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4:13-15)
시편 102편 2절부터 7절까지에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현대어로 옮겨보았습니다 제가 괴로운 날에는 당신 제발 제게서 사라지지마세요 이렇게 뵙고 싶은데 제가 당신을 부를 때에 왜 당신은 속히 오실 수 없나요 당신의 사랑이 없이 지내는 저의 하루의 삶은 마치 젖은 짚단을 태우는 연기와 같고 제 뼈는 불붙는 마른 잎처럼 속절없이 타들어 갑니다. 이제 당신 생각에 식음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제 마음은 마치여름가뭄에 말라가는 풀포기와 같습니다. 저는 요즘 날마다 당신의 사랑을 잃은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밤마다 이불속에서 만져보는 제 몸은 제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눈에 띄게 야위어 살 껍질만 남은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살아갈 기력이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잃어버린 저는 마치 외로운 들판에 슬피 우는 당아 새 같고 깊은 밤 홀로 우는 부엉이와 같습니다. 당신 없는 곳에 홀로 지내는 저의 처지가 마치 어미를 잃고 지붕에서 구슬피우는 아기 새와 같습니다. 이상은 다윗의 시라고 믿어지는 시편102편 2절부터 7절까지를 현대어로 각색해 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파고드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소수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에로스적인 사랑의 세계에만 상사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아가페사랑의 세계에도 상사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런 사랑에 빠져 본적이 없기 때문에 명백한 성경의 진술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입니다 성경은 신앙의 세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세계에도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풍부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청교도인 존 오웬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상사병을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가 얼마나 깨달아 지겠는가. 우리에게는 사랑으로 말미암는 감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거룩한 기쁨 환희 열렬한 사랑 눈물로 범벅이 되는 희열 같은 애정의 정서가 지성과 의지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앙이 깊어져 가는 것과 이런 거룩한 사랑에서 자라가는 것을 나누어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사람의 영성의 깊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경험하고 완전한 사랑의 교제 속에서 살아가는 영적생활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조국교회의 상황은 사람이 경험해가는 복음의 진리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감격은 초대신앙의 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임을 입증하는 정서적인 증거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앙생활은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철 가슴 돌 마음 경연대회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 항상 상위권에 입상한 것 같습니다 자기는 신앙생활에 철이 들고 나서 십년동안 한번도 울어 본적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어느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조국교회의 메마른 지성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게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러므로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이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그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교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던 시대에 교회가 복음의 참된 의미를 이해한 시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교회는 항상 피 묻은 복음의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복음의 광대한 의미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시대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눈뜨기 전에는 항상 자신을 향해 먼저 손 내미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이 아가서는 솔로몬이 쓴 것으로서 전해내려 오는데 역사적으로 성경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야고보서와 함께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는 책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거룩한 책이 되기에는 내용이 너무 외설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이 되었습니다. 만약 교회에 이 아가서가 없었더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 한 가지가 전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책을 깊이 연구하면 신자가 그리스도와의 영적관계에서 비롯되는 은밀한 삶의 신비를 발견하게 하는 복음의 진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솔로몬이 이 아가서를 썼을 때에는 정치적으로 신앙적으로 전성기 시절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집권말기에는 실정하게 되어 정권도 약화되었고 특별히 이방나라 여인들과 연인관계를 맺으면서 초기에 순수했던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 아가서는 정치적으로는 기록자인 솔로몬왕의 집권초기 신앙적으로는 하나님과의 영적관계가 뜨거웠던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실제로 사랑에 빠져 본 경험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여인과의 사랑의 경험과 하나님과의 사랑의 경험의 체험을 대비해서 신앙의 진리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하나님과 나눈 사랑이나 인격적인 관계의 체험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남녀간의 사랑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을까요?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주 깊은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체험한 신비하고 열렬한 사랑의 체험은 타오르는 불길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받은 강렬한 사랑의 느낌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른 어떤 경험과도 비교하여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사랑을 주고받은 뜨겁고 열렬한 사랑의 경험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솔로몬이 묘사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로맨스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은 개인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이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사랑이 깊어진다는 사실을 제외해 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하나님의 그 충만한 사랑과 가슴 저미듯이 다가오는 그 뜨겁고 치열한 애정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사랑을 바르게 체험했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방종하거나 교만하여지지 아니하고 온전히 거룩하고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살기를 바라며 그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처럼 낮아져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이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몇 주 동안 살펴보고자하는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여기서 잠근 동산 덮은 우물 혹은 봉한 샘이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은 모두 동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세계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참된 사랑의 빛과 은혜의 비를 맞으며 자랄 때에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지 도덕적인 의무나 종교적인 규칙만을 실천함으로서 기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의미의 신앙은 인격적인 신앙이고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조화를 이룬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성품을 아는 지식과 그분에 대한 우정어린 사랑의 경험과 그 사랑을 삶으로 고백하고자하는 의지적인 실천적인 삶이 조화를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실천적인 삶을 위해서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또 다른 세계를 소유하고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영성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되면 비로소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교제가 시작이 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또 말씀을 깨달아가면서 주님의 성품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성품에 대한 깨달음은 그분의 영광을 알게 하고 그 영광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세상이 되도록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상황을 줍니다. 이와 같은 교제가 진리 안에서 풍성해질수록 그분의 생각과 마음이 우리 속에 전해집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세상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놀라운 힘과 능력이 이러한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공급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신앙의 이러한 영적인 특성을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우리를 아름다운 숲속으로 데려다줄 것 같은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는 이 특이한 묘사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은 우리의 영적 삶에 대해 생명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기이한 표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의 관계는 배타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독점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영적생활이 배타적이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참된 열매를 맺는 풍성한 삶을 위하여 내면의 세계가 오직 그리스도로 의해서만 점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이 다른 사랑과 구별되는 것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성격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이 세상에 오직 한사람의 여자나 혹은 남자가 있게 마련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람으로 변합니다. 한사람을 뜨겁게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 미숙한 인간입니다 그는 마치 신앙은 가지고 있지만 불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리스도인과 흡사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단둘이 있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 모두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상대방을 가진 것이 아니며 사랑하는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 아니면 그는 자신을 충분히 주지 못한 목마름을 느낍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이 연애 경험을 하나님사랑의 소재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사랑이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이외에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그런 주님의 사랑을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실을 입증하듯이 잠근 동산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동산이 잠겨있다. 라는 말은 동산으로 들어가는 울타리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누군가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열쇠가 오직한사람 그 잠근 동산과 같은 여인을 나이 누이 나의 신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한사람에게 허락되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동산 울타리 앞까지 다가와서 거기로 들어가고자 애를 쓸 수는 있지만 그들은 모두 잠긴 문 앞에서 배척당합니다. 동산이 잠겼을 때 뿐 아니라 그 안에 위치한 덮인 우물도 아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미리 그곳을 알고 있는 사람 이외에는 그 위치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동산의 묘사를 통해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사랑의 관계가 이중삼중으로 보호 장치가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신자간의 배타적사랑의 관계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건물과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고 교인들이 모일 때마다 이적을 본다 해도 교회 안에 그리스도를 향한 이런 사랑이 없으면 그 교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사랑 없이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감격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이기 때문에 오직 주인만이 그 우물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거기에서 그 동산을 열고 덮인 우물을 벗겨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그 동산에 덮인 우물 안을 열고 맑게 고인 물을 마십니다. 주님은 마셔서 즐거워하고 그 샘은 오직 주인에게만 만족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누군가에 의해서도 개봉될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봉해진 샘을 주인은 아주 쉽게 열 수 있습니다. 동산도 우물도 샘도 주인이 올 날을 기대하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을 마십니다. 그 아름다운 동산에서 홀로 감미롭게 누리던 산책이 끝나면 열었던 문은 나뭇잎으로 덮어 은폐하고 샘은 다시 봉해지고 돌아갑니다. 동산과 우물과 샘은 다시 주인이 찾아 올 날을 기다리며 잠긴 체 배타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그 한사람의 주인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순결입니다
따라서 순결은 단지 도덕적으로만 깨끗한 상태가 아니라 점령당해야할 하나님께 점령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불결한 사람이 주님을 향해 마음의 순결을 유지 한다.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도덕적으로는 순결하면서도 유린된 동산과도 같은 내면의 세계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참된 신앙의 순결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순결은 건강한 영성이 깃드는 보금자리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순결은 그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만 지배당하기를 즐거워하고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접근을 거절하는 배타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서 거룩한 마음 경건한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 원하시는 바는 언제나 이렇게 정결한 상태로 당신께 바쳐지는 것입니다 정결하지 않은 곳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도 없습니다.
마틴 로이드존스는 팔복을 해설하는 가운데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뵈올 것이며 라고 한 이 여섯 번째의 복을 최상의 복이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보내주십니까? 마음이 정결한 사람입니다 희랍어로 정결한 사람이라는 말은 물 같은 것으로 씻겨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에 의해 마음이 씻겨진 사람들은 복 되도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자신은 불결해도 주님이 우리를 씻겨주실 때 우리는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더럽고 짓밟힌 과거를 가지고 살아온 불결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께로부터 용서의 은혜를 받을 때 과거의 그 모든 불결을 씻고 순결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더러운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게 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홀로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점령하시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더럽고 부패했던 마음이 이제는 정결하고 깨끗하게 되어서 온전해 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만 마음을 바치고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자 하는 이세상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인 마음을 가지게 하시고 순결을 이루어가십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잠근 동산입니까? 우리의 내면의 세계는 덮인 우물과 같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빼앗으려고 하는 이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충분히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의 세계의 열쇠가 오직 그리스도께만 바쳐져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의 순결을 빼앗기 위해 이글거리는 눈으로 다가오는 무례한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자신의 정결을 지키려고 하는 헌신된 마음이 있습니까? 신앙의 싸움은 곧 마음의 싸움이고 마음의 싸움은 곧 사랑을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부족하고 모자라도 이러한 사랑이 있어서 정절을 유지하고 주님 앞에 순결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오늘도 찾으셔서 교제하시고 당신의 성품을 보여주신 후 주님의 거룩을 나타내보여주십니다 잠근 동산에 찰칵하고 동산의 주인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이 신부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 잠근 동산에 누구도 들어와 본적이 없는 곳이며 오래도록 그 주인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다린 기쁨도 그만큼 컸을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 채 매일 누구에겐가 맑은 물을 마시게 하기위해 정결함을 유지하던 그 우물은 자기위해 낙엽이 치워지고 뚜껑이 열리는 순간 얼마나 황홀 했을까요 아무도 접근할 수없도록 봉한 자신위의 바위가 치워지고 사랑하는 주님의 손길이 은밀하고 맑은 샘에 파문을 일으키며 다가왔을 때 그 작은 샘은 자지러질듯한 환희를 느꼈을 것입니다 아무도 들어올 수없었던 그 아름다운 동산의 수많은 풀들은 얼마나 주인의 팔에 스치고 싶어 했겠으며 동산의 많은 꽃들은 얼마나 주인의 눈길과 마주치고 싶어 했을까요? 수많은 세월이 피고 지면서 오직한사람 주인과의 만남을 기다려 왔을 것입니다 그 주인이외에 누구에게도 열리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며 오직 그의 방문을 기다리며 순결을 지킨다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세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을 위해서 기쁨이 느껴지는 그 순간 그의 모든 고통은 보람으로 보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러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애청자여러분 오늘 아침도 지난주에 이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가서 4장 12절입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저는 이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장면을 대할 때마다 마태복음에 실린 이름 없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연상하게 됩니다. 그는 이름도 없이 그냥 죄인이라고 불린 사람이었습니다. 우린 그에게서 이런 사랑과 순결을 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6절에서 7절에는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녀이자 기생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서 그 안에 들어있던 향유를 부었습니다. 요즘 물가로 환산하면 약 1800만원어치 가량의 향유를 한번에 예수님의 발 앞에 부어버린 것입니다 그 당시 향유를 모으는 것은 재산축적의 수단 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여인은 매일 몸을 팔고 술을 따라주면서 조금씩 향유를 모으며 이런 수치스러운 생활을 벗어날 꿈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여인에게 있어서 이 향유는 물질이 아니라 꿈이었고 사랑이었으며 따라서 인생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자 모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버림받은 자신의 인생을 어루만지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마음이 점령당하면서 그녀의 꿈도 미래도 달라진 것입니다 예전에는 향유가 홀로 그의 마음을 지배하였지만 이제는 향유를 아낌없이 그리스도께 부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마음이 우리예수님께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이 연상 깊은 주님의 예언적 말씀으로 끝남에 더욱 깊이 감명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마음을 예수그리스도 홀로 지배하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순결에 이르는 길은 예수그리스도께 온전히 우리의 마음이 지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순결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있습니까? 그 사랑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은혜와 지식의 빛 아래 살아가고 있는지요.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통은 더러운 사람들이 아니라 순결한 사라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통은 죄인이었던 사람에게도 주어지지만 그러나 지금은 순결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감미로운 하나님의 음성과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도 오직 정결한 마음위에 내리는 것입니다 죄와 어두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보십시오.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주님만을 사랑하는 신자의 순결한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보다 더 큰 사랑과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살고 싶은 소원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내면세계에 부어주시는 거룩한 사랑의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런 신령한 은혜의 빛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우리자신의 무지와 마음의 더러움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그분의 음성을 잘못 이해 할 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그런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고 나서도 그런 은혜가 우리 안에 부어지는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많은 기도가 허공을 맴돌다 다시 땅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고 진실한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 앞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점령된 연합된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섬김의 열매가 별로 없고 겉모습으로는 주님을 위해 수고함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세계는 점점 그분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허함을 경험하는 것도 바로 우리의 마음이 이런 사랑 이런 순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 앞에서 이기게 만들고 두려움으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는 그런 불행한일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과 동행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 존오웬 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결과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원리적으로 우리의 영혼은 그분에게 접붙여졌고 그래서 연합되었지만 그러나 실제적인 연합은 우리의 순결한 삶 주님을 향해 헌신적으로 쏟아 부어지는 내면의 진실한 사랑에 의해서 촉진되기도 하고 혹은 물러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중심에 있으니 유혹이 흔들어도 무너지질 않네.
주님과 함께 할 때에 두려움 사라지네. 주님이 항상 나를 지켜주시니
그렇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연합이 그를 지켜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순결입니다 그리스도께만 지배되는 사랑의 관계에서 비롯된 순결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마음 순결한 영혼의 세계를 지닌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세계를 보여주십니다. 얼마나 어렵습니까? 우리가 마음을 다해 중심을 바쳐 살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마음의 순결이 수시로 위협을 받고 그 위협 앞에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순결을 지키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처럼 순결은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가서를 대할 때마다 가장 뛰어난 교훈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만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사랑 하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만이 더불어 누리시는 독점적인 사랑의 관계가 아니면 사랑의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거울 앞에서 우리를 돌아보며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내면세계가 잠근 동산과 같지 아니 할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앞에서 너무나 허술하게 열려있는 우리의 마음의 문을 봅니다. 야비한 사람들에게 마구 짓밟히면서도 부끄러워 할줄 모르는 천박한 여인처럼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크고 넓다는 사랑하나만을 붙들고 걸레처럼 방종하게 마음을 방탕하게 흐르도록 내버려두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는 의지도 없이 열린 동산에 들어온 사람들이 온 동산을 짓밟으며 다닐 때 그 동산은 누군가가 자기를 갖기 원한다는 마음에 잠시 뽐내는 듯한 뿌듯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마땅히 들어올 사람이 아닌 사람이 들어온 것은 그 동산이 유린되어 순결을 잃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이러한 순결이 없으면 그분을 위한 모든 열정이나 섬김도 결국은 그분을 위한 것 이라기보다는 자기 좋아서 하는 일에 불과 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마음과 내면의 세계가 하나님께 바쳐지지 못한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로 가득 찬 교회의 시대에는 더더욱 이렇게 순결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 합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결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수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과내면의 세계는 유일한 주인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지배되어야 합니다. 그 이외 누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자격이 있겠으며 우리예수님이외에 이 세상에 그 무엇이 심지어 천사들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어찌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신랑이신 주님께만 바쳐진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들도 이렇게 사랑과 순결로 하나님께만 바쳐진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불결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대로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우리는 그분의 마음의 전부였고 그분의 마음에는 자기를 품으신 하나님아버지에 대한 사랑과당신이 구속해야할 이 세상에 있는 우리인간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 찬 것 이외에 어떤 것도 그분의 마음에는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죄와 슬픔으로 가득 찬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께서 내려오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죄인들과 함께 울고 가난한자들과 함께 사시며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주린 자들을 먹이시며 당신이 우리를 위해 모두 소진하신 생애를 사셨습니까?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시킨 것이 아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가 가까워졌을 때 하신일은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향한 그 사랑이 너무나 독점적이고 배타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그 무엇에 의해서도 그분의 마음은 나뉘지 않았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교회의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시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과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 거룩한 성령의 능력과 축복으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영혼의 친밀함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입니까? 정말 우리들이 그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누리면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됩니까? 형식적인교회생활과 마음에도 없는 섬김 으로 이러한 순결한 사랑을 대신 하려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거룩한 은혜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풍성한 맛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 모든 것 없이는 이 어두운 세상을 우리가 불꽃처럼 살아갈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더 완전하고 충만한 관계 속으로 사랑관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사랑을 완전히 누리면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정결하고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세상에 대한 사랑과 물질에 대한 사랑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의 문이 고정된 상태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 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가증한 고백이고 그런 것은 얼마나 쓸데없는 고백입니까?
신자들이 세상의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 세상을 사랑하는 관계를 잃어버리고 외톨박이가 되고 나면 얼마나 외로울까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사랑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완전히 소유하고 나면 거기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쫒고 참된 기쁨은 거짓된 쾌락에 탐닉하고 싶은 마음을 몰아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순결해지기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순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순결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부르짖는 그 기도소리나 교회의 부흥을 위한 몸부림은 모두 하나님을 위한 것 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에서 비롯되는 진실한 열심과 갈망이 아니면 그것은 모두자신의 성취와 만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 주님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과 온 삶을 소유 하시옵소서 그리고 지배 하시옵소서 주인이 되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에 당신께만 마음의 은밀한 문을 열 수 있는 그런 순결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언젠가 정말 주님만을 사랑하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때가 있고 애청자여러분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순전한 신앙생활을 하던 때가 아니었습니까? 순결해지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순결해 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주님과의 사랑이 깊이 빠졌기 때문에 순결해졌던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며 모두 주지 않은 것은 준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온전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 아니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부르신 거룩한 뜻을 성취하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신 계획들을 드러내며 불꽃처럼 사는 것은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의 힘으로만 순결하게 살 수 있고 부패한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이패역한 땅 사면을 두루 살피시면서 이렇게 순결한 마음 예수그리스도께만 점령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보다 더 완전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지고 마땅히 하나님만을 사랑해야할 우리의 내면의 세계가 황폐해지는 것을 너무나 자주 경험 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이 순결해져야 할 절박한 필요를 느끼는 일이 너무나 드뭅니다. 자주 아무에게나 걸레처럼 개방되고 점령됨으로써 주인이신 그분이 차지하실 때에 우리 안에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고 황량하게 된 채로 그분이 찾아 오시기에는 부적합한곳으로 발견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우리의 마음을 빼앗으려는 수많은 유혹이 밀려올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해야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 바쳐졌고 우리는 그분과 혼인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것이고 그분이 우리의 것이기에 우리의 마음도 그분의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이고 그분은 우리의 사랑이시기에 우리는 기다림도 고통스럽지 않고 외로움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과의 이런 사랑의 관계는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그런 사랑의 관계로 택하시고 불러주신 그분을 한없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경험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도 예외일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남들이 알지 못하는 마음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아픔이 아닙니다. 그 아픔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순결해지고 그 아픔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라의 깊이와 넓이를 더 많이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빗장의 동산을 부수고서라고 들어오려는 이세상의 악한 것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집착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그리움 이 모든 것들과 사랑에 빠질 위험성을 우리는 안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돌아갔던 게마처럼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몇 푼의 재물을 위해서 우리성령님을 배반하였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위대한 감격을 경험하고도 금덩어리 몇 개와 아름다운 외투 몇 벌에 눈이 멀어서 주님을 배반했던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리스도예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입었음에도 은30이 탐이 나서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노예의 몸값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의 실패를 우리들이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부해지려는 욕망과 가치 없는 것들에 대한 과도한 열심과 명예에 대한 추구나 성공을 위한 경쟁심, 지식에 대한 탐심 타오르는 육체의 정욕도 그런 불청객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의 동산을 그렇게 만들어놓고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애틋한 관계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 큰 구속의 사랑을 입고도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예수를 위해서 살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절을 잃어버린 여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하던 옛 조상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죄악 되고 불결한 세상 사람들이 한번 순결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쉽게 매장하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늘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번 순결을 잃어버린 신자들을 영영 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 안에는 언제나 주님을 사랑함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소문난 죄인도 걸레처럼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주님을 배반했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기만 하면 말입니다 황무지와 같이 짓밟힌 청혼에도 꽃은 다시 피고 그리고 순결을 잃어버린 불결과 죄악으로 유린당한 마음의 동산에도 또 다시 봄은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만을 위한 비원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이 제시하는 마땅한 영적인 회복의 과정을 거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그분만을 완전하게 사랑을 받아 변함없는 사귐 속에서 숨을 거두겠습니까? 우리인간에게는 다시 찾아오셔서 우리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어떠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다시 한번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잃어버렸던 순결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진실로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우리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애청자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새로이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몇 주째 살펴보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입니다.
구약성경 아가서 4장 12절입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인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완벽하게 주님을 사랑하다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많이 사랑한 사람들의 생애의 발자취는 많이 용서받은 발자취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만 온전히 사랑하는 그 일에 있어 실패한 죄인들을 찾아오셔서 용서하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다시 한번 찾아오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순결하게 하시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께서 언제나 즐겨하신 일은 황폐하게 부서진 인간의 내면에 오셔서 다시 당신과 사랑하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일구시는 것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손질하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열매 맺을 거룩함의 나무를 심으시고 기쁨의 꽃들을 가꾸시는 일들이야말로 우리 주님이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우리주님 홀로 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의 이러한 일하심이 있는 곳은 언제나 회복된 순결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순결합니까? 우리의 마음이 오직 그분의 발자국 소리만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분의 마음이 개방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있습니까? 한번 주님을 위해 바쳐진 마음은 영원히 그분의 것으로 바쳐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자신 조차도 우리의 주인일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의 삶속에 온전히 주님의 모습으로 투명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 다른 것들에게 빼앗겨 순결을 잃을 때 우리 안에 모든 것들은 흐느끼며 잃어버린 주님과의 사랑에 대한 감각으로 헐떡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을 송축하리. 내 입술 주를 찬양 나의 눈 보기 원하네.
주님 얼굴 주님의 음성듣기를 주님을 만져보기를 전심으로 원합니다. 주여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긴 세월동안 당신만을 품고 당신 생명까지 내어주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끝까지 완전히 사랑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왜 내려오셨습니까? 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은 버리셨습니까? 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왜 마지막 한 방울의 피 그리고 마지막 물 마지막 한점의 살까지 버리고 찢으신 이유도 바로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 주님은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속을 입은 우리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 주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창조의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사랑 사람의 사랑은 모두 지나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던 사람들이 우리를 배반하거나 아프게 할 때 주님의 사랑만이 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 의해서 배신 당 할 때 주님의 사랑만큼 그리워지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여 그와 불륜의 관계를 맺으며 고멜과 같이 음란한 삶을 살다가 돌아와도 주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를 향해 지켜야 되는 순결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순결을 잃어버린 우리의 배우자를 기쁘게 받아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와 같이 순결을 잃어버린 자들을 용납 하십니다 불결한 자들을 새롭게 사랑의 관계로 부르시는 주님은 정말 자존심도 없으신 것처럼 느껴질지 모릅니다. 어쩌면 불붙는 그분의 사랑이 자존심을 밀치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당신의 사랑을 저버린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아픔을 동반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다가 다시 돌아와 주님의 사랑만이 완전하고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지배할 특권이 우리주님밖에 없다고 고백할 때 비록 우리가 한때 마음의 순결을 잃었다 하더라도 주님은 다시 그 마음을 잠근 동산과 같이 만들어서 당신의 신부로 만들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체험의 요체는 정말 비밀스러운 것입니다 저의 영혼을 만지고 지나가신 하나님의 사랑을 독자여러분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저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지나가실 때 지워질 수 없이 제 마음에 아로 새겨진 사랑의 발자취를 애청자여러분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가슴 저며 하며 눈물 흘리던 나의 이 사랑의 경험들을 어떻게 나의 성도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하는 것은 그분이 저의 영혼을 만지고 지나가셨다는 것과 그래서 하나님과저사이에는 남이 알 수 없는 사랑의 사연을 가진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분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밀어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삶으로 고백하며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분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제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은밀한 말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드러나게 그분을 사랑하는 삶으로 고백을 하며 살고 싶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소유하지 않은 신자는 진정으로 신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시대의 신앙생활을 보시면서 우리주님이 얼마나 아파하실까요? 신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런 사랑의 경험 없이는 신앙이 성립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헛되고 거짓된 기초들 위에 쌓아가는 그 신앙의 지식들로 우리주님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반석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경험이고 자신의 지식이고 도덕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은 희미하거나 불확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 온존재가 감지할 수 있는 확실하고 진실한 것이었고 의심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마와 같이 의심 많은 우리조차도 우리를 사랑하신 이는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너무나 확실하게 우리주님은 다가오셔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당신과우리만이 아는 사랑의 흔적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태어나서 그분의 앞섶을 헤치고 물려주시는 젖을 빨며 자랐습니다. 그분 앞에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웠고 이런 고집대로 걸어가다가 넘어지고 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올곧게 그분만을 사랑하고 그분께만 순종하며 살아온 적이 있습니까? 언제나 넘어졌고 그리고 언제나 깨트려 졌습니다. 그분의 품에서 태어나서 그분의 앞섶을 헤치며 젖을 빨며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고아인 것처럼 그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났던 날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탕자처럼 아버지보다는 세상이 좋아서 그 아버지의 집을 떠났었습니다. 먼 길을 떠났고 다시 돌아올 때 베풀어주시던 주의 성찬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나 먼 길을 떠났고 그런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입은 사람답게 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마치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가 그를 끌어안고 사랑해 준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대신 뉘우치고 돌아오는 진실한 사랑 때문에 우리를 다시 부르셔서 주의 성찬에 들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 포만감을 느끼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떠나가 있는 동안 우리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우리 예수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인내하심으로서 우리들이 당신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을까요?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사랑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왜 탕자처럼 멀리 주님을 배반하고 그 사랑을 반역하고 떠났던 우리들을 돌아올 때 받아주셨을까요 무엇 때문에 다시 돌아와 주님의 품에 안길 때에 우리를 안아주시고 우리의 발에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새 옷을 입히고 커다란 잔치를 배설하셔서 그런 용서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은 모두 그분의 용서하시는 사랑 때문이었고 이제라도 남은 생애를 주님만을 사랑하는 순결함속에서 살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그렇게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사랑의 기회이고 사죄는 그분만을 위한 또 다른 순결의 기회인 것입니다 주님이 이런 사랑을 베푸실 때 우리에게 기대하셨던 것은 이처럼 우리와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전부였던 것처럼 당신도 우리의 마음에 전부가 되기를 원하셨기에 걸레와 같이 주님을 배반하고 이 세상에 더럽혀진 우리들을 용서하시는 사랑으로 맞아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이 걸레와 같이 살았던 우리들을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고 부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런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과의 관계로 부르시고 그 안에서 순결을 지키며 살기를 절박하게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해주시는 사랑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주님을 버리고 걸레와 같이 방탕한 삶을 살고 이 세상에서 쓰레기와 같은 것들을 위해서 보배처럼 귀한 예수그리스도를 버린 배신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거듭되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용서함을 경험함으로서 주님만을 사랑하는 순결한 사람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사에 나오는 위대한 성인이라고 불려지는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의 생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면서 많이 교회에 빠졌고 17살에 사생아를 낳은 사람이었습니다.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고도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다시 범죄하고 어둠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후에 어거스틴은 그 죄악된길에서 돌이켜 살면서 그는 은총의 신학이라고 하는 장엄한 신학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고 그를 위해서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다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처럼 완전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주님은 오늘도 완전한 사람들 순전한사람들이 아니라 불결하고 더럽혀 졌어도 다시 한번 주님 앞에 돌아와서 사죄의 은혜를 입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져서 남은 생애를 순결한 삶으로 주님을 섬기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순결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그분의 신부가 된 우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마치 한 남자와 결혼한 여인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서 부부의 대의를 따라서 정조를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한 여인과 결혼한 남성이 동일하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부의 대의 와 의무를 다하고 정절을 지켜야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자로서 예수그리스도를 향해 순결한 마음을 갖고 지키며 사는 이 삶은 세상 법으로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깊이 경험함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아로새겨진 우리가 즐거워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사랑하는 이만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그 사랑이 역사하고 있는 한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잠근 동산같이 지키려는 신앙의 노력은 우리의 혈관의 피가 식고 우리의 혀가 굳어질 때까지 계속 되어야할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큰 대적은 마귀도 아닌 이세상도 아닌 우리자신입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떠나 이 세상으로 가려고 하는 우리자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지 않고 이탈된 목적을 따라서 자신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헛된 이러한 생각, 이러한 경향성을 가진 부패한 자신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대적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정절을 지키려는 애씀이 없는 사람들이 순결의 중요성과 그러함으로 말미암는 신령한 축복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평범한 인간의 뇌리에는 하루 평균10만 가지의 생각이 스쳐간다고 합니다. 오늘도 수많은 더러운 생각과 유혹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자 할 때 우리는 분초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마치 우리주님이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위탁하신 것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의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의 마음은 당신만을 위하여 구별된 마음입니다 주님이외에 어떤 것에도 단 한 치의 마음조차 빼앗기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이 저의 것이듯이 저 또한 당신의 소유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이처럼 우리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우리를 순결하게 살고자하는 그런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랑의 비밀을 모르고 신앙 생활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얼마나 건조한 삶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 은혜를 날마다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단 한번도 의심해 보거나 회의에 빠지는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참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혹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도처에서 넘쳐나는 싸구려 사랑은 아닙니까?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좋아하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관심과 즐거움 그리고 탐닉, 그런 탐닉의 정서들이 혹 오늘 우리에 의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고 오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정말 우리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이 만약에 어디서든지 도처에 넘쳐나는 싸구려 사랑이라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라는 말을 쉽게 고백하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필요합니다. 라고 하는 우발적인 고백과 가깝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의 표준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그 표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차마 주님 내가 차마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고백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랑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우리의 마음과 온 삶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순결해지도록 새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갓난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마음과 온 영혼을 다시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로 다시 세워져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게 하셨던 그 큰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자신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나님이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크고 놀라운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런 갱신된 사랑을 주어서 그 사랑 안에서 우리주님을 사랑하고 우리주님을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고치고 새롭게 해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실패한 사람들을 찾으시고 오늘도 다시 돌아와 그 사랑과 은혜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게 되기를 지금도 원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랑 앞에서 여러분들은 어찌 하시렵니까?
몇 주째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사는 기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가서 4장 13절에서 15절입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가서 에는 불타는 사랑의 복음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가서는 구약으로 말하자면 시로 쓴 호세아서라고 할 수 있으며 신약으로 말하자면 구약의 요한일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솔로몬의 시를 깊이 연구하면 우리가 마음으로 주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주님과 진정으로 하나 된 삶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신앙생활의 외형은 매우 분주한데 내면의 세계는 왜 그리 공허한 상태를 면하기 어려운지를 복음의 빛으로 밝혀주는 사실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사랑하는 여인을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신부에게 단지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혈육에서 느껴지는 끈끈한 정을 가지는 동시에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여인의 애틋한 사랑을 같이 느끼는 친근함의 표현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 좀더 이 묘사를 상세히 살펴보면 표현 기법 상 점층법을 사용하면서 기록자의 시각의 초점 이 넓은 동산의 입구로부터 그 중심부로 점점 좁아져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너른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는 우물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샘이 있고 그 동산은 잠겨있고 그 우물은 덮여있습니다 샘은 봉해져있습니다 그리고 우물가 동산에는 물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샘이 있고 그런데 그 동산은 잠겨있고 우물은 덮였습니다. 샘은 봉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물가 동산에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열매들이 가득하여 그 동산을 더욱 소중한 동산이 되게 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는 여러 가지 과실과 나무의 이름들이 나열되어잇습니다 히브리어사전과 성경사전을 함께 찾아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늘날 유대인들조차 모르고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종류의 식물이 몇 가지 나옵니다. 석류 침향 유향목 등은 귀한 약재로 쓰였고 침향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알로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하시면서 열매 맺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아가서 본문을 본다면 이 동산에서 나는 아름다운 열매들이 주는 새로운 감동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치 열매 맺은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거룩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위해서 신자인 우리 안에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사랑의 관계가 실제로 존재해야 합니다.
요즈음 발달한 것 중의 하나가 수공예기술입니다 얼마나 기술이 뛰어난지 가까이 가서 만져보기 전에는 진짜 꽃인지 가짜 꽃인지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꽃이 아름다울수록 조화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 더 커다란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것을 아무리 자주 보아도 별로 감동을 느끼지 못 합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야! 이거 정말 멋있다! 라고 감탄할 때 우리는 무뚝뚝하게 말하게 됩니다. 가짜라고 말입니다 그 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조화의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니 당연히 열매도 맺히지를 않는 것입니다 만약 달려있다면 그것은 그 나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열매도 가짜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조화에 매달린 열매 같은 삶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즉 그 동산에서 나는 것은 이라는 말이죠. 솔로몬이 이렇게 말할 때 그 동산은 오직 한사람이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비밀스러운 정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적이 그친 채 오직 한 주인을 기다리는 동산에서만 아름다운수목의 탐스러운 열매들이 달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는 고운모양을 한 꽃 한 송이 예쁜 풀 한포기 탐스러운 알밤하나가 남아나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모두 따거나 헤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속에서는 아름다운 열매들이 매달렸다가는 저절로 떨어지고 흐트러진 꽃들은 수명을 다하기까지 자신의 자태를 마음껏 자랑 합니다 오늘 이본문은 우리에게 잠근 동산과 아름다운 열매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말 신앙의 열매가 매우 적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조국교회그리스도인들은 반쪽자리 복음을 붙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믿는 즉시 천당이요 안 믿으면 지옥이라는 믿음주의 같은 것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믿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천국이라는 구호까지 가능하게 하는 반쪽복음의 신앙이 교회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믿음주의는 예수님께는 물론이고 오직 믿음으로 를 외쳤던 종교개혁자들에게도 낯선 것입니다 성경은 즉각적인 구원과 함께 점진적인 구원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과 성령으로 날마다 변화되어서 성화되어가는 점진적인 구원을 무시한 즉각적인 구원은 성경으로서는 생경스러운 비성경적인 믿음주의입니다 오늘날 조국교회의 영적인 삶이 이처럼 심각할 정도로 피폐해지고 형식적인 신자로 넘쳐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화의 즐거움을 경험하며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의 진보는 신령한 생활과 도덕적인 삶의 진보를 가져옵니다. 거기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삶의 열매가 없기 때문에 오늘날 윤리의 운동이 거룩의 추구를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근 동산과 같은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나누는 거룩하고 생명적인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이러한 열매를 맺는 일들은 가능해집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조국교회가 외형을 키우는 일에 열심을 내는 만큼 신자의 영혼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고 그들이 내면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와 얼마나 풍성한 교제를 누리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러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목양하도록 힘을 기울인다면 교회는 이 소망 없는 세상을 향해 훨씬 더 건강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수많은 신자들 가운데 일주일동안 이러한 주님과의 영적인 사귐 없이 단지 교회당을 오가며 낯 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그럴듯해 보이는 열매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교회생활에 성실한 사람 교회에서 잘 섬기는 사람 도덕적인 사람 그런 평판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뿌리박지 않아도 얼마든지 맺힐 수 있는 열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믿지 않는 가족들은 그 사람에게 교회에 미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의 삶속에서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주님과의 비밀스러운 교제의 세계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잘 지키고 그 마음을 오직 그리스도예수에 의해서만 지배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인생의 비밀은 믿음의 비밀이고 믿음의 비밀은 사랑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아름다운 열매와 진귀한 수목들이 모두 잠근 동산에서 자라났듯이 우리의 모든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들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진리입니다 그것이 인격의 열매이든지 섬김의 열매든지 어떤 열매든지 간에 오늘도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의 세계 속에서 받는 거룩한 감화를 통해 맺히게 되면 그 열매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열매가 있고 열매를 맺게 하는 그 뿌리는 우리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세계에서 조차 사람들을 내몰려는 것 같은 강포한 밀어붙이기식의 성과주의의 추구를 자주 봅니다. 교회의 이런 잘못된 생각은 교회를 거대한 사회단체로 만들어가고 신자들을 주님과의 아름다운 교제의 상실에서 오는 공허한 마음을 몸으로 때우는 소위 노가다 신자로 만들어냅니다 교회가 너무 많은 행사를 자주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휘몰아가기보다는 정직하고 풍성한 진리를 통하여 신자들이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도록 만들어주고 삶의 문제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해답을 찾도록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에이든 윌슨 토저 라고 하는 미국의 작가의 지적과 같이 자기를 성찰하고 깨달음으로서 내면의 세계에서 더욱 주님과 하나 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정말 필요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의 거룩한 삶의 비밀은 모두 주님과의 영적교제의 비밀이며 이러한 관계없이 단지 삶의 열매만을 맺고자하는 것은 종교적인 성취를 위한 노예적인 삶의 다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이 열매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할 때에는 오히려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불러주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지키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그 관계를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영혼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에 미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결과는 사람의 한계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들이 맺는 섬김의 열매는 무한한 감동을 주고 우리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만일 우리에게 열매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매우 적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많은 열매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실패의 근원을 찾아내야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삶에 많은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 원인이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삶속에 거룩한 열매를 맺어가는 아름다운 기쁨이 있지 않은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고 끊임없이 그 은혜 안에 살면서도 허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정직하게 말해서 이 모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정말 배타적으로 그분만을 사랑하는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정말 되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듯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 안에서 이루어져야함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의 교훈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고 말입니다 저는 언젠가 그 아름다운 본문을 읽다가 문을 닫고 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아름다운사랑의 연합이 촉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그 교제가 우리를 더욱더 신령한 연합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묶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바꾸어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혹시 우리의 골방의 문이 열려있어서 세상의 근심과 염려와 유혹 그리고 쾌락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홀로 대면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제를 하든지 복음을 전하든지 교회를 섬기든지 하나님사랑만이 우리의 모든 삶의 동기가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순결을 유지하며 사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때문에 기쁨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까?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세상이 줄 수 없는 희열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시련이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한 기쁨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즐거움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고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하며 사는 것에 기뻐하고 말할 수 없이 행복해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도바울이 당부했던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근심과 괴로움이 찌든 마음을 그대로 가진 채 광고회사 직원들이 수없는 연습을 통해 얻게 된 가짜 웃음 같은 스마일을 해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쁨의 원천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기쁨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아름다운인격과 삶의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게 하는 거룩한 감화의 원천은 어디입니까? 그리고 그 기쁨은 어디에서 채워집니까? 여러분들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이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께 대한 신자의 진실한 사랑의 관계로부터 이모든 기쁨과 은혜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동산에 맺힌 아름다운 과수의 수많은 열매들은 주인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 열매들은 또한 그로 하여금 동산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독자여러분이 솔로몬의 입장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혼인예복을 입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을 맞이하기 위해 다가가고 있을 때 신부가 인격적으로나 삶에 있어서나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순결 가운데 더 많이 맺혀져가고 있다면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얼굴이나 몸매만 고울 뿐 아니라 삶의 열매 좋은 인격의 열매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어 현숙한 여인이 되어가고 있다면 이 여인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은 단지 육체에만 매혹된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아름다운외모도 곧 지나고 고운 몸매도 이내 사라지지만 그러나 그 신랑을 향해 갖고 있는 사랑에 맺힌 인격의 열매는 그치지 않습니다 누가 그 생명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잠근 동산 아무도 없는 그 아름다운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곁에서 일어난 그 일을 말입니다 이 동산에서 나는 아름다운 과목으로 인해 주인은 더욱 이 동산을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산을 사고 팔 때 그 산의 가치가 종종 산에 존재하는 식물이나 광물에 의해 결정될 때가 있습니다. 잔 목들만 무성한 쓸모없는 산은 땅의 넓이로만 그 가치를 계산하지만 아름다운열매 값진 종자를 맺는 나무가 있으면 법적으로 따로 계약해서 땅값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동산에서 자란 유향목과 나도초와 번홍화와 석류나무와 모든 아름다운 과목들은 그 잠근 동산의 가치를 한층 높여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를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해주셔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자신이나 우리이웃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시고 우리를 구하기 위해 당신은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매가 얼마나 주님께 기쁨이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그분의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며 열매를 사모하고 신앙의 과목과 아름다운 실과가 가득한 인격이 가득한 삶이되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구원해주셨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 열매를 많이 맺어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모든 말씀을 통해 아름다운 것은 비밀 속에서 자라간다는 것을 배웁니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을 맛본 사람들도 모두 기도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 승리한 사람들은 복음전도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남들이 알 수 없는 고통과 실패와 낙담으로 황폐하게 된 삶을 성공으로 바꾼 놀라운 신앙의 경험은 모두 하나님과의 비밀스러운 사랑의 관계를 새롭게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순간 우리마음이 다른 것들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도움을 호소하고 만져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은 성을 지키는 일보다 힘들기에 우리는 매순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만 바쳐져 순결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자신에게 속삭여야 합니다. 타일러야 합니다.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시대의 조국의 교회와 여러분들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마음을 여는 교회 그리고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실 때 아름다운 실과와 수목들로 향기가 진동하는 교회가 되고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디에 살든지 예수의 향기를 날리는 아름다운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소원과는 다른 교회현실을 보시며 주님은 마음아파 하십니다, 아무렇게나 열린 문을 통해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들이 다가와서 교회를 밟고 지나가고 홀로 그분이 좌정하셔야할 교회의 높은 보좌에 한번씩 앉아버린 순결을 잃어버린 모습들을 너무나 쉽게 발견하고 주님은 아파하십니다. 주님만이 아닌 교회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결코 될 수없으며 주님께만 문을 여는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주님의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급하게 대처되어야 할 것은 거창하게 세상 사람들의 환심을사는 구호 같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순결입니다 주님을 향한 불붙는 사랑에서 비롯된 순결 그것이야말로 순결한 주님이 교회에 임재 하시게 하는 중요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그분을 뵙는 가장 훌륭한 준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순결을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이외의 것들에 대한 사랑을 모두 버림으로서 시작 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이 주의 다시오심을 기뻐하는 세상이 되기까지 먼저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직 순결하게 그분의 소유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애청자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이아침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아가서 4장 13절에서 15절입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번홍화와 창포와계수와 각종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몇 주 째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사는 길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매우 가물었던 때였습니다. 지방에 내려가면서 한 산을 보았는데 날이 너무 가물어서 걱정하던 그러한 마음 이었습니다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아무리 겨울이라고 하지만 골짜기에는 물 한방울 흐르지 않고 나무들은 모두 바짝 말라있어서 성냥하나만 그어대면 금새라도 불이 날것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산에도 봄비가 넉넉히 내리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비가 내리면 많은 물이 흘러가고 계곡에 쌓여있던 더러운 것들이 모두 씻겨 내려 갑니다. 그리고 숲속에는 다시 생기가 돕니다. 나무가 다시 잎을 내고 풀이 싹을 내면서 온 산이 거대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다운 향기나 진정한 기쁨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마땅히 깃들여야할 거룩한 즐거움이 사라진 건조한 사람들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메말라버린 은혜의 샘이 있습니다. 건조한 땅이나 모두 타들어갈 것 같은 메마른 동산에서는 나무한그루 풀 한포기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거나 혹은 믿으면서도 신앙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참사랑과의 연합 없이 살아가는 신자들도 동일한 신세입니다 아무리 가련한 사람일지라도 그런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기대도록 어깨를 빌려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마른 땅을 걷는 것 같이 피곤하던 한사람의 심령 속에 어느 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은혜가 부어져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껏 그분 없이 살아온 인생은 얼마나 비참하고 부끄러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는 그 수많은 불행한 삶이 사실은 그 근원을 자기 자신의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에는 한사람을 고치는 힘이 있습니다. 신앙에는 한사람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까지 고치는 힘이 있습니다. 황폐한 마음 망가진 인생을 고치기 위하여 다가오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고 그 사랑 앞에서 마음이 녹아내리는 참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주님과의 생명적인 사랑의 관계를 다시 맺어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고
저 위험한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뼈저린 마음으로 회개하고 그분과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은혜를 자신의 인생의 밭에 물을 대는 수온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고귀한 은혜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주님을 찾을 때 우리는 마음속에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우리주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마치 아가서의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나눈 사랑의 밀어가 기록된 것처럼 우리에게는 주님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그런 언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밀어를 통해주님의 마음을 받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전하는 영적교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분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흐르고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정서 속으로 흐를 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향한 우리주님의 마음을 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통해 이제는 단지 피상적으로 알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그 섬세한 이끄심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풍성한 사귐의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말은 많아도 인격이 천박합니다. 사랑의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능란하며 심오한 설교를 할지라도 그 사랑의 힘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실어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 그 순전한 사귐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사랑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은 은혜의 샘물에 깊이 잠겼던 사람들입니다 그의 말은 우리주님에 대한 진실한 증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직접 주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주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게 된 간증을 통해서 경험한 주님이 아니라 주님을 직접만난 그 경험이 주님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속에서 신령한 은혜의 물에 잠겼던 사람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숲을 우거진 물댄 땅과 같은 동산을 거닐었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체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의 사랑의 체험은 말과 그의 삶속에 숨길 수 없이 묻어나게 마련입니다 저와 같이 설교하는 일에 자기를 드려야 하는 사람은 이런 진리를 정말 실감나게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 통로임을 체험한 것이 바로 몇 해 전 여름철에 있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한적한 기도원에서 열린 어느 신학교학생들의 수련회에서 설교를 해주도록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며 들어간 그 다음날 아침 성경을 펼쳐 누가복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수없이 스쳐가던 누가복음 중 한 구절이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1장80절이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 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가지 빈들에 있으니라 고 한 그 말씀 말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건조해 보이는 단 한 구절의 말씀 이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축축한 골짜기에서만 물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마른 반석에서도 물을 내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충분히 경험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전 그 본문을 읽는 동안 시선이 고정 되었습니다 3박4일 동안 그 한절만 읽었습니다. 눈앞에서 잠긴 동산과 같았던 본문이 열리면서 저는 그 한절이 이루어놓은 장엄한 진리의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밟아보지 아니한 진리의 숲속은 풍요로운 동산들로 가득했고 메마른 성경읽기의 땅을 타박타박 먼지내며 걷던 가련한 저는 실로 오랜만에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진리의 숲속에서 마음껏 하나님과 사귀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고 저는 어린아이가 되어 그분이 만들어놓으신 그 아름다운 풀밭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가련한 저를 불쌍히 여기사 말씀하시는 주님과 그 황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저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입을 여셨고 짐승 같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폭풍처럼 우뢰처럼 말씀하셨고 어떤 때는 가련한 흐느낌이 섞인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없는 친밀함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내가 아주 작은 존재가 되어서 그분의 임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때때로 우리주님의 음성은 벼락을 치는 것같이 엄청난 소리였는데 한편으로는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달콤했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엄청났습니다. 그때 저는 혼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누가 복음 1장 80절이 성경으로 기록된 일에 최초로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라고 말입니다 이 한 구절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급히 메모하였는데 큰 종이로 24장에 달하는 분량 이었습니다 후일 이 한 구절에 대한 깨달음이 약 270쪽의 책을 쓰게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많은 신학생들을 깨우는 도구로 사용하셨던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라고 하는 책입니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하는 책은 바로 이렇게 쓰여 졌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저는 듣는 둘만의 시간으로 꿈결 같은 시간 이었습니다 저는 생각 했습니다 잠깐 스치듯 지나간 것 같은 짧은 사귐 속에서도 이런 엄청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면 일생을 이런 사귐 속에서 살았던 거룩한 신앙의 사람들은 얼마나 풍성한 진리와 감격 속에서 살았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주님 앞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주님과 만남으로 함께 누리는 이 거룩한 사귐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에 있어서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절실하게 경험 했습니다 모든 것을 주고라도 그런 사귐 속에서 영원히 지나가고 싶었습니다. 눈물과 거룩한 환희로 가득 찬 그런 세계에서 주님과 교제하던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눈물을 씻고 우리의 사랑이신 주님만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은 이 소명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같이 있으려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더 많이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이 깃발을 들고 세상을 향해 치 닫는들 어떻게 그 사람을 통해 이세상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더 깊은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경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러한 애씀은 단지 골방에서만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일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세요소를 고루 갖춘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 속에서 주님만을 사랑하며 섬긴다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있는 것을 인해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시련의 파도와 핍박의 비바람을 이기면서 성숙한 경건과 연단된 꿋꿋함으로 거목처럼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았던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의 근원을 가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아! 정말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만 바쳐진 심령을 간직하면서 어두운 세상에서 보낸바 된 소명을 따라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아 간직하면서 그분께만 마음을 열고 잠근 동산과 같은 순결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심령 속에는 생수의 강이 솟아 날 것이며 그로서 망가진 자신을 치료하고 이웃을 고치시는 그분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봅니다.
우리는 아가서 4장에서 12과15절 사이에 있는 절묘한 문학적 수사법의 일치를 봅니다. 잠근 동산에서 덮은 우물 그 안에 있는 봉한 샘을 묘사함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는 시야를 동원했다면 뒤에서는 샘에서 나는 우물로 거기에서 시내라고 표현함으로서 안에서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는 시야를 채택 했습니다 명절 끝날 주님이 베푸시던 초청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신 그 말씀 말입니다 이세상이 어떻게 우리주님의 사랑을 알게 될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어두운 죄악의 도성이 복음에 의해 점령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감격적인 주님의 사랑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 밖에는 소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도전하는 이세상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참된 복음화는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 속에서만 솟아나는 생수의 강으로 이 척박한 세상을 적셔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음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 냉담했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하나님을 알게 하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게 해서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그들을 고치는 그 일이야말로 정말 복음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분은 바로 이일을 위해 세워졌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일을 위해 선택받는 용사들입니다 생수의 강이 한사람의 내면의 세계에 흘러넘쳐 교회를 적시고 마을을 적시고 한 도시와 시대를 두루 적실 때에 우리는 비로소 복음의 승리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방법이나 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로부터 생명의 은혜를 받고 더불어 깊은 교제를 나눈 한사람의 영혼에서 넘쳐나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러한 위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조국교회에는 오늘날의 영적인 상황이 마치 메마른 땅을 걷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형편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된 만족을 신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고 섬기기는커녕 자신의 존재자체가 주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스스로 힘겹게 느끼는 사람들 속에서 정말 이런 생수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의 모든 건조함과 영혼의 고통은 주님과의 교제가사라진데 있습니다. 목마른 길손에게 깨끗한 샘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물 한잔은 다시 한고비를 넘어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뜨거운 여름날 길을 걸어가다가 지쳤을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을 먼저 예수님 믿게 하시고 은혜의 샘에서 마시게 하신 것은 인생길이 험하고 밤이 깊어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영혼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사람처럼 예수 믿으며 그 생수의 근원을 간직하며 살고 싶다는 소원을 불러일으키게 하시려고 여러분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바로 복의 근원이 된다고 하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을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 하시사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주셨던 그리스도를 향해서 마음을 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더 크고 놀라운 교제를 주시고 사랑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명 물을 찾지 못해 메마른 땅에서 눈을 부릅뜬 채 견딜 수 없는 목마름에 몸을 부여안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생명의 작은 샘들로 부르셨습니다. 생명 물은 오직예수님이시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주님과의 사의랑 교제로 흘러나오는 생수의 물이 넘쳐날 때 우리들은 우리에게서 주님의 물을 마십니다. 이런 영적생명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세대에 고통 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이세상은 뜨거운 햇볕아래 힘겨운 행군으로 지친 병사처럼 영원한 생수에 목말라합니다 우리에게서 솟아나는 은혜의 생수는 이제 우리의 갈한 목을 축이는 생수의 근원이 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새 힘을 얻게 하는 우물이 됩니다. 급기야 이 우물은 레바논으로부터 흐르는 시내가 되어서 메마른 땅에 생명이 깃들게 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러한 일들이 그 땅의 역사를 바꾸어버립니다 레바논산맥은 동쪽에서 시작해서 서쪽으로 헐몬산 아래까지 뻗어있는 높은 산맥입니다 레바논이라고 하는 말은 하얀 산 이라고 하는 히브리말입니다 만년설이 덮인 그 레바논 산맥을 타고 시내가 달려옵니다. 시내가 지나는 땅은 농경지가 되고 아름다운 물댄 동산이 됩니다. 아름다운 화초와 곡식들이 자라고 새들과 짐승들이 깃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는 모두 실패한 사람들이었고 가시덤불과 같은 인생을 살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가슴에 상처를 받아서 누구든지 찌를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내면세계를 소유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쉴 곳 없어 날아드는 작은 새들조차 가시에 찔려 다시 날아가야 하는 덤불숲 같은 황폐한 내면의 세계를 지닌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내어주셨던 마음을 단속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에 의해서 지배받는 마음이 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황폐한 삶의 정원으로 무성하였던 가시나무와 엉겅퀴 같은 것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잘라지고 오히려 그 재들이 거름이 되어 그 속에서 각양 아름다운 과목들이 되어 자라고 온갖 열매들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삶의 열매를 보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불쌍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의 존재자체가 주님에게는 구속해어야 할 동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인격과 삶의 값진 열매들을 많이 맺는다면 주님이 얼마나 더 기뻐하시겠습니까?
진정한 부흥이 무엇입니까 참된 부흥은 큰 교회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득 차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부흥은 거친 풀조차 돋아날 수 없는 마른땅과 같은 이 사람들의 그 성도들의 마음이 기름진 풀밭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조차 그쳐버린 황무한 땅과 같은 교회에 다시 신앙의 감격이 넘치고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들로 교회가 가득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양보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생수의 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모든 것은 변하지만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의 샘입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마셨지만 아직도 그 샘은 다함이 없는 풍부함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샘에서 마시고 우리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샘이나 우물이 아니라 커다란 시내와 강이 되어서 계곡을 휘돌아 흐르고 광야와 같았던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생명의 소생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생애를 사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우리 신자가 불꽃처럼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