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새벽예배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 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히 12 : 18-20)
녹취자 : 김용재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이고 나쁜 점도 있지만 그러나 또 이 두려움은 굉장히 좋은 선물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냐면 아이들이 불이나 칼 같은 것들을 자꾸 만지려고 하는데 한번 데고 나면 가까이만 데려가도 아이들이 자지러지지 않습니까? 이처럼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속에 적절한 경계심을 심어 주어서 그래서 해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명분이 정말 귀하고 그리고 말할 수 없이 놀랍고 소중한 것이 틀림이 없는데 근데 실제로 사람들이 배교하고 믿음에서 미끄러지고 그래서 승뿌리가 나고 그리고 음욕과 여러 더러운 것들이 들어오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 때에 그런 위험을 말하면서 사도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해를 건넌 다음에 그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신해의 반도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신해산 아래 진을 치고 약 11개월 가까이 있으면서 애굽에서 몸에 뱄던 옛날의 더러운 습관들을 다 씻어내는 말하자면 수련회라고 할까요? 성격상으로. 그런 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이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합니다. 그렇게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그런 놀라운 경험을 통해서 동시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그 놀라운 임재의 경험을 통해서 그들이 한 공동체로서 정체성을 다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있었던 일인데 빽빽한 구름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그리고 모세가 이제 올려 보내졌습니다. 그 때에 경계를 정해 놓으시고 짐승이라도 거기 올라오게 하지마라 그럼 죽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엄청난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역시 두려워 떨었지만 모세는 명령에 의해서 올라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견딜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떨게 됩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심 앞에서 두려워 떠는 그런 광경이었습니다. 깊이 두려워 떨고 하나님 앞에 엄청나게 두려워하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생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 앞에 잠시 핍박을 못 이겨서 주님을 부인하거나 승뿌리가 되거나 음욕에 빠지거나 그럴 수 있느냐 이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거나 하나님이 마음에 없거나 혹은 부인 할 수 없이 하나님의 마음이 계시면 이 정도를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실 거야 그리고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회개도 하고 용서도 빌어야겠지만 회개하고 용서도 빌고 이러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그 희생보다는 이 죄를 짓고 맛보는 즐거움이 훨씬 더 클 거야라는 생각이 거기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두려우신 엄위, 공정하신 하나님의 성품, 죄인은 벌하시고 의롭게 산 사람들에게는 상주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정직하게 인식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들이 결코 하나님 앞에 그런 식으로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역한 종자요 더러운 씨들이었지만 그렇게 빽빽한 구름가운데 하나님이 친히 임재 하셔서 말씀 하실 때 그들이 범죄를 꿈이나 꾸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두려우신 임재 앞에서 그들이 범죄를 꿈이나 꿀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너희들이 신해산에서 빽빽한 구름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그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너희들이 주님을 대면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대면하는가. 영적으로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그리고 그 수많은 구원받은 무리들의 총회. 그러니까 우주적인 교회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가. 그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범죄할 수 있겠는가. 신해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말 무섭다 하나님은 정말 두렵다 거룩하신 분이시다는 것밖에 생각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예수로 피 뿌려 구원을 얻은 우리들에게는 두 가지가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엄위하신 분이시구나. 또 하나는 나 같이 더러운 죄인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의 외아들까지 죽여서 그래서 그 피를 흘리게 하셔서 나를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셨을까 하면서 깊은 두려움과 그 사랑을 한꺼번에 느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믿고 살아가는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배교하고 일시의 핍박을 면하기 위해서 주님을 부인하고 음욕에 흐르고 그렇게 더러운 삶을 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시대의 생활은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그 크고 놀라운 그 하나님의 엄위에 대한 임재의 경험보다도 더 크고 놀라운 주님의 엄위와 위엄과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동시에 보여주신 시대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의 지식에 밝은 빛 아래 살아서 그래서 그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총회, 교회의 영광스러운 이 실체. 이런 것들을 영적으로 생생하게 느끼면 우리가 그런 범죄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흐려지고 나면 어떠한 범죄에도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약 종교의 영적인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사도가 히브리서를 쓰면서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자. 뒤에 가면 나옵니다만 진동치 못한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그 성령의 은혜 안에서 산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단순한 신앙생활의 편의 문제가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그런 각오로 하나님 앞에 정말 매일매일을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