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23
목 차
목자 되시는 하나님(1)(시 23:1-2) 39
목자 되시는 하나님(2)(시 23:3-4) 41
내 잔을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시23:5-6) 43
목자 되시는 하나님(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본문해설
시편 23편은 다윗의 인생 말년에 쓴 시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시는 목가적 분위기를 풍기는 내용처럼 보이나 그 속에 숨겨진 깊은 의미나 정황들을 미루어 볼 때엔, 어린 아이가 쓸 법한 회화적인 시가 아니라 인생의 모진 풍랑과 고난의 골짜기를 모두 지난 성숙한 사람의 시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먼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는 것을 제일 먼저 고백합니다. 한때 그는 양치는 일에 종사했었습니다. 양치기의 신분이 아닌 왕이 된 이후에도, 그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경험하였습니다. 오랜 인생살이 동안 그의 신앙은 깊어져 갔고, 시시때때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수많은 인도하심이 알고 보니 자신이 양을 인도하였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자신의 인생 전부가 하나님의 목양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양이 목자의 돌봄 아래 있는 한 그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목자가 먹을 것을 제공해 주며, 쉴 곳을 인도하여 주고, 많은 위험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양을 쳤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이 세상에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됨으로써 자신에게는 아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부족함을 없애기 위해 늘 애씁니다. 내일을 위해 재물을 모으고,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하며,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곁에 두려고 합니다. 또한 죽음이 자기를 삼키게 못하도록 건강을 돌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인간의 애쓰는 노력일 뿐이고, 마지막에 결국은 인간 자신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자원들을 스스로 공급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공급할 수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그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목자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필요하며, 그분의 목양 아래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
2절부터는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라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으로 말입니다. 초장은 양떼들에게는 먹이입니다. 곧 양식이 풍부한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양식을 얻기 위해 우리는 목자를 떠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목자를 떠나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의 육신과 영혼에 꼴을 먹이심으로 주님 앞에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비결인 것입니다. 배고플 때에는 먹이시고, 목이 마를 때에는 마시게 하시며, 피곤할 때에는 쉬게 하십니다. 인생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조달하려고 하면 우리 스스로 추해지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벗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 있으면, 그 모든 필요한 것들을 주님이 공급해주시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려고 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집니까? 우리는 한 순간도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인생의 행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잘 믿는 자는 너무나 이 사실을 잘 깨닫기에 그렇게 살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잘 압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전도의 계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목자 되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2)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3-4)
본문해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어주신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는데, 2절에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는 은혜 때문에 여호와는 자신의 목자 되심을 고백하고 있고, 3절에서는 자신의 영혼을 소생케 해주시는 분이시기에, 곧 영혼에 충만한 복을 주셔서 새롭게 만들어 주시기에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모시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축복은 일반섭리를 통해 우리에게 부어지는 일반 섭리적 축복과 우리의 영혼을 그분이 직접 어루만지심으로 베풀어주시는 영적축복으로 나눕니다. 후자의 축복은 전자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섭리적 축복은 우리들이 그 축복을 받았을 때, 그저 기쁘고 감사하여 우리 영혼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뿐이지만, 영적 축복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우리 영혼에 내리시는 복이기에 우리 인생을 바꾸어 놓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덕스러운 힘을 가졌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후자의 축복은 바로 이 덕스러운 힘을 우리 영혼 안에 창조하시고, 만들어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시인은 이것으로 인해 여호와를 자신의 목자로 모시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침한 골짜기에서 보호하시는 목자
시인은 또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자신을 보호해 주시는 주님이시기에 여호와는 자신의 목자 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죽음의 위협이 기다리는 인생의 깊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 속을 통과할 때에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해주심을 느끼면서 자신의 영혼이 평화를 누리게 되는 축복을 시인은 누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비록 깊은 위기 속에 들어가고 시련 속에 허우적댄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한 가지 확신만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붙들 때 우리는 낙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과 자원은 결국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에게만 부어지는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시련을 이기는 용기와 담대함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는 우리들이 됩시다. 입술로 신앙고백 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매순간 이런 관계 속에서 살아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자원들을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 잔을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5-6)
본문해설
본문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매우 특별한 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말씀은 잔칫집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잔칫상을 펼치듯 하나님께서 후히 베풀어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기쁨들을 주십니다. 모든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에서 어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밖에서 구한 행복은 항상 깊은 후회와 슬픔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고 기쁨을 얻는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밖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악한 정욕들을 죽여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창이나 칼로 없애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게 될 때,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 안에 있는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아무리 많이 누려도 우리의 영혼에 해롭거나 종국에는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밖에서 얻은 행복은 잠시 누렸던 그 행복보다 더한 고통을 반드시 가져다줍니다.
이처럼 주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 안에 있는 인격적인 승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분의 성품과 자비를 발견하고 그 하나님 앞에 인격적으로 깊이 승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기쁨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는 행복
마지막 구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의 마지막 행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신자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 집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보이는 교회를 향해서 나타납니다.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부부가 있는데, 아내가 그 가정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차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자신의 집안을 애정 어린 손길로 잘 가꿀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고 가정으로부터 관심이 떠나 있다면, 그리고 언제든지 독립할 꿈을 꾸고 있다면, 그녀가 살고 있는 집, 가족에 대한 사랑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사랑하고 의지하게 되면, 교회를 그와 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가장 풍성하게 만나며, 그분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기도응답을 받게 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주님을 의지하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회가 없는 성도, 의지해야 할 목회자가 없는 성도는 주님을 목자로 섬기는 그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늘 방황하고 흔들리고 동요하며 살 것입니다. 성도의 일생은 주님을 목자로 모시고 주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듯 보이는 교회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론과 적용
우리의 지나 간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던 때는 교회를 사랑했던 때와 항상 일치합니다. 교회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면 교회가 그의 관심 밖의 일이 되어 갑니다. 지체들의 잘못을 보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 그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어리석은 행동들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붙들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교회 속에 나타내며 일평생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주님의 섭리 하에서 교회를 옮기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으나, 변치 않는 사실 하나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날마다 베푸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시편23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