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를 기억하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녹취자: 양현정
오늘 이 말씀은 주님이 외식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주시는 말씀입니다. 세 개의 동사를 따라서 이 말씀을 전하면 “골방으로 가라”, “기도하라”,“갚으시리라”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골방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골방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골방은 방 구실을 잘 못하고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입니다. 여기서 골방은 따라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런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기도의 세계를 회복하는 첫 번째 지침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가 안 되기 때문에 기도가 되는 사람은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가 기도가 안 되는데 기도 자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곤욕입니다. 기도가 잘 되면 놀랍습니다.
언젠가 한 번 교회에서 새벽 기도 시간에 누가 필리핀에 간다고 축복 기도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잘 다녀오라고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들어와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고 눈을 떠보니 그 사람이 마닐라에 도착할 시간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기도가 돼서입니다. 기도가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은 기도가 안 되는 사람입니다. 언제쯤 기도가 될까요? 저절로 기도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기도가 되는 모든 사람은 안 되는 과정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에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전설에 의하면 저 산에 엄청난 많은 금이 묻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소년은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폐광된 저기에 들어가 광산업을 해 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고향에 들어가서 거기에 금이 많이 묻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광산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투자했던 돈을 거의 다 잃고 동료들도 거의 다 떠났습니다. 마지막에 몇 명의 동료만 남았는데 파 들어가는데 동료 한 사람이 “여기 뭐가 있다”라고 소리를 치더랍니다. 이 사람이 같이 내려가 봤는데 놀랍게 땅을 한 참 팠는데 곡괭이가 나왔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산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옛날에 여기까지 팠는데 결국에는 금을 캐지 못했구나. 다 낡은 곡괭이 자루를 끌어내 보니 그 끝에 금이 묻어나오더랍니다. 특별한 경우에 금이 한 데 모이는 상태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말로 노다지라고 말합니다. 일본사람이 만든 말이고 영어로는 ‘no touch’입니다. 누군가가 곡괭이로 금을 찍었는데 곡괭이가 빠지지 않아 포기하고 나간 것입니다. 똑같이 기도는 안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제가 언젠가 근육이 발달하는 원리를 설명드린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기도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기도가 술술 되고 일평생 그런 가운데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장 훌륭한 기도의 사람도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자녀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애가 너무 말을 안 들으면 야단도 안 칩니다. 부모가 너무 화가 나면 야단을 못 칩니다. “너 저 방 가서 무릎 꿇고 앉아 있어” 그리고 문을 쾅 닫아버립니다. 그것은 부모가 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언어입니다. 아이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안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 안 되게 되는 상태로 놔두시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생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기도의 광맥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첫 번 째 발걸음이 무엇이냐면 골방을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구의 시선도 의지하지 않고 나의 이 괴로운 심경을 주님께 쏟아 넣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데 간절한 기도가 안 됩니다. 그것을 씨름해야 합니다. 그 씨름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이냐면 기도가 안 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은 흩어져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안에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기도 안 되는데 엎드려 있으면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갑니다. 그것을 모으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물건을 갖다 놓고 그 다음에 햇볕을 쐰다고 하더라도 그 초점을 모아서 햇빛을 쐬어야지만 불이 붙든지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못합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기도의 문 자체는 열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한 곳에 모으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 기도가 안 될 때는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을 모으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제대로 읽은 제대로 들은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듭니다. 그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 흩어진 마음을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인간의 마음의 놀라운 질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압도되어 있을 때에 마음의 놀라운 질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질서에서 흩어진 것이 이미 시험에 든 것입니다. 죄를 지은 것이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이 그런 상태가 안 되었을 때에 이미 시험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하나님께로 모으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흩어진 마음을 모으려고 할 때 폐가 응축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까? 굉장히 힘든 과정인데 그렇게 가슴이 응축되는 것 같은 반복적인 작용은 마치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고름을 짜내서 올리는 것과 같은 과정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초점이 한 곳으로 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굳이 기도할 때 그렇게 마음을 모아야 할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안 가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지배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마음의 특성입니다. 테니스를 치다가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하나로 딱 자기 안에서 모아집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을 먼저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안 되면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나뉘었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골방에 안 들어가는 사람들이 자꾸 쓸데없는 일들로 정신을 분산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고통을 덜어내는 것인데 결국은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골방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께로 고요히 향하는 것입니다.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초점이 모아지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무슨 일을 한들, 일을 하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사역을 해서 유익을 주었는데 자신은 아무 유익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소외된 느낌이 듭니다. 그것이 바로 골방이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고 특별히 윤리적으로 비난받을만한 데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하나님 사랑하지 않는 사람보다 죄짓고 하나님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십니다. 더 빨리 만나 주십니다. 죄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하나님을 만나게 해줍니다.
골방은 어떤 상태입니까? 한 번 마음의 골방의 문을 열어 보십시오. 욱, 쥐가 죽어있습니다. 언제 들어갔는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습니다.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럼 먼저 방을 청소해야 합니다. 삶을 개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안 기뻐하시는 습관, 오락, 쓸데없이 시간 버리는 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15년 전인가 교역자 한 사람이 밤 늦게까지 교구실에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사역을 열심히 하나 했는데 새벽 1시까지 인터넷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의 골방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매일 들어갔기 때문에 골방이지만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반짝반짝하고 물건이 깔끔하게 제자리에 놓여 있고 아침에 기도하고 간 흔적조차 없을 정도로 깨끗해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을 만납니다. 그것 없이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해도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게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자신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골방은 어떤 상태인지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전혀 기도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거기서 쥐가 돌아다니다가 죽고 썩고 거기에 구더기들이 끼고 거미줄이 처지고 사람이 문을 열 수 없는 방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골방으로 들어간 다음에 두 번째 나온 동사가 “기도하라”입니다. 문자 그대로 “기도하라”입니다. 누구에게 기도하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하나님께’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여호와께’라고 안 그러셨을까요? 기도할 때마다 우리 아버지라고 해놓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중요한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버지하고는 다릅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핑크 솔트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우리 딸 지연이도 안 주고 삼겹살 찍어 드시잖아요. 그래서 누군가가 지연 자매에게 핑크 솔트를 선물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버지 지방에서 사업 굉장히 크게 하셨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유학했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학부모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누군가가 엄마 대신 갔습니다. ‘남준이는 왜 항상 떨어진 양말을 신고 다닙니까’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부자이면서 아들은 떨어진 양말을 신고 다녀서 선생님이 학교에서 소환할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너무 사랑이 많으시고, ‘Apple in my eyes’라고 하잖아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프신 아버지입니다. 핑크 솔트 소금을 선반 위에 감춰 놓는 아버지도 아니고 양말도 안 사주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서 얘기하는 아버지가 너무 가족같이 친근한 아빠입니다. 아이들에게 아빠 밖에 모르는 아빠입니다. 우리 딸도 그러던 때가 있었습니다. 3살 쯤 되었을 때 엄마를 발로 차서 침대 밖으로 떨어뜨립니다. ‘엄마는 거기서 자, 나는 아빠랑 잘거야.’ 그런 아빠입니다. 그런 아버지께 ‘기도하라’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라고 합니까? ‘내가 전도사인데 힘들어 죽겠는데 저렇게 새벽기도 나오라고 야단을 치니 안 나가면 반성문 써야 되겠지?’ 라는 기도가 아니라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의 친밀함을 깊이 느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둘러싼 참 마음으로 이해해 주소서. 기도하게 하시니 그 맛을 사람들이 느끼게 해주기 위해 우리가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세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원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가 요한복음에 나오는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면서 자기 양을 자기가 키우는 사람이고 삯군 목자는 동네 사람들이 이에 양을 대단위로 양을 기르지 않으니까 자기가 전업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20마리씩 양을 가지고 200마리 가지고 열 집 모아서 주고 10분의 1씩 임금을 모아서 사람으로 고용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용된 사람입니다. 중국어 성경에는 ‘고공’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고용한 기술자입니다. 그 사람에게 자기 양이 아닙니다. 잘 지키고 밥을 주고 물을 주고 풀도 먹이지만 늑대가 오면 월급보다 목숨이 중하여 도망합니다. 골방에 들어간 다음에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그 먼저 골방을 만들고 골방에 들어가고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아주 친밀하게 느끼는 단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 마음을 깊이 쏟아 놓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 기도는 그 사람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거의 가서 쏟아 놓으면 마음을 확 쏟아 놓으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슬프고 괴로웠던 일을 그 분께 쏟아 놓고 기쁘고 감사했던 일을 그 분께 쏟아 놓고 사람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억울하고 슬픈 사연들을 주님께 쏟아 놓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다운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드리는 남을 위한 기도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두 번 째입니다.
세 번째, “갚으시리라.”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갚아 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보상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보상은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의 마음 속에서 그것을 받았기 때문에 신이 나는 게 아니라 받은 그것을 내 마음에 간직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기억하시는구나’ 하는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기도하고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와 사랑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외국에 있는 집사람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보니 호주에서 왔는데 ‘God’s no is not rejection, but it’s redirection’ 하나님이 No하시는 것은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절히 기도하면 어리석게 기도하더라도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교정해서 갚아주십니다. 그것이 헛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쏟아서 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NO하세요. 저는 야간 신학 대학교 4학년 때 유학가게 해 달라고 진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고 영국에 있는 학교에서 admission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유학 보내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가장 좋은 길로 저를 인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우리가 열렬히 기도했는데 안됐다는 것은 안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갚아주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분명하게 알게끔 때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게끔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정해주십니다.
‘새롭게 하소서’ 사회자 중 한 사람이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나요?’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면서 분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유는 마음이 이미 욕심이 있습니다. 잔잔한 호수가 되면 주위의 그림이 거울처럼 비췹니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과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 수면이 흔들리고 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욕심에 이끌려서 많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친밀한 교통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어긋난 가운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간절한 기도는 간절한 기도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지도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심이 이끌어가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든 응답하지 않으시든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른 방향으로라도 열매를 맺게 해 주셔서 결국 그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끔 하십니다. 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이라는 명목하에 헛된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아버지와 교통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이 훨씬더 비전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비유가 있는데 시골에 옛날에는 나라가 너무 가난해서 징검다리가 억수로 많았습니다. 징검다리를 겨울에 걷는다고 생각하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 걸음씩 디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멀리 바라보고 걸어가면 물에 빠집니다. 징검다리는 어차피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건너가게끔 사람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돌멩이 하나하나를 정신 차리고 밟으면 결국 거기로 가게 됩니다. 내일 일은 난 모릅니다. 장래 일도 우리는 모릅니다. 10년 후에 내가 살아 있을지 하나님의 나라에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지금은 불빛이 환하고 지금으로부터 멀어진 어제도 흐리고 오늘로부터 멀어진 내일도 흐립니다. 그래서 확실한 것은 지금 내가 빛 가운데 있지 않으면 장래의 빛이 비추는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바른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한 걸음씩 걸으세요. 주님께 맡기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세요.
신학교 다닐 때 주일날은 자기 교회에 가고 온통 유명한 설교자 설교 듣겠다고 돌아다니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분의 설교가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저는 제 교회에 가 제 성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훌륭한 설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주어진 교회가 이 교회니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섬겼습니다. 설교는 설교 테잎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글로 읽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사십니까? 하나님 앞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미끌어지지 않는 한 내일도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그런데 10년 후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은 사람이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지 않는다면 한 번에 10년을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날이 쌓여서 10년 후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매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여기가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인 것처럼 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죽어가는 사람으로 말씀을 전하며 그런 심정으로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방법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는 우리의 마음에 현재적인 은혜로 갚아 주십니다. 염려와 근심이 가득해서 예배당에 갔는데 한 두 시간 눈물을 쏟고 기도하고 나면 마음에 은혜를 주십니다. 평강이 넘칩니다. 무슨 다른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는데 왜 그런지 마음에 놀라운 평강을 주십니다. 그게 첫 번 째 보상입니다. 두 번째는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놀랍게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좋은 길을 보여 주셔서 우리 하는 일에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골방으로 들어가라, 아버지께 기도하라,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