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새벽예배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않으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는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히12:18-19)
녹취자: 양현정
갑자기 왜 이런 기록이 나오느냐 하면은 사도가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히브리인들이 가장 두렵고 엄숙하게 생각하던 한 사건을 상기시킴으로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이르게 된 것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배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려주고 싶어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나서 한 3월이 되었을 때에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리비딤을 지나서 시내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아래 내려두고 모세가 하나님을 뵈옵기 위해서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빽빽한 구름이 있고 산 위에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올라가고 그리고 경계를 쳐놓고 거기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짐승이라도 그 경계를 넘으면 죽는다 그리고 모세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을 직접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이 임했으니 그 두려움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커다란 두려움을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건들을 오늘 결국 사도가 다시 거론한 것입니다. 앞에서 보면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배교할 위험에 놓여 있고 또 그 앞에 가면 부패해 져서 음행과 쓴 뿌리와 이런 위험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가변적인 상황에서 이 사도는 구약에 있었던 그 엄중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던 그 두렵고 엄중한 사건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두렵고 엄중한 사건을 생각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 사도는 자기의 편지를 받는 그리스도인 히브리인들에게 무엇인가 깨닫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무어냐 하면 그 하나님 앞에 모세와 더불어 들었던 그 하나님의 음성이 그렇게 두렵고 떨리는 음성이었다면 오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 중보자적인 도움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임재 앞에서 사는 이 삶은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삶인가 그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구약과 신약에 본질이 바뀌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그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을 당하신 중보자적인 의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었을 뿐이지 결코 그 하나님이 변하신 하나님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주어진 그 중보의 공로를 우리가 힘입었다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죄를 행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담대하고 대담해지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더 죄를 행하는 것이 대담해지고 이런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들이 중보를 구원을 얻고 수시로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이 영적인 특권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여전히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우리의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다 이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물러가서 배교에 가까운 삶을 살고 그리고 실제로 또 배교를 하게 된다면 그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과 두려움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그 깊은 이 경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우리 자신이 주님을 만나지만 한 그릇 신분을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그렇게 뒤로 물러가서 신앙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을 가지고 경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사방을 보면서 이렇게 신앙의 길에 미끄러진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깊이 경고를 받고 두려워하고 그러면서 매일매일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바라시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좋지만 그러나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을만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거짓된 안전감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살 수 없다는 고백, 주님이 붙들어주시는 그 은혜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 앞에 살 수 없다는 그 정말 진실한 그런 그 몸부림, 이것이 매일매일 아버지 앞에 서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