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십 개강예배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8-12)
녹취자: 백지영
사도 바울이 사도로서, 전도자로서, 목회자로서, 신학자로서 다양한 삶을 살았지만 이 모든 외형적인 삶의 모습을 다 묶어주는 하나의 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끈은 한 가지에 붙들려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뿌리를 찾아가 보면 구약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에게 구속사를 통해 계시되었고, 하나님이 당신을 아는 지식을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이 바로 신약시대인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렇게 당신 자신에 관한 탁월한 계시를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시대의 ‘그노시스 크리스 투’는 구약에 나오는 ‘다트 엘로 힘’의 신약적 기독론적 전환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완전한 동일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대한 비젼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위의 목표와 상위의 목표를 혼돈합니다. 이 사도 바울이 선교사로서, 복음전도자로, 목회자로, 저술가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매번 목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랬지요. 그러나 그것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표현에 따르면 최종 목적은 될 수는 있지만 최고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선교적으로 최종적인 목적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였습니다. 그리고 아마 목회자로서의 최종적인 목표는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이 정말 하나님의 복음을 올바르게 전파하는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최고의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목표는 이 세상 모두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식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사도 바울의 비젼이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그리고 그의 일생의 목표는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아는 것”이 일생의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것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하게 한다면 혹시 힘이 모자라면 거기까지 도달을 못할 수는 있습니다. 힘이 있으면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힘이 있고 요령도 있으면 남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좀 부족하면 늦게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으면 힘이 있는 것이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인생을 낭비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방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 여기 모였지만 지성적인 능력도 다 다르고 또 아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능력도 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유가 많아서 사 보고 싶은 책 척척 사 보고 유학가고 싶으면 내년이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옛날의 나처럼 책을 사 보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보고 이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방향이 올바르면 최악의 경우 똑바로 가다가 못가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소한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는 길을 통해서 사람들은 빛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는 과정을 통해서 까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향이 잘못되면 그 많은 자원을 가지고 목적지가 없으면 다른 쪽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간만큼, 사실은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았다고 하지만,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은 자신의 그런 오류에 빠진 삶을 통해서 많은 손해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몇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그리스도를 아는 첫 번째 시작은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는 영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여행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 없이는 그리스도를 깊이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원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계기가 있었지요? 다메섹에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자신이 꺾어지는 결정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표현으로 말하면 돈오(頓悟)의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본분이 신학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학생은 신학교를 졸업하면 신학생이 아니고 목회자는 목회 끝나면 목회자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본분은 신자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는 것은 신학의 차원이 아니라, 학문의 차원이 아니라, 사역의 차원이 아니라, 목회의 기술의 차원이 아니라 그 다음에 목회준비의 차원이 아니라 신앙의 차원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도 그리스도를 깊이 못 만난 사람들이 많고 목회를 안 하는 평신도 중에도 그리스도를 깊이 만난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신학의 크기를 보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보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복인 것입니다. 수백 개의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데 한 번도 지구와 만난 적은 없습니다. 사역을 하고 공부를 하고 예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선생 노릇을 하지만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난 경험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1740년에 영국 스코틀랜드 캠프스랭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젊은 설교자는 십자가를 설교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머리가 백발로 하얀 노인네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있었는데 그 지방에 캠프스랭 지방의 신학교의 교리학 교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기를 “내가 일평생 속죄하신 그리스도를 가르쳤는데 지금은 그분을 내가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와의 깊은 만남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방학 때면 항상 금식기도를 하러 기도원에 갔는데 그 강원도의 기도원에 갔더니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올라와서 설교를 합니다. 설교를 듣는데 기도원에 온 사람 같지 않고 정말 복음적이었습니다. 기도원에 가면 제일 힘든 시간이 그 때도 예배시간이었는데 예배는 새벽, 오전, 오후, 밤,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안 들어오면 막 야단치고 고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자가 올라갔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누구냐 하면, 감리교 신학을 하고 그 다음에 독일에 가 가지고 새빨간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이 사람이 진짜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그리고 나서는 비평주의 신학을 완전히 버리고 보수주의로 돌아섰는데 비평주의에서는 변절했다고 하고 보수주의에서는 신뢰할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지금 세월이 오래가서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유대인 구약학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사야 53편을 읽다가 예수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홀로 인정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와의 깊은 만남의 경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주님을 만난 것에 만족하지 말고 정말 주님을 깊이 만나도록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의 전기를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 앞에 어떻게 기도해야 될 지에 대한 방향들이 설정되게 됩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야 됩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를 중심 삼아서 여러분들이 신학을 공부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그리스도는 단지 교회의 머리가 아니라 모든 이 세상 만물의 머리입니다. 예수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진리가 아니라 온 땅과 모든 만민들을 위한 유일한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학문을 부지런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신학교 다니면서 뻥이나 치고 그리고 교역자인 위세나 하고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고 그러면 잠시 후에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지 않는 모든 신학생들을 혐오합니다. 우리 교회에 제가 아는 의사가 있는데 그분은 명의입니다. 진찰 한 번 받으려면 1년 반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에 의사들이 많이 있는데 5%만 의사이고. 나머지 95%는 의사 비슷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를 데리고 갔더니, 거의 죽을 사람이지요, 진짜 이 사람을 살리고 싶냐 물어보더랍니다. 진짜 살리고 싶다고 하니까 첫째 명심해야 될 게 아무 의사에게나 데려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름을 적어주더랍니다. “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이 몇 사람밖에 없다. 이 사람 찾아가라. 무릎을 꿇고 라도 치료해 달라고 빌어라 그러면 산다. 이 사람한테 가면 살고 저 사람한테 가면 죽는다.” 내 생각에는 목회자는 5프로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우선 심각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뭘 몰라, 그러니까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공부해야 하느냐 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때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 신학교 밖에 없습니다. 내 주위에 많은 목사님들이 있지만 목회를 하면서 계속 공부하는 목사님은 정말 가랑잎에서 바늘을 찾는 정도입니다.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공부해서 그리스도가 진리인 것이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 모든 신학에, 모든 학문에, 모든 세계에, 온 땅과 만물과 우주 모든 것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서 마지막에 전원처럼 자리하고 계신 분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깊이 터득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여러분들이 우리 여기서는 무슨 목회의 방법이나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아직 필요도 없고 가르쳐 주어도 소화도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어떠한 정신으로 여러분들이 미래를 준비해야 될까? 지도자는 남다르게 태어날 이유는 없습니다. 남다르게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다르게 살아가서는 결코 미래의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뭘 공부해야 되느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지금 와서 그렇게 물어보면 안 되지. 그것은 신학교 들어오기 전에 물어보아야지요. 하도 답답해서 이번에 총신수련회에 가서 뭘 공부해야 되는지 그것도 교의학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온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공부의 가닥 가운데 6분의 1내지 7분의 1정도 되는 분야일 뿐입니다. 나머지들 계속 공부해서 지성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무얼 공부하든지 간에 예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되물으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무슨 공부를 하든지, 성경신학이든지, 조직신학이든지 무엇이든지 계속 공부하면서 그렇게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치열한 삶입니다. 사도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여러분들은 펠레폰네소스 전쟁에 얽힌 마라톤의 일화를 기억하지요? 결국은 그 사람이 42.195킬로미터를 달려가서 마지막에 소식을 전하고 죽잖아요. 당시에 그런 운동이 없던 때에 그것을 뛰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잖아요. 이번에 아침 신문을 보니까 2분 5초를 누가 끊었더라구요? 굉장한 것입니다. 거의 우리가 전 속력으로 100미터를 달리는 것처럼 그런 속도로 달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런 속도로 달리는데, 그것을 당시에 그리스 로마시대에 있었던 달리기 경주를 염두에 두면서 지금 이것을 쓰고 있는 것인데, 그것은 뭣이냐 하면 스퍼트를 내서 전심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런 것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예함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달려가는데 이것은 조용한 사유 속에서 습득하게 되는 지식이 아니라 치열한 삶이 동반되어야지만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치열한 삶을 통하여 습득되는 지식이라 이런 얘기입니다. 그러면 그 치열한 삶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바쁘게 사는 것이냐? 물론 그것도 포함되겠지요. 게으르게 살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출렁거림이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아주 바쁘게 사역을 하고 그리고 교회봉사를 하면서도 영혼은 거의 움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안하고 몸이 아파서 병상에 누워서 기도하면서도 영혼이 계속 출렁거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삶을 통해 알게 하는 한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역을 얼마나 많이 해 보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출렁거림이 없이 사역을 한 사람은 그것이 오히려 목회의 결함이 될 뿐입니다. 차라리 누가 목회를 잘 하느냐 하면 순수하고 아는 것 없이 선배의 지도를 받으며 배우는 사람들이 훨씬 더 잘합니다. 그러니까 바탕만 잘 되어 있으면 노래를 많이 하다가 음악 학교 들어간 사람들을 교수들이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본 학생들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멋대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입니다. 영혼의 출렁거림이 있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혼의 출렁거림이 없이 교역자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영혼의 출렁거림이 있는 교사생활하면서 신학 공부하는 것이 훨씬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치열한 삶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치열한 삶이라는 것이 바쁘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출렁거림이 있는 사역입니다. 그때 진리에 대한 갈망들이 막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쁘다고 늘 얘기하는데, 오늘도 지금 조나단 에드워즈 공부하다가 왔는데, 읽어야 될 책들이 너무나 많지요. 한숨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학교 다닐 때 다 읽어야 될 책들인데 대학교 다니면서 안 읽으니까 이제 와서 바닥이 보이는 것입니다. 신학을 조금만 깊이 공부하려다 보면 바닥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너무 늦었지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그만 둘 수는 없잖아요? 해야 되잖아요? 방법은 딴 것 없습니다. 덜 자고, 덜 놀고, 덜 쉬고, 덜 편해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덜 자야 합니다. 잠자는 시간을 한 시간 이상씩 다 줄여서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이상 자면 죄 짓는 것이라고 내가 항상 얘기하는 데 난 평생 거의 한 다섯 시간 정도 잡니다. 12시 반쯤 자서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지독하게 맘을 먹고 자기 시간이 없으면 한계를 찢으면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 좀 하다가 목회하면 책 다 놓습니다. 안 합니다. 그러니 습득한 게 얼마나 된다고.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교인들이 가서 설교를 들으면 “한 1년 있으면 정말 우리 목사님의 설교의 세계는 모르겠다. 2년이 지나면 야, 정말 1년쯤 지나면 알 것 같다가도 2년이 지나면 모르겠다. 3년이 지나면 야, 모르겠다. 4년쯤 지나면 언제쯤 내가 따라갈까. 5년쯤 지나면 포기해야지.” 이런 대화가 오갈 정도로 자기의 지평을 계속 넓혀가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오면 목사가 커보이다가 6개월 쯤 지나면 조그만 해 보이고, 1년쯤 지나면 호주머니에 들어 갈 것 같은, 성경을 표면 벌써 무엇을 얘기할지가 뻔히 떠오르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치열하게 탐구하면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일찍 사역에 매몰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항상 안타깝습니다. 생계형 사역이 많으니까 어쨌든 공부하고 탐구하는 일에 마음을 쏟으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야 됩니다. 치열하게 공부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그랬잖아요? 그 지식이 바로 그노시스예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때문에 결국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이 행복하면서 그 행복을 가르칠 때 그것이 힘이 있는 진리가 되는 것이지, 우리도 믿지 않는 예수를 가르치고 우리도 행복해 하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라고 교인들을 족치는 그런 것이 우리의 목회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습득하며 그것을 체화(體化)해서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아, 주님을 잘 믿으면 저런 사람이 되겠구나, 참 매력있다, 나도 참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갖게 만들어 주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목회이고 또 우리가 이런 훈련을 받는 이유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