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2-15)
녹취자: 송연재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대로 하였더니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을 맨 처음 부르실 때 일어난 고기잡이의 기적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들이 예수님 앞에 왔을 때 예수님은 이미 육지에 계셔서 숯불을 피워 놓고 그 위에 생선과 떡을 굽고 계셨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실패했고, 아마도 쌀쌀한 아침에 떡과 생선을 굽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마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두려워서 모두 도망갔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조금도 언짢은 표정을 짓지 않으시고 조용히 제자를 위해 생선과 떡을 굽고 계셨습니다. 머뭇거리는 제자들에게 와서 “조반을 먹어라.” 하시니 모두 예수님인 줄 알았기 때문에 누구신지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식구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종이 상전을 위해 봉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떡과 생선을 구워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드디어 아침 식사가 거의 다 끝났습니다. 그때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유독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렇게 세 제자를 특별히 사랑하셨고, 특히 베드로는 모든 제자들 중 머리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찬양)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는 분위기가 밝지 않은 이유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왜 나를 버리고 도망갔느냐? 너는 일찍이 죽는 데까지 나를 따라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용기가 백배하여 나를 잡으러 올 때 칼을 뽑지 않았느냐?” 등등 물어볼 수 있는 말이 많았지만 모두 치워버리고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찬양)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으셨네
베드로는 예수님을 버리고 간 것도 사실이고, 죽는 게 두려워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도 사실이었고,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맹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이제 너의 이름은 시몬이라 하지 말고 베드로라 하라.” ‘베드로’라는 말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몬은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반석 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시면서 그의 이름을 버리게 하시고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으니, 시몬은 육신의 이름이요, 베드로는 영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버리라고 하신 그 이름으로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그 당시에 요한도 수없이 많았고, 시몬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새로 지어 주신, 그리고 자기에게 익숙해지신 베드로라는 이름 대신 시몬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셨을까요? 이것은 베드로의 실패한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네가 누구냐?” 하고 묻습니다. 태어난 그대로, 한 인간 그대로,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때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 그러나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 그 사람임을 네가 기억하라는 뜻에서 베드로라고 부르신 대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어떻게 나아갈까요? 꽃으로 치장하고 예물을 가득 드리고 그렇게 자신을 꾸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보다 그 마음의 중심을 받으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용서와 자비를 구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일체의 속임이 없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가 있으면 용서해 주실 것이고, 기도 제목이 있으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을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을) 만난 장소가 어디였을까요? 갈릴리 바다 혹은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갈릴리’라고 하는, 정확하게 말하면 호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좁은 땅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넓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위아래가 한 70km 정도 길이가 되고, 폭이 좁은 곳도 있고 넓은 곳도 있지마는 4km 정도 되는 호수치고는 굉장히 큰 호수였습니다. 호수 옆에는 산맥이 있어서 거기서 바람이 불면 파도가 지금도 한 2~3m 정도 칠 정도로, 풍랑까지 이는 호수였습니다. 사람들은 거기서 고기잡이를 하며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갈릴리 바다는 진짜 바다였고, 필요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축복의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이 갈릴리 바다에서 이 제자들을 만나주십니다. 그것도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 새벽 시간에 만나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 시간과 장소는 물리적인 시간과 장소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마음의 시간과 장소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과 구별된 시간, 세상과 구별된 장소에서 여러분을 만나주십니다. 세상 즐거움을 버리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하찮게 여기면서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여기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은 모두 주님을 만날 만한 이 갈릴리 바닷가에 새벽에 나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한 분을 바라보고 예수님 만나는 것을 가장 큰 소원으로 여기며 마음을 다해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진 베드로와 제자들, 예수님은 어디론가 가버리셨고, 두 번이나 나타나셨지만 아직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죄는 용서받지 못했고, 주님은 그저 당신이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을 뿐 예전과 같이 함께 손잡고 전도를 다닌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서먹해졌을 때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만나주셨고,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화해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가족들에게만 해 줄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떡과 물고기를 차려 제자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드디어 요한의 아들 시몬을 대표자로 하여 그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비록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자신 있게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나를 버리고 도망갔느냐? 왜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여 맹세하기까지 하고 나를 부인하였느냐?” 하고 폭풍 질문을 하실 수 있었겠지만, 예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양을 먹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냥 (음식을) 먹이는 것만이 아니라, 양을 돌보고 사랑하고 지켜 주어서 양이 행복하게 되는 것, 그리고 양의 쓸모에 맡도록 잘 성장하는 것. 이것이 양을 먹이라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실 것이고, 베드로와 제자들을 남겨둘 것이니 그들이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 양 떼를 돌보는 그 일을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양 떼를) 사랑하고, 돌보고, 먹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참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하라고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대표로 받은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내게 무슨 일을 주님이 원하시는지. 내가 주님께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는 대답합니다. “예, 제가 부족하지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도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할 때 베드로에게는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고, 여러분에게는 또 말씀하신 것이 각자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을 했고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일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학생이면 학생으로서 주님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주부면 주부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최대한 표현할 수 있을지, 가장이면 가장으로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주님이 내 자리에 와 계시다면 무슨 일을 하셨을지 생각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그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가장 커다란 이유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정말 잘 나오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들고 오늘도 믿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명을 받아서 꼭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