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일 17일 교직원예배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딤전 1:17).
이 송영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묵상하면서 생애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구절입니다. 그 만세왕 썩지 아니하시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라는 이것은 사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연결이 되지 않는 문장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디모데서를 쭉 써 내려 가다가 어찌할 수 없는 감격 속에서 괄호 안에 들어가야 할 감탄사처럼 그렇게 쏟아내 놓은 말이 바로 1장 17절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 이 그 긴 구절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만세 왕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과 관련된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느 시간에도 안 계신 때가 없으시고 어느 시간에도 그 하나님이 시간 속에 묶이는 모든 사물들 위에 통치하는 왕으로 계셔서 그것들을 자신의 창조의 목적에 맞게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그 위대한 하나님을 보여준다면 썩지 아니한다 라고 하는 이것은 존재와 관련된 것입니다. 만세왕이 시간과 관련되었다면 썩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존재와 관련이 되죠.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은 태어난 시점이 있고 태어난 모든 것들은 부패에 종속이 되어서 자신의 원래의 본질을 상실해 갑니다.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사라져 가고 또 사라진 그 자리에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하는 이 장엄한 생성의 질서 속에서 이 모든 우주는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사멸하는 것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주 전체의 생명이 생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의 생명이에요. 인간의 몸이 인간의 몸이 약 60조개의 세포로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200, 어떤 사람은 약 1경개의 세포로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들이 쉼 없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통해서 그게 살아있는 인간임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생명은 죽는 것이 있어서 생명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 자신 안에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있어서 그 요소들이 죽고 살므로써 비로소 생명이신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은 부분으로나 전체로나 썩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라는 이야기에요. 그것은 하나님의 불변성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지금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 자신이 불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계획도 불변하고 그 지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도 불변합니다. 이 말은 곧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가지고 계신 그들의 존재의 목적과 그들의 존재의 목적을 함께 모두 연결해 세계 전체의 창조의 목적을 구사하시는 그 일에 있어서도 불변함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지극히 낮고 천하고 티끌과 같은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이 계획은 불변합니다. 나를 인간으로 창조하셔서 죄인으로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고 하는 계획, 나를 자녀로 삼으시고 성도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경륜,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통해 주님을 섬기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가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 그 계획, 이것은 불변하는 것이라는 것이에요. 끊임없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그 계획은 불변하는 계획이에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향해 가지고 계신 이 모든 계획들은 존재적 형체에 있어서만 불변하는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그 계획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확정된 계획이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실현되는 계획이고, 마지막엔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성되는 계획이라는데 특이성이 있는 것이에요.
자, 기계가 정교하게 운동을 하면 그 기계 위에 물건을 올려 놓으면 기계에 의해서 정확하게 운반이 됩니다. 이것도 물건을 운반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주 사랑하는 자녀에게 물건을 건네주는 그 움직임도 물건의 이동이에요. 배고프고 목마른 아들에게 떡과 물을 건네주는 어머니의 그 동작에 담겨져 있는 전달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랑이 담겨 있는 운동이지만 기계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 운동은 그냥 운동일 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은 바로 그렇게 전자와 같은 사랑 안에서의 계획이라는 거...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사랑 때문에 창조하신 이 세계를 붙들고 계신 것도 사랑 때문에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도 사랑 때문에 마지막에 이 모든 세계를 완성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시간이 없으니까 “보이지 아니하고” 그랬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불가견적인 영적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습성을 우리 안에 갖지 않으면 우린 어디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어요. 우리의 눈은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두 가지로 사물들을 바라보도록 그렇게 창조하셨어요. 보이는 사물을 바라볼 때에는 육신의 감각으로, 보이지 않는 사물을 바라볼 때는 지성의 인식으로 바라보도록 그렇게 창조된 거죠. 그래서 보이는 잘 들으세요. 보이는 감각의 사물들은 이성으로 받아들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물들은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그래서 신앙과 그리고 이성, 감각을 통한 이성과 믿음을 통한 지성, 이 두 가지가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 밖의 세계를 인식하는 비결이었던 것이에요.
독수리가 독수리나 혹은 무슨 여러 가지 물체들이 고기를 기가 막히게 강으로 확 날아가서 한 번에 탁 하고 채요. 그것 참 신기합니다. 물 속을 다니는 고기를 저 높은 꼭대기에서 총알 같이 날아와서 탁 하고 부리로 문단 말이요. 그래서 양평에 가 보니까 먹었던 때는 막 이만한 고기를 새가 물고 오고 펄떡거리는 고기를 물고 가는 거예요. 근데 사실 이걸 우리들이 보면 불가능한 일이야. 왜냐하면 새가 위에 떠서 한 순간에 렌즈처럼 촥 클로즈업이 되어 가지고 마음을 먹으면 이게 렌즈가 확 모아져서 이 넓게 보던 것들이 렌즈가 짝 모아지는 것이에요. 초점으로..그럼 물고기가 보인다는 거예요. 근데 물고기를 보고 공격을 하면 보이는데로 공격을 해서 부리를 탁 벌려서 쪼며 고기가 잡히겠어요 안 잡히겠어요? 왜 안 잡히겠어요? 아니 이동하는 거야 그 이동하는 속도를 계산을 했겠지. 왜 안 잡힐까? 굴절 현상 때문에 안 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물이 있으면 고기가 여기 보이면 사실은 고기는 사실은 저기 있는 거거든. 물이 이렇게 꺾이니까. 그래서 숟가락을 이렇게 집어 넣고 물을 보면 숟가락이 휜 걸로 나타나잖아. 그러니까 보이는 실제 있는 것보다 더 앞에 가 있단 말이지. 그러면 새가 쏜살같이 날아가서 보이는 물고기를 향해서 공격을 하면 속도 감안해서 공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헛방이 나와야지 맞는 거야. 근데 너무 놀라운 게 뭐냐면 이 새대가리 안에 그 굴절을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계산을 해서 공격을 하는 거죠. 그러니 어찌 새 머리를 새대가리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공격을 해서...탁 하고 정확하게 딱 집어내는 거죠.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은 이성이라면 이 속에서 굴절을 계산하는 것은 믿음이에요. 그렇게 비유를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면 육신의 감각으로 모든 사물들을 이성으로 아는 것과는 다른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거....그것을 끊임없이 우리들이 실행하여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거죠. 그래서 보면 우리 이렇게 눈을 뜨고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수많은 사물들과 접촉하고 사는 동안에는 이상하게 하나님이 안 보여요. 사면은 멀리 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눈을 감고 기도한다든지 세상의 근심사와 속스러운 일들을 다 잊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진리를 대면하게 될 때 아무데도 안 계신 하나님이 어디에든지 안 계신 곳이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그런 의미에서 그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란 말이죠. 그리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니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 밖에 있을 수는 없는 존재들이죠. 그래서 결국은 이 모든 세계와 우주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쓰러지고 없어지지만 태어나는 것들 통해서도 하나님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것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보여줘서 그래서 결국은 태어난 모든 것들은 태어나고 죽고 사라지고 소멸하지만 그것들을 품고 계신 하나님은 불변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서 온 세계와 우주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수많은 사물들이 태어나고 사라져도 영향을 받지 않고 홀로 계신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것이 이 사도의 마음 속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확 폭풍처럼 밀려닥친..그래서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만세 왕, 영원부터 영원까지 흐르는 끝없는 시간의 연속 속에서 어느 시간에도 안 계신 적이 없으시며 그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는 왕이시고, 불변하시고 영원하시도록 썩지 아니하시며 보이지 아니하시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인간들이 있을지라도 그 분을 벗어날 수 없는 그 온 세계에 가득한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그 분 안에서 자신은 가장 작은 티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그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이 온 우주 안에 가득하고 찬란한 광채와 같이 미치는 것을 경험했던 거죠. 그래서 그렇게 감동하고 있는 것이죠. 근데 문제는 무엇을 생각할 때 이렇게 온 땅과 하늘 위에 충만한 하나님의 존재의 영광, 그리고 불변의 영광, 그리고 홀로 하나이신 영광을 영광에 감격하게 되었느냐...그게 바로 그 바로 앞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뭐라 그래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구속,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이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실행을 통해서 이 만세 왕이시오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과 땅에 충만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요 그리고 역사였습니다. 이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사도는 자기 개인의 구원, 전에는 핍박자요 포행자요 훼방자이었던 나, 바울이 사울이었던 나, 바울이 일체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은 죄인 중에 괴수인 내가 그리스도에게 구원을 얻은 그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온 우주 안에 가득찬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를 다 허비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었어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그것이었어요. 그래서 우주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그 분의 탁월하심을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구속의 영광이 보이는 거예요. 그것 보면 인간에게 인간 세계 안에 이 죄가 들어오게 된 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 하는 이 무지한 인간들에게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것이 돼요. 그것도 찬송의 제목이 되는 거죠. 왜냐하면 그 어둠을 배경으로 하나님이 그 찬란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든 진리의 비밀과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그 위대한 영광의 충만함을 알게 되는 비밀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있어요.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침마다 그리고 밤마다 이 벌레 같은 인간을 구원하신 그것도 사실 말이 안 되죠. 벌레는 그래도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잖아요. 이 벌레 같이 더러운 인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사무치는 사람이 될 때 그 때 그 사람의 눈에는 만세 왕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보이는 것이죠. 그런 속에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그것이 신앙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로 삼으셨는데 오늘 아침에 묵상하면서 참 다 끝나지 않았지만 놀라운 복음을 보았어요. 그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에서 진리를 배워 가게 하시는데 그 진리는 수도생활이나 진공 속에서 이성을 하나님께 주시함으로써 깨달아지는 진리가 아니라, 그 교회 안에서 그 교회 안에서 공동체에 위탁된 진리를 알아가는 것....그러니까 하나님은 진리를 아는 데 있어서 경건을 수단으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사도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라고 고백한... 그러니까 그 경건을 통하지 않고는 진리를 알 수 없게 하신 것....그래서 결국은 이 진리와 사랑을 알게...왜냐하면 아까 말한 것처럼 그 모든 우주와 인간을 향한 계획이 하나님의 차가운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경건을 통한 사랑 안에서 그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그 경건의 껍질을 벗어버리고는 진리를 알아갈 수가 없는 거죠. 진리를 붙잡지 않고는 경건의 거룩함에 이르지 못 하는 ...그래서 이렇게 경건과 그리고 이 진리는 함께 우리에게 파악되는 것...진리를 알고 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말고 주님을 잘 믿어야 되는 거죠. 책 가지고 승부를 보려고 그러면 안 돼. 절대...선생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만 아비와 스승은 될 수 없어요. 경건을 배워가는 것이. 쭉 배워 가는...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알고 아는 것만큼 사랑하고 그것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이 부딪히는 수많은 지체들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엮어져서 용서 받고 용서하고 용납 받고 용납하며 그러면서 공동체에 부여된 이 진리를 함께 알아가는거죠.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교회에서 입증하고 그 지평 속에서 사랑을 확증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