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집회 준비 2
“모든 백성에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 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 10:41-46)
지난주에는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 해다가 설교를 듣게 된 그 과정 그리고 어떻게 설교를 그가 듣고자 하였을 때에 어떻게 그가 집회를 준비하였고 어떻게 집회를 준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뭐 복습을 좀 해 본다고 한다면 기도하는 사람끼리 영적인 교통이 있는 준비였다 이 집안에 가정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온 베드로도 기도하는 중에 이 집으로 가도록 지시를 받았고 고넬료도 기도하는 중에 그것도 어떻게 육시에서 시작해서 구시까지 계속된 세 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기도 속에서 베드로를 청해오도록 말하자면 응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이 사람들이 어떻게 준비하였는가?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믿었고 그다음에 모든 것 자기 입에 단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듣기를 원했고 또 하나는 단지 들을 뿐만 아니라 전폭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했고 그 다음에 모두 나온 집회였다. 모두다 그다음에 그 집회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서는 집회였다. 그렇게 준비를 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은혜를 베푸시는 이런 역사를 하셨다. 그 얘기가 지난 주 전편 이였습니다.
오늘 속편 44절부터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 이러라”
이는 집회의 결과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집회는 성령이 놀랍게 역사한 집회였습니다. 어떤 집회 어느
정도였습니까? 이 사람들이 베드로가 설교하고 난 후에 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들 때에 이 사람들이 생각났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사건 이였습니까? 그렇죠 오순절 날 그들이 성령을 받았던 그 사건을 즉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예요 적어도 의미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외관상 나타나는 능력에 있어서 그저 성령이 잠깐 스치고 간 그런 집회가 아니라 성령이 물 붓던 쏟아 부어져서 그야말로 이 고넬료와 고넬료 집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감화를 받는 그러한 집회였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괜히 한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그런 정도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외면적인 표증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숨길 수 없이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런 성령이 역사하시는 집회였다. 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지만 동일한 성령이 역사하시지만 그러나 그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실 때와 강하게 역사하지 않으실 때 거기에는 현격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지 않을 때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이 다소 강하게 죄인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그리고 말씀을 듣는 회중들의 심령에 호소하고 감화를 주시면 그러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여서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았으면 하는 소원을 가질 수 있게끔 할 수 있습니다. 왜 성령이 사람들이 마음을 움직이시기 때문이죠 전에는 말씀을 들을 때 무감각하게 느껴지고 누가 그런 얘기하되 요즘은 제가 소리를 좀 안 지르는데 처음에는 한 5년 전에는 설교들 처음서부터 끝까지 목청도 좋아요 소리소리 질렀어요 그러니까 누가 하는 말이 그래요 말로 들리지가 않고 소리가 90분 동안 계속 됐데요 소리를 들은 것 밖에는 기억이 없데요 그러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시면 소리로 들리는 게 아니라 그것이 말씀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가슴을 두드리고 그 마음에 변화를 가져와요 승복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왠지 인격적으로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 설교 속에서 느끼고 거기에 승복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이러한 사모하는 마음들을 성령께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짜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시면 이 이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말로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시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모든 사람들에게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한 영적인 역사가 동반되는 거예요
성경은 자주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을 자주 비교 하죠 술 취하지 마라. 이건 방탕한 것이니 성령 충만을 받으라 또 성령을 많이 받은 사도들에게 뭐라 그랬어요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도다. 술을 조금 취l하면 안 취한 것처럼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자신을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이 깊이 취하게 되면 자신이 술에 취한 것을 아무에게도 숨길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동일한 것입니다. 이 고넬료의 집안에 성령이 그렇게 임한 것이에요 여기는 자세히 묘사가 안 나왔지만 이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 자기의 동료들에게 교회 있는 지체들에게 자기가 어떻게 해서 이방인과 함께 먹고 마시게 되었으며 율법에 금한 거 아니에요 먹고 마시게 되었고 또 어떻게 해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들 내리셨는지를 다 소상하게 증거하므로서 자기 교회의 오해를 풀었어요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열었어요 그건 뭐에요 이방인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신다. 는 것 이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충격적인 것 이였어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는데도 예수그리스도가 보이고 그 다음에 마태복음 10장에서 귀신들린 자를 내어 쫓고 병을 고치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받았을 때도 깨뜨려지지 않았던 그 유대인 고정적인 관념과 상식이 파괴되어 성경이 열리고 예스그리스도가 보이고 십자가가 보이고 구원이 보이고 십자가에서 보혈에 샘이 보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어야 할 선교가 보이고 다 보이게 되었는데 여전히 안 무너지는 거 뭐 이방인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가? 하는 문제 였어요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비 복음적인 사고방식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상고방식이 은혜를 받아서 깨뜨려지고 무너진다. 라고 하는 것이 얼마만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마음을 건드리고 가고 죄인들 마음에 단순히 감화를 끼치는 이런 정도의 성령의 역사가지고는 상식이 변화되지 않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적인 관념들이 파괴되지 않는 거예요
보다 강력하고 보다 힘 있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간의 사고방식과 비 복음적인 생각들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하지 않은 잘못된 인간의 모든 선입견과 편견들이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서 부딪치고 쪼개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깊이 깨어지고 그리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파괴되는 이러한 영적 경험들이 동반되어야지만 우리가 이 알량한 상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 무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하는 것이에요 그리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형벌 받을 사람가운데 한 사람은 듣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설교하는 사람이에요 두 번째는 그 악에 동참하는 사람은 자기의 귀를 즐겁게 할 말씀을 찾는 사람들 수술을 해야지 나을 수 있는지 약을 먹어도 나을 수 있는지 아니면 조용히 죽을 날을 기다려야 되는지 의사가 결정해야 할 일이에요
성령에 강한 역사가 이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그 수 천년동안 내려온 이방인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가? 하는 이 의문 의문이라기보다는 이방인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시지 않는다. 이런 확신 이 비 복음적인 질긴 신념들이 여지없이 이 시점에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10장에 구원사적인 의미라고 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에요 이게 결국은 10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는 무슨 소리를 듣냐면 삐거덕하는 소리를 그게 뭐여 이방인을 향하여 굳게 닫혔던 복음의 수문이 열리면서 폭포수와 같이 복음의 물결이 이방인들을 향해서 쏟아져 그 출발이 바로 이 10장이에요
보세요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인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이방인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가? 하는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그들이 찾을 때까지 선교의 문은 막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에 대한 오해가 교회자체에 얼마나 커다란 재앙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이 얘기합니다. 무지만큼 심각한 죄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넬료 집안의 이 집회는 성령이 역사하니까 인간의 상식을 초토화시키는 집회였어요 그러니까 여기 뭐라 그랬어요 성령이 얼마나 역사하시는지 베드로 이렇게 쳐다보고 놀란 거예요 무슨 얘기에요 베드로가 욕바에서 보따리를 싸 가지고 부흥회를 인도하기위해서 이 고넬료의 집으로 갈 때에 분명히 그 집회를 위해 기도했을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집회의 결과는 베드로가 기도했던 그 기도하면서 기대했던 이상이였어요 이하였어요 이상정도가 아니라 베드로가 기도하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크고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어때요 그 집회의 주도권을 베드로가 쥔 것도 아니고 고넬료가 쥔 것도 아니고 누가 쥔 거예요 성령이 혼자 쥐시고 흔드시면서 역사하니까 베드로도 보고 이방인들도 보고 유대인들도 보고 다들 마지막 결과는 뭐에요 깜짝 놀라고 충격을 받는 결과 였어요
여러분 베드로가 성령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였어요 이미 2장에서 부어주시는 놀라운 성령을 경험 했어요 그 이전에 마태복음 10장에서도 경험 했어요 3장4장5장6장 내려오면서 7장8장 내려오면서 계속해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와 은혜들을 경험했습니다. 풍성한 성령의 역사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를 경험 했어요 그는 자기 앞에서 성령을 받고 기뻐 뛰는 사람도 보았고 병이 낫는 사람도 보았고 앉은뱅이를 그 자리에서 일으켰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산자가 죽어버리는 것도 보았어요 안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 집안의 이 집회에서 성령이 역사하는 이 모습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충격을 안겨준 것이에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후일에 이 사건을 계속 반추하는 거예요 그것이 베드로 속에 이방인 선교의 시작 이 된 거에요 그랬기 때문에 후에 바울의 회심을 베드로가 믿고 그가 12사도와는 별도로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에 아멘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얼마나 하나님께서 멋진 계획의 구원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러니까 어때요 한 번의 집회가 고넬료 인생만 바꿔 놓은 것이 아니라 고넬료 집안의 인생을 바꿔놓고 고넬료 집안의 인생만 바꿔놓은 것이 아니라 설교자로서 베드로의 신학적인 인식의 지평을 열어버렸어요 새로운 차원의 설교자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리고 동시에 이방인 선교를 위한 첫 번째 빗장을 여는 놀라운 역사를 이 집회를 통해서 이루었던 거예요 여러분 고넬료가 백부장이였다 그러니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중대장쯤 되는 거 아니에요 오늘날 예비군 중대자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런데 잘살면 얼마나 잘 살았겠어요 그 가정에서 식구들과 함께 열린 집회였어요 그게 무슨 볼품이 있는 이런데서 이렇게 멋있게 모여서 설교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누가 그 집회를 보면서 이것이 세계역사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집회가 될 것이라 누가 생각 했겠어요 그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과연 이것은 교회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집회가 되었어요 할렐루야 봐요
하나님이 결국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를 움직여 가시는 거예요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움직여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집회는 고넬료를 깨뜨리고 고넬료 집안의 사람들을 깨뜨리고 동시에 베드로를 깨뜨리고 베드로와 함께 했던 유대인들을 깨뜨리고 이방인들의 마음을 깨뜨리는 놀라운 집회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마다 1월 달이 되면 신년축복부흥회 어느 교회에서 1월 둘째 주에 저를 불렀어요 제목이 뭐냐 그러면 신년축복대부흥회 제목은 목사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나는 내 할 얘기할테니까 왜 이렇게 축복을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랬더니 뭐 그렇게 축복을 좋아하냐 이랬더니 어느 교수는 그래요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가서 축복을 받지 않으며 누가한테서 받겠냐 말 되죠 그것도 그런데 문제는 뭐에요 참된 행복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에 계획과 구도에 하나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언제든지 불가능해요 잘 되는 거 같아도 불가능해요 결국은 하나님은 언제나 홀로 거기 계셔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그리고 우리에게 그 음성을 듣고 우리로 하여금 당신과 대면할 수 있는 자리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시는 거죠 그러니까 가장 커다란 축복은 무엇이에요 인통 물통 신통 그런 거 따질 것 없어요 문제는 뭐죠 가장 중요한 것은 집회 그 집회를 통해서 우리의 잘못된 인식과 자아상과 그리고 잘못된 가치와 그리고 그릇된 생각들과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주는 풍성한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죄악된 요소들이 파괴되고 무너지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서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말씀을 상식으로 대신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지식으로 대신하면서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시도하였던 모든 그릇된 시도들이 무너지고 깨뜨려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경회를 갖는 목적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은 그런 사경회 아니고도 많이 있습니다. 아마 계에 갔다 던지 아니면 영화를 본다던지 우리는 한동안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원하는 바는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그리고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잘못 오해하고 있는 이 그릇된 모든 사고들을 하나님께서 깨뜨려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여러분자신의 신앙의 생활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그 참된 뜻이 무엇인지를 오해하고 있는 한 영적인 회복의 길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일 없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그리고 우리가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면 우리가 행하는 수많은 일들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로 새로 태어날 수 있읍니까? 정형외과 가서 코를 높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겠습니까? 눈을 옆으로 좀 찢으면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주름살을 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밥을 많이 먹고 얼궁에 살이 통통해지면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머리를 볶고 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변화는 우리의 내면에게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우리의 심령의 세계로부터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세계로부터 우리의 내면의 세계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침된 우리의 마음의 변화와 내면의 변화는 성령께서 오셔서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에 말씀하시고 그리하여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릇된 생각들을 강력한 능력으로 말씀으로 우리를 도전하게 하셔서 우리를 깨뜨리시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의 허망함들을 드러내시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없이는 우리는 새로워 질수 없고 우리가 새로워지지 아니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그 사람에게 있는 모든 축복들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희 집에는 그런 것이 없지만 요즘은 커다란 케비넨만한 테레비도 나오더라고요 멀리 소파에 앉아서 리모콘을 탕 켜면 저 멀리 갔다 켜놓았는데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잘 보여요 여러분 그 사람이 우리와 같이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 테레비를 보고 있다면 문화적인 도구가 되죠 그 사람이 식인종이라면 그리고 인간을 요리한 요리를 먹으면서 그 테레비를 보고 있다면 그것도 문화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우리가 그를 경외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는 우리를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또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고 기뻐하는 우리를 보고 기뻐하는 이러한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런 관계를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주셔서 누리게 하는 참된 축복이 아니면 참된 축복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넬료 집안에서 일어난 집회는 이처럼 상식을 깨뜨리는 커다란 성령이 역사하시는 집회였습니다. 성령이 어떻게 역사 하셨어요 고넬료 집안의 집회에 반해서 베드로가 말할 때에 유대인들이 그 보고를 그래도 들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증언하고 있는 내용을 들으면서 모든 유대인들이 고넬료 집안집회의 보고를 받을 때에 깊이 마음에 새겨졌던 그 집회의 특징이 무엇 이였습니까?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구나 이 집회는 그러니까 뭐가 있는 집회에요 뭐가 회개가 있는 집회 였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확 회개를 하니까 그러니까 베드로가 그 자리에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회개를 하는데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그러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서 아에 그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삼고 천국에 호적을 등록하고 그리고 고넬료 집을 떠났어요 자 얼마나 놀라워요 그러니까 어때요 이들은 그냥 은혜룰 체험하고 잠시 후에 자기가 무슨 은혜를 체험했는지도 모르고 잊어버린 사람들이 아니라 이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강한 도전들 받고 성령의 역사를 경함하면서 그들은 단순히 신비를 체험한 것이 아니라 깊은 회개를 체험 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과 우리는 그 앞에 철저한 죄인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면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으며 가슴을 치며 형제여 우리가 어찌할고 하며 가슴을 쳤던 그 요단강변에서 회개했던 수많은 유대인들처럼 오늘 이 고넬료의 집안에 성령이 역사하시자 이 고넬료 가정의 집회에 이처럼 그 온 집안을 뒤덮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베드로가 쳐다보면서 깜짝 놀랄 정도의 회개의 역사가 유대인들 속에게 일어났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똑같은 모습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깊은 회개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에 이 집회가 이런 집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빗나간 인간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탈된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유일한 다리가 있어요 그것은 회개라고 하는 다리에요 그러니까 어때요 오늘날은 너무나도 많은 회개의 모습들이 참된 회개의 모습이 아니에요 여러분 오늘 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안에서 집회를 할 때에 이 사람들에게 철저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도 충격이었고 이방인들에게도 충격이었고 집회를 인도하는 베드로 자신에게도 충격 이었어요 그는 많은 집회를 인도해오면서 온갖 모양의 회개의 영이 역사하시는 집회를 많이 보았던 사람이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 집안의 이 집회에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야 그리 많지 않았겠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때에 그 집안의 사람들이 고넬료와 함께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을 때 이것은 베드로로 하여금 충격을 금치 못하게 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집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이 사람들을 새롭게 하는 방법을 보십시오 먼저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깊이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서 깊이 회개할 때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죄 가운데 있는 것이 불편하거나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에 있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들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잃어버린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그러한 회개였다고 하는 사실 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실레아쉬링크라고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참된 회개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다 지불하고서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찾고 싶어 하는 열망이다. 이렇게 회개를 정의 했어요 그렇게 깊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 집회였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고넬료 집안의 집회 그러면 큰 성령의 능력 두 번째는 엄청난 회개의 역사 그리고 근본적인 회개를 통하여 세례를 받은 세 가지 사건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그렇게 수십년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방인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가 하는 상식이 단번에 무너지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게 될 때에 이것이 혹시 올바르지 않다면 예루살렘교회의 지체들로부터 받을 비난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통해서 성령이 그들 가운데 참되게 역사하고 있고 그들이 자기가 정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자기의 모든 죄를 철저하게 뉘우치고 회개하고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있더라는 신념을 이 베드로는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로 하여금 세례주기를 주저하지 않을 주저할 필요가 없게 할 정도로 표면적이고 뚜렷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 성령의 능력에 동참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은 우리의 죄를 씻어가고 그리고 회개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불길은 우리의 더러운 죄악들을 불태워서 우리를 정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집안에 이 집회에 축복하실 때 이런 철저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렇게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너희도 내 백성이니라 내가 너희를 기뻐하노라 하는 이러한 응답을 무엇을 통해서 주셨어요 성령을 물 붓듯 부어주시므로서 유대인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영적인 축복들을 부어주시므로서 그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집회가 이번에 이렇게 근본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고 그리고 넘을래야 넘을 수 없었던 하나님과 사이에 막혔던 모든 담장들을 기초부터 완전히 허물어 버리는 이러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집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그런데 이 일들이 언제 일어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언제 일어났어요 이 말할 때에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그리스 그 분이 구세주인 것과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과 그가 다시 사신 것과 그리고 그가 살아나셔서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나타나신 것과 그리고 앞으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실 자 이심을 증거 할 때에 성령이 물 붓듯 부으셔서 이 사람들을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빗나간 관계를 타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계로 돌아오게 만드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에요 쉽게 얘기해서 무슨 뜻이냐 하면 여러분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처세술을 어떻게 교회에서 가르쳐줄 수 있겠어요 금년에 어떡하면 부자가 될지에 대해서 어떻게 교회에서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투자를 하면 돈을 많이 벌지에 대해서 궁금하면 설교들 듣는 것 보다 매일경제신문 한 장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이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교회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곳입니다. 인간의 일부분을 바꾸는 것으로 박수치고 만족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넘기를 포기해 버린 그 벽 스스로 풀기를 거절해버린 내 인생의 영원한 숙제 피하면 눈앞에 다시 떠오르고 피하면 또 다시 내 앞에 떠오르고 돌아서면 다시 돌아서서 내 앞에 떠올라서 나를 부르고 있으나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그 난제 경제신문을 읽어도 알 수 없고 소설을 읽어도 알 수 없고 삼국지를 읽고도 깨달을 수 없고 인생을 많이 살았던 선배의 조언을 들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 인생과 내 영혼에 근본적인 문제 그것을 해결하므로 억눌린 자들을 풀어주고 마귀에게 눌린 자들에게 참 자유룰 주고 빛을 잃어버리고 어두움 속에 살아가며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고치는 것이 바로 교회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는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부자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사업에 성공하는지를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는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가는 깨닫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면 신앙을 버리는 것이고 어떻게 살면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인지는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이렇게 근본적으로 사람을 바꾸는 곳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려오셔서 이들에게 전무후무한 회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바꿔버리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은총 바깥에서 사도바울에 말한대로 그전에 너희는 외인이요 이방인이요 그리고 약속에 있어서는 구개?자였다 그랬던 사람들이 복음과 구원의 은총으로 들어오고 하나남의 구원을 베푸시는 그 놀라운 은혜의 자리로 들어오게 되는 이런 놀라운 역사를 이 집회에서 베푸셨는데 그러한 영광스러운 일들은 언제 일어났어요 베드로가 성령을 갖고 와 가지고 한 번에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그러니까 저쪽에서 으악 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베드로는 와서 성령을 그들에게 주고자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주고자 했죠 복음을 전해 주고자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성령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원했던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주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주었어요 그들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는 예수그리스도와 그리고 그의 하신 일과 그가 앞으로 하실 일과 그리고 그 그리스도 앞에서 어떻게 우리가 살아야 되는지를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복음을 전할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났어요 자 보세요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은 꼭 아주 잘된 설교만 역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왜 그 이유는 뭐죠 아무리 형편없는 설교라도 거기에는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리를 사용하시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를 않아요 무슨 뜻이냐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드로가 전할 때 성령이 오셨고 그리고 성령이 오시자 그들은 모두 성령을 받았고 성령을 받자 그들은 철저하게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고 물로 세례를 받고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이런 역사가 일어났어요. 이것은 베드로가 이들에게 나타나서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복음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다시 말하면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로 그들을 돌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말씀인 참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니까 이런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변화와 회심과 성령주심과 그리고 하나님 경외함이 나타나게 된 겁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이 앞에 11절 이하에서 만약에 금년에는 어떻게 장사해야지 돈 벌 것인가를 설교했더라면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이 임했어도 이렇게 큰 성령이 임해서 빗나간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회개하고 그리고 다시한번 그리스도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야 되겠다..라고 하는 깊은 참회와 회개 속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생명의 복음의 빛으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죠. 안 왔을 것이라는 게 아니라 안와요 일어나지 않아요 고통스러운 말씀 이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속에 쑥같이 쓰게 되어서라도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내면속에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고 내 인생에 대해서 그를 붙들고 있는 모든 생각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죄악 된 요소와 그리고 어리석은 모든 무지를 타파하고 우리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데려가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말씀을 듣는 집회가 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기가 처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보다는 집회 속에서 자기가 처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 받아야 되겠다. 라고 하는 마음보다는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도 그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주목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때요 집회의 준비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포스터를 붙이고 그런 것만이 준비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집회하기 전서부터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인생의 참된 해결자가 되시는 유일하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만이 나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우리지체들의 모든 인생의 문제를 고치고 그리고 우리의 찢어지고 상처 난 심령을 싸매고 고치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영혼을 이유가 어찌되었던 새롭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그리스도예수이사라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면서 점점 그리스도 이외의 것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도록 그리스도예수에게 고정된 심령을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우리마음속에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집회의 준비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이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저는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절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말할 수 있습니다. 위필드목사가 설교를 한 후에 얼마나 화려한 설교였겠어요 오죽해서면 대서양을 3개월인가 배를 타고 건너와 가지고 주일저녁예배설교를 듣고 와서 하는 말이 이런 설교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그 한 번 더 듣기 위해서 다시 대서양을 건너올 준비가 되어있다 그럴 정도로 은혜를 끼친 분이였어요 그런데 한 없이 자는 거야 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아 가지고 그래서 어땠어요 설교하다말고 쫓아 내려가서 삿대질 했어 당신 잠니까 깜짝 놀랬겠죠 내가 말하고 있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자도 괜찮습니다. 드러누워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말씀하시는 동안 하나님이십니다. 태도를 고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은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우리의 모든 인생의 비극과 그러고 모든 고통과 심지어는 모든 기쁨과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즐거움에 우리의 영혼의 즐거움에 모든 이유와 그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아니면 그것은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에요 모든 고통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사단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그렇게 고통의 이유를 우리가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쉽게 얘기하면 범죄 하지 않았더라면 고통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 범죄 하였더라도 고통을 받을 때 끊임없이 지혜를 구하고 내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 이러한 고통가운데 그토록 오랜 세월을 보내야 하냐고 하나님 앞에서 물으면서 그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지혜를 구하고 그리고 회개하고 불의를 뉘우치고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문제를 담판 짓고 청산하면 그러면 그 고통은 기쁨으로 바뀌는 거예요 믿습니까?
그런데 계속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라 이 얘기입니다.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관계 속에 있을 때에는 우리가 많은 말로 기도해도 그 기도 가운데 대부분은 다 쓸데없는 잡동사니들이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를 때에는 짧게 기도해도 다 쓸 말만 기도하는데 이 관계가 바르지 못할 때에는 많이 기도하고 말을 많이 해도 그중에 95%이상은 다 쓸모없는 필요도 없는 너절한 것들 그러니까 해결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뭐에요 우리의 상황이 불만족스럽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지에 대해 귀 기우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 드리죠 두 가지 사실만을 명심하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과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구출 받을 수 있어요 그것은 뭐에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선하시다고 믿는 확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피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그 확신과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오로지 말씀을 통하여 내 인격에 호소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그 두 가지 사실에 명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지난주에도 우리들이 거기 봤지만 이 10장을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11장까지 읽으면서 떠오르는 그 영향은 뭐냐 하면 권능으로 가득 찬 베드로가 아니라 사모함으로 가득 찬 고넬료 집안의 사람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들은 베드로가 하는 이야기를 참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전폭적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비우고 주의 종들이 여기 있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우리가 듣겠사옵나이다. 절대적인 승복의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변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집회도 동일하게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신앙에 성공하고 영적으로 하나님과 막혔던 관계가 새롭게 열리게 되는 그리스도예수의 복음이 선포되는 그러한 집회가 되기를 여러분들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할 때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왔다 그랬습니까? 정확하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 재미있는 것은 말이에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성령이 역사하시는데 여기서 시작해서 옆에 한 사람 건너 뛰어 그 옆으로 가시고 뒤에 두 칸 건너뛰어 그 다음으로 가시고 좌측으로 세 번 건너뛰어 옆으로 가시는 성령의 감화를 입은 사람들은 이 고넬료의 집안사람들처럼 깊이 애통해 하고 회개하고 데굴데굴 구르고 그리고 성령을 주셔서 눈물을 씻고 난 다음에는 한 없이 기뻐하는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껌벅껌벅 왜 우나 야 콧물이 많이도 나는 구나 휴지 좀 봐 두루마리가 몇 개짼가 그런거나 세고 있는 거예요 왜 그래요 역사하지 않으시니까 무슨 기준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 하시겠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은 말씀은 성령의 역사가 들어올 수 있는 다리에요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더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면에는 뭐가 있냐면 하나님의 자신을 기뻐하지 않는 죄인의 마음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싫은 거예요 쉽게 얘기해서 우리가 서로 싫어지면 말하기 싫어지는 거예요 듣기 싫어요 그 사람들은 말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다 돋아 그리고 그 사람이 천국 간다면 거기가 천국이 아닌 것 같아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얘야! 천국가면 거기 얘들도 있냐 그럼 있죠 거기가 어떻게 천국이냐 하도 애들한테 데어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은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셨어요 어쩌면 고넬료 집안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령이 피해갈 수 있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서 준비된 사도에 권능으로 무장한 사도에게 복음을 직접 본 사도로 하여금 권위 있는 설교로 그들에게 증언하게 했지만 베드로가 가서 설교한다는 이유 때문에 성령이 아무에게나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이고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은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말할 수 없는 축복들을 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리 얘기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그날 와서 집회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뭐 이렇게 복잡하게 해 30일 40일 전에 미리 광고를 하고 기도하라 그러고 그런 이유는 무엇 때문이에요 여러분 그 이유는 여러분 자신을 준비 할 시간을 주자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마음을 기울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무디어 졌다면 집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여러분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간섭하시고 그리고 내게 은혜를 주셔도 내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셔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만큼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불신앙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 날마다 기도가 아니면 한시도 살수 없고 그리고 한순간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리고 그분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매일 매일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 주시는 일용할 은혜의 양식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을 깊이 깨달으며 자기의 무능과 자기의 부패함과 그리고 자신의 나약함을 철저히 고백하고 그리스도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강한 자가 아니요 사실은 그리스도예수 안에 연약한 자이니 그리스도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그 손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내 스스로 인생을 지탱해 나갈 수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러한 철저한 자기 자신이 낮아지는 이 고백을 하며 그래서 마음으로만 그리스도께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마음으로 원하는 것과 실제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동일한 말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단지 원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사모하고 주시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애들을 열심히 치우고 그리고 그것을 치워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내리시고 주께서 내게 말씀하실 때에 내 마음이 그 말씀을 거절하지 아니하고 겸비하게 낮아져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진리고 말미암아 죽은 자와 방불한 나의 영혼과 진토에 떨어진 것과 같은 나의 영적인 삶이 새롭게 소생하고 진리로 말미암아 살기를 원하는 그러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다면 좋다는 마음으로 사모하고 추구하고 구하고 거기 매달리고 그래서 그것 하나에 삶과 소망과 같이 나오고 매인 것 같은 태도로 사는 사람 이것이 바로 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에요 이런 모든 사람들에 결정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충족히 자기의 영혼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리고 자기는 자신의 문제의 근원을 알 수 없고 알아도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없지만은 그러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므로 나를 깨닫게 하시고 급기야는 나로 하여금 그 문제를 풀기에 능한 사람으로 새롭게 고쳐줄 수 있으리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비우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리미리 집회를 준비하는 이유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선한 것을 하나님 앞에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증거 할 때에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 기울여서 듣고 내 인생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주님은 능히 그 말씀으로 내 인생의 어두운 구석의 빛을 비추시고 알 수 없었던 오해와 무지를 몰아내시며 생명과 빛의 길을 내 앞에 보이셔서 나로 하여금 어둠속에서 참 길을 찾아 갈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도 하는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베드로와 함께 할레를 받은 수많은 사람들과 베드로와 함께 온 수많은 신자들과 이방인들의 성령 부어주심을 인해서 크게 놀랐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방언을 하는 것 이였습니다. 이 방언을 누가 했냐면 유대인들이 먼저 했잖아 엘람 메소포타미아 부르기아 등 수많은 나라에서 모인 천하각국의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을 때에 성령을 부어주시니까 그들이 각각 자기가 살았던 그 곳에 방언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하나님의 큰일 즉 그리스도를 말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도 방언을 말하는 표적을 똑같이 보여 주셨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복음 안에서 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사건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낸 것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방언을 하게 될 때에 방언이 뭐냐 하면 하나님 높이는 것을 들음 이여라 이것도 유대인들이 사도행전 2장에서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였어요 성령이 임하실 때 그들은 각국 방언으로 다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방언으로 말하는 역사를 일으켰을 때에 그 방언의 내용은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것이였어요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사 하나님의 자녀들을 살리신 이 놀라운 구속의 사실을 말하는 이 장면을 지금 이방인의 집의 집회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 와요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여기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때요 하나님의 성령을 깊이 체험하고 은혜를 받았는데 그것이 거짓된 은혜체험이 아니라 참된 은혜체험 이였는지 아니 였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어요 마지막에 삶의 결과를 보면 아는 거예요
(찬양) 왕이신 나에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다.
성령을 체험하고 제대로 은혜를 무공해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마지막에 인생의 결과가 초점이 완전히 바뀌는 거예요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기를 사모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거예요 그 예가 어디 나와요 요한복은 4장에 보니까 우물가에 여인 사마리아 여인 그 여인이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가 뭘 달라고 막 구했을 때는 뭐를 구했어요 물을 길러오기 싫어서 목마르지 않는 물리적인 물을 구했어요 그러나 어때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이 참 우리의 구세주이신 걸 깨닫게 되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요 뭘 버렸어요 물동이를 팽개쳐버리고 그리고 뛰어나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분을 만났다. 증거 했어요 은혜가 바로 이런 것이에요 성령이 역사하셔서 우리의 모든 인생에 생각들과 마음들을 바꾸고 참된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셨을 때 그 때에 우리의 인생의 초점이 바뀌는 거예요 그래 뭐에요 필요한 것은 집회 끝나고 나도 잘 살 수 있다. 나도 성공 할 수 있다. 이러한 거짓된 확신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내 인생을 통하여 한 없이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너무 과도하게 신경 쓰지 마시고 주님은 주님 자신의 이름을 높이시옵소서 왜냐하면 저는 제 자신이 높아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더 즐겁기 때문이옵나이다. 그러면서 어찌하던지 남은 우리의 인생을 모든 무능과 무지와 어려움과 침체와 빛을 잃어버린 모든 어둠의 세력들을 끊어버리고 그리고 그 모든 눌림과 그리고 그 모든 억눌림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결단하고 그리고 나는 힘이 없으나 그리스도예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빛을 주시므로 말미암아 내가 이 볼품없고 초라한 이 인생 세상 사람도 내 인생을 대견하게 여기지 않는 이 들풀과 같은 인생을 통하여서라도 하나님의 이름은 높아질 것이며 나는 그리스도예수를 위하여 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지푸라기와 같은 내 인생을 통해서도 기필코 영광을 받으시고 내 인생은 하나님 앞에 한없이 보석과 같이 소중한 인생이 될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부흥회의 마지막 목표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여러분 고넬료 집안의 사람들이 제대로 은혜를 받자 그는 그의 무의식 세계 속에서 방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쏟아져 나오는 모든 방언은 그들 영혼 속에 있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탄식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 이였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여라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성령을 받고 진리의 말씀과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러낸 삶의 모습 이였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열망을 갖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그래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사실은 죽은 자 니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게 되기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무명한자 같으니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사실은 산자요 버린받은자 같으나 사실은 구원 받은 자요 패배한 자 같으나 사실은 승리한 자요 그리고 고통을 받는 자 같으나 사실은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서서 생명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집회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예수의 이름을 높이기를 원하는 이러한 변화된 인생관과 변화된 가치관을 붙들고 그리고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끊임없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살기를 결심한다면 열린교회 두 번째 사경회가 한국교회사의 한 획을 긋는 집회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