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2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아 4:13-15)
몇 주째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사는 기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가서 4장 13절에서 15절입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가서 에는 불타는 사랑의 복음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가서는 구약으로 말하자면 시로 쓴 호세아서라고 할 수 있으며 신약으로 말하자면 구약의 요한일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솔로몬의 시를 깊이 연구하면 우리가 마음으로 주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주님과 진정으로 하나 된 삶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신앙생활의 외형은 매우 분주한데 내면의 세계는 왜 그리 공허한 상태를 면하기 어려운지를 복음의 빛으로 밝혀주는 사실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사랑하는 여인을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신부에게 단지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혈육에서 느껴지는 끈끈한 정을 가지는 동시에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여인의 애틋한 사랑을 같이 느끼는 친근함의 표현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 좀더 이 묘사를 상세히 살펴보면 표현 기법 상 점층법을 사용하면서 기록자의 시각의 초점 이 넓은 동산의 입구로부터 그 중심부로 점점 좁아져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너른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는 우물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샘이 있고 그 동산은 잠겨있고 그 우물은 덮여있습니다 샘은 봉해져있습니다 그리고 우물가 동산에는 물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샘이 있고 그런데 그 동산은 잠겨있고 우물은 덮였습니다. 샘은 봉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물가 동산에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열매들이 가득하여 그 동산을 더욱 소중한 동산이 되게 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는 여러 가지 과실과 나무의 이름들이 나열되어잇습니다 히브리어사전과 성경사전을 함께 찾아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늘날 유대인들조차 모르고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종류의 식물이 몇 가지 나옵니다. 석류 침향 유향목 등은 귀한 약재로 쓰였고 침향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알로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하시면서 열매 맺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아가서 본문을 본다면 이 동산에서 나는 아름다운 열매들이 주는 새로운 감동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치 열매 맺은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거룩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위해서 신자인 우리 안에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사랑의 관계가 실제로 존재해야 합니다.
요즈음 발달한 것 중의 하나가 수공예기술입니다 얼마나 기술이 뛰어난지 가까이 가서 만져보기 전에는 진짜 꽃인지 가짜 꽃인지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꽃이 아름다울수록 조화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 더 커다란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것을 아무리 자주 보아도 별로 감동을 느끼지 못 합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야! 이거 정말 멋있다! 라고 감탄할 때 우리는 무뚝뚝하게 말하게 됩니다. 가짜라고 말입니다 그 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조화의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니 당연히 열매도 맺히지를 않는 것입니다 만약 달려있다면 그것은 그 나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열매도 가짜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조화에 매달린 열매 같은 삶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즉 그 동산에서 나는 것은 이라는 말이죠. 솔로몬이 이렇게 말할 때 그 동산은 오직 한사람이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비밀스러운 정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적이 그친 채 오직 한 주인을 기다리는 동산에서만 아름다운수목의 탐스러운 열매들이 달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는 고운모양을 한 꽃 한 송이 예쁜 풀 한포기 탐스러운 알밤하나가 남아나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모두 따거나 헤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속에서는 아름다운 열매들이 매달렸다가는 저절로 떨어지고 흐트러진 꽃들은 수명을 다하기까지 자신의 자태를 마음껏 자랑 합니다 오늘 이본문은 우리에게 잠근 동산과 아름다운 열매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말 신앙의 열매가 매우 적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조국교회그리스도인들은 반쪽자리 복음을 붙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믿는 즉시 천당이요 안 믿으면 지옥이라는 믿음주의 같은 것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믿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천국이라는 구호까지 가능하게 하는 반쪽복음의 신앙이 교회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믿음주의는 예수님께는 물론이고 오직 믿음으로 를 외쳤던 종교개혁자들에게도 낯선 것입니다 성경은 즉각적인 구원과 함께 점진적인 구원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과 성령으로 날마다 변화되어서 성화되어가는 점진적인 구원을 무시한 즉각적인 구원은 성경으로서는 생경스러운 비성경적인 믿음주의입니다 오늘날 조국교회의 영적인 삶이 이처럼 심각할 정도로 피폐해지고 형식적인 신자로 넘쳐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화의 즐거움을 경험하며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의 진보는 신령한 생활과 도덕적인 삶의 진보를 가져옵니다. 거기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삶의 열매가 없기 때문에 오늘날 윤리의 운동이 거룩의 추구를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근 동산과 같은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나누는 거룩하고 생명적인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이러한 열매를 맺는 일들은 가능해집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조국교회가 외형을 키우는 일에 열심을 내는 만큼 신자의 영혼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고 그들이 내면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와 얼마나 풍성한 교제를 누리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러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목양하도록 힘을 기울인다면 교회는 이 소망 없는 세상을 향해 훨씬 더 건강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수많은 신자들 가운데 일주일동안 이러한 주님과의 영적인 사귐 없이 단지 교회당을 오가며 낯 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그럴듯해 보이는 열매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교회생활에 성실한 사람 교회에서 잘 섬기는 사람 도덕적인 사람 그런 평판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뿌리박지 않아도 얼마든지 맺힐 수 있는 열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믿지 않는 가족들은 그 사람에게 교회에 미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의 삶속에서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주님과의 비밀스러운 교제의 세계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잘 지키고 그 마음을 오직 그리스도예수에 의해서만 지배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인생의 비밀은 믿음의 비밀이고 믿음의 비밀은 사랑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아름다운 열매와 진귀한 수목들이 모두 잠근 동산에서 자라났듯이 우리의 모든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들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진리입니다 그것이 인격의 열매이든지 섬김의 열매든지 어떤 열매든지 간에 오늘도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의 세계 속에서 받는 거룩한 감화를 통해 맺히게 되면 그 열매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열매가 있고 열매를 맺게 하는 그 뿌리는 우리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세계에서 조차 사람들을 내몰려는 것 같은 강포한 밀어붙이기식의 성과주의의 추구를 자주 봅니다. 교회의 이런 잘못된 생각은 교회를 거대한 사회단체로 만들어가고 신자들을 주님과의 아름다운 교제의 상실에서 오는 공허한 마음을 몸으로 때우는 소위 노가다 신자로 만들어냅니다 교회가 너무 많은 행사를 자주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휘몰아가기보다는 정직하고 풍성한 진리를 통하여 신자들이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도록 만들어주고 삶의 문제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해답을 찾도록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에이든 윌슨 토저 라고 하는 미국의 작가의 지적과 같이 자기를 성찰하고 깨달음으로서 내면의 세계에서 더욱 주님과 하나 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정말 필요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의 거룩한 삶의 비밀은 모두 주님과의 영적교제의 비밀이며 이러한 관계없이 단지 삶의 열매만을 맺고자하는 것은 종교적인 성취를 위한 노예적인 삶의 다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이 열매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할 때에는 오히려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불러주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지키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그 관계를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영혼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에 미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결과는 사람의 한계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들이 맺는 섬김의 열매는 무한한 감동을 주고 우리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만일 우리에게 열매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매우 적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많은 열매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실패의 근원을 찾아내야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삶에 많은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 원인이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삶속에 거룩한 열매를 맺어가는 아름다운 기쁨이 있지 않은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고 끊임없이 그 은혜 안에 살면서도 허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정직하게 말해서 이 모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정말 배타적으로 그분만을 사랑하는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정말 되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듯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 안에서 이루어져야함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의 교훈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고 말입니다 저는 언젠가 그 아름다운 본문을 읽다가 문을 닫고 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아름다운사랑의 연합이 촉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그 교제가 우리를 더욱더 신령한 연합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묶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바꾸어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혹시 우리의 골방의 문이 열려있어서 세상의 근심과 염려와 유혹 그리고 쾌락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홀로 대면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제를 하든지 복음을 전하든지 교회를 섬기든지 하나님사랑만이 우리의 모든 삶의 동기가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순결을 유지하며 사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때문에 기쁨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까?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세상이 줄 수 없는 희열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시련이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한 기쁨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즐거움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고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하며 사는 것에 기뻐하고 말할 수 없이 행복해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도바울이 당부했던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근심과 괴로움이 찌든 마음을 그대로 가진 채 광고회사 직원들이 수없는 연습을 통해 얻게 된 가짜 웃음 같은 스마일을 해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쁨의 원천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기쁨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아름다운인격과 삶의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게 하는 거룩한 감화의 원천은 어디입니까? 그리고 그 기쁨은 어디에서 채워집니까? 여러분들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이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께 대한 신자의 진실한 사랑의 관계로부터 이모든 기쁨과 은혜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동산에 맺힌 아름다운 과수의 수많은 열매들은 주인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 열매들은 또한 그로 하여금 동산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독자여러분이 솔로몬의 입장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혼인예복을 입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을 맞이하기 위해 다가가고 있을 때 신부가 인격적으로나 삶에 있어서나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순결 가운데 더 많이 맺혀져가고 있다면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얼굴이나 몸매만 고울 뿐 아니라 삶의 열매 좋은 인격의 열매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어 현숙한 여인이 되어가고 있다면 이 여인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은 단지 육체에만 매혹된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아름다운외모도 곧 지나고 고운 몸매도 이내 사라지지만 그러나 그 신랑을 향해 갖고 있는 사랑에 맺힌 인격의 열매는 그치지 않습니다 누가 그 생명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잠근 동산 아무도 없는 그 아름다운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곁에서 일어난 그 일을 말입니다 이 동산에서 나는 아름다운 과목으로 인해 주인은 더욱 이 동산을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산을 사고 팔 때 그 산의 가치가 종종 산에 존재하는 식물이나 광물에 의해 결정될 때가 있습니다. 잔 목들만 무성한 쓸모없는 산은 땅의 넓이로만 그 가치를 계산하지만 아름다운열매 값진 종자를 맺는 나무가 있으면 법적으로 따로 계약해서 땅값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동산에서 자란 유향목과 나도초와 번홍화와 석류나무와 모든 아름다운 과목들은 그 잠근 동산의 가치를 한층 높여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를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해주셔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자신이나 우리이웃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시고 우리를 구하기 위해 당신은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매가 얼마나 주님께 기쁨이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그분의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며 열매를 사모하고 신앙의 과목과 아름다운 실과가 가득한 인격이 가득한 삶이되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구원해주셨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 열매를 많이 맺어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모든 말씀을 통해 아름다운 것은 비밀 속에서 자라간다는 것을 배웁니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을 맛본 사람들도 모두 기도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 승리한 사람들은 복음전도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남들이 알 수 없는 고통과 실패와 낙담으로 황폐하게 된 삶을 성공으로 바꾼 놀라운 신앙의 경험은 모두 하나님과의 비밀스러운 사랑의 관계를 새롭게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순간 우리마음이 다른 것들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도움을 호소하고 만져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은 성을 지키는 일보다 힘들기에 우리는 매순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만 바쳐져 순결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자신에게 속삭여야 합니다. 타일러야 합니다.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시대의 조국의 교회와 여러분들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마음을 여는 교회 그리고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실 때 아름다운 실과와 수목들로 향기가 진동하는 교회가 되고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디에 살든지 예수의 향기를 날리는 아름다운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소원과는 다른 교회현실을 보시며 주님은 마음아파 하십니다, 아무렇게나 열린 문을 통해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들이 다가와서 교회를 밟고 지나가고 홀로 그분이 좌정하셔야할 교회의 높은 보좌에 한번씩 앉아버린 순결을 잃어버린 모습들을 너무나 쉽게 발견하고 주님은 아파하십니다. 주님만이 아닌 교회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결코 될 수없으며 주님께만 문을 여는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주님의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급하게 대처되어야 할 것은 거창하게 세상 사람들의 환심을사는 구호 같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순결입니다 주님을 향한 불붙는 사랑에서 비롯된 순결 그것이야말로 순결한 주님이 교회에 임재 하시게 하는 중요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그분을 뵙는 가장 훌륭한 준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순결을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이외의 것들에 대한 사랑을 모두 버림으로서 시작 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이 주의 다시오심을 기뻐하는 세상이 되기까지 먼저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직 순결하게 그분의 소유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애청자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이아침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아가서 4장 13절에서 15절입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번홍화와 창포와계수와 각종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몇 주 째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사는 길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매우 가물었던 때였습니다. 지방에 내려가면서 한 산을 보았는데 날이 너무 가물어서 걱정하던 그러한 마음 이었습니다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아무리 겨울이라고 하지만 골짜기에는 물 한방울 흐르지 않고 나무들은 모두 바짝 말라있어서 성냥하나만 그어대면 금새라도 불이 날것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산에도 봄비가 넉넉히 내리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비가 내리면 많은 물이 흘러가고 계곡에 쌓여있던 더러운 것들이 모두 씻겨 내려 갑니다. 그리고 숲속에는 다시 생기가 돕니다. 나무가 다시 잎을 내고 풀이 싹을 내면서 온 산이 거대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다운 향기나 진정한 기쁨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마땅히 깃들여야할 거룩한 즐거움이 사라진 건조한 사람들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메말라버린 은혜의 샘이 있습니다. 건조한 땅이나 모두 타들어갈 것 같은 메마른 동산에서는 나무한그루 풀 한포기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거나 혹은 믿으면서도 신앙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참사랑과의 연합 없이 살아가는 신자들도 동일한 신세입니다 아무리 가련한 사람일지라도 그런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기대도록 어깨를 빌려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마른 땅을 걷는 것 같이 피곤하던 한사람의 심령 속에 어느 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은혜가 부어져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껏 그분 없이 살아온 인생은 얼마나 비참하고 부끄러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는 그 수많은 불행한 삶이 사실은 그 근원을 자기 자신의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에는 한사람을 고치는 힘이 있습니다. 신앙에는 한사람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까지 고치는 힘이 있습니다. 황폐한 마음 망가진 인생을 고치기 위하여 다가오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고 그 사랑 앞에서 마음이 녹아내리는 참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주님과의 생명적인 사랑의 관계를 다시 맺어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고
저 위험한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뼈저린 마음으로 회개하고 그분과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은혜를 자신의 인생의 밭에 물을 대는 수온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고귀한 은혜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주님을 찾을 때 우리는 마음속에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우리주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마치 아가서의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나눈 사랑의 밀어가 기록된 것처럼 우리에게는 주님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그런 언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밀어를 통해주님의 마음을 받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전하는 영적교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분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흐르고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정서 속으로 흐를 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향한 우리주님의 마음을 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통해 이제는 단지 피상적으로 알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그 섬세한 이끄심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풍성한 사귐의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말은 많아도 인격이 천박합니다. 사랑의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능란하며 심오한 설교를 할지라도 그 사랑의 힘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실어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 그 순전한 사귐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사랑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은 은혜의 샘물에 깊이 잠겼던 사람들입니다 그의 말은 우리주님에 대한 진실한 증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직접 주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주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게 된 간증을 통해서 경험한 주님이 아니라 주님을 직접만난 그 경험이 주님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속에서 신령한 은혜의 물에 잠겼던 사람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숲을 우거진 물댄 땅과 같은 동산을 거닐었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체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의 사랑의 체험은 말과 그의 삶속에 숨길 수 없이 묻어나게 마련입니다 저와 같이 설교하는 일에 자기를 드려야 하는 사람은 이런 진리를 정말 실감나게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 통로임을 체험한 것이 바로 몇 해 전 여름철에 있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한적한 기도원에서 열린 어느 신학교학생들의 수련회에서 설교를 해주도록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며 들어간 그 다음날 아침 성경을 펼쳐 누가복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수없이 스쳐가던 누가복음 중 한 구절이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1장80절이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 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가지 빈들에 있으니라 고 한 그 말씀 말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건조해 보이는 단 한 구절의 말씀 이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축축한 골짜기에서만 물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마른 반석에서도 물을 내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충분히 경험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전 그 본문을 읽는 동안 시선이 고정 되었습니다 3박4일 동안 그 한절만 읽었습니다. 눈앞에서 잠긴 동산과 같았던 본문이 열리면서 저는 그 한절이 이루어놓은 장엄한 진리의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밟아보지 아니한 진리의 숲속은 풍요로운 동산들로 가득했고 메마른 성경읽기의 땅을 타박타박 먼지내며 걷던 가련한 저는 실로 오랜만에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진리의 숲속에서 마음껏 하나님과 사귀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고 저는 어린아이가 되어 그분이 만들어놓으신 그 아름다운 풀밭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가련한 저를 불쌍히 여기사 말씀하시는 주님과 그 황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저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입을 여셨고 짐승 같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폭풍처럼 우뢰처럼 말씀하셨고 어떤 때는 가련한 흐느낌이 섞인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없는 친밀함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내가 아주 작은 존재가 되어서 그분의 임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때때로 우리주님의 음성은 벼락을 치는 것같이 엄청난 소리였는데 한편으로는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달콤했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엄청났습니다. 그때 저는 혼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누가 복음 1장 80절이 성경으로 기록된 일에 최초로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라고 말입니다 이 한 구절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급히 메모하였는데 큰 종이로 24장에 달하는 분량 이었습니다 후일 이 한 구절에 대한 깨달음이 약 270쪽의 책을 쓰게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많은 신학생들을 깨우는 도구로 사용하셨던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라고 하는 책입니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하는 책은 바로 이렇게 쓰여 졌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저는 듣는 둘만의 시간으로 꿈결 같은 시간 이었습니다 저는 생각 했습니다 잠깐 스치듯 지나간 것 같은 짧은 사귐 속에서도 이런 엄청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면 일생을 이런 사귐 속에서 살았던 거룩한 신앙의 사람들은 얼마나 풍성한 진리와 감격 속에서 살았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주님 앞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주님과 만남으로 함께 누리는 이 거룩한 사귐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에 있어서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절실하게 경험 했습니다 모든 것을 주고라도 그런 사귐 속에서 영원히 지나가고 싶었습니다. 눈물과 거룩한 환희로 가득 찬 그런 세계에서 주님과 교제하던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눈물을 씻고 우리의 사랑이신 주님만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은 이 소명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같이 있으려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더 많이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이 깃발을 들고 세상을 향해 치 닫는들 어떻게 그 사람을 통해 이세상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더 깊은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경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러한 애씀은 단지 골방에서만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일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세요소를 고루 갖춘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 속에서 주님만을 사랑하며 섬긴다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있는 것을 인해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시련의 파도와 핍박의 비바람을 이기면서 성숙한 경건과 연단된 꿋꿋함으로 거목처럼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았던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의 근원을 가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아! 정말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만 바쳐진 심령을 간직하면서 어두운 세상에서 보낸바 된 소명을 따라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아 간직하면서 그분께만 마음을 열고 잠근 동산과 같은 순결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심령 속에는 생수의 강이 솟아 날 것이며 그로서 망가진 자신을 치료하고 이웃을 고치시는 그분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봅니다.
우리는 아가서 4장에서 12과15절 사이에 있는 절묘한 문학적 수사법의 일치를 봅니다. 잠근 동산에서 덮은 우물 그 안에 있는 봉한 샘을 묘사함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는 시야를 동원했다면 뒤에서는 샘에서 나는 우물로 거기에서 시내라고 표현함으로서 안에서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는 시야를 채택 했습니다 명절 끝날 주님이 베푸시던 초청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신 그 말씀 말입니다 이세상이 어떻게 우리주님의 사랑을 알게 될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어두운 죄악의 도성이 복음에 의해 점령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감격적인 주님의 사랑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 밖에는 소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도전하는 이세상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참된 복음화는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 속에서만 솟아나는 생수의 강으로 이 척박한 세상을 적셔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음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 냉담했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하나님을 알게 하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게 해서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그들을 고치는 그 일이야말로 정말 복음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분은 바로 이일을 위해 세워졌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일을 위해 선택받는 용사들입니다 생수의 강이 한사람의 내면의 세계에 흘러넘쳐 교회를 적시고 마을을 적시고 한 도시와 시대를 두루 적실 때에 우리는 비로소 복음의 승리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방법이나 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로부터 생명의 은혜를 받고 더불어 깊은 교제를 나눈 한사람의 영혼에서 넘쳐나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러한 위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조국교회에는 오늘날의 영적인 상황이 마치 메마른 땅을 걷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형편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된 만족을 신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고 섬기기는커녕 자신의 존재자체가 주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스스로 힘겹게 느끼는 사람들 속에서 정말 이런 생수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의 모든 건조함과 영혼의 고통은 주님과의 교제가사라진데 있습니다. 목마른 길손에게 깨끗한 샘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물 한잔은 다시 한고비를 넘어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뜨거운 여름날 길을 걸어가다가 지쳤을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을 먼저 예수님 믿게 하시고 은혜의 샘에서 마시게 하신 것은 인생길이 험하고 밤이 깊어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영혼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사람처럼 예수 믿으며 그 생수의 근원을 간직하며 살고 싶다는 소원을 불러일으키게 하시려고 여러분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바로 복의 근원이 된다고 하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을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 하시사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주셨던 그리스도를 향해서 마음을 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더 크고 놀라운 교제를 주시고 사랑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명 물을 찾지 못해 메마른 땅에서 눈을 부릅뜬 채 견딜 수 없는 목마름에 몸을 부여안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생명의 작은 샘들로 부르셨습니다. 생명 물은 오직예수님이시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주님과의 사의랑 교제로 흘러나오는 생수의 물이 넘쳐날 때 우리들은 우리에게서 주님의 물을 마십니다. 이런 영적생명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세대에 고통 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이세상은 뜨거운 햇볕아래 힘겨운 행군으로 지친 병사처럼 영원한 생수에 목말라합니다 우리에게서 솟아나는 은혜의 생수는 이제 우리의 갈한 목을 축이는 생수의 근원이 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새 힘을 얻게 하는 우물이 됩니다. 급기야 이 우물은 레바논으로부터 흐르는 시내가 되어서 메마른 땅에 생명이 깃들게 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러한 일들이 그 땅의 역사를 바꾸어버립니다 레바논산맥은 동쪽에서 시작해서 서쪽으로 헐몬산 아래까지 뻗어있는 높은 산맥입니다 레바논이라고 하는 말은 하얀 산 이라고 하는 히브리말입니다 만년설이 덮인 그 레바논 산맥을 타고 시내가 달려옵니다. 시내가 지나는 땅은 농경지가 되고 아름다운 물댄 동산이 됩니다. 아름다운 화초와 곡식들이 자라고 새들과 짐승들이 깃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는 모두 실패한 사람들이었고 가시덤불과 같은 인생을 살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가슴에 상처를 받아서 누구든지 찌를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내면세계를 소유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쉴 곳 없어 날아드는 작은 새들조차 가시에 찔려 다시 날아가야 하는 덤불숲 같은 황폐한 내면의 세계를 지닌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내어주셨던 마음을 단속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에 의해서 지배받는 마음이 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황폐한 삶의 정원으로 무성하였던 가시나무와 엉겅퀴 같은 것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잘라지고 오히려 그 재들이 거름이 되어 그 속에서 각양 아름다운 과목들이 되어 자라고 온갖 열매들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삶의 열매를 보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불쌍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의 존재자체가 주님에게는 구속해어야 할 동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인격과 삶의 값진 열매들을 많이 맺는다면 주님이 얼마나 더 기뻐하시겠습니까?
진정한 부흥이 무엇입니까 참된 부흥은 큰 교회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득 차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부흥은 거친 풀조차 돋아날 수 없는 마른땅과 같은 이 사람들의 그 성도들의 마음이 기름진 풀밭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조차 그쳐버린 황무한 땅과 같은 교회에 다시 신앙의 감격이 넘치고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들로 교회가 가득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양보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생수의 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모든 것은 변하지만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의 샘입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마셨지만 아직도 그 샘은 다함이 없는 풍부함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샘에서 마시고 우리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샘이나 우물이 아니라 커다란 시내와 강이 되어서 계곡을 휘돌아 흐르고 광야와 같았던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생명의 소생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생애를 사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우리 신자가 불꽃처럼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