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시 7:10)
우리들이 인생을 살다보면 그야말로 시험이 화살처럼 날아들 때가 있습니다. 그냥 하나씩 쏘는 화살이 아니라 수많은 화살이 소낙비처럼 나 한사람을 겨냥해서 쏟아지는 그러한 특별한 시험의 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때로는 유혹을 그렇게 받을 때도 있고, 혹은 시련을 만날 때도 있고,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비난을 받을 때도 있고, 때로는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서 정신없이 소낙비처럼 우리 위에 쏟아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이 때에 광경은 마치 전쟁터에서 한 사람을 향해서 날아드는 수많은 소낙비 같은 화살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고대의 전쟁에서 이런 공격을 받을 때에 살아남는 비결은 방패 뒤에 피하는 것입니다. 군인들에게 이 방패는 상대방이 휘두르는 칼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가장 요긴할 때에는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그 수많은 적군으로부터의 화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방패를 세우고 그 뒤에 방패를 그늘 삼아서 피하는 것이죠.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렇게 방패가 되어 주신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군인이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화살의 위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었고 그 공격을 받을 때에 잘 만든 훌륭한 칼이나, 그리고 끝이 뾰족한 창이나, 그리고 여타의 모든 잘 제작된 병기로도 화살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모든 화살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것은 튼튼한 방패밖에 없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시편 2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라고 노래했습니다. 특별히 2편에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서 황망하게 예루살렘을 떠나 망명의 길로 올라야 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방패라고 노래했습니다. 삽시간에 불어 난 자기를 에워싼 수많은 원수들 앞에서 혼절하듯이 그는 도망쳐야 했습니다. 맨발로 재를 무릅쓰고 도망을 치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요, 영광이요, 내 머리를 드시는 자 시니이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인생에서 환난과 시련을 만나거나 유혹을 만나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거나 할 때에 이것을 조금도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방패 되신 당신의 그늘 뒤에 숨도록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시련을 만난 우리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보호의 그늘이 되어 주시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기회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에게 궁금한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런 유혹이나 시련,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많은 상처를 받은 채 그 화살에 찔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이죠. 왜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방패가 되어 주신다고 시인은 고백하는데 ‘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 그 방패 되신 하나님 뒤로 피해서 보호를 받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입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죠. 이것을 설명하듯이 오늘 시인은 방패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수식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시인도 하나님 앞에 늘 산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에게 방패가 되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죄와 비난, 시련과 유혹의 화살에 찔려 고통 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붙은 이 수식어는 단순한 고백 이상의 놀라운 의미를 지닌 채 우리의 가슴에 다가오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환난의 날에 하나님이 나에게 방패가 되어 주시기 위해서는 다른 날 동안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일평생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련이 노도와 같이 엄습하고 그리고 큰 유혹에 직면하여 마음이 흔들릴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서 마음이 아플 때 그 때 감히 눈을 들어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이렇게 노래 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평탄한 많은 날 동안에 하나님을 향해 온전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그 분을 섬기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에요. 우리에게 정말 무서운 것은 유혹이 얼마나 많이 오는가, 시련이 얼마나 큰 것인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내 마음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우리 편인가 하는 것입니다. 적군이 많고 적음은 우리의 인생의 싸움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이 싸움은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싸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용사라고 노래했습니다. 정말 환난을 당해서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자신을 돕는 사람이 없을 그 때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를 의뢰함이 방백을 의지함보다 낫도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이렇게 담대하게 한 순간 선언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러한 선언이 필요 없는 많은 날 동안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힘쓰고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 마음으로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왔어야 된다 이거죠.
회심하고 제가 31년 동안을 제가 주님을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과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제게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제게 있다면 내가 그대들을 섬기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천적인 성품들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평탄한 날들을 통해서 획득된 것이 아니라 살을 에이는 것 같은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형성되었습니다. 하늘이 새까맣게 쏟아져오는, 어디로부터 출발했는지도 알지 못하는 원수들의 수많은 화살 속에서 그 고난의 전쟁터에서 주님의 방패의 그늘아래 피했던 순간들을 통해서 그것들이 형성되어 왔습니다. 토기장이가 아무리 좋은 진흙으로 천사의 손길처럼 빚어서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 도자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불을 통과해야 합니다. 거기서도 쪼개지지 않고 터지지 않고 깨지지 않고, 남아 충분히 구워진 그릇만이 작품이 되는 것이죠. 주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의 환난의 소낙비같이 환난의 화살들이 날아드는 날 동안에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사람들의 방패가 되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방패가 되어주시는 그 하나님 뒤에 피하면, 그 방패 뒤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신 사랑을 환난의 싸움터에서 당신에게 피하는 자녀들에게 보여주시죠. 그래서 하나님과의 은밀한 밀어는 항상 시련의 벌판, 방패 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이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면 어김없이 저의 전도사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그 때만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으니까 그 때 생각이 나는 것 같습니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전도사 생활을 하는데 그렇게 힘들 수가 없어요. 학교는 학교대로 회심도 안 한 녀석들이 신학교라고 들어와서 정말 기대 이하의 삶을 살아서 신학을 가르치기는커녕, 인간이 되도록 목회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고, 교회에 가면 영혼들이 정말 돌 같아. 난 아직도 걔네들 같은 애들을 만나 본 적이 없어요. 중학생들이었는데 차돌이에요. 그렇게 회심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건강은 안 좋고. 그래서 토요일이면 그 영혼들을 위해서 철야하기 위해서 좌석버스를 타고 종로까지 갔어요. 항상 저는 찬바람을 좋아하니까 창문을 열고 밤길을 그 좌석버스가 달려요. 그러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항상 그 노래를 불렀어요.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토요일 밤 교회에 가면 깜깜해요. 불빛하나 없어요. 사찰 집사님한테 키를 받아서 지하실 내려가도 캄캄해요. 그 캄캄한 어둠은 마치 내가 만나고 있는 사역의 시련과도 같았어요. 정말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지금은 평탄한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는 환난을 만나지 않겠어요. 여러분이 잘못해서 혼내시려고 환난을 주시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너무나 예뻐하시기 때문에 더 순전한 사람 만들고 싶으셔서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그런 시련의 벌판에 여러분 세우실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방패 되시는 주님이 없다면 여러분 얼마나 곤고할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화살에 여러 방 맞고 영적 전쟁터에서 들것에 실려 퇴장할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방패 되신 주님 뒤에 숨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일까요. 거기서 시련의 화살이 날아오고 있는 동안에 원수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벌판에 가득한 동안에 그는 여호와를 방패삼아서 그 뒤에서 은밀히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누릴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시인이 시편 31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노래했습니다.
LA에 갔을 때 하루가 시간이 남았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두 분 목사님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저를 LA를 관광 시켜 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디즈니랜드를 가시겠습니까? Universal Studio를 가시겠습니까?” 그 때 내가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시간 있으면 보면 좋겠지만, 저한테 더 큰 숙제가 있습니다.”, “목사님 그게 뭡니까?”, “이 도시에 제가 많이 존경하는 늙으신 선생님 한 분이 살고 계십니다. 신학교 때 저한테 교리 신학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고, 학장까지 지내셨던 분이고 제가 그 분을 2년 반 가까이 조교로 섬겼습니다. 그 목사님을 좀 찾아서 꼭 뵙고 가게 도와주십시오.” 그랬습니다.
그 분은 제가 만난 목사님들 중에서 성자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1930년대에 미국 유학을 했으니까 그 때로서는 희귀한 경우이지요. 아버지가 부산 지방에 대지주였습니다. 그 분이 회심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시고 유학을 하고 오셔서 한국에서는 박 윤선 목사님, 박 형용 목사님과 함께 고려 신학교에 교수님이 되셨습니다. 초창기 세 분 가운데 한 분이시니까 지금 아흔 네 살이십니다. 그런데 교수라고는 둘 밖에 없고 직원들인데 목사님이 출근해서 채풀실에 가면 학장님이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종이 믿음이 없고 불비해서 두 분 교수님, 학교에서 일하는 직원들, 월급도 못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절 좀 도와주십시오.’ 그 기도소리를 듣고 나면 그 다음날 이 교수님이 땅문서 하나 가지고 와서 학장님 앞에 내밀면서 “급한데 이거라도 팔아서 직원들 월급을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자기의 많은 재산을 신학교를 위해서 썼습니다.
그 분을 2년 반 동안 조교로 모셨을 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가난해서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여력이 없을 때였습니다. 먹지 못해서, 여러분들은 제가 왜, 김 목사님은 쓸데없이 왜 1년에 한 번씩 신학교 가서 학생들에게 그 밥을 사주냐고 그러는데 그게 사연이 있어요. 그 때 너무 못 먹어서 영양실조가 걸렸어요. 공부하다가 일어나면 몇 번을 쓰러졌어요. 그게 사연이에요. 여러분은 이해 못하겠지만, 난 신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그 점심시간에 150명 정도가 물마시고 산으로 올라간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동안 밤에 많이 눈물이 났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그런 고생은 20년 전에 나로 충분한데 지금 왜 그렇게 학생들이 살아야 돼나. 하고 말이죠. 그게 해마다 제가 신학교를 찾아가는 이유에요.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많은 지금보다도 더 많은 물질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래요. 그러면 내가 그 모든 것을 그 학생들을 위해서 쓰고 싶어요. 왜? 내가 그 시절을 지났기 때문에. 여러분 좋은 목사 원하잖아요. 그럼 씨를 뿌려야 해요. 그래서 가서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그 삼계탕이라도 하나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보면 또 눈물이 나요. 그게 내가 매년 가는 이유에요. 그렇게 가난하던 때에 도저히 어떻게 수입은 없고 생계를 어떻게 꾸려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목숨을 걸고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도저히 가정생활이 어렵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제가 학비를 낼 능력도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목숨을 걸고 공부했어요. 전체 수석을 했어요. 그래서 장학금이 다 나왔는데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김 전도사, 얼마나 어렵냐.” 그래서 봉투를 하나 건네주셨어요. 밖에 나가서 열어 보니까 25만원이 들었어요. 그 봉투 붙들고 또 울었어요. 그렇게 사랑을 많이 입었어요.
그래서 찾아가 뵈었더니, 노인 아파트에 살고 계셨어요. 자녀가 여덟인데 다 잘 됐어요. 박사, 교수, 의사, 그렇게 다 잘 됐어요. 그러니까 자녀들도 다 70이 넘었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자녀들이 오라고 하는 거예요 같이 사시자고. 그런데 아주 단호하셔요. “내가 왜 이 나이에 그들의 가족 속에 끼어들어서 자녀들을 불편하게 하느냐, 싫다.” 사모님하고 늘 같이 사셨는데 사모님이 그렇게 몸이 아프셔서 늘 목사님이 수발을 하셨어요. 찾아가 뵈었더니, 노인 아파트가 깨끗하긴 하지만, 사모님 돌아가셨어요. 굉장히 건강하셔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90이 넘으셨는데 운전하고 다니셨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리가 망가지셔서 이제는 잘 걷지도 못하시고 지팡이를 의지하셔서 그렇게 일어나시는 것을 뵈었어요. 그래서 과일 한 바구니하고, 꽃다발 하나 하고 가지고 가서 목사님 드리면서 제가 큰 절을 올렸어요. 그런데 너무 늙으셨어요. 94이시니까.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무릎을 꿇은 채 목사님 손을 잡고 그랬어요. “사모님 어떻게 하셨어요.”, “7년 전에 먼저 갔어.”, “목사님 외로워서 어떡하세요.”, 마음이 막 에이는 것 같았어요. 정말 할 수만 있으면 며칠만이라도 같이 살아드리고 싶었어요. “목사님 외로워서 어떡하세요.” 그랬더니, 그 노 신학자의 입에서 예상도 못했던 대답이 나왔어요. “외롭긴 뭐가 외로워,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데.”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정말 미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셨어요. “예수 안 믿으면 몰라도 주님을 믿는데 외롭긴 뭐가 외로워. 늘 주님이 함께 계시는데.” 비행기 타고 오면서도 몇 번을 물었어요. 저는 외로울 때 있었거든요. 자주 있었어요. 여러분이 다 가고 난 텅 빈 예배당에 서 있을 때. 가끔 외로웠어요. 고난이 많이 겹치고,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내 곁에는 사람이 없구나.’ 느꼈어요. 그런데 그 분 만나고 오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외로울 때마다 ‘사람이 내 곁에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주님이 없어서 외로웠구나.’ 느꼈어요. 그러면서 지금도 궁금해요. 지금도. 내가 저 연세가 되어서 사랑하던 사람들도 다 가고, 동료들도 다 죽고 심지어는 우리 집사람마저 먼저 하늘나라 보내고 몸도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일어나고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저렇게 빈 아파트에 혼자 외롭게 살면서 그 때 나도 "외롭긴 뭐 외로워,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 분은 제가 만난 모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성자와 같은 분이셨어요. 저는 그 분의 입에서 농담으로라도 누구를 비난하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목사님을 비난하는 소리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젊은 날 동안에 그 수많은 날 동안에 마음을 올곧게 하고 주님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 그런 무욕의 삶을 사랑의 삶을 사셨더니, 노년에 하나님의 방패 뒤에 숨으실 수 있었던 거예요. 외로움의 화살도 그 분을 찌를 수가 없었고, 고통의 화살도, 심지어는 다리가 아픈 그 육체의 고통의 화살도 그 분을 보호하고 있는 방패를 뚫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분, 신앙의 힘이 무언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한 때, 환경이 그럴 때 신앙 있는 사람이나, 신앙 없는 사람이나 차이 안 날지도 몰라요. 그러나 정말 시련의 날에 원수가 나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먹구름같이 그 악한 자의 화살을 쏟아 부을 때, 그 때 우리가 주님께 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노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노래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라고 말이죠. 그걸 위해서 오늘도 여기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LA에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 목사님 뵙고 오니까 벌써 한나절이 다 지났어요. 그래도 그렇게 마음이 따뜻할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 휴가라도 주어지면 내가 가서 며칠 목사님 곁에 묵으면서 그 휠체어라도 밀어서 공원에도 한 번 모시고 가고, 바닷가도 좀 한 번 모시고 가고, 그럴 날이 오면 참 좋겠다. 그런 마음의 소원이 제게 생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밖에는 없어요.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게 주 밖에 없네.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사랑하세요. 그리고 그 분에게 마음을 고정시키고 사세요. 나머지는 모두 사소한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 까지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