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5._총신대 신대원 섬김의 날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 1:80)
녹취자 : 박나리
회심을 하고 성경을 읽었지만 저는 유난히 누구 꼭 닮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은혜를 받으면서 사도바울이 훌륭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보니까 자기는 다윗의 팬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윗을 좋아하다가 가만히 보니까 다윗보다는 조나단이 더 매력적인 인물처럼 여겨졌고, 그렇게 보니까 사도바울보다는 오히려 사도바울을 이 세상에 소개한 그 사람이 더 위대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특별히 누구를 좋아하지 못하다가 지금으로부터 한 30년 전쯤 성경을 읽다가 세례요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에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세례 요한이라는 이 사람이 정말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고 성경에 나오는 어떠한 인물 못지않게 정말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면서 바나바나 요나단보다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은 이 사람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로서 예수님 오시는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구약의 정경 말라기는 세례요한에 대한 예언으로 끝나고, 복음서는 세례요한이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중요한 인물이 예수님 오시는 앞길을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예비했습니다. 확실히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앞으로 목회를 할 사람들인데 결국 우리는 누구입니까? 청교도들은 이 점에 있어서 분명했습니다. 우리 목회자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피 뿌리고 죽어간 선지자들과 신약에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한 사도들의 후예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신학교 문을 나오고 목회를 하지만 정말 평범하게 살다가 갑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매우 특별히 완악한 시대이고 진리를 멀리 떠난 시대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더 특별한 목회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 특별한 사람으로서 준비된 세례요한을 보면서 우리가 잠깐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고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아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성경에 '파이디온'이라고 나옵니다. 어린이를 의미하지만 때로는 갓난아기를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세례 요한은 제도권이 아닌 광야로 보내졌고 누군가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 아이는 점점 자라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예수 오시는 앞길을 예비하도록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준비가 필요하겠습니까?
첫째는 육체적인 준비입니다. 40세가 되기 전에 인생의 철학을 세우고 30세가 되기 전에 건강에 대한 철학을 세워야 합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내가 없는 것을 많은 지체들을 통해 빌려서 쓸 수 있습니다. 지혜가 모자라면 똑똑한 사람의 도움을 받고, 기술이 모자라면 기술자의 도움을 받고, 돈이 없으면 은행에 신세를 집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어버리면 누구에게도 그것을 빌려서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자신의 육체의 건강을 돌보는 데에 마음을 많이 써야 합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던 것을 매우 후회하는데, 열심히 운동하십시오. 특히 남성들은 아주 격렬한 운동에 자신을 헌신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과 1대 3으로 붙어도 한 방에 쓰러뜨릴 정도의 무예 실력을 갖도록 철저히 체력을 연마하십시오. 사용은 하지 마시고 그런 탄탄한 체력을 갖추십시오. 목회자가 6개월 정도 병상에 있으면, 교인들이 녹용을 끓여온다고 하거나 고기를 사온다고 하거나 심지어는 보약을 지어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2년 정도 아파서 누워있으면 언제쯤 교회에 자리를 비워주려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한 습관 속에서 강인한 체력을 길러가야 합니다.
이것과 함께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육체의 순결입니다. 만약 그렇게 건강이 있는데 그 육체가 정욕에 빠져 범죄하고 간음하게 된다면 한 번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점에서 육체의 순결을 잘 보존하면서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들로 갖추어 가길 바랍니다.
2021.04.15._총신대 신대원 섬김의 날
두 번째 준비는 인격적인 준비입니다. 로버트 머리 맥체인이라는 청교도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교는 본문이고 삶은 각주입니다. 본문이 좀 어려워도 각주의 설명이 상세하면 논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학문의 깊이가 있는 사람들은 본문을 먼저 보지 않고 각주를 보면서 논문의 깊이를 가늠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만약에 여러분이 설교는 그럴듯하게 한다고 해도 인격과 삶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하면, 그 설교는 훌륭할수록 위선적이 될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설교를 훌륭하게 할 뿐 아니라 삶과 인격이 그에 따라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인격과 삶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인격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맡기기 위해 제자인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 역시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간 사람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한 가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혹은 이것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인격이야말로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인격입니다. 생활은 사랑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데에서 진리를 붙들고 그 진리의 질서를 따라 자신의 온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볼 때나 골방에 홀로 있을 때나 동일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인격과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사람들에게는 담대한 자유가 있습니다. 그분과 동행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끊임없이 믿음으로 살고 기도 속에 살면서 그리스도 예수를 끊임없이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어 가야 합니다. 때로는 고난이 있지만, 그 고난을 믿음으로 견디면서 예수의 성품을 닮아가는 기회로 삼고, 고난받기 전에는 그릇 행했으나 고난 당한 후에는 주의 율례를 배웠다고 고백한 시인처럼 모든 삶의 고난을 경솔히 흘려보내지 아니하고 자기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일 년 혹은 이 년 전의 자신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인격적인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말씀으로 살고 성령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도 거기에서 예수의 냄새가 납니다. 목회자의 기품이 풍겨납니다.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런 교우들과 교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을 갖출 때 언제가 기회가 와서 과연 사는 대로 설교하고 갖춘 인격 그대로 말하는 자연스러운 설교자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지적인 준비입니다. 신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신, 학, 교 시절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학문을 배우는 학교에 있는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공부하지 않고, 전임 사역을 하게 되고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정말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바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생에서 제일 한가한 시간일 것입니다. 만약 이후에 더 한가한 시간이 생긴다면 여러분들은 사역의 세계에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역자라면 지금이 가장 한가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사람은 진리를 배우는 일에 흥미를 느껴야 하고, 그 일에 흥미가 없으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그것은 소명이 아닙니다. 자신의 갈 길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소명을 받은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학업을 연마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만나는 신학생들마다 말합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그런 질문을 할 시간에 책을 한 권 더 읽어야 합니다. 신학교 2, 3학년이 되어서 그 질문을 한다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학문을 할 때에 우리는 진리를 찾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진리는 성경 말씀이 진리의 정수이지만, 성경만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을 핵심으로 해서 이 진리들이 온 학문의 세계에 퍼져있습니다. 그래서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가 모든 만물 안에 계시기에 모든 것들은 원리를 가지고 있고, 그 원리가 지적으로 학문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그 모든 진리의 핵심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모든 지식의 중심에 놓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 바깥으로 원을 펼쳐가면서 인접 학문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신학의 네 분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교회사), 실천 신학입니다. 네 가지 모든 학문은 철저하게 성경을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많은 책의 사람이 되기 전에 한 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신학과 관련된 책을 철저히 읽으면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성경의 배경, 고고학을 배우게 됩니다. 당연히 성경을 그렇게 공부하려면 원어를 읽어야 합니다. 원어는 맑은 샘이고, 번역된 것은 그 맑은 샘을 여러 번, 여러 개의 통해 옮긴 것입니다. 당연히 그 맑은 샘의 물이 가장 청명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열심을 내어서 그리스어, 희랍어, 헬라어, 히브리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아람어가 다니엘서와 에스라서에 나옵니다. 그래서 아람어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과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리스어는 할 수만 있다면 코이네 성경 그리스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고전 그리스어까지 공부하면 아주 좋겠습니다. 호메로스 그릭까지는 안 나가도 에틱 그릭까지는 공부해서 동방 교부들의 책을 자유롭게 어느 정도라도 읽을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어려운 언어이긴 하지만 한 번 공부하고 나면 그 노고에 대한 훌륭한 보답을 해주는 언어입니다. 그리스어는 사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언어이고, 히브리어는 시를 묘사하기에 좋은 노래와 같은 언어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를 많이 공부하면, 단어 하나 해설해서 훌륭한 설교가 쏟아져 나옵니다. 저는 신대원 다닐 때 작심을 하고 히브리어를 공부하기 시작해서 구약 전권의 3분의 2를 모두 읽었습니다. 지금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강대상에서 설교하기 전에 한 번 읽는 히브리어 성경은 나에게 말할 수 없이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자신을 쏟아부으면서 열렬히 공부해야 합니다. 히브리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더 공부해야 한다면 우가리트어나 아카드어를 공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추천할만합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히브리어 어휘론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언어입니다.
조직신학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조직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 중 내가 원하는 칼빈파의 신학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그 이전 멀리 가서 교부들로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중세 시대 신학자들, 어떻게 신학이 잘못 흐르게 되었는지 그 속에서도 어떤 것들은 보석처럼 빛나면서 정통 기독교의 물줄기를 이어왔는지 그리고 종교개혁기 17세기 화려하게 꽃피웠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과 18세기 합리주의와 싸워왔던 정통 신학들을 공부해나가며 19세기 현대신학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할 분야가 한둘이 아닙니다. 놀 시간이 없습니다.
역사는 또 어떻습니까. 만약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자기만 아는 그 사실에 갇혀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이것을 포물선의 신학 원리라고 부릅니다. 신학을 할 때는 모두 자기가 출발한 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장로교인으로서 신앙고백을 하고 신학을 출발합니다. 감리교인은 감리교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출발하고, 성결교인은 성결교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자기 신앙에 갇혀 있지 말고 여기에서 쏘아 올려서 자기까지 이 신학이 오게 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교부들에게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갑니다. 또 내 신학을 떠나서 교부들의 신학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자기 신학으로 오게 되었는지 양쪽으로 공부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독교 전체가 무엇이고 얼만큼이 양보할 수 있는 내용이며, 얼만큼이 파수해야 할 양보할 수 없는 진리인지 배우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런 모든 이론 신학을 공부한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에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은 실천 분야입니다. 기가 막히게 성경을 수없이 공부하고 많은 언어를 습득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설교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면 그 사람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무엇에다가 쓰겠습니까. 아마 언어나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으로서 적합하지만 목회자로서는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실천을 위해서 설교를 실천하고 목회를 실천하고 선교를 실천하는 것들을 몸소 체험할 뿐 아니라 이론적 토대를 놓으며 스스로 습득해 신학을 가진 나무가 되어가야 합니다. 큰 나무가 되어서 많은 새들과 짐승들을 깃들이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야 합니다.
현대 언어는 영어는 기본으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말로 쓰인 신학서 적이 한계가 있고 오역 투성이의 번역이 많기 때문에, 그것으로 신뢰할 수 없는 내용을 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드시 영어를 읽고 영어의 세계 속에서 이루어진 신학적 업적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20세기, 21세기 영어로는 안 되고, 에드워즈를 읽으려면 18세기를, 존 오웬을 읽으려면 17세기 영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에 추천할만한 언어로 독일어를 공부한다면 신학의 자료를 대하는 한 세계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프랑스어도 있습니다. 네덜란드어를 공부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이 제2 종교개혁 이후에 보존되어 온 네덜란드의 칼빈 신학의 어마어마한 자원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언어들을 부지런히 습득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은 신학 공부하는 내내 여러분들은 철학을 부전공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학과 철학의 내용은 다르지만, 언제나 신학은 그 내용을 담는 도구로써 철학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초대 교회, 아니 더 멀리 가면 사도 바울 때부터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래서 철학을 이해하면 신학을 잘 담을 수 있는 도구가 마련되는 것이고 왜 성경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지 그 시대 정신을 비판할 수 있는 비판의 능력까지 함께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철학을 도구 삼아서 우리가 진짜 전하고자 하는 신학의 내용을 아주 훌륭한 형태로 전달하고 그 신학에 입각해서 오늘날의 현대 문화를 비평하면서 모든 세계의 영역에 문화의 영역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해 가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 해 전에 여러분들에게 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그러다 쓰러지면 치료비는 열린 교회에서 책임져주겠다고 5년, 10년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유효합니다. 몇 사람 쓰러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치료비를 청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공부하셔야 합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나중에 진짜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공부한 모든 사람이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의 능력 있는 설교는 대부분의 경우 속임수에 끝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런 길로 빠지지 말고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로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제가 34살 때 신학교 교수가 되고 2년쯤 지났을 때 한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읽으라고 소개해준 모든 책을 읽으려고 애를 썼는데 한 학기에 제 한 키였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은 정말 한 학기에 한 키씩 책을 읽은 것입니다. 그렇게 10년 정도 읽고 나면, 읽지 않은 학생과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의 지적 격차를 가지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진짜로 공부하셔야 합니다. 정말 쓰러질 듯이 지독하게 공부하셔야 합니다.
제 경험을 하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신대원 다니던 시절에 제 기록이 22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에세이를 쓴 것입니다. 책상 아래에 요강, 책상 위에 물 한 병과 빵 하나로 22시간 동안 에세이를 썼습니다. 두 번째 기록은 17시간 동안 히브리어 성경을 읽은 것입니다. 역시 책상 요강 하나, 빵 한 덩어리, 물 한 병으로 일어나지 않고 17시간이었습니다. 한참 창세기를 읽을 때였습니다. 또 미국에 갔더니 설교학 잡지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어느 신학교 모집 요강을 내면서 다 낡은 설교자의 의자를 사진 찍어두었습니다. 그리고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이 설교자의 의자는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쉬운 의자가 아닙니다’라고 붙였습니다.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학문적으로 준비되십시오. 같은 클래스의 있는 동료들을 경쟁 대상으로 삼지 마십시오. 적어도 여러분들은 외국에 있는 굴지의 신학교 학생, 학자를 적수로 생각하고 그 수준에 맞춰 공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보태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어느 한 학생이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첫 시간에 선생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책을 읽지 말고 존경할만한 한 사람을 선택해서 끝까지 파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훌륭한 목회자가 될 것입니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신입생이 그 교수의 첫 강의에 깊은 감동을 받고 에드워즈를 파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후일에 훌륭한 목회자가 되는데 그 사람이 존 파이퍼입니다. 존 파이퍼는 무슨 책을 읽어도 다 깊이가 있습니다. 한 말을 또 하지 않습니다. 그와 함께 숨 쉬고 그와 함께 살아오면서 그것을 현대의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기를 권합니다. 한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존경하고 사랑할만한 사람을 택하십시오. 한국인, 영국인, 미국인이든, 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대신 신학이 건전하고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파서 그 한 사람을 거의 다 읽을 때 여러분 속 놀라운 신학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영적인 준비입니다. 누가복음 3장에서 말하기를 세례 요한이 빈들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성경에 선지서가 시작되고 선지자들이 소명을 받았을 때 나오는 그 내용과 똑같은 패턴이 나옵니다. 선지서들에 나오는 내용처럼 그저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한다는 방식으로 세례 요한에게도 임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적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의 큰 임재 속에서 그 시대를 향한 불타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 선지자에게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외치지 않으면 안 되는 안타까운 심령이 되어서 한 사발의 피를 쏟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쏟아놓지 않으면 안 될 한 사발의 피가 있습니까. 내가 차라리 이 말을 쏟아놓지 못할 바에야 죽는 것이 더 낫다, 내가 어떻게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랴 하는 그것이 있습니까. 이것을 사도바울은 복음의 비밀이라고 불렀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의 중심에 불붙는 말씀이라고 칭했습니다. 그것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정말 불타오르는 것 같은 그 열정적인 말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 이야기한 3가지 준비로는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열심히 운동하고 죄짓지 않고 산다고 해서 그 불붙는 말씀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고 예수 닮아간다고 해서 피 묻은 복음이 자기 가슴 속에 살아나는 것 아닙니다. 온갖 언어를 터득하고 히브리어 성경을 통달한다고 해도 그 불붙는 말씀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마치 모세가 가시나무 떨기 속에서 불꽃으로 임재하신 주님을 만났던 것처럼, 엘리야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처럼, 이사야가 성전에서 스랍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것처럼,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처럼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의 음성을 들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흔들어 놓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고 여호와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는 이상을 체험하고 소명을 받았듯이 여러분도 그렇게 주님을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학문적 준비는 마치 갈멜산 위에 버려놓은 장작과 같습니다. 불이 떨어지니까 그 장작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니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장작은 그냥 소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주님을 깊이 만나기를 무엇보다도 깊이 갈망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 저도 그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그분을 깊이 체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목숨을 걸고 그분을 만나길 원했던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대원을 마치고 ThM에 재학하던 2학년 때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님을 깊이 만나야겠다는 마음에 도움을 준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티끌같이 별거 아닌 인간인가, 내가 만난 하나님이 얼마나 작은 하나님인가, 신앙의 세계는 얼마나 무궁무변한가 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런 하나님의 영광을 뵈옵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정말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신학교 한 학기를 마치고 한상 금식 기도를 갔습니다. 1학기 마친 후 여름 성경학교를 전에 금식을 해야 했고, 가을 학기를 마치고는 신년 계획을 위해 금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아무 쓸모 없는 마른 막대기 같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주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신학을 읽을 때 흑백사진처럼 보였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총 천연석 영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설교가 구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은 그 설교를 이루는 데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이 사건은 화룡점정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마지막에 용의 눈에 점을 찍으니까 진짜 용이 되어 날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가장 화려한 마무리, 생명을 부르는 마무리를 화룡점정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화룡점정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내가 전도사입니다. 이렇게 사역을 해도 별 성과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연약하고 나의 설교는 말라깽이와 같습니다. 나를 살리시렵니까, 죽이시렵니까. 나에게 소명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시고 재능을 주셨으면 이 재능이 꽃필 수 있는 영적 불꽃을 나에게 주십시오 나에게 쏟아지는 눈물, 피, 땀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혼을 위해 교회를 위해 장렬한 최후를 마치게 해달라고 주님 앞에 몸부림쳐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생사를 걸고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를 아무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곳이 교회당이던지 혹은 산속이던지, 기도원이던지, 골방이던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어디서든지 진심으로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찬양)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고자 주를 갈망합니다
주여 어찌 합니까
그렇게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앞발로 땅을 파며 죽어가는 목마른 사슴처럼 주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주님을 깊이 만납니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거기에 진리의 능력이 있고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피 냄새가 나는 복음이 있습니다. 어차피 한 번 살고 갑니다. 제가 총신에서 M.Div. 합격증을 받아들고 정원에서 합격증을 받는데 제가 7번이었는데 아무도 M.Div.가 안 되었습니다. 열어보니까 M.Div.에 합격했습니다. 그 당시에 지원자 대비 합격률이 20%였습니다. 200명이 와서 60명을 뽑았습니다. 눈물 흘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3년이 지났습니다. 잠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 설교를 그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온 힘을 다해서 주님의 종으로 준비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