 않았을 때 이를 악물고 새벽기도를 나왔더니 오후 2시쯤 되니까 그날의 삶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십자가는 항상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기며 사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특히 목회의 길을 가려는 여러분은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면 입술을 깨물며 피가 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자신의 삶을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