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말씀사경회를 위한 금요기도회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
사람은 누구든지 평탄하고 안정된 삶을 원하지 환란이나 시련같은걸 원하지 않습니다. 환란이다. 시련이다 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질서들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들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 환란속에 들어가게 되면은 우리들의 많은 에너지가 빼앗를기게 되고 그것들을 쏟아붓지 않으면은 환란속에서 우리의 인생이 좌초하게 됩니다. 비유를 하자면 그런거 아닐까요? 우리들이 물에서 배를 노를 저어 간다고 보면 언제든지 힘이들어갑니다. 그러다가 그 배가 강에서 점점 떠내려와서 불행하게도 소용돌이 치는 물 한가운데로 오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같은 물이지만 소용돌이 칠때에는 두배 세배나 더 많은 힘을 써서 배의 노를 젖지 않으면은 그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어 가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언제나 똑같은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환란과 시련을 만나게 되면 평소와 비교될수 없이 더 많은 힘과 에너지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우리에게 환란과 시련을 주실까?
오늘 성경에 보면은 아주 역설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에게 응답해 주겠고 그리고 너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고 말씀하시죠.
환란이 일어나면 그 환란을 주시는 이유가 있을텐데. 첫 번째 하나님께서 환란을 주시는 계획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앞에 부르짓게 하기 위해서 환란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환란을 만날때에서는 항상 우리자신이 하나님앞에 잘못한 것이 없는가 회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앞에 우리자신을 성찰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때문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런 환란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고치시기 때문에 그런 것 이죠. 그러면 하나님이 환란을 통해서 우리를 어떻게 고치시는가 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셨을때에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모든 것은 선한 것입니다. 인간도 처음에 창조 될 때에는 선하고 좋은 것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죠. 악도 만약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면 선했을 거애요..
그러니까 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게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선이시기 때문에 그 선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모든 것들은 선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이라도 선한 사람이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가지고 기계를 만들어도 사람을 유익하고 좋게 하는 기계를 만들겠죠. 사람이 악하면 재능이 있어도 그 악한 사람이 기계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것은무엇인가 악을 행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계를 만들지 않겠어요.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지 않으셨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자체가 선이시지만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인간과 모든 사물은 그 선하신 하나님 덕을 입을때에만 선할수 있어요. 인간도 그런 하나님의 덕을 힘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영향을 계속 받으면서 덕을 입으면 인간이 선한 상태를 유지할수 있지만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그 선으로부터 계속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만큼 마치 환하게 빛이 비치는데 이 빛이 비취던 물질들은 환하게 보이지만 빛에서 멀어지면 멀어 질수록 점점 물체가 어두어 지듯이 선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인간은 점점 하나님의 선으로 이탈해서 악하게 되어가는 거죠.
그때의 그 모습자체는 인간이 자기를 위해서 자꾸 살려고 하는 거죠.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만들어 졌기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 때문에 덕을 입으면서 선한 상태를 유지할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인간이 계속해서 행복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원래의 선이신 하나님을 계속 유지하며 하나님의 덕을 입는 삶을 살아야지만 그 인간이 행복해 질수 있는것이죠.
그러나 거기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결국은 계속해서 자기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선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요. 살아가는 삶은 아주 허무한 삶이 되는 거죠. 허무한 삶이라는게 무슨뜻이 있냐하면 원래 이 세계에는 하나님 한분밖에 없잖아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거죠.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존재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잖아요. 하나님 한분만이 계시고 존재하는 하나님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없겠죠. 인간은 존재하는 하나님과 아무것도 없는 허무. 그 중간에 자리를 잡은 거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간이 끊임없이 영원한 존재 인거 같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죽어도 예수안에 죽은사람들에게 가서 위로를 하죠.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후에 만나다 그리고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영혼이 오히려 더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소망의 이야기를 하잖아요.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그런면에서 인간은 정말로 있는거 잖아요. 육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정말 우리의 영혼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허무하잖아요. 그렇게 몇십년을 마주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먼저 죽는거죠. 그리고 20년 후에가서 무덤 파보면은 뼈 몇 개 남고 그것마져 빳아서 불 태워버리면 먼지가 되어서 흩어져 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요. 그러면 허무 하잖아요. 그게 인간이 존재하는 것과 허무 그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죠. 인간은 끊임없이 본래의 존재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므로써 인간이 그런 허무와 악을 극복하면서 살수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사랑에 빠집니다. 자기 사랑에 빠지는게 무엇이냐 하면 결국은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기에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육신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를 가진 우리의 존재를 올바르게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이웃도 올바르게 사랑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런 올바른 사랑은 절대로 허무한 자기를 사랑하거나 선이 아닌 악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불행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끔 환란을 주시는 것이죠. 환란을 주시면 이제것까지 우리의 인생을 이어왔던 삶의 질서들이 온통 뒤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에 커다란 충격이 오는 것이죠. 이때 우리는 생각이 변하게 되는 것이죠. 인간은 밖의 사물들에 따라서 마음과 생각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밖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흔들리는 환란이 오게될때 그때 우리에게 어떤 마음이 들게 되냐하면 내가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잠시 지나가는 것들이고 내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것들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물론 환란을 만나도 그런게 생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건 정말로 짐승입니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환란날에 내게 부르짖으라” 부르짓을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 그 자체는 자신은 혼자 살수 없고 인간이라고 하는 나의 존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 있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서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르짖고 주님을 간절히 갈망하는 가운데 마음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신만 사랑하고 이기심에 빠지고 내 행복이외에는 아무것도 안보이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고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 세계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목적에 대해서 눈을 뜨게되는 변화들이 속에서 계속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심령속에 큰 변화와 영혼의 깊은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심령속에서 쇠신의 작용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환란을 만났을때 환란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일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계획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련일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경우든지 간에 즉시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하면 오히려 그 인생의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기도를 하지 못하거나 하나님께서 환란을 주실 때 의도하실 때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붙들지 않을때에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아무리 벗어나올려고 힘을써도 점점 더 깊은 수렁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난과 위기와 시련이 오게 되는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위기와 시련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아직은 버리지 않으셨다는 표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 개입하시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시련과 환란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로 집중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환란과 시련의 기간을 통해서 우리가 더 많이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것과 자기의에 빠져서 아무렇게나 살았구나 결국은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의 마음에 고통을 드렸구나 하는 것들을 깨닫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간절히 부르짖으며 매달릴때 우리의 영혼의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고정이 될 때에 이 세상에 붙은 우리가 주님앞에 미끄러지게 했던 모든죄와 욕망들의 기력이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밖에 없는 것 같은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앞에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실 이유가 없겠죠. 하나님의 시련과 환란은 항상 우리의 평안한 삶보다도 더 뛰어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시련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했을때 그때에 낙심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환란과 시련을 당하면 아직도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아직 나를 아니라 여전히 나를 향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내 인생을 이끌어 주실려고 하시는분이시구나 하는 마음을 지면서 하나님앞에 깊이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환란과 시련속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시는 손길을 바라볼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환란과 시련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질때에 영혼과 모든 정신, 모든 삶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재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모든 것들이 재편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에 깊은 변화가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탄한 길만 주시지 아니하고 환란과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다른사람보다 유난히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평탄한 길을 걸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남보다 더 많이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한때에는 하나님앞에 깊은 용서를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역설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새해가 시작되면서 우리에게 무언가 난관이 있다면 우리는 뒤집어서 생각해본다면 하나님을 향해서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는 것입니다. 너무가 계획이 뚜렷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포기할수 없으시니까 우리가 그 계획을 모르고 제멋대러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셔셔라도 그 계획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환란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인생을 향해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계획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란가운데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환란을 당할 때 간절히 부르짖어서 그 부르짖는 자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이 응답은 제일먼저 마음의 평안을 주십니다. 신기하게 응답이 올려고 하면 환경은 아무것도 변한게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마음의 결단은 못내렸는데 신기하게 마음에 놀라운 평강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여건은 바뀐게 없는데 이상하게 성경을 읽으면 꼭 나에게 말씀하시는거 같고 예배를 드리고 나면 오늘의 예배는 나만을 위한 예배였던거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움직이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그 환란과 시련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환란에서 벗어났을때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환란과 시련을 만났을때의 공식입니다. 그러면 핵심은 환란과 시련을 만났을때 자기를 깊이 성찰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그리고 서원을 갚으며”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여서 그것을 깊이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시련과 고난의 의미들을 잘 생각하고 깊이 이해하면서 하나님앞에 간절히, 전심으로 매달리며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환란과 시련에서 벗어나는 비결입니다.
환란과 시련을 만났을때 이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 이전에 지은일들로 인해서 이제 하나님께 보복을 당하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령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의심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이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지 아니하시는 분이니까 속일수 있는 대상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런 환란속에서 낙담에 빠지기도 하고 이제 하나님의 도움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져서 희망이 없다라고 하는 절망감에 쌓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오히려 이 환란과 시련을 통해
서 나를 인도하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주님앞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주 놀랍게 그 시련이 극복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생각할수 없는 너무너무 놀라운 것들을 하실수 있는 분입니다. 그 놀라운 것들을 다 준비해 가지고 시련속에서도
당신을 향하여 마음의 눈을 고정시키고 주님을 어린아이처럼 꼭 붙들려고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변화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수 있도록 날마다 날마다 그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희망에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는 억지로라도 우리의 마음을 추스르면서 이제 살아봐야 작년같은 실패가 계속될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애기치 못한 시련을 만났기 때문에 내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때이기 때문에 내가 비상하게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주님을 붙들고 의지합니다. 이런 사모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난주일에 1년들어서는 가장많은 성도님들이 등록도 하고 새롭게 많이 나오셨습니다. 왜 그렇까요 한 해를 새롭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요.
모든 사람이 일년동안 이 마음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니까 지난해에 실패가 금년 아무리 연필로 줄그어 놓아도 넘어오잖아요. 그걸 못넘어 올수 있게 하는 거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 그걸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많이 못넘어오게 할수 있는 것입니다. 진취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바라보면서 실패를 숙명처럼 생각하지 말고 실패보다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하면 그 실패에 익숙해 지는 것입니다.
이 실패가 언젠가 종식되고 새로운 날이 밝아야지 우리인생의 미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우리를 만나주시고 내가 인생의 환란과 시련속에서 내가 지루하고 진전도 없는 인생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나를 인도해 주시옵서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매달리며 하나님앞에 나아갈려고 할때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열릴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