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2일 교직원예배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계 22:5).
죄가 들어오기 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위는 이 땅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고단하게 수고해야하는 그러한 노예와 같이 불러주신 것이 아니에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우리들은 노동명령 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노동은 왕의 노동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창조하셨는데 그 지위는 아주 정확하게 말하면 왕이야! 왕!!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한 연약한 종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향해서는 한 왕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것이에요. 그렇게 하고 보면, 베드로 사도가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 이렇게 부른 것도 사실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창조 당시의 인간의 원 상태로의 복귀를 암시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런 아주 확실한 증거가 오늘 성경본문에 나와요. 그게 뭐냐 하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신다는 것은 우리들이 이해가 되지만, 저희가.... 그랬거든요? 이건 성도에요. 성도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러면 도대체 이 왕은 어떤 종류의 왕이냐. 그 왕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이 인간은 처음 창조 당시와 똑같이 피조물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 피조물에 대해서 왕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모든 피조물을 향해서는 인간이 왕이며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향해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그런 세상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세계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지위라고 하는 것은 참 영광스러운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던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도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신께 감사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그 유명한 말! ‘나는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는 불만에 가득 찬 인간으로 남고 싶다!!’ 인간의 지위가 그렇게 높은 거예요. 그러니까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결국 인간이 본래 돌아가야 할 그 지위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는 거예요. 모든 피조물들은 왕인 인간에게 복종하고, 모든 인간은 자신의 주 하나님께 복종하는 그러한 통치의 질서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이에요. 그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직까지도 이런 하나님의통치가 회복되지 못한 그런 기간을 지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여기에는 수많은 갈등과 고통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나라를 잃어버리고 왕이 지위를 상실한 그 사람이 외국으로 망명해서 모든 부귀를 누리고, 모든 물질을 소유하고, 또 수많은 즐거운 낙들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그 왕의 마음이 위로를 받을 수가 있겠어요?
그렇죠!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즐거움을 찾고, 세상의 소유와 낙을 찾고, 그렇게 애쓰면서 깊이 몸부림치지만, 그러나 이것들을 가지고는 인간이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본래 그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다스릴 왕이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한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인간은 무엇을 해도 행복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거예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어요. 그렇지만 이세계의 모든 질서는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아! 그래서 그 저주가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는데도 이 세상의 물질의 질서들이 우리의 통치를 받지 아니하므로 곤궁하고 물질로 인해서 궁핍할 때가 있어요. 사람들과 그리고 이 모든 환경의 질서들이 우리의 원하는 대로 정리되어지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끊임없는 고통을 가져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는데도 또 한편으로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처럼 살아가야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이중적인 모습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한편으로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다시 복위시켜 주셨지만 땅들이 아직 우리의 통치의 온전히 굴복하지는 않게 하심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타락한 이 세상으로는 우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영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우리의 통치에 놀랍게 복종하는 질서들의 그 맛을 보게 하시는 거예요.
목회를 하면서 영혼을 섬기면서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이겠어요! 자기가 시퍼렇게 살아서 칼을 휘두르며 능히 다닐 것 같은 그런 막돼먹은 인간이 누가 뺨 하나 때리지 않고 꾸짖은 적도 없는데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의 섬기는 그 진리의 봉사를 통해서 그가 깨뜨리고 변화 될 때 얼마나 공손하게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 놀랍지 않아요? 이전에는 불한당 같고 나쁜 인간들이었던 사람들이 변화되어서 경건하게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 놀라운 변화를 보게 되잖아요!! 이게, 이게 바로 다름이 아닌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께서,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가 주님에 의해서 복직된, 복위된 왕권을 가진 이세상의 하나님 통치 대리자라는 것을 보여 주신거란 말이죠! 거기에서 이제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개념도 나오게 되는 거예요. 왕 같은 제사장의 개념으로 나와요. 그러나 아직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는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끊임없는 시련, 그리고 고통이 우리를 찔러요! 그리고 아프게 해요!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왕으로 복위시켜 주셨지만 우리의 통치에 굴복하지 않는 이 세상의 수많은 질서들을 보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영적으로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육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들이 이렇게 이 세상의 질서와 원하지 않는 고통 속에 치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마치 그 흙에 엎드려진 존재같이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의 대리자로 부름을 받은 인간임에도 세 덩어리의 빵을 위해서 매일 기도해야 되요. 한모금의 물을 위해서도 주 앞에 기도해야 되요. 그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네가 참으로 누구인지를 알라!! 하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 그걸 보게 해 주시는 거예요. 그때에 성도는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서 이 세상을 향해서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아야할 힘을 사실은 이 세상 자체 안에서 얻는 것은 참 완전한 자원이 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을 보고 사람에게 헌신한 사람은 또 사람에게 실망을 하게 하시고, 심지어는 교회를 보고 교회에 헌신했던 사람도 교회에 실망하게 하시는 거죠. 그래서 생사 간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는 거예요.
사도 요한은 가시밭길 같은 복음 사역의 여정의 길을 걸어 왔어요. 그리고 이제 주님 앞에 불러주실 그 부름의 날을 기다리는 노구를 이끌고 오늘 이 계시의 말씀을 적고 있는 것이에요. 근데 그것이 하나님의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비젼이죠! 그걸 갖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질서들은 잠시 지나는 것이고 그리고 그 나라에서 우리가 누릴 참된 행복과 안식, 그것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에요. 오늘 아침에도 새벽에 기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에게 무슨 소원이 더 있을까? 그리고 우리에게 소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소원이 이 세상의 종말과 함께 사라지지 않을 그런 소원이, 그런 소원들만 남겨 놓는다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소원이 남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주님을 위해 충성스럽게 살아가고 이 세상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왕국을 그렇게 사랑하고, 영혼들을 그렇게 불쌍히 여기면서 사랑했지만, 그러나 항상 지금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다가올 그 세상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으로 가득 찼던 거예요. 그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하늘의 향취로 젖을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영원을 향해서 생각하고 나면 사실 우리에겐 더 이상 아무런 소원도 없죠! 그렇죠? 세상과 함께 끝날 소원을 제외하고 나면 또 다른 소원이 우리에게 있을 수가 없죠. 그래서 타계적인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이 세상을 멸시 했어요. 그리고 수시로 하찮게 여겼어요. 세상을 비관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가 들어가 누리게 될 그 나라의 영광의 빛이 너무나 찬란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 세상을 경멸하고 멸시했던 것이에요. 누구도 이러한 이 세상에 대한 멸시함,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영광 때문에 지금 눈에 보이는 이 감각적인 세상을 멸시하는 마음이 없이는 누구도 그리스도를 뵈올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매 순간 이 세상이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고 믿고 그리고 주님과 만날 그날을 열렬히 갈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의 생애를 마름할 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는 매일 매일 기다린 바가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청년 형제가 홀로 사는 집에 심방을 가셨어요.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인데 청년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요. 참 순수하고 좋아요. 문을 열고 목사님이 들어가니까 방에 액자 하나가 걸려있더래요. 근데 액자에 그림도 넣어놓고, 애인 사진도 넣어놓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냥 하얀 창호지에 서투른 붓글씨를 써서 걸어놓은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오늘은 오시려나.... 목사님이 저게 무슨 뜻이냐? 자기는 매일 주님을 기다리는데 매일 아침 일어나서 그 액자를 보면서 오늘은 주님이 오시려나.... 그렇게 한번 그 액자를 읽고 마음을 다스리고 나면 이 쓸데없는 이 세상의 욕망이 다 사라진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오늘날처럼 모든 인생의 기대, 신앙의 모든 꿈들이 물질세계에 있는 요즘 우리의 신앙으로는 반드시 필요해요. 그래서 이 세상을 꾸짖고 적절히 멸시하고 그러면서 우리의 참된 본향이, 이 죄로 물든 세상이 아니라 회복될,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