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새벽예배
그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정오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사 22:1-9)
녹취자: 김나영
결국 사도바울은 핍박이라는 상황을 통해서 이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완전하게 무리가운데 이끌려 나와서 섬 위에 올라가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수많은 유대인 무리들을 향하여 자신의 처지를 변명할 기회를 공식적으로 제공을 받았고, 그 기회를 활용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복음에 관한 변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이고 뒤에도 내용이 계속됩니다.
우리가 이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는 없지만, 사도 바울의 증언에 의하면 자기도 예전에는 지금 자신을 박해하려고 하는, 박해하고 있는 유대인과 똑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율법에 위로는 흠이 없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되 이 도를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하고 또 잡아넣고 그러면서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였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칼로 사람을 죽였다라기보다도 스데반이 그리고 옷을 찢기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돌로 스데반을 쳐서 죽이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즉 ‘이렇게 자기가 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도 자기가 그렇게 살아온 것을 증언해줄 수 있는 수많은 제사장과 장로들이 있다, 그게 바로 너희들을 지금 지도하고 있는 그 제사장과 장로들이 아니냐’ 그러면서 자신이 철저한 유대교 신자요, 그래서 생각과 사상과 삶에 있어서 지금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꽤 길게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에서 아마 사울을 핍박하려고 했던 많은 유대인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유대인들이 볼 때에 모세의 율법을 훼방하고 그리고 율법을 파괴하는 자로 비췄을까요? 그래서 어쨌든지간에 사도 바울이 예전에는 사울로서 교회를 핍박하고 많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결국 자신들 편에 선 사람이었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돌변하는 사람이 되어서 유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그들을 변화시키려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했을까 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동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말할 수 없이 자신들의 종교를 파괴하는 반역적인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반역적인 행동을 보면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핍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간증은 자기도 똑같이 그런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변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입니다.
그 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문을 청해서 가는데 사람들이 소리는 못 듣고 빛만 보고 소리는 못들었다는 등등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것은 배경설명에 불과하고 자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메섹에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비로소 내가 이렇게 열심을 가지고 섬기던 유대교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까 그분에 의해서, 그분을 통해서 성경을 보고 그분을 통해서 인생과 우주를 보게 되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우리들이 믿는 이 신앙의 도를 온전하게 하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빌리포소에서 그가 고백하기를 자기가 난지 8일 만에 한배를 탔고 율법에 위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더럽게 여기는 이유는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단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자기가 이렇게 유대교를 떠나서 새로운 신앙의 도를 좇을 수밖에 없었던 이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도가 아니라 원래 하느님이 가르쳐주시려 했던 그 처음 도라고 하는 것을 백성들에게 변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는데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고 나니까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의미가 변하게 됩니다. 성경도 알고 있었고 유대교도 믿고 있었고 제사도 믿고 있었고 모든 것들을 믿고 또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고 나니까 바로 우리가 믿었던 이 모든 유대교와 내가 믿었던 율법의 의미가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서오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증거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그림자이고 바로 그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그림자와 우리가 믿고 생각하는 것들의 실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말씀하실 때에 큰 빛이 나타내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적인 위엄입니다. 이렇게 큰 빛이 나타나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 이 일은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즐겨 택하시던 방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메섹에서 사도 바울을 만났는데 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니까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되었고 예전에 내가 믿던 모든 유대교의 가르침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가르침이요, 우리가 믿고 있는 이 구약도 예수님이 나타나실 것을 우리에게 증거한 것인데 우리들이 편견과 어둠속에서 눈이 가리워지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이러한 약속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흐리멍텅한 신앙은 예수님을 제대로 못 만난 신앙입니다. 분명한 신앙은 예수님을 만난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분명하게 만나고 그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비로소 성경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왜 인생을 살고 왜 우리들이 이 유대교를 따를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서 성경을 보게 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변화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