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준비 모세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 하게 하려 할 쌔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행 7:18-25).
이렇게 역사는 흘러가서 모세가 태어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요셉이 애굽에서 국무총리가 되고, 이제 야곱은 그의 살아있음을 듣고 가족들이 내려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가나안을 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오히려 가나안에 있는 사람들이 애굽 땅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불신앙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야곱에게 가라고 지시를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큰 뜻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해주신 것인데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고, 또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민족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호는 입었어도 아직 야곱이 자기 가족들과 함께 가나안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는 한 집안 식구였지 민족은 될 수가 없었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그 가나안에 있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꼭 필요했는데 그 전쟁 없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었는데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필요했고, 또 접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접수한 다음에 들어가서 그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많았어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명령하신 것이죠.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백성들이 아주 많아지게 됩니다. 거기에서 최소한 200만 명 내지 300만 명 사람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애굽 사람들은 왜 그 큰 나라에서 왜 히브리 민족이 이렇게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데 이 히브리 민족이 이렇게 늘어나는 것을 애굽 사람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이제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는데 그중에 한 설명이 뭐냐면 이때에 애굽을 다스리고 있었던 그 애굽이 말하자면 이제 애굽의 원래 있었던 민족이 아니라. 애굽을 침입한 이민족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소수로서 다수인이 애굽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그러면 자기가 압제하고 있는 백성들이 다수로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졌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란이라든지, 폭동이라든지. 이렇게 보는 것이죠. 어쨌든지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많아지게 되었고, 하나님이 그들의 다산에 축복하신 것이죠. 그래서 남자 아이를 죽이도록 그렇게 지시하지만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거기에 순종하지 않죠. 그 때에 이제 거기에서 모세라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바로의 궁으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교육을 받게 하신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보면 이제 한 시대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깊이 훈련받아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그 사람이 한 지도자로 이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토양을 어머니로부터 받았을 것이고요. 그리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토양 이런 것들은 이제 애굽의 교육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당시의 애굽은 오늘날로 말하면 뉴욕쯤 됩니다. 그래서 모든 교육과 외고, 그리고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고, 그래서 유물들을 보면 애굽에서 쓰는 용어는 상형문자였습니다. 거기에서 설형문자의 문설이 많이 발견됩니다. 설형문자, 즉 쐬기 문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입니다. 바벨론이나. 이쪽으로 그런데 그것들이 거기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면 당시에 애굽이 강한 나라이기는 하였지만 외교문서가 오고갈 때에는 이제 쐬기 글자들이 오고갔고, 그것들이 애굽에서 얼마든지 해독이 되었다. 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이 훈련받은 모세는 거리는 떨어져있지만 손바닥 보듯이 그 팔레스타인 지역들,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고 가게 될 여행하게 될 광야와 이 모든 나라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률, 과학, 행정 등등의 이 모든 분야에 대해서 아주 폭넓은 식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고, 그래서 한 지도자로서 모세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지도자는 갖고 싶어 하지만 그 지도자로 자라기까지 그 사람들을 세우고 훈련하고 하는 그런 투자는 잘 안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것이죠. 그래서 사과를 원하면 나무를 심어야 됩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우리가 심어놓은 나무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열매를 따는 것이죠. 그렇게 함으로서 교회나 나라가 발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제 40쯤 되어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들어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위치는 얼마나 애매했겠습니까. 적자도 아니고, 그래서 이제 이 민족을 구원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애굽 사람을 죽이게 되죠. 거기까지가 오늘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했지만 결국은 백성들이 자기를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가 아직 안 된 것이죠. 우리는 여기에서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뭐냐면 그렇게 신앙적이고, 정신적인 토양은 어머니로부터 전수를 받고, 지적이고, 이런 학문적인 토양은 애굽으로 공급을 받아서 자신은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고, 이제 젊음도 있고, 패기도 있고, 이제 비로소 민족을 위해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가지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영적인 준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미디안 광야로 가게 하시고, 거기에서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하나님을 위해서 영적으로 준비되도록 만듭니다. 이 일을 통해서 이제 모세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