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새벽예배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8-10)
녹취자: 김은정
첫째 장막을 이야기하는데 첫째 장막, 둘째 장막이 있는데 첫째 장막은 이제 제사를 드리던 성막 뜰에서 그래서 첫째 장막을 열고 들어가면 이제 성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막을 열고 지나가면 일 년에 한차례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가 나오는데 거기서 하나님의 임재와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첫째 장막이 있었는데 그래서 성소에 들어갈 길이 아직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율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주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제사를 통한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게 되면 제사를 드리는 여러 가지 예법이 있고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기에 합당치 않은지에 대한 여러 가지 많은 조건들이 율법에 나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에 따라 제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거기서 주님과 만나지만 그러나 하나님과 만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영구적인 방법이 될 수 없고 임시적임 방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런 임시적인 방편으로는 영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양심상 깨끗케 못하나니라고 되었는데 것은 죄를 지어서 자기의 죄를 잠시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교통을 한다고 할지라도 무엇이 문제가 되냐면 그런 죄 씻음의 효과가 영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즉시 다시 범죄하게 되면서 양심에 더러움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의식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언제나 자유롭게 나아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모든 상황을 오늘 사도가 첫 번째 장막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장막뿐 아니라 두 번째 장막을 지나야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와 마주할 수 있는데 이 제사를 가지고는 첫 번째 장막도 온전히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그런 길,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개혁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맡겨두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잠시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와 같은 죄의 용서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해주셔야 한다. 이렇게 자기를 용서해 주시지 않으면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그런 간절한 갈망을 갖게 하시고 그러나 제사를 가지고는 그 용서의 효과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제사 말고 무엇인가 보다 완전한 보다 완성적인 용서, 죄의 용서의 길이 없을까 생각하게 될 때 그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실 수많은 성경의 예언들을 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아 그 분이 바로 그 긴 세월을 동안 끊임없는 속죄의 제사를 통해 우리가 기다리시던 바로 그 분이구나 그것을 깨닫게 하기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것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살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에 성경에 명백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의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행위로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죄를 가리움을 받고 용서를 받아서 외부적으로부터 들어오는 그 의를 덫 입음으로써 자신이 의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못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고자 하실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방법이라는 것을 못 깨닫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고 못 깨달을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 죽으신 것도 바로 그런 반대 때문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이런 복음의 시대에 태어나서 이제 마음을 기울여 정확하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가를 우리들이 깊히 깨닫고 알게 되면 그러면 그 하나님의 구속의 위대한 비밀들을 인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율법 속에서 깨닫지 못하고 죽어갔는데 우리가 무엇이 관대 이런 복음의 시대에 태어나게 하셔서 그것도 많은 사람들에게 안 믿어지는데 그런데 우리 맘에는 믿어지게 하셔서 우리가 믿은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맘에 역사하셔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아들딸들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복음이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신 고난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가운데 매일 매일 살아가는 진실한 성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가 이것이 모든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매일 매일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진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구원의 복음, 이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찬송하고 자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래서 일평생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살리신 그 크신 은혜를 찬송하고 자랑하고 기뻐하며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