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찾으라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1-4)
녹취자 : 이경순
에베소 교회는 우리 예수님께 제일먼저 평가를 받은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지방은 당시 로마시도에도 아주 매우 큰 도시였고 지금도 그 유적지를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도시였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에베소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사도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이었습니다. 아주 매우 커다란 영적인 각성이 일어났고 그래서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면서 커다란 부흥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마술하는 책들을 모두 가져와서 불살라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큰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에베소 교회가 제일먼저 예수님의 평가를 받고 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를 아주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정한 시각에서 에베소 교회에 관한 예수님의 평가를 보면 정말 이 지상에 이런 정도의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 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우리에게 남l깁니다. 제일 먼저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일곱 교회를 평가하시는 분으로서 어떤 분인지를 먼저 설명을 합니다. 소위 이야기 하는 예수님의 자기계시는 그 평가를 받는 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를 다니시는 이 이것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아주 명료하게 일장 마지막인 2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어떤 주석가들은 여기에서 사자가 그 교회를 붙잡고 있는 천사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사자는 그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를 의미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면 이 에베소 교회를 평가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 하고 싶으셨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목회자가 붙들고 계신 주인이시고 또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인이 일곱 교회를 붙들고 있는 분이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가 무엇이겠습니까? 결국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굳게 붙들고 계신 것 그것이 교회의 미래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정말 교회가 교회 다와 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목회자들이 주님의 손에 굳게 붙들린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사도시대의 교회이후로 이제까지 언제나 교회에는 악한 자들과 선한 자들이 섞여있고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 항상 함께 있어서 결국은 교회라고 하는 것도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세상의 일부라기보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 교회 속에서 악한 사람들도 볼 수 있고 온전히 신앙에 동화되지 않은 사람도 발견됩니다. 이런 일들은 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은 주님이 교회를 붙드시고 또 목회자들이 주님의 손에 굳게 붙들리는 것이야 말로 교회에 가장 중요한 미래다 하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위해서 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교회가 어떤 교회였냐면 제일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그러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식은 있고 말은 많은데 행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교회에서 말은 많지만 실제적인 삶의 행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행위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람들이 다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 자기의 몸을 던져서 수고하려고 하지 않는데 이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수고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교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교회는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의 믿음생활은 한순간에 스퍼트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변함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온갖 역경과 어려움들을 견디는 인내 없이는 우리가 신앙을 온전히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 교회는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아직 이교회를 향한 칭찬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베소 교회는 도덕적인 순결을 지양하는 교회였습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저들의 교회에는 스스로 자기가 사도라 하고 주장하며 권위를 내세우면서 말과 그리고 이적을 일으키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던 거짓선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 교회는 그런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해서 그 진위를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큰 말씀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는 속일 수 있어도 에베소 교회는 탁월한 말씀의 지식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거짓된 사도들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할지라도 교인들은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즉시 알 수 있는 말씀의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또 그렇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쉬쉬하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서 다시는 그들이 그릇된 영향력을 하나님의 교회에 행사할 수 없도록 밝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또 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정도만 되도 아마 여러분의 기억 속에는 에베소 교회 같은 교회를 다녀본 기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의 교인을 향한 예수님의 이 탁월한 평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또 네가 참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는 인내하는 교회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한 번 더 잘 참는 교회라고 말씀하셨으니 에베소 교회가 얼마나 많은 시련과 환란을 당한 교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며 예수님을 믿은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니 않은 것을 아노라 다시 견딘다는 말씀이 또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에베소 교회가 당한 환란과 시련 고난과 박해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에 마음이 꽂힌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에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였던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게으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그러나 라는 이 한마디가 앞에 언급된 그 수많은 좋은 것들을 한 번에 뒤집어 엎어버리면서 무효화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잘한 일 칭찬받을 만한 장점은 아주 여러 개가 등장하는데 예수님께 책망을 받는 것은 두 개도 아니고 세 개도 아니고 오직 하나입니다. 그러나 나는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예수님이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거짓된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이 모든 것들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전에는 이러이러한 많은 일들을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에서 이 모든 일들을 감당을 했습니다. 그것이 에베소 교회의 처음사랑이었습니다. 처음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 처음 사랑이 크고 위대하다고 하는 뜻에서가 아니라 그 처음사랑이 말하자면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것이었고 처음 예수님을 만나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가슴 떨리고 순수한 사랑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였습니다. 아마 그 후에도 에베소 교회는 존재했을 거고 처음사랑을 잃어버렸어도 교회는 교회대로 남아서 이런저런 섬김으로 주님께 봉사를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했다고 할지라도 이미 에베소 교회의 그 많은 남아있는 섬김 속에서 그 에베소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처음 사랑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버렸을 때 사실 그 모든 행위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처음 가지고 있었던 행위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정말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맨 처음 우리가 회심하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때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 주님을 생각하고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위해서 나가는 예배의 시간은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감격이었습니다. 사람이 처음 사랑에 깊이 빠지게 되면 모든 것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석이 됩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신자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석되는 겁니다. 주님 때문에 아침에 눈뜨고 주님 때문에 먹고 주님 생각하며 출근하고 주님 때문에 교회오고 예수님 때문에 물질을 사랑하고 예수님 때문에 봉사하고 그래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자신의 사랑의 대상이신 예수님과의 교감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에 빠진 신자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열렬한 신자인 것 같아도 교회에 미친 사람인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마음속에 정말 예수님을 향한 그 처음 사랑이 아직까지도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이런 저런 모든 것들을 행하고 있으나 그 처음 사랑은 잃어버린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지는 지를 회개하고 즉 잃어버린 처음사랑을 회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이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주님이 처음사랑을 회복시켜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매일 매일 주님을 사랑하며 살기위해서는 매일매일 뉘우치고 회개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 같은 교인은 자기는 이 세상에 회개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당신을 향한 사랑이 베이기를 원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동기가 되어서 그래서 하나님 섬기고 주님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로 예수님을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깊이 회개하고 처음사랑으로 돌아간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