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지식을 더하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 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 1: 9~10)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을 소유 하는가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유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많이 소유하려고 애를 쓰고, 항상 한 해의 목표가 어떻게 더 많이 소유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맞이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참된 행복은 무엇을 하면서 사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탐욕에 매달리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들은 역시,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가깝게는 정서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일들을 취미로 가져보기도 하고 또 자기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보수나 대가에 연연해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술에 의하면, 인간의 참된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느냐, 또 내가 보람을 느끼는 어떤 일에 종사하면서 그것을 성취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성경이 참으로 복되다고 선언한 사람들은, 어떤 존재가 되느냐, 거기에 참으로 복된 여부가 달려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우리의 한 해 동안의 이 삶의 목표를 어디에다 겨냥하고 살아야 될 것인가, 이것을 우리들이 정확하게 세우는 것이 한 해를 계획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설계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이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면서, 그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가운데, 우리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우리 모든 사람을 향한 기대, 우리들이 겨냥하며 살아야 할 삶과 그리고 신앙의 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진실하고 허물이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셔야 됐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 왜 미움과 원망, 그리고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전쟁, 질병, 그리고 인간을 향해 덮쳐오는 그 많은 불행들이 그리고 죄의 지배가 궁극적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거짓과 허물 때문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거짓을 퍼뜨린 원조인 사단의 궤계로부터 시작을 해서, 그 궤계에 넘어져서 허물을 면할 수 없게 된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불순종이 한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가 부수어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죄와 거짓의 세력들이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러한 영향아래서 태어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기 전에 이미 참된 것을 모두 버린 사람들이며 거룩한 것을 상실한 사람들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허물과 죄악 투성이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대책도 없이 자신들의 죄와 허물로 인해서 징벌을 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실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자기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그 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주님을 믿는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이제 우리가 구원받은 그 이후로부터 하나님이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우리들을 처음 흠이 없고 진실된 사람으로 우리를 고치고 새롭게 만들어서 주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새롭게 하고자 하시는 뜨거운 열심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든 사람들, 10년, 20년, 30년, 40년을 믿은 사람이나, 오늘 처음 주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이나, 누구든지 변함없이 똑같은 목표를 갖고 계신데 그것은 진실하고 허물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진실한 사람이 이 죄악된 세상 부패한 인간들 가운데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들이 인정합니다. 그리고 허물과 죄 가운데 태어난, 부패한 본성을 가진 인간이 허물이 없을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우리는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끊임없이 주님의 손에 의해서 진실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 주님 앞에서 어떻게 하면 그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서 내가 더 다듬어지고, 온전케 되어서 허물이 없이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살 것인가를 가지고 고뇌하면서 일생을 사는 성도와, 이런 목표와 아무 의식도 없이 주님이 자기를 구원해 주신 것을 방종의 면허장을 얻은 것처럼,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두 사람의 차이는 성결한 사람과 짐승의 차이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어떻게든지 진실하고 허물없는 사람으로서, 주님의 형상을 본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왜 커다란 어려움들이 밀려올 때에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던 소유를 잃어버리게 될 것 같은 위험에 처했을 때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려움이 엄습할 때에 공포에 떠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능력의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유무에요. 한 사람 앞에 찬란한 빛이 비추면, 그 사람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겠지만, 그러나, 그 사람 면전에 비치는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 사람 뒤에는 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산다, 할 때에 세상을 향해서 강력한 소망을 갖고 기대를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들은 또한 그와 정 반대되는 두려운 공포들을 늘 느끼게 됩니다. 신앙이 아니고는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뒤에서 해가 비쳐서, 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방에 햇빛이 비치는 사람과 같아서 어느 쪽에도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가 없습니다.
진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도 진실하게 회개하기만 하면,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사람들은 그 자체에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책망 받는 것을 무섭게 생각하거나 두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방종한 사람들이 된다, 라고 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언제든지 주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말씀하실 때에 인정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진실이에요.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된 변화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간절히 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에요. 허위와 가식으로 교회를 다니지는 말아라, 그러면 아무 희망이 없다. 그러지 말고 단 한 순간이라도 진실해 보라 이거예요. 내가 지금 이 밤중에 여기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진짜 주님은 살아 계신가, 난 그 분을 정말 믿을 수 있는가, 그 분 없이 내가 정말 살 수 있는가, 만약에 내가 그 분을 모르고 계속해서 내 인생을 살아가면 마지막에 어떻게 될 것인가...이런 것들에 대해서 한 순간이라도 솔직해보고 진실해 보라 이거에요 두려울 때는 두렵다고 고백을 하고, 그리고 거짓된 것을 좋아할 때는 자기가 거짓되었다고 시인하고, 자기가 하나님보다 세상이 좋을 때는 솔직히 하나님이 싫고 세상이 더 좋다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진실함. 그것이 참된 변화에 이를 수 있는 길이다 이거에요.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진실하고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주 쉽게 얘기하면 단지 정직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직한 삶을 계속하여 그래서 그 사람의 존재와 성품 그 자체가 주님의 모습을 반영하는 그런 상태에요. 그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향해서 거시는 기대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보면서, 주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여러분들을 보면서, 여러분과 우리 주님이 아주 깊은 친교의 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라고 하는 그 분명한 느낌을 주는 그런 삶. 그것이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기대하시는 삶입니다.
우리 앞에 어떠한 환란과 그리고 어떠한 어두운 그림자들이 금년 한 해에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다고 할지라도 진실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어요. 그렇지요. 왜?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까. 그렇지요. 시련을 당하면 하나님이 이길 힘을 주실 것이며, 내가 힘이 없어서 그 시험을 감당할 수 없으면 주님이 피할 길을 내어 주시리라고 하는 희망이 있지요. 그러면서도 그 시험을 끝까지 당하게 하시면, 그것은 그 시험을 통해서 뭔가 나에게 역사하셔서, 나를 보다 복된 상태로 바꿔 놓으실 것이라고 하는, 신념이 있어요. 주님께서 살게 하시면, 금년 한 해를 살 것이요, 주님이 금년에 나를 부르시면, 이 세상의 수고와 고생을 끝내고, 꿈에도 그리던 주님의 품으로 내가 갈 것이다, 라고 하는 희망의 고백이 있어요. 왜? 그것이 바로 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이요, 주님과 깊은 친교 속에서 살아가는 진실하고 허물없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거시는 가장 중요한 기대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도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사랑이에요,사랑. 그런데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나의 인생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던 그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내게 느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영적인 변화의 핵심부에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회개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는 대상이 바뀌는 것이 회개에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슬픔의 눈물을 씻고 나면 사랑하는 대상이 바뀌어요. 전에는 세상이 좋았는데, 이제는 주님이 좋아요. 전에는 술 먹고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나쁜 짓 하는 게 신났는데, 이제는 주님이 좋고, 주님을 아는 형제, 자매들이 훨씬 더 좋아요.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에요. 여러분, 그것 없이는 다른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에요. 나는 할 수만 있으면, 저와 여러분들이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하나님의 주체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감격하며 사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중요해요. 차가운 가슴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내 평생에 힘쓸 그 큰 의무는 주예수의 덕을 늘 기리다가
숨질 때에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유명해지지 않으면 어때요. 주님이 나를 아시고, 내가 주님을 알고. 그 분의 사랑 가운데 있고,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드는 때까지, 예수 그 이름이 내 마음에 아름다운 이름 그리운 이름이 되어서, 주님을 늘 그리면서 살고, 그 사랑 안에서 사는 것, 이것이 유명해지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하잖아요. 그래요.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좀 가난하다고 칩시다. 가난한 건 참 불편하죠. 때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죠. 그러나 우리가 물질이 없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가난한 것이 그렇게 서럽다면, 그것보다도 더 비참한 것이 있어요.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없는 것. 이것은 뭐냐 하면, 생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너무 비참한 거죠.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소중한 것은 주님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내게 더 많은 사랑을 주님이 부어주시고, 그리고 내가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나의 그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이 가득 있어서, 그것이 내 혈관 구석구석에 골수까지 흘러 내려서, 나의 입술의 모든 말, 나의 마음의 묵상, 그리고 사지오체로 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런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되면서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지고의 행복이에요. 지고의 행복이라고.
며칠 전에 어느 목사님과 함께 잠깐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해요. “간절한 소원이 뭡니까?”, 회심하고 주님을 믿은 지 2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요. 사랑의 세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아는가, 또 안다고 한다면, 그 주님의 우리를 향한 큰 사랑이 지금 나를 감동시키고 있다, 그래 내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아니, 그런 얘기 한 게 아니라 이건 내 고백이에요. 저의 간절한 소원은 목회에서의 성공도 아니에요. 여러분이 저 내일이라도 나가라고 한다면, 나가서 제가 다시 개척을 할 용의가 있어요. 그것은 하나의 삶의 방식일 뿐이에요. 무엇을 행하며 사느냐, 그것은 삶의 한 방식일 뿐이에요. 마음속의 가장 간절한 소원은, 그런 것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내가 그 사랑을 알 수 있을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울수 없는 그 하나님의 놀라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해 지는 것. 그래서 나는 가장 간절하게 금년 한 해에 여러분이 금년 한 해 만이 아니죠. 우리 교회 표어 없는 것 보면 알잖아요. 무슨 표어야 표어가. 우리 간절한 소원은, 금년 한 해만 목표가 되고, 다음 해는 목표가 될 필요가 없는 것들이 그게 무슨 목표이냐, 이 얘기에요. 그렇잖아요. 간절한 소원은 이것이에요. 교인들이 많아지는 것 그것도 나는 솔직히 첫 번째 소원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줄어드는 것도 저의 소원은 아니에요. 내년에도 가기만 해 봐. 그것보다도 더 간절한 소원은, 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거의 미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다니, 아침마다 새롭게 쏟아 부어지는, 햇살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녹아진 마음, 그리고 나 같이 이 허물 많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든, 장본인인 이 더러운 죄인이 큰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아도 되는가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신의 현실 그 자체에 대해서 한없이 신비한 느낌을 가지고 사는, 아침에 만난 사람에게는 어제 저녁에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간증하고, 오후에 만난 사람들에게는 아침에 맛 본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대해서 간증해도 끝이 없고 한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정말 감동받은 사람. 주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안고 있어서,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는 그럴 정도로 주님의 사랑에 붙잡히고, 불붙은 그런 성도들이 되는 것이 가장 소원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시시합니까? 그렇죠. 세상을 사랑하자니, 끝까지 좋아하다가 막판에 어떻게 되는지, 다 경험을 한 터라, 맘 놓고 세상을 사랑할 수도 없고, 주님을 사랑하자니,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고 세상에 미련이 많아요. 그래서 세상에서도 버림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신앙의 세계에서도, 자기스스로 내동댕이 처진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불신자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주님을 거스리며 사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그런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항상 그렇게 예수를 믿으려면 세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길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렇게 주님을 믿고 살면서, 그 사랑에 불붙은 사람이 되는 것. 주님의 그 사랑을 한 번 맛보고,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저 개인적인 가장 간절한 목표는 그러한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 끊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친교 속에서 주님을 인해서 한 없이 행복해 하고, 주님은 나를 인해서 즐거워하는 인생을 살며, 그 사랑에 빚진 자로서, 그 사랑에 의해서 자극과 충동 받으며, 그 사랑을 붙들고 나를 사랑하신 그 분의 성품을 알아가고, 그 분의 뜻을 헤아리면서, 일생동안, 그 사랑 안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 말고, 우리에게 또 다른 무슨 비젼이 우리에게 있겠습니까. 숨질 때까지 그 사랑으로 주님 섬기면서 살아가는 이것, 사랑이 없어서 냉랭해지고, 고통하고, 자기 스스로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불쌍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어루만지고 그들에게 주님의 크신 사랑 알게 하는 그런 사랑의 도구들이 되는 것, 그것이 제가 사도 바울과 함께 여러분들을 위해서 주님 앞에 기도하는 첫 번째 기도입니다. 금주에 헌금이 많이 걷혔다는 보고도, 저를 기쁘게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기쁜 보고는, 가슴이 냉랭하고 마음이 돌아섰던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라고 하는 보고는 실로 저의 마음에 커다란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떠한 처지에서 주님을 섬기든지 간에, 이것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천사의 말을 하고, 그리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자신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제 새해 시작되는 사경회를 벽두로 해서,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시베리아 벌판처럼 얼어붙었던 여러분들의 마음. 거기에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그렇게 얼어붙게 만든 다양한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겠지요. 그렇죠? 근데 그 얼음보다도 훨씬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의 불에 감화를 받아서, 여러분들의 굳었던 뺨에, 참된 주님의 사랑을 아는 은혜의 눈물이 흐리기를 저는 바랍니다. 돌같이 굳어졌던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부드럽고 온유해져서, 주님이 우리를 향해서 베푸신 사랑의 발자취를 한두 가지만 가르쳐 주어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감격하는 눈물이 흐르고 주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싶어서, 배기지 못하는 성도들이 되는 것, 그것이 제가 새해를 맞으며(앞면 끝. 뒷면에 말이 이어지지 않음). 정말 그 놀라운 게 말이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하고, 그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그 우리들이 깊이 깨닫게 되면은, 누가 한마디만 해도 그냥 막 터져 나와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대. 그럼 막 눈물이 흐르는 거에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네. 주를 보낸 하나님 사랑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하네. 갈보리의 구속의 사랑
제가 그런 걸 경험 했어요. 뭐 저 뿐이 아니에요. 수많은 지체들이 구름과 같은 증인들이 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대,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 온 천하를 다 얻는 것 같아.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외쳐 말하고 싶어요. 이전의 나는 버림받은 자였고, 이전의 나는 외로운 자였고, 이전의 나는 누구도 나를 돕는 사람이 없이, 내팽겨 쳐진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여, 나의 말에 귀를 귀울여 보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아들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도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려오셨답니다. 목이 터져라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에요. 난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난 우리의 예배가 너무 냉랭하다고 생각돼요. 예배를 인도하고 통로를 걸어 나가면서, 그저 예배가 끝난 것 이상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성도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에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뒤쪽에 많아요. 오늘은 안 그럴거에요. 참 너무 아파요.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지요. 네가 죽으면 저 사람들이 산다. 그래도 또 여러분들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너무 나는 정말 간절하고 뜨거운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배위에 부음 바 되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들이 한 번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릴 때, 그 메마른 수많은 영혼들이 살아나는 광경을 나는 여러분들이 한 번 목격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주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셨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예배에 어떻게 하나님의 그 사랑이 쏟아 부음 바 되고, 그 사랑에 부음 바 된 성도들이 어떻게 진실하게 허물없이 살려고 애를 쓰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들의 착한 인격을 입증하고 싶어 하는지, 그 현장을 여러분들이 보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이런 주님의 사랑이 모두 다 부어져서 그 어린아이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말이죠. 그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기억이 선해요. 성남에 있는 어느 교회인데, 초창기 때 열심히 집회 다닐 때인데, 헌신예배인가, 뭔가 한다고 그래서, 갔는데 말이죠. 교회도 쬐끄마한 교회에요. 뭐 그저, 한 교인 100명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엄마 따라 나왔는지, 아빠 따라 나왔는지, 그 머리 빡빡 깍고 이제 중학교 1학년이라고 벌써 얼굴에 써 있더라구. 쬐끄만 녀석이 앉아있는데, 근데 그렇게 은혜를 받고, 마지막에 말이지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그 사랑에 감동을 받는데, 야, 정말 어른 아무것도 아니야, 올 때 엄마 아빠 손잡고, 저녁 시간에 혼자 있기 뭐하니까 쫒아온 애 같았는데 그렇게 변화를 받아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부음 바 되는 것은 말이죠.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빈부나 귀천이 없어요. 누구의 가슴 속에든지 그 사랑이 부어지기만 하면, 그는 정말 냉정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죄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할 것이고, 그리고 주님을 섬기며 살아 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것이고, 죄 많은 사람들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의롭게 분투하며 살아 온 사람들에게는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해요. 그러니까 얼마나 뜨거워요. 예배를 드리고 나면,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더러운 찌끼가 말이죠, 빠져나가는 것 같은 그런 거룩한 사랑의 감화를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예배가 되어야 되는 거에요. 난 여러분들이 내년에, 내년만은 아니지만은, 내년이 아주 강력한 계기가 되어서 내 생애에 있어서, 2001년도에 만난 하나님.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한 해. 그 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보았고 그리고 내가 왜 그 분을 거역하며 살 수 없고, 내가 왜 고난을 받고 시련을 당해도, 그 분의 품을 떠나서 살 수 없는지, 알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생애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정말 그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주님 사랑에 미치는 것을 보면, 죽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또 원하는 것이 있어요. 사도가 뭐라고 그랬냐 하면, 너희의 사랑 위에 무엇인가를 하나님이 더하게 하시기를 원한다, 그랬어요. 그게 뭐냐 하면,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그랬어요. 지식과 총명이에요. 참 우리의 그 안타까운 현실은 뭐냐 하면은, 사랑을 맛보는 사람들은 많아요. 근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다음에, 그 사랑의 불이 식어간단 말이죠. 식어가요. 그렇게 사랑의 불이 식어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난로를 때우는 원리와 똑같아요. 똑같아요. 장작을 집어넣고 난로를 때우면은, 그러면은 연료를 아끼면서도 최대의 열량을 내는 비결은 그냥 장작을 난로에다가 가득 때려넣고 거기에다가 불을 붙여 한 번에 확 태워버리는 것 그것 아니에요. 그것은 총체적인 그 따뜻한 기운들을, 한 공간에 오래 지속할 수 없어요. 슬기로운 방법은 뭐냐 하면은, 나무를 몇 개 집어넣어서 활활 타오르게 한 다음에 불꽃이 사위어 가려고 할 때에, 다시 장작 하나를 집어넣어요. 그럼 다시 쭉 타올라요 사위어 갈 때 다시 하나 집어넣고, 또 타오르고, 사위어 갈 때 다시 하나 집어넣고. 또 타올라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원래 이 사랑이라고 하는 이 하나님 사랑이라고 하는 불꽃은 비유를 하자 면은 우리들이 이 대기 중에서 태우는 모닥불과 같아요. 그렇잖아요.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올라도 언젠가는 이 불이 식게 되어있어요. 왜냐하면, 불의 온도보다는 밖의 기온이 훨씬 차가워요. 그러니까 밖에 있는 공기들이 그 불을 사르게 하지요.
여러분들이 오늘이라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신앙의 감화를 받아 보라 구요. 그러면은 세상이 놀랍게 변할 거에요. 이게 뭐냐하면, 여러분의 집안 식구와 환경, 상황, 여러분의 마음, 모든 것들이 여러분들이 받은 그 사랑의 불꽃을 끌려고 함께 연합전선을 편 것처럼, 여러분들에게 다가 올 거에요. 우리는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이 죄와 불순종이 가득한 세상에서, 한 사람의 신앙의 인격이 하나님의 사랑에 활활 불붙는 사람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 아니란 말이지요. 근데. 그런 불붙는 사랑을 그냥 단지 은혜의 체험으로만 내버려 두면은 얼마 안 되어서 그 불은 반드시 꺼지게 되어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그것을 방지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뭐냐 하면은,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 지식이 뭐냐 하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그랬는데, 여기에서 지식은, 지식이 만약에 교리를 아는,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진리의 체계를 아는 지식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이 총명은 그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삶에 적용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아는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공히 하나님의 그 말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되는지를 잘 배우고, 어떻게 살아야지만 내가 승리하고 나 자신을 이기고, 그래서 흠 없고 순전한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성숙할 수 있는가를 배워가는 이 지식,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쌓고 삶의 고뇌가 묻어있는 이 지식을 추구해서 결국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신앙의 지혜를 소유하게 할 때에 그 때에 그런 지식이 보태지면 보태질수록 꺼져가던 우리의 주님을 향한 사랑의 불꽃이 더 크게 타올라요. 더 타오르고 더 타올라요.
이런 사랑의 불꽃을 가지고,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 것인지를 잘 분별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는 것. 이것이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기대하시는 바이고, 또 제가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바라 생각됩니다. 물론 이 일은 금년에 처음 시작되는 기도제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은, 금년에 들어서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런 소원이 우리 안에 더 강력하게 역사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금년 한 해 동안에 신앙생활 할 때에 이렇게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 감화를 받고 그리고 지식이 점점 더 풍성해져가서 그래서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꽃으로 결국은 주님이 보실 때에 흠 없고 진실한 사람들이 되어서 어디를 가든지 주님과 동행하는 그런 주님의 백성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