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저자와의 신나는 서재로의 소풍
(질의응답)
녹취자 : 오희열
[질문 1]
목회자로 부름 받아서 순종하며 가는 사람에게 이 시대에 목사님께서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답변 1]
그런 질문을 외국에 강의 나가서도 많이 듣는데 첫째는, 주님을 깊이 만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처음 회심하거나 소명을 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매일매일이야 쉽지 않겠지만 주님을 깊이 만나고 새로운 신앙의 세계에 눈을 뜨라는 것이 첫 번째 충고입니다. 두 번째는 죽도록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공부해서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가 설교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도록 공부하라. 세 번째는 자기가 신학을 통해 알게 된 진리에 삶을 일치시키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끊임없이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때에 새로운 신앙의 세계에 대한 전망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첫 번째, 주님을 깊이 만나라. 두 번째, 죽도록 공부하라. 세 번째, 삶을 그 진리에 합치시켜라. (덧붙이자면) 네 번째, 열렬히 기도하라. 다섯 번째, 신실하라.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여 신실한 사람이 되라.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는 있으니까 더 높이 많이 혹은 더 적게 낮게는 할 수 있지만 신실한 사람이 된다면 최소한 다른 길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질문 2]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오래전에 강의를 들었습니다. 95년도로 기억합니다. 그때 강의실에서 많은 영향을 주시고 많은 감동을 주시고, 특히 가장 강조하셨던 것이 불꽃같은 신앙, 불꽃같은 예배, 혹은 타오르는 신앙, 이런 것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그때 함께 말씀하신 것이 예배와 삶의 일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그것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답변 2]
아마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95년도였습니다. 그때 첫 번째 책이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였고 그때 돌아가신 하용조 목사님께서 저의 글을 읽고 이 사람 책을 한 권 내주자고 저한테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가서 한 번 뵙고 책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책 제목이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였습니다. 저는 그 책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설교자가 서울 시내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1년에 한 2000부만 팔려도 많이 팔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주에 1500권씩 책을 찍었습니다. 게다가 그때엔 제가 이름도 없는 무명시절이었는데 두란노에서는 고맙게도 “김남준 시리즈 1권”으로 책을 내 줬습니다. 그리고 광고도 하나도 안 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2만 5천부를 지나더니 3만 부를 돌파했습니다. 책이 꽤 두꺼웠습니다. 360페이지 정도였고 정가가 7천원이었습니다. 당시 보통 책의 가격이 4천원에서 5천원 사이였는데, 7천원짜리 도서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왔다는 것은 출판가에서 새로운 소식이 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책으로 “불꽃처럼 살고 싶어요”가 출간되었습니다. 그것도 꽤 팔렸습니다. 세 번째 도서가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꽃처럼 살아야 한다.” 이것은 별로 안 팔렸습니다. 그러던 차에 네 번째 도서,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에서 대박이 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제가 불꽃과 이미지가 겹쳐져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야기한 불꽃을 사람들은 어떤 열정적인 것을 생각했는데 제가 의도했던 것은 불꽃을 뜨거운 열에 비유하기 보다는 “불빛”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시대가 워낙 어려우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믿는 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성경을 믿고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이하게 보일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많은 자극을 주고 참된 신앙으로 돌아가는 도전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고, 또 하나는 그 당시 제가 깊이 심취했던 주제가 “부흥”이었기 때문입니다. 30대 때 저의 연구 주제는 청교도와 부흥이었고, 40대 때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오웬, 50대 때에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렇게 변천해 왔는데 그런 점에서 그런 주제에 많이 빠졌으며, 지금도 그때 썼던 저의 책을 수정해야 되겠다거나 철회할 의견이 있다거나 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재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기본적인 골격은 유지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20년이 지났고 그동안 저도 공부를 많이 했고 인생이 성숙하면서 신학의 다른 세계들을 많이 보게 되어서 그때보다는 훨씬 더 통합적이고 심포닉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을 “심포니아”(symphonia)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30대 때에는 신학의 분과들의 통합을 경험했고, 40대 후반에는 모든 학문들이 통합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책이 나왔을 때에는 이런 신학의 통합을 경험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인식 같은 것들은 달랐겠지만 20년 전의 나를 찾아가서 “너는 이러이러한 것을 잘못 생각했다.” 라고 말하고 싶은 내용은 없는 듯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나를 찾아갈 수 있다면, “공부를 좀 더 해라.”고 하고 싶습니다.
[질문 3]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많은 선배 목사님들께서 동일하게 말씀해주시는 것이 지금 목회자 후보생들이 미래에 목회를 할 때는 지금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많이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저희 목회자 후보생들이 목회해야할 미래 상황의 주된 특징이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서 저희는 어떤 마음의 준비나 어떤 지적, 신체적인 준비가 필요한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답변 3]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는, 여러분이 본격적으로 목회를 해서 교계의 중심이 될 20년 후를 내다본다면 교회 내 기독교 인구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비관적으로 보면 절반정도 줄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교회들도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교회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첫째는 대형교회들입니다. 대형교회들이 모두 잘 살아남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내용 없이 지금까지 해 오던 길을 걸어가는 대형교회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대중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찾고 마케팅 교회에서 이머징 처치로 변신하듯이 그런 식으로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그 요구에 맞춰주려고 신속하게 변신하는 교회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성경이 그리고 있는 진정한 교회의 상으로부터는 멀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것들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교회가 조엘 오스틴의 교회 같은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엘 오스틴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미국을 갔을 때 얘기를 들어보니까 교인이 늘어나서 4만6천명 정도 모인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미국 최대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 살아남는 교회는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굉장히 결핍하고 굶주리고 있기 때문에, 셀 처치와 같은 교회가 살아 남을 것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에 이런 교회가 부흥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제 생각에 교회가 크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메시지가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묶어서 아주 끈끈한 사회적인 관계를 맺게 해 주는 그런 교회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현실의 특성상 훌륭하게 살아남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복음이 이야기하는 참된 기독교의 모습을 얼마만큼 가질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살아남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제가 열다섯 살 때, 정확하게 말하면 열네 살 2개월 되었을 때의 일인데 울면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 질문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체스터턴이 자기의 책에서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만이 대답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인간에게서 찾으려고 했으니까 무모했습니다. 그런 인생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주는 교회, 아주 우주적이고 통합적이어서 와서 설교를 듣거나 공부를 하면 인생 전체와 세계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와 사상이 생기도록 도와주는 그런 교회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대중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이지는 않겠지만 경쟁자 없이 아주 견고한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이며, 재계로 따지자면 블루오션의 길일 것입니다. 그 증거가 있냐고 물으시겠지요? 지금 시간이 없어서 다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많습니다. 미국에 그렇게 목회하는 교회들이 여전히 뻗어나가고 있고, 그것과 함께 복음의 본질적인 가치를 굳게 붙들고 실제로 부흥이 일어나는 교회들이 아마 종교적인 욕구들을 채워주고 사상적인 욕구들을 채워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질문 4]
제 질문은 가정 사역에 대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가정 사역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고 목회자로서 가정을 어떻게 보살피고 자녀들에게 신앙, 신학을 어떻게 심어주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4]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가져주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저는 사실 그리 썩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신대원에 와서는 사역을 하면서 미친 듯이 살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들을 많이 보내지 못했지만, 자녀들이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하는 은혜를 주셨고, 그래서 한 아이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좋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바와 목회자로서 교인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달라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모두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자녀를 가지신 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자면, 자녀 교육에 있어서 제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난주일, 어린이 주일 때의 설교를 들으시면(매해 5월 설교는 가정과 가족에 대한 설교가 이루어짐) 제가 자녀교육에 있어서 어떻게 잘못 생각했다가 회심하게 되었는지를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자녀를 깊이 사랑하고 그 관계를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정말 회심하게 하는 것은 부모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점입니다. 부모가 원하는대로 자녀들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신앙 안에서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며 자유롭게 자라가도록 자녀를 믿고 사랑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기다려주신 것처럼 자녀들을 향해서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질문 5]
로이든 존스 목사님의 책에 보면 “설교자는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이고 아니고 태어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만 믿고 연구에 소홀해서는 안 될 것 같고 목사님께서 “설교자는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 고 하신 말씀처럼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 말씀하신 “신학이 예쁘기 때문에” 신학을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은사로서의 설교자와 훈련으로서의 설교자로 굳이 나눈다면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께서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5]
첫째로, 설교에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설교는 은사다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몇 세기에 한 두 사람 나올까 말까한 탁월한 설교자들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나의 사명은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능력 있게 열매 맺을 수 있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생각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둘째로, 로이드 존스가 “설교자는 태어난다”라고 한 것은 “천성적으로 하나님이 달란트를 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설교자는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만남으로써 설교자가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흔들어 놓았던 위대한 설교자들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만나는 인격적인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회심의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어거스틴이나 마르틴 루터나 칼빈이나, 존 오웬도 마찬가지이고 스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주님을 깊이 만나면서 설교자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로이든 존스는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소명의 체험, 그 핵심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라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셋째로, 설교에 있어서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가입니다. 저희 교회에 외국인 학자들이 와서 설교를 많이 하는데 그가 설교하는 방식에는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신다든지 아니면 이 말씀에 대해서 설교자의 마음이 녹아내렸다든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건 아닌데…’라고 반박할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주님을 만난 것이 분명합니다. 가슴에 뭔가 불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건 아닌데…’라는 대목은 아주 많습니다. 이 차이는 서구에서 온 그 학자들은 체험이 좀 떨어지더라도 착실하게 공부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허튼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는 지식의 뼈대가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재밌는 일이 있습니다. 80년대에 강해 설교자로 한국에 많이 왔던 데니스 레인(Denis Lane)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와서 강의를 많이 했는데, 특히 에스겔서 강해는 아주 탁월했습니다. 강해설교를 하는데 그것을 들으려고 목회자들이 수천 명씩 모였으니까 대단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강해설교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때에 저는 공부하는 일에 몰두했지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사람이 물어보았답니다. “당신 설교가 대단한데 당신을 그런 설교자가 되게 한 특별한 계기가 있느냐?” 질문의 요지는 마틴 로이든 존스가 이야기한 그런 설교자로서의 극적인 체험을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 사람의 답변은 “저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였습니다. 우리는 그 대답이 굉장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탁월한 설교자로 만들었느냐?” 했더니, 물론 겸손하기 때문에 있는데도 말을 안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이 굉장히 우리에게 쿵! 하는 울림을 주었습니다. “내가 이런 설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회심한 이후로 설교자가 될 때까지 설교 같지 않은 설교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돌아가서 데니스 레인을 찾아보십시오. 이 사람이 회심한 이후로부터 계속 설교를 들어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 제임스 패커와 로이든 존스 목사님의 설교 이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학공부를 하는 것’이 신학공부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일 좋은 신학공부는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좋은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배를 드리거나 그 설교 앞에서 자기가 깨뜨려지고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신학의 얼개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 6]
목사님 책의 첫 페이지, 서론부터 읽으면서 궁금했던 내용인데 2권은 언제 발간되는지, 그리고 그 내용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고, 두 번째 질문은 브레이너드처럼 산책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수단이었는데 목사님은 주로 언제 산책을 하시고 어떤 경로로 가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답변 6]
첫 번째 질문의 답을 드리자면 2권은 원래 한 권으로 내려고 했습니다. 약 1200페이지 정도로 하려고 했는데 쓰다보니까 계속 분량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원고를 더미북이라고 하는 백지 책으로 만들어 보았더니 너무 두꺼워 모양이 너무 흉했습니다. 마치 목침처럼 생겼습니다. 두부판 같이 생겼으면 봐 줄텐데 목침 같아서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비율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래 1, 2권으로 완성시킬 책을 더 쪼개서 출간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본래의 원고를 다시 쓰고 만지다 보면 늘어나기 십상인데 지금 나온 신나1권도 본래 원고는 저 분량의 3분의 1입니다. 하다보니까 보충하면서 늘어나서 650페이지가 된 것입니다. 그 다음 장들을 전혀 손보지 않고 찍어내면 900페이지 정도 되는데, 나중에 다시 원고를 보니까 좀 더 손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좀 더 완전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1권에서 기대를 많이 가졌던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1권은 내가 쓴 책 중에서 제일 쉬운 부분이었습니다.
2권부터는 본격적으로 신학공부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소개를 할 것인데, 그 분량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2권과 3권으로 나누어 내기로 했습니다. 2권이 내년 1월이나 2월쯤 나오리라 보고, 2권의 분량을 잘 조정해서 지금처럼 650페이지 정도로 내고 그 다음에 3권이 나올 때 650페이지 정도 해서 세 권으로 거의 맞추어서 2000페이지 정도로 마무리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책을 말씀하셨는데 산책을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혼자 조용히 음악 들으면서 혹은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들으면서 조용히 산책을 하면서 내게 일어난 일들을 소화합니다. 깊이 있는 설교자가 되려면 공부와 함께 삶을 거기에 밀착시키고 일치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머리에 있는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사색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신학은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많은 사색과 믿음을 요구하는 학문인데 오늘날 목회자들이나 신학하는 사람들은 그런 기술들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많이 배웠어도 이상하게 소화되지 않은 지식이 가슴 속에서 도는 것 같은 것입니다. 설교라는 것은 음식을 먹이는 게 아니라 젖을 먹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먹고 젖을 내어서 자녀에게 먹이는 것이기 때문에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질문 7]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꼭 읽었으면 하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목사님 책 중에서와 다른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고, 사족을 달자면 아까 목사님께서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그 책이 대박이 났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 책을 30대인가 40대 초반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그 길을 가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를 해서 제가 M.D 과정까지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길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떤 방향을 전개될 것인지 참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답변 7]
소명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일단 소명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저는 항상 “그 길이 아닌 것 같다. 가지 마라.”고 합니다. 제 아들에게도 “가지 마라. 아빠 하나가 목사가 되면 충분하지 왜 너까지 되려고 하느냐, 가업도 아니고, 너는 네 길을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변함없이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가지 말라고 해 보는 것입니다. 그때 거기에 순종할 수 있으면 그것은 소명이 아닙니다. 소명 받은 사람은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너는 그 길이 아니라고 해도 갑니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 아직 안 가고 계시니까 굉장히 잘 하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백 명이 그 책을 읽고 신학의 길에서 돌이켜서 일반적인 직업으로 돌아갔는데 그것은 잘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퇴직하고 교회에서 사무장을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진짜 갈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목회의 길을 가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냥 목회의 길을 가려고 하는 현실이 미래의 조국 교회에 큰 부담이 되리라고 봅니다.
책을 한 권씩 읽는다고 하면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냐, 불신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냥 예수를 믿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쓴 책 중에서 -그 책을 가장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을 읽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책 중에서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조금 어렵겠지만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과 아까 얘기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질문 8]
하루에 기도를 평균 얼마나 하시는지, 그리고 오늘 기도는 얼마나 하셨는지 궁금하고, 청교도와 개혁파 스콜라주의가 어떻게 조화가 되는지, 현장에 있는 목회자로서 청교도를 사랑하면서 개혁파 정통주의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과 도움이 될 만한 도서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답변 8]
우선 세 번째 질문인 개혁파 스콜라주의에 대한 답변부터 드리겠습니다. 스콜라주의라는 것은 중세에 아랍을 통해서 들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아주 세밀한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함께 있습니다. 변증과 논증에 너무 치우쳤기 때문에, 말하자면 신학이 거의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논리에 치중하는 것을 보여주어서 나중에 스콜라주의가 붕괴됩니다. 그런데 개혁주의에서는 그것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개혁신학이 종교개혁과 함께 생겨나고 이후에 신학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칼빈이 이야기를 했는데도 칼빈의 내용을 이상하게 비틀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과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면서 칼빈의 해석을 애매하게 하면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종교개혁자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칼빈은 신학의 단순성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그런 스콜라주의를 배격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배격했느냐 하는 것은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습니다. 어쨌든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이단들이 많이 나오니까 이 이단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기존에 두루뭉술했던 신학들을 세분화시켜서 그들의 정통신학을 허무는 것들에 대해서 공격을 하며 정통신학을 방어하는 가운데 애매모호했던 신학들이 아주 구체화되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스콜라주의가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통적인 개혁신학에서는 스콜라주의의 폐해를 깊이 인정하면서도 방법론으로서 스콜라주의를 사용하는 것은 신학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첫 번째 질문인 기도에 대한 질문은 꼭 받는데, 기도 생활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면서도 사실 기도생활을 잘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그래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신학교 다닐 때부터 특별히 침체에 빠졌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씩 높낮이가 있지만 말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는 보통 하루에 세 시간 기도하려고 늘 애를 썼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는 어차피 새벽기도를 나와야 하니까 기도에 힘썼는데, 저의 중심은 새벽이 기도하기 제일 좋은 시간이니까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그 다음에 개인적으로 충분히 기도하고 거기서 성경묵상까지 하고 내려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계속 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곳 평촌으로 12년 전에 이사 오고 나서도 새벽기도를 6시쯤 하는데 아침은 대부분 거르다가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조금씩 먹습니다. 일이 없으면 안 먹어도 되는데 일이 있으면 좀 먹어야 합니다. 혈당이 떨어집니다. 그 당시에는 아침을 거르고 6시쯤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엎드려서 성경 보다가 늦으면 11시, 이르면 9시 반, 열 시, -대중없는 것 같은데- 이 시간 즈음에 강단에서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최근 2년여 지나면서 두 번의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체중이 20kg 가까이 줄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얼마나 약해질 수 있는가를 경험했습니다.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지수들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체중이 한꺼번에 줄다 보니까 체력 자체가 예전의 65%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잠을 잘 못 잔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많이 자야 한 다섯 시간 정도, 여태까지는 스스로 잠을 절제하느라 그랬는데 요즘은 잠을 많이 자려고 해도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하루에 쓸 에너지가 3, 4시 쯤 되면 다 고갈 됩니다. 그래서 좀 안타깝지만 그런 고통을 통해서 또 하나님이 많은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과 같은 책들을 그런 시련 속에서 쓸 수 있었고,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라는 책도 그렇게 쓰여질 수 있었습니다. 요즘 건강관리를 하고 의사는 1년 정도 모든 사역을 쉬기를 권하고 있는데 그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어서 작년에도 굉장히 많은 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제가 새벽기도 인도를 쉬고, 6시 반 정도까지 자고 집에서 기도합니다. 신대원을 다닐 30대, 40대에 비하면 시간적인 면에서는 많이 줄었지만 나름대로 극복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육체적인 힘을 공급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련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작년에는 저희 집사람도 아파서 거의 매일 유언을 이야기할 정도로 심각했고, 교회 대형 화재도 있었고. 이런 많은 시련들을 거치면서 건강을 많이 잃었습니다. 여러분은 젊으시니까 저보다 훨씬 더 많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 시간씩 하셔야 할 때입니다.
이제 거의 다 되었습니다. 몇 분이 계신데 거의 중복되는 내용들이어서 아마 대답이 되셨을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