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5일 새벽예배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이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깍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없음)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 8:32-39).
어제의 이야기가 계속이어지고 있죠. 혼자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혼자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그때에 읽는 성경이 이사야서 이었습니다. 이사야에 나오는 메시아의 예언에 관한 부분을 죽 읽어 내려가는 거죠. 그런데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어요. 빌립이 가까이 성령에게 이끌려서 다가오니까 “여기에 나오는 이 사람이 이사야 자신을 가리키는 거냐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거냐?”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빌립이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성경을 풀어주면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가 하는 것을 쭉 가르쳐주었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속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회개하고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 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가 사실 그 종교를 가능하게 했던 혹은 그 종교의 기원이 되는 어떤 사람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불교에서는 석가가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가 이렇게 사람이 중요시 취급이 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기독교에서 만큼 모든 종교의 사활이 한사람에게 걸려 있는 종교는 없습니다. 모든 종교의 사활이 한사람에게 걸려 있어요.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 개인의 기독교 신앙이 서기도하고 잘못 알면 넘어지는 거죠. 또 그분이 역사적으로 진실로 이 세상에 사셨고 참사람이셨으며 동시에 참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는 이 사실에 기독교 신앙전부가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런 독특한 종교는 이 세상에 없어요. 불교에서 석가를 이야기 하지만 그는 단지 사람일 뿐이고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이 불자가 되어가는 모범일 뿐이에요. 마호메트도 신의 계시를 전달해준 사람일뿐이에요. 예수님은 다르다 이거에요. 그것이 바로 이 빌립이 그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제일 먼저 그 성경구절에서부터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하는 것을 풀어서 설명 해주기 시작한 이유다. 거기에 모든 기독교 신앙이 서는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중심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좋은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잘 알아야 가야 해요. 여러분들이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굳게 붙든다는 뜻이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며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위해서 생명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비롯한 모든 하늘에 속한 좋은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내려오고 또 이 땅에 있는 모든 성도의 아름다운 헌신과 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께 올라가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 중보사역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의 중보사역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당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내시고 우리가 드리는 모든 사랑과 헌신과 기도를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아버지께 올려드린다. 누구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을 사람이 없고 아버지께 나아갈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그 예수그리스도를 정확하게 가르쳐주기 시작한거에요. 그랬더니 회개하고 주님을 믿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났어요.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사람은 흑인이에요. 흑인으로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어요. 피부색과 시대 그리고 빈부와 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그곳에는 그런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예수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많이 생각하고 배우면 배울수록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점점 더 풍성한 신앙생활들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궁금한 건 이거에요. 이 빌립이 어떻게 이렇게 유창하게 그렇게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이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었을 까? 집사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이 제자들을 모두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게 만들었던 한 사건 스데반의 순교 사건을 기억을 하면 답이 풀려요. 그 사람도 똑같이 집사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유창하게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하는 놀라운 이해를 보였어요. 그건 뭐냐 하면 그들이 예전에도 구약을 많이 읽었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체험하게 된 것이에요. 성령님이 오셔서 하신 가장 중요한 일이 예수님을 증거 하신 일이에요. 그리고 그 예수님 앞에서 각 사람들 자기 자신의 죄와 죄의 비참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 하나님 앞에 여전히 죄인인 자기 자신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 지 보여준 거에요. 그래서 거기서 진짜 예수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고 성경전체에 흐르는 계시 속에서 예수그리스도 가 어떻게 증거 되고 있는 지를 생생하게 깨달은 거에요. 그리고 거기에서 아주 놀랍게 은혜를 받게 된 거에요. 변화가 일어나게 된 거에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거에요.
그래서 그들이 변화되고 놀랍게 구원을 얻는 아름다운 역사가 나타난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이유다 이거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도 가장 시급한 것은 그게 뭘까요 흩어진 모든 성도들이 입을 열어서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되 단지 남에게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해주고 교회에서는 언제나 성경이 펼쳐지고 그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가 흘러나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또 거기에 있는 사랑하는 많은 성도들이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깊이 변화되는 것 이러한 역사들을 끝임 없이 경험하게 될 때 거기에서 회심과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이것만이 희망이에요. 그래서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살아계심에 부딪힌 적이 없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일 수 있겠어요?
신령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신적인 은혜의 빛이 그의 영혼에 깊이 새겨질 때 그때 그가 비로소 하나님 앞에 주님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에요