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3. 11 새벽예배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 12:11)
녹취자: 윤은정
징계가 그것을 받고 있는 그 당시에는 행복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은 징계에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따르지 않으면은 그 징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징계의 목적이 성립을 안 합니다. 징계의 목적자체가 그 사람을 바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이 따릅니다. 그 처음에는 그것이 즐거워 보이지 않고 아주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은 만약에 그 징계를 믿음으로 잘 감당하면 그 당시에는 그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만 나중에 세월이 흐르고 나면은 그것 때문에 유익이 있다 이겁니다. 징계에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 유익이 뭐냐하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면서 징계의 유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선 그 앞에 ‘연달한 자에게는’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뭘 의미하냐면은 훈련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쇠붙이 같은 것들을 재련을 해서 그 여러번 정제의 과정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더 순수한 금속이 되는 것과 같이 인간이 징계라는 불을 통해서 부패하고 죄악 된 찌꺼기가 빠져나간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보다 더 순전하게 변해가는 것을 여기서 ‘연달한 자’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 징계에는 그런 효과가 있다 이 얘기입니다. 그렇게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그랬습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의라고 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가는 그런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삶, 여기에서 ‘의롭다’라고 하는 것은 대게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 원래 징계라고 하는 그 자체가 그 아버지에 의해서 제시된 기준이 없다고 할 것 같으면 징계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제시된 기준이 없이는 징계도 없다. 그렇죠?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아라.’ 그것을 계시해 주셨고, 그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지가 계시가 되었기 때문에 어겼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회개하죠. 그 회개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뜻을 지키지 못하고 또 거기에 어긋났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책망하셔서 깨닫게 하시듯이 그렇게 하나님이 이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닫고 책망하심으로서 돌이키는 것, 그 돌이킨 후의 삶이 바로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제시된 삶의 기준에 부합하는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뭐가? 징계가... 징계가 그런 뜻이 있다 이 얘기입니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형용사로 나옵니다. ‘피스어블’ 이라고 나오는데 뭐라 그럴까요? ‘평강스러운’ 아니면은 ‘평강을 줄 수 있는’ 뭐 그런 뜻이 되겠죠?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랬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 ‘평강한 열매’라고 하는 것은 아마 ‘평강이라는 열매를 맺나니’ 그런 정도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평강이라는 열매를 맺나니’ 혹은 ‘평강을 주는 그런 열매를 맺나니’, 여기에서 그 평강이라고 하는 것은 ‘에이레네’라고 하는 단어인데, 히브리말의 ‘샬롬’입니다. 그러니까 이 히브리말의 ‘샬롬’ 혹은 ‘에이레네’는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말미암은 평화입니다. 평화는 평화인데,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말미암는 평화입니다. 그러니까 징계를 올바르게 감당하고 그 징계의 목적이 성취가 되면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징계를 통해서 징계받기 전에는 그릇 행함으로서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뜨려졌는데, 그 징계를 올바로 감당을 하면은 그러면 그 과정을 통해서 불의했던 삶은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는 의로운 삶으로 변해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그리고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불화는 해소가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과의 불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이 되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적대감, 그리고 또 하나는 거리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대적하시는 분은 아니지만은 우리 안에 우리가 불순종하고 죄 가운데 살면 그리고 우리가 죄와 떨어지지 않으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논리적으로는 나뉘어지지만 실제적으로는 나뉘어지지 않는다 이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우리들이 자녀들을 야단 칠 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꾸 공부 안 하고 그 불량한 짓을 하고 그럽니다. 싫은 것은 사실 불량한 짓이 싫습니다. 아이는 사랑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것이 나뉘어지냐 이겁니다. 그래서 ‘불량한 짓만 야단치고 아이는 사랑해준다?’ 그게 가능하냐 이겁니다. 그리고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니까 아이까지도 잠시 미워합니다. 적대감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지만, 또 역설적으로 완전하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죄가 있고 불순종할 때에 그 때에 우리는 사랑하시고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적대감을 가지시지만 우리가 그 죄를 붙들고 있는 한 나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즉시 죄를 버리면 다시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역시 하나님이 죄는 미워하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끝까지 사랑하시는구나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적대감이 해소되고, 그다음에는 뭐냐하면 거리감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가 소원해져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이제 이 징계를 통해서 해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회개하니까... 그것을 통해서 말하자면은 평강이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다시 수립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매로 맺게 된다 이것입니다. 열매로.... 그러니까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의의 평강한 열매가 맺나니’ 그 열매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서서히 자연적으로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오늘 징계 받고 그 다음에 아침에 징계 받고 저녁때에 평강한 열매를 맺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계속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과와 같은 열매를 맺을 때에 처음에는 꽃이 피고, 그 꽃의 씨부분이 약간 볼록하게 자라면서 봉지에 싸아두면은 그 봉지 속에서 서서히 커져서 그래서 그 수확 할 때쯤 되면은 아주 주먹보다 훨씬 큰 맛있는 사과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불의했던 삶이 변하여 의로운 삶으로 점점 변화되어 가고 그리고 그 징계를 통해 연달해져가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평화가 다시 수립이 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과일이 영글듯이 그렇게 열매를 맺게 된다 이것입니다.
그 이번 사경회 말고 지난 가을 기도학교 사경회때 그 용서에 대해서 시리즈로 우리가 잠시 설교 들었습니다. 그 내용하고 이것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뭘 잘못했을 때에 즉각적으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비는 것은 중요하지만, 실제 그 용서가 평강한 열매를 맺음으로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즉각적이지 않다 이것입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죄의 용서를 구한다 해서 “어, 그래, 용서할 줄게, 다 끝났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는 않는다 이것입니다. 특히 신자들의 경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못한 과정을 통해서 그것들을 바로잡는 과정을 주시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내면의 세계에 전적인 갱신을 도모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런 말씀입니다.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런것들을.... 그리고 그렇게해서 내적인 갱신의 과정을 통해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열매라고 하는 의미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맺혀진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또 하나는 뭐냐하면, 성경에서 이 열매를 인격적인 열매, 그리고 인격도 열매라고 제시하고, 특별히 삶도 열매라고 제시합니다. 요한복음 15장 같은데 보면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그 열매가 바로 성화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 거룩해져가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인격이 주님의 성품을 닮은 인격으로 변해가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제 그 인격 속에서 그 인격의 부합하는 삶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본성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가 나오듯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렇게 변화된 사람에게서 변화된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차이가 뭐냐하면은,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나지만은, 죄와 관련되서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우리는 죄가 있다 이것입니다. 그것들을 계속해서 죽여가고 새로워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조가 지속되고 내적쇄신이 반복됨으로서 보다 더 새로운 삶을 사는 가능성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격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서 열매를 맺게된다 이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결국 창조의 목적대로 인간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구속하셨고, 구속하신 목적은 바로 그 창조의 목적대로 살게 하시는 것인데, 인간들이 그렇게 안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해서 구속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섭리가운데... 그렇게 돌아가게 하시는 것은 결국은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징계는 고통스러워 보일지는 모르지만은 그 사실을 보면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아니하실려고 하는가를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뜻대로 우리를 얼마나 살게 하시고 싶어 하시는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자녀들로 부름을 받았지만은 진짜 징계의 과정을 통해서라도 효성스러운 자식을 보기에는 하나님이 참 쉽지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늘도 그런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만나면은 그렇게 기뻐하시고 그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