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울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가로되 회 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희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 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행 22:30-23:10)
녹취자: 안두현
이제 그렇게 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변명할 기회를 갖던 바울이 군대에 있는 사람들한테 심문을 받다보니까 로마인이라는 사실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하니까 이사람이 지혜로왔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자기네들 종교에 관한 문제이니까 사실 자신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를 관장하는 그 공회에 한번 붙여보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공회로 이사람을 송치했습니다. 당시는 정치적으로 로마시대의 식민지였으니까 유대인들에게는 민족의 문제를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또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고 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로마의 정책 자체가 세금을 잘 내고 로마의 정책에 크게 반대하지 않으면 종교에 관해서는 관용을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의 문제는 자신들에게 많이 일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원칙에 따라서 사도 바울을 공회에 데리고 간것입니다. 공회에 데려가서 바울을 세웠더니 바울이 또 역시 그 공회에서도 자신이 변론할 기회를 복음 전하는 시간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껏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겼다 그랬더니 제사장이 저놈을 쳐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서 화가난 모양입니다. “율법을 따라 섬긴다는 네가 나를 치라하느냐. 율법에 그런 조항이 어디 있느냐. 만약에 치려면 분명하게 율법으로 판단을 하고 증인을 세우고 법을 정하고 이후에 치는 거지 무조건 치라고 하는게 어디있느냐.”고 바울이 한수 대거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안에서 큰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바울이 이렇게 보니까 거기 모인 사람들이 반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반은 사두개인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사람들은 오늘날 비유하자면 아주 보수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 비슷하게 보수적인 유대교 신자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보수적이라는 말도 상대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보수적인 그러한 방식으로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교리 같은 부분에 엄격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그 당시로 말하자면 기득권층이었습니다. 상당 부분 로마와 야합을 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그러한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교리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자유로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도 없고 영도 없고 천사도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모든 것이 다 있다 생각했던 사람들이죠. 그래서 이제 이 보수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제 구약시대가 끝나고 신약시대로 들어오면서 구약시대가 끝나고 포로로 끌려가고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면서 유대종교의 일대 변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제사를 중심으로 하던 종교가 책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로 바뀌게 됩니다. 책이라고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구약 성경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책을 해석하는 일에 몰두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많은 교류와 전통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입장에서 보면 몇백년 동안 세워진 그것에 충실한다는 면에서 보면 바리새인들이 보수적이지만 그러나 구약성경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해서 본다고 한다면 사두개인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것이 구약에 어디 있느냐 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두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언급을 통해서 커다란 교리적인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중요한 말 한가지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내가 부활의 소망을 인하여 이렇게 매인바 되었다.” 부활의 소망을 인하여 매인바 되었다는게 무슨 뜻일까요. 그 예수그리스도를 사도 바울이 다메색에서 만나고 나서 생애적인 변화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예수 그리스도만 저렇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변할 것이라는 그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소망을 인하여 자신이 매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는 사람들은 언젠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소망을 가지고 있으니까 생명의 부활로 태어날 그 소망이 있으니까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렇기 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것은 부활의 소망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거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엄청난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무슨 분쟁이 일어났느냐 하면 이사람이 말로는 “바리새인이다. 그리고 또 우리 아버지도 바리새인이었다” 이러게 이야기 했는데 교리적으로 표명한 것은 사두개인들이 여긴 그렇게 표명을 했는데 나는 바리새인이다 그렇게 표명을 했는데 거기서 끝난게 아니라 그다음에 교리를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진짜 바리새파 사람들의 교리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큰 분쟁이 났는데 봐라 저사람이 이야기하는 그 교리가 맞다. 한쪽에서는 그런게 어디 있느냐 하고 분쟁이 일어나고 자기네들끼리 큰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거기에서 자신의 신앙을 그 복음 신앙을 표명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회심하고 변화받는 역사는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이 믿는 그 신앙을 그들에게 표명함으로써 그들에게 커다란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비로서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듣게 된것입니다. 그런 소동이 있게되니깐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바리새인들이 “야, 이사람이 뭐가 나쁜 것이 있느냐. 교리적으로 우리들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지지하는데 뭐가 나쁜게 있느냐”는 바래새인들이 편을 들고 두둔을 하게 된것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아무래도 양쪽 사이에서 큰 분쟁이 일어나서 심문은 커녕 이 바울이 찢기게 되니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만약에 여기서 몸이라도 상하게 된다면 자신이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를 속히 빼어내어서 영문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이야기로 오늘 본문을 끝맺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진리를 향한 담대함. 자신이 믿는 신앙을 향한 담대함이 오늘 바울은 지금 이 의견을 표명해서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힘을 빌어서 이 난관을 극복해보자 하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사실을 표명하면서도 이제 이렇게 자신이 부활의 소망을 인하여 매일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뭐냐하면은 자신도 하나님을 잘 섬기느라고 섬겨 왔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까 자신이 편견과 그리고 진리의 눈이 가리워진 어두움때문에 참된 진리를 볼 수 없었다고 하는 고백을 여기서 하고 있는것입니다. 나도 너희들과 똑같이 바리새인이었고 조상 대대로 그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의도적으로 내가 이것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나는 이렇게 부활에 대한 소망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깐 참된 부활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지더라 그분이 바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이세상에 오신 메시야다. 그분때문에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이렇게 묶인바 되었다. 담대하게 선포하는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당시 유대인들에게 유대교를 믿는 이 신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지금도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담대하게 저희가 믿는 그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그 부활의 소망이 되었고 그리고 자신도 또한 그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 다는 것을 고백을 하는것입니다. 이진리를 향한 담대함,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분명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의 지식을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공표하고 언급할 분명하게 증거할 자리가 있을때마다 그는 목숨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이 복음을 외치고 전파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한다고 누가 감옥에 보내는 시대도 아니고, 복음을 전한다고 누가 때려서 누구 앞에 심문을 받게 하는 그런 시대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모르기때문에 하니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런 난관들을 보게 됩니다. 어느때 보다도 우리에게 이 진리에 대한 확신 그리고 담대하게 이 진리를 외치는 신앙생활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붇들어 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은혜를 내려주셔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또 살수 있는 복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이신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도의 삶을 보며 저희도 힘닿는데로 이 복음을 전하고 이 진리를 소중히 여기며 담대하게 전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수요예배가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저희와 동행하셔서 금년 마지막 수요예배 은혜 가운데 드리도록 복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